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내건 10대 어젠다 중 두번째로 제시된 '동북아경제 허브(중심)'를 위해서는 '동북아 금융허브 구축'이 전제조건이자 핵심이라는 주장이 금융전문가 집단으로부터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 제2분과의 김대환 간사는 23일 "동북아 프로젝트는 새 정부가 상당히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과제가 될 것"이라며 과거처럼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 것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며 (사견이지만) 그 분야는 금융보다는 물류쪽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부문은 개혁의 과제가 많이 남아 있는 상황이고, 주요 은행들이 국책은행으로 민영화하는 작업을 남겨두고 있는 등 풀어가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건을 감안할 때 물류를 강점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는 김기환 골드만 삭스 고문이 회장을 맡고 있는 서울파이낸셜포럼이 지난 21일 전국금융연합회, 한국금융학회 등과 공동으로 개최한 '아시아 국제금융중심지로서의 한국:비전, 전략 및 쟁점' 세미나에서 제안한 '동북아 금융허브' 개념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발언이어서 주목된다.
이에 프레시안은 23일 오후 김기환 서울파이낸셜포럼 회장을 급히 만나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서울파이낸셜포럼은 상공부 차관, 남북경제회담 수석대표 등을 역임한 김기환 회장을 비롯해 한국을 대표하는 뱅커로 꼽히는 김정태 국민은행장, 정운찬 서울대총장, OECD대사를 역임한 양수길 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 의장, 도미닉 바튼 한국매킨지 대표 등으로 구성된 국내외 최고의 금융전문가 집단이다.
***"이제는 더이상 수출입국이 아닌 금융입국이 필요한 때"**
광화문 흥국생명 골드만삭스 사무실에서 1시간여 동안 만난 김기환 회장은 "금융허브의 절박성과 실현가능성에 대해 이를 추진할 새 정권과 아직 의견교류가 충분하지 못한 단계"라면서 답답한 심정의 일단을 드러냈다. 그는 "25일경 김대환 간사 초청으로 모임을 갖기로 했다"면서 "몇몇 사람들과 함께 금융허브 개념에 대한 설득을 다시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금융허브 구축은 '금융입국'을 하자는 주장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면서 "우리가 어떻게 국제금융을 다룰 수 있느냐는 패배감이 지배하고 있지만 우리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좋은 조건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그동안 우리 경제는 중국 경제를 20년 앞서 왔으나 앞으로 5년 이내면 제조업에서는 중국을 당할 수 없게 된다"면서 "무엇을 먹고 살 것이냐의 절실한 문제를 두고 물류 중심지를 거론하고 있지만 이는 부가가치가 적은 산업"이라고 말했다. 물류라는 것은 물건을 모아두었다가 필요한 곳에 분배하는 유통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중국이 80년대 수출입국이라는 우리 모델을 따라잡으려고 애를 썼는데 우리가 금융허브로 가지 않고는 또다시 중국에 추월당하는 상황이 오게 된다"면서 "산업화 시대의 발상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지난 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수출 입국'을 주창했을 때 자원과 기술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수출로 경제부흥을 이룩하겠다는 발상에 동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면서 "선배들이 수출입국을 해낸 용기와 비교하면 우리가 갈 길은 오히려 쉬운 길"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IMF를 거치면서 이미 주식시장의 3분의 1이 외국인이 소유함에 따라 글로벌 스탠더드로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금융입국이라는 과제를 이룩하기에 좋은 조건이라는 것이다.
김 회장은 "아시아에서 우리가 유일한 금융허브가 되자는 게 아니라 싱가포르와 홍콩과 함께 금융허브 네트워크를 이루자는 것이 목표"라면서 "이 과제는 강력한 추진력이 반드시 필요한 만큼 노 당선자의 판단에 달렸다"고 말했다.
***"한반도 평화구축과 동북아 경제허브가 양대 어젠다 돼야"**
김 회장은 국내에서 동북아 경제허브 구상을 가장 먼저 제시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이에 대한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동북아 경제중심지라는 구상을 처음 받아들인 것은 김대중 대통령으로 지난해 1월 연두교서에서 동북아 경제중심지 구상을 밝힌 이후 지난해 4월 1차 보고서, 6월 2차 보고서, 9월 확정안이 나왔다. 하지만 '물류, 제조업, 금융'으로 범주를 나누었을 뿐 금융 부문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전혀 없을 정도로 아직 금융허브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못한 것이 안타까왔다고 김 회장은 말했다.
김 회장은 인수위에 대해서도 비판적 견해를 숨기지 않았다.
김 회장은 "인수위 관계자들이 아직 금융허브의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새 대통령이 금융허브 구상을 정식으로 채택해 올해 안에 국내외에 신호를 보내는 것이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10대 어젠다의 경우 한반도 평화구축과 동북아경제중심지 외에 나머지 8개가 나열된 것은 너무나 평면적인 구성"이라면서 "한반도 평화구축과 동북아경제중심지를 양대 핵심 어젠다로 삼고 나머지는 이를 지원하는 유기적 개념으로 설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류파'와 '금융파'간 논쟁**
그는 지난 2년간 '물류파'와 논쟁을 많이 해왔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물류파들과의 논쟁에서 그들이 '우리가 무슨 국제금융까지 하느냐'는 패배감에 사로잡힌 것을 알 수 있었다"면서 "전세계에 흩어진 유태인들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은 금융을 잡았기 때문"이라고 "금융허브 구축을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 근거로 그는 우리나라가 이스라엘에 이어 가장 풍부한 고급인력을 가진 보기 드문 나라라는 점을 지적했다.
취업인구의 25%가 대졸 출신이고 고등학생 70%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미국의 경우 고등학생의 40%만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국민들이 영어를 잘 못한다는 약점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기성세대가 문제이지 새로운 세대는 영어습득에 엄청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 "또한 1.5세대로 불리는 교민 자녀들이 곳곳에서 이미 전문가로서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의도에 국제금융센터가 있다면 홍콩, 싱가포르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여의도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도 한국 골드만삭스에서 일하는 직원 90%가 교민 자녀들이라는 것이다.
김 회장은 금융허브 구상에 대한 관료들의 반발에 대해 "관료들은 보수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면서 "그래서 금융허브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직속 민간합동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부문은 발전속도가 너무 빨라 현실감각에서 관료들만으로는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금융개방이 될 경우 국내 금융기관들이 모두 초토화돼 국부 유출이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도 "민족국가적인 주장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까지 표현했다.
그는 "현재 어느 나라 정부도 금융을 지배하지 못한다"면서 "민족국가는 세금을 내는 대신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준다는 사회적 계약으로 탄생했지만 지금은 국방도 혼자서는 못할 정도로 국제적 상호의존성이 증가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단기적으론 홍콩, 중장기적으론 런던 돼야"**
김 회장은 "국제금융센터로서 런던이 뉴욕에 압도당하는 상황이 초래된 80년대 영국이 금융빅뱅을 단행한 배경에는 '은행들을 영국이 소유하고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영국이 금융중심지가 되는 것'이라는 당시 대처 수상의 선택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단기적으로는 동북아 금융허브가 되기 위해 '제2의 홍콩', 중장기적으로는 아시아 금융허브가 되기 위해 '제2의 런던'이 되겠다는 목표를 설정해야 할 것으로 주장했다.
김 회장은 또 지난 21일 세미나에서"OECD국가 중 한국 외에는 금융노조가 있는 곳은 없다고 한 내 주장에 대해 금융노조가 반박한 것을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미국, 영국 등 OECD 대부분의 국가들에 금융노조가 없다는 점에서 가장 유연해야 할 금융업에 노조가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금융 노동시장 유연성의 불가피성을 재차 강조했다.
금융산업은 국경을 초월한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며 한국은 민족국가를 넘어 '지역경제의 중심지'로서 자리잡지 못하면 변방국가로 다시 밀려나게 된다는 점에서 그는 "'금융허브'는 반드시 한국이 나아가야 할 절박한 목표"라고 강조했다.
요컨대 '금융 입국'만이 '과연 3~5년후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고 있는 한국이 나아갈 방향이라는 게 김 회장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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