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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입국'이냐, '금융입국'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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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입국'이냐, '금융입국'이냐

<데스크 칼럼> '물류파 對 금융파' 논쟁을 보고

지금 경제계의 화두는 단연 '동북아 경제허브(중심)'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핵심 경제공약이기도 하나 단순히 그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의 맹추적하에서 "3~5년후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를 고민해온 경제계가 어렵게 도달한 귀착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신산업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김대환 경제2간사는 동북아 경제허브를 신산업정책의 핵으로 설정하는 분위기다. 최근 김간사가 무역협회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동북아 경제허브 건설을 위해 민관이 힘을 합하자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능하다. 노 당선장의 재벌정책에 대해선 바짝 긴장하고 있는 재계도 동북아 경제허브와 관한 한 적극협조한다는 분위기다.

문제는 동북아 경제허브의 최우선 과제를 무엇으로 설정할 것인가를 둘러싼 이른바 '물류파'와 '금융파'간 논쟁이다.

논쟁은 지난 23일 김대환 인수위 간사가 "사견으로는 금융보다는 물류가 동북아 경제허브의 중심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촉발됐다. 이에 대해 오래 전부터 동북아 금융허브론을 펴온 김기환 서울파이낸스클럽회장이 "물류는 부가가치가 약하다"며 "부가가치가 높은 금융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반박, 논쟁은 본격적으로 불붙었다.

***'수출입국'을 대체할 비전으로서의 '물류입국', '금융입국'**

이번 논쟁은 오래 간만에 목격되는 '생산적 비전 경쟁'이라는 점에서 의미 깊다.

그동안 우리 경제계에서는 '수출입국' 이 거의 유일무이한 경제 비전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 상사(商社)를 벤치마킹해 제시한 이 마스터플랜은 현재 우리나라의 무역의존도가 GDP(국내총생산)의 78%에 이를 정도로 완전히 체화(體化)됐다.

하지만 '수출입국'은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세계의 제조업기지' 중국의 출현 때문이다.

지금은 '중국 고성장 특수'로 중간재 등의 대중국 수출이 급증하면서 도리어 우리경제가 큰 도움을 얻고 있다. 지난해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우리나라의 수출 제1시장이 됐을 정도다. 그러나 이같은 밀월적 공생기간은 길어야 3~5년안에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재계의 위기감이다. 그후에는 '값 싸면서도 질 좋은 중국제품'으로 인해 우리경제, 그 중에서도 지난 30년간 우리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수출은 치명상을 맞을 공산이 크다는 게 대체적 전망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수출입국' 비전의 위기를 뜻하며, 새로운 비전의 창출이 얼마나 시급한가를 말해주고 있다.

'물류파' 대 '금융파'의 논쟁은 이런 맥락에서 새로운 비전을 찾기 위한 첫 걸음이라는 데 그 시대적 의의가 있다. 이는 바꿔 말하면 '물류입국', '금융입국'이라는 새로운 비전의 제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류입국'에 대한 몇가지 오해**

문제는 그러나 이번 논쟁이 보는이들로 하여금 상대방의 비전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출발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물류입국'이나 '금융입국' 두 가지 모두에 대해 냉소적이다. "우리 주제에 무슨 놈의 동북아 경제허브며 물류입국, 금융입국이냐"는 식의 반응이다. 우리 실력에 걸맞지 않는 이런 핑크빛 논란을 할 시간에 어떻게 하면 중국의 맹추적속에서도 우리 경제의 근간인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같은 냉소는 논외로 한다 할지라도, 정작 논쟁의 당사자인 양진영의 상대방에 대한 이해, 더 나아가선 두 비전의 상호연관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게 아니냐는 점은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우선 '물류입국'에 대한 반대진영 비판의 협소성을 보자. 이들이 제기한 비판의 골자는 "물류는 부가가치가 너무 낮다"는 것이다.

인수위는 그러나 물류입국과 관련, 인천.부산.광양 3대 항구등 기존의 시설을 적극 활용하는 단기 방안과 경의.동해선 개통을 통한 동북아 물류 네트워크 구축을 구축하는 중장기 방안을 두 개의 큰 틀로 제시하고 있다.

인천.부산.광양 3대항의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은 '지역경제 활성화'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어 보인다. 더이상 수도권 비대화를 방치할 경우 수도권 경제와 지방 경제간의 적개감과 불균형이 치유불능 단계로 악화되면서 심각한 사회.정치문제화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충청권으로의 행정수도 이전과 맞물려 수도권은 인천, 영남권은 부산, 호남권은 광양을 물류 전진기지로 양성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구상으로 읽힌다.

경의.동해선 연결 프로젝트는 더 큰 효과를 기대하고 추진되는 프로젝트다. 특히 포커스중 하나는 북한 경제개발이다.

경의선은 남북한을 관통, 중국 동해안부를 거쳐 동남아로 연결한다는 구상이다. 동해선은 남북한을 관통, 시베리아를 걸쳐 유럽까지 연결한다는 구상이다.

일본, 러시아, 중국, 유럽연합 등 관련국들은 이 구상에 대찬성이다. 현재는 북핵위기로 더이상 진전을 못보고 있으나 지난해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일 정상회담이 강행된 데에서도 읽을 수 있듯, 주변국들은 이 세기적 프로젝트를 통해 현재 각국이 직면한 경제위기를 타개하고자 하는 염원이 가득하다. 요컨대 동북아에 거대한 '개발 수요'를 일으킴으로써 디플레이션 위기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이 구상이 현실화될 경우 최대 수혜자는 북한이 될 전망이다. 동북아 물류망이 구축되기 위해선 97%가 단선으로 이루어진 북한철도를 우선적으로 복선화해야 하며, 여기에 1백억달러로 추정되는 일본의 대북 배상금 등이 투입되면 북한은 현재 직면한 식량난과 일거리 부족 등의 경제난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우리도 남북긴장 완화에 따른 군비 등 '분단비용' 감소 등 여러 부수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전망이다.

또한 이같은 철도망 공사과정에 시베리아의 무진장한 천연가스관과 21세기의 필수불가결한 광통신망까지 결합시킨다면 경제적 파급효과는 지대할 전망이다.

따라서 인수위의 '물류입국' 비전을 단순히 '부가가치'라는 잣대 하나만 갖고 재단, 비판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법이 못된다 하겠다.

***'금융입국'에 대한 몇가지 오해**

반대로 '금융입국'에 대한 인수위의 비판도 협소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는 힘들 전망이다. 우리나라에 과연 동북아 금융허브가 될만한 자체 역량이 있느냐는 비관론적 의문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문은 상당 부분 정확히 맥을 짚고 있다. 금융은 고도의 핵심역량에 대한 의존도가 특히 높은 산업이기 때문이다. 금융산업에서는 이를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에 이은 제3의 '휴먼웨어(Human-ware)라 부른다. 따라서 아직 휴먼웨어가 취약한 국내 금융계가 어떻게 한국을 동북아 금융허브로 만들 수 있겠냐는 반론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도리어 한국을 국제적 금융자본의 투기장으로 만들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휴먼웨어란 그러나 그렇게 간단히 구축할 수 있는 게 아닌 게 분명하나, 그렇다고 해서 구축이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한 예를 들어보자. 연초에 외국투자가들로부터 국내 최고의 CEO로 신뢰받고 있는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2년여 남은 임기중에 현재 세계 60위권인 국민은행을 30위권으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30위권 은행이란 국제금융계에서 굴지의 선진 금융기관들과 경쟁하는 '세계적 플레이어'를 의미한다.

김행장은 그 일환으로 중국시장 진출을 타진중이다. 국내시장만 갖고서는 세계 30위권으로 도약하기 힘든 때문이다. 중국은 세계최대 고성장지대로 금융산업 측면에서 보면 무한한 가능지대다. 그러나 중국금융은 잠재 부실채권비율이 5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질 정도로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시장이기도 하다. 과연 성장 가능성은 무한하나 위험도 큰 이 시장에 어떻게 성공적으로 진입할 것인가.

김행장은 이와 관련, 얼마 전 기자에게 하나의 흥미로운 그림을 제시했다. 베이징대나 칭화대 졸업생 가운데 똘똘한 중국인 젊은이들을 국민은행 직원으로 뽑아 국내에서 1~2년간 철저히 교육시킨 뒤 국민은행 중국 지점의 지점장 등으로 내보겠다는 구상이다. 교육내용에는 리스크 헤징(회피) 기법등 첨단금융기법은 물론, 뱅커로서 갖춰야 할 도덕성, 그리고 한글까지 포함될 것이라고 했다.

기존의 중국진출 기업들은 현지인을 고용하더라도 조선족 출신을 선호해왔다. 그러나 '꽌시(관계)'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할려면 직원들은 철저하게 중국인이어야 한다는 게 김행장의 생각이다. 단 이들 중국 직원들은 중국의 불투명성과 부패에 오염되지 않도록 한국에서 철저히 교육시켜야 하고, 본점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한글도 가르쳐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인 것이다.

김행장은 이런 식으로 인적 자원을 구축하면서 세계수준의 투명성을 갖춘 싱가포르 등의 화교계 금융기관과 합작으로 중국시장에 진출하면,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한국이 동북아 금융허브가 될 수 있을까 없을까를 결정짓는 최대변수는 '휴먼웨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IMF사태를 겪으면서 1백57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계는 아시아 최고의 클린뱅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고, 이 과정에 국제적 신뢰를 얻는 뱅커들도 상당수 배출할 수 있었다. 큰 꿈을 꿀 수 있는 토대는 이미 마련된 것이다.

"한국금융이 일본금융을 앞질렀다" "싱가포르, 홍콩과도 어깨를 겨룰 수준이다" "중국금융보다는 20년은 앞선 것 같다"는 국제금융계의 평가를 적극 활용하면, '동북아 금융허브'도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라는 게 '금융입국'론자들의 큰 그림이자 자신감인 것이다.

***'물류입국'과 '금융입국'은 쌍생아 패러다임**

"동북아 경제허브가 되자"는 그림은 대단히 큰 그림이다. '수출입국'이라는 패러다임아래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압축성장으로 든든한 물적 토대를 구축했고, IMF사태라는 시련을 통해 투명경제로 나아갈 수 있는 극적 전기를 마련했기에 가능한 그림이다.

문제는 어디에 포커스를 맞추는가이다. 하지만 물류파와 금융파 서로가 상대방에 대한 이해만 높인다면, 양자는 결코 둘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할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동전 앞뒷면의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동북아 물류 네트워크화는 거대한 국제금융자본의 투자가 뒷받침될 때만 실현가능하다. 이같은 천문학적 투자는 우리나라가 동북아 금융센터가 될 때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다.

한 예로 지금 대다수 외국금융기관들은 홍콩에 아시아본부를 두고 있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계 금융기관들은 대다수 아시아본부의 일개 지점일뿐이다. 그 결과는 대단히 '종속적'이다.

한 예로 국내 외국계 지점의 애널리스트가 아무리 공들여 우리나라에 유리한 어떤 투자 보고서를 작성하더라도 홍콩 아시아본부 책임자가 이를 휴지통에 던져버리면 그것으로 만사 끝이다. 국제금융계에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국내기업이나 금융계의 CEO들은 기업신인도 제고를 위해 수시로 홍콩에 들러 IR(기업투자설명회)을 하고 이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애써야 한다.

따라서 만약 국내에 동북아 금융허브가 건설된다면 그 파급효과는 대단할 것이며, 천문학적 거대자본의 투여가 필요한 물류 네트워크 건설에 더없는 원군이 될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류 네트워크라는, 수백억 달러 또는 수천억 달러 규모의 세기적 건설 프로젝트가 작동될 때에만 비로소 한국은 동북아 금융허브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사업이 왕성히 펼쳐지는 곳에 돈이 모여드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공생관계에서 볼 때 '물류입국'과 '금융입국'은 쌍생아 패러다임이다.

논쟁이 건설적 방향으로 가느냐, 파괴적 결말로 끝나느냐는 논쟁주체들의 '열린 마음' 정도에 달려있다.

세계적 경제석학 피터 드러커 교수는 몇해전 가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와의 창간 2백주년 인터뷰에서 "나는 평생동안 어느 학파에도 속해본 적이 없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그는 그 이유를 "학파간에 전개된 논쟁을 볼 때마다 양쪽 모두에게서 한쪽이 간과했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94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금까지 세계 경제계부터 변함없는 존경을 받는 대석학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다름아닌 이런 '열린 마음' 때문이 아닌가 싶다.

피터 드러커의 '열린 마음'을 곰곰히 생각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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