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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달러' 직격탄 맞고 휘청대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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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달러' 직격탄 맞고 휘청대는 일본

은행위기 심화에 수출까지 우려돼, 우리나라도 비슷

미국 정부의 '약한 달러' 정책이 가뜩이나 금융불안으로 위태로운 일본을 직격하고 있다. 12년째 디플레이션 늪에 빠져있는 일본에게 엔화강세란 일본의 유일한 생명선인 수출까지 위태롭게 만들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달러 약세로 수출전선에 타격이 우려되는 우리나라의 경우도 오십보백보다.

***미국의 '약한 달러' 정책으로 중국만 어부지리, 일본-한국은 큰 손해**

블룸버그 통신의 아시아경제 담당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 주니어는 20일 도쿄발 칼럼에서 이같은 비관적 전망을 단정적인 어조로 펼쳤다.

페섹은 "일본의 12년 불황이 끝나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리소나 홀딩스'라는 두 낱말을 살펴보라"로 칼럼을 시작했다. 지난 17일 일본 정부가 일본랭킹 5위의 금융그룹 리소나에 2조엔(약 20조원)을 투입함으로써 사실상 국유화되는 조치를 결정한 이후 일본의 4대 금융그룹에게도 이같은 공적자금이 수혈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는 현실을 가리킨 것이다.

페섹은 "리소나 홀딩스 사태는 지난해 일본의 경제회복이 현실이 아니라 허구라는 분명한 증거"라면서 "뼈를 깎는 개혁이나 과감한 변화 등에 대한 논의만 무성했지 실제 행동은 거의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시가총액의 7배에 해당하는 공적자금을 받는 리소나의 사례는 일본이 또다른 금융위기에 근접해 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페섹은 더욱이"상황이 이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이는 순간에 엔화가 강세로 치달아 일본의 수출까지 타격을 입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을 비롯한 한국 등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에서 약한 달러 정책은 악몽과 다름없다"면서 "현재 일본은 엔저를 빼면 곤경에 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페섹은 "일본 정부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거듭 부인하고 있지만 이는 거짓말"이라면서 "정말 다케나카 헤이조 금융상이 리소나 사태를 몰랐다는 것은 의심스러우며, 만일 타게나카가 정말 몰랐다면 더욱 놀라운 얘기"라고 공박했다. 그는 "어느 경우가 됐든 '현재 리소나 같은 상황에 빠진 다른 대형은행들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다케나카의 말을 믿을 이유는 거의 없다"고 단정했다.

문제는 시장의 반응이다. 페섹은 "시장에서는 일본 정부가 아무리 재무구조가 형편없는 은행일지라도 구제해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면서 "바로 이 때문에 19일 니케이 지수가 78포인트 밖에 빠지지 않은 이유"라고 지적했다. 투자자들이 '리소나 사태로 충격 받을 이유가 있나. 정부가 살려줄 텐데'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페섹은 이를 두고 "일본 정부는 은행들을 위한 구제금고를 운영하고 있다"고 비꼬았다.

돈이 필요하면 재무성으로 달려가면 된다는 얘기다. 무려 52조엔이 넘는 부실채권을 처리하도록 0%의 금리를 제공하는 체제에서 고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엔고 현상이 불가피하다는 데 있다. 페섹은 일본 정부가 엔고 추세를 막을 방도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달러 약세가 미국 경제가 취약한 데서 비롯되는 반면 일본은 여전히 무역흑자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페섹은 지난 2월에 이미 올해안에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백엔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일본의 수출을 지원하기 위해 동원한 엔저 정책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약달러정책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엔에 대한 구두개입이나 매각 등의 조치를 하더라도 허사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약달러로 이득을 보는 쪽은 중국이다. 중국의 위앤화는 달러와 연동되는 페그제를 채택하고 있어 중국의 수출 경쟁력이 더욱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 또한 일본 기업들의 부실화를 촉진하는 요인이다.

때문에 페섹은 "일본 정부가 부실화된 은행과 기업들에게 추가 구제금융을 제공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일본 정부가 문제를 감추고 변화를 지연시킬수록 치러야 할 손실만 커질 뿐"이라고 경고했다.

***붕괴직전의 일본금융**

페섹의 전망대로, 금명간 리소나보다 상위 대형금융그룹들에게도 공적자금이 투입될 것이라는 전망은 설득력을 갖고 있다. 리소나가 갑자기 공적자금을 투입받게 된 계기가 다른 금융그룹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리소나는 그동안 이연세금자산(DTA)을 자기자본에 포함시켜 왔으나 이런 관행이 2003년 3월 결산 감사에서 배제되면서 자기자본 비율이 6%에서 2% 대로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실채권에 대한 엄격한 감사 결과 지난해 적자가 2천9백억엔에서 8천3백80억엔으로 급증했다.

이연세금자산이란 부실채권에 대한 대손충당금이 손실처리될 경우 받게될 세금환급분을 자기자본에 계상한 것인데 다른 은행들의 자산에서도 DTA가 상당한 규모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이에 지난 18일(현지시간) "일본 대형은행들의 자기자본에서 DTA가 차지하는 평균 비율이 40%임에 비해, 리소나의 경우는 70%나 됐다"고 보도했었다. FT는 따라서"투자자들은 현재 감사가 진행중인 다른 은행들에게도 리소나와 같은 방식이 적용될 것인지 우려하고 있다"면서 "일본 정부는 공적자금 투입에 이르게 된 상황이 리소나에 한정된 것이라는 점을 설득해야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의 4대 금융그룹은 자산 규모 기준으로 세계은행인 미즈호, 일본 2위 금융그룹인 미쓰이스미토모(三井住友.SMFG), 미쓰비시도쿄, UFJ 등이다. FT에 따르면 미즈호와 SMFG는 예금 인출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그러나 FT는 "이번 사태가 일본 금융체제위기로 번지느냐의 여부는 시장의 반응에 달렸다"면서 "전문가들은 예금인출 사태나 주가 급락이 발생하면 추가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미즈호과 UFJ 등 일본의 대형은행들이 부실채권 처리를 위해 필요한 금액은 약 52조4천억엔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즈호와 UFJ 등은 공적자금 투입을 피하기 위해 지난 회계연도 하반기에 2조엔이 넘는 자본을 조달하는 등 부실이 심해 향후 4대 금융그룹 중 국유화될 가능성이 높은 2개 그룹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더욱이 일본 증시가 하락세를 지속하면서 이들 은행이 안고 있는 부실채권 규모는 자본조달을 통해 상각할 수 있는 규모보다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모럴 해저드 심화 우려**

그러나 리소나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은 대규모 손실과 부채를 안고 있는 일본시중은행들에 대해 정부가 지속적으로 지원할 계획임을 드러낸 것이기에 '모럴 헤저드(도덕적 해이)'가 더욱 심화될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사전에서 '모럴 헤저드'의 뜻을 찾아보면 '일본은행 시스템'으로 나와 있을 것"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는 분위기다.

리소나는 이미 지난 98년과 99년에도 공적자금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지속적인 공적자금 투입은 이러한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일본의 민주당 등 야당들은 "공적자금 투입은 너무 적은 규모이며, 투입하려 했으면 훨씬 전에 했어야 했다"면서 찔끔찔끔 생명만 연장해주는 식의 공적자금 투입을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97년 홋카이도 다쿠쇼쿠(拓殖)은행 등의 경영파탄으로 금융위기가 고조한 이듬해인 98년 3월 미쓰비시도쿄 은행 등 21개 은행에 총 1조8천억엔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이어 지난 98년 10월 일본장기신용은행과 일본채권신용은행의 파산 때 8조엔의 공적자금이 들어갔으며, 이 은행들의 파산으로 금융불안이 심화하자 후지은행 등 15개 은행에 총 7조4천억엔이 추가로 투입됐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지난 17일 "지난 97년 당시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는 다쿠쇼쿠은행 등이 잇따라 파산하는 사태가 빚어지면서 순식간에 정권의 힘을 잃게 됐다"면서 "오는 9월 자민당 총재선거 승리를 통해 재선을 노리고 있는 고이즈미 총리의 운명은 금융에 달려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일부 언론들은 금융기관의 자기자본 사정을 엄격히 하도록 한 이른바 '다케나카 플랜'의 포기, 2년 연속 지속된 긴축재정 노선과의 결별, 대담한 디플레 극복대책 마련 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은 모럴 해저드 논란을 피할 수 없는 기득권적 논리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일본자금의 일본탈출 러시**

좀처럼 해법이 안보이는 일본의 만성 디플레이션 때문에 일본인 투자자들은 해외투자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일본 금융청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자금 순유출액은 총 23조3천4백억엔(약2백33조원)으로 1981년 이후 가장 많았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 15일 "지난해 일본인 투자자들이 해외 주식과 채권에 투자한 금액은 모두 23조3천4백억엔으로 일본인 투자자금의 이같은 해외 유출은 도쿄증시가 20년 만의 최저치로 주저앉고 채권 수익률도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일본이 투자처로의 매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해외로부터 일본에 투자된 유입액을 감안한 지난해 일본의 채권.주식투자 순유출액은 총 18조6천7백억엔으로 집계됐다. 특히 해외채권 투자에 따른 자금 유출액은 19조3천5백억엔에 달해 2001년도(3조8천억엔)의 5배나 됐다. 일본 내 채권 수익률이 사상 최저치인 0%대에 들어선 상황에서 자금운용에 어려움을 겪는 은행과 생명보험사들이 조금이라도 유리한 해외투자처를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내한했던 일본의 저명한 경제학자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게이오대 교수는 일본 정부가 통화정책만으로는 현재의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기 힘들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그는 "90년대 후반부터 제로 금리정책 등 다양한 통화정책을 사용했지만 신규 수요를 창출하고 소비.투자를 활성화 하는 데 실패했다"면서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한 국제공조와 장기적인 수요 창출만이 유일한 대책"이라고 주장했다.

금리인하와 부동산 경기부양으로 당면한 디플레이션 위기를 벗어나고자 하는 우리 정부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지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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