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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지금 인도네시아에선 한국기업 철수중"

<자카르타 통신> 상반기에만 현지인 2만명 실직

필자 기태형님은 현재 자카르타에서 현지인과 함께 무역업을 하고 있는 기업인이다.

그동안 발리테러가 발발했을 때의 현지 상황을 비롯해 해외에서 우리나라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생생히 알 수 있는 글을 여러 차례 본지에 보내와 그 글이 실렸던 독자분이다. 이번에도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글을 여러 편 보내주셨다. 지면이 허용하는 대로 기태형님의 글을 소개하도록 한다. 편집자주

***지금 인도네시아에선 한국기업 철수중**

지금 이곳 인도네시아에서는 많은 한국계 기업들이 철수를 하고 있다.

대부분 80년대말 우리나라의 임금상승에 견디지 못해 저임금 국가를 찾아 떠났던 신발, 봉재 등의 기업들로 이곳 한인회 주장으로는 2002년 상반기에만 한국기업 철수에 따른 인도네시아인의 해고인력만 2만여 명에 이른다 한다.

물론 이곳의 임금은 기타 동남아의 경쟁국 예컨대 베트남, 미얀마에 비하면 비싸지만 기업이 자본과 설비를 이전
해야 할 만큼 고임금이 아님에도, 한국계 기업은 인도네시아를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강요 받고 있다.

임금의 상승이 노동생산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업이 이곳에서 사업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노동의
생산성이 임금상승분을 충분히 상쇄할 수만 있다면 기껏 닦아 놓은 터전을 버리고 새로운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고를 누가 하려 하겠나?

그러나 현실은 매우 비관적이고 게다가 개선의 여지마저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선 외국기업의 임금을 상당 부분 정부에서 관여하는 면이 있다. 법에서 정한 최저임금은 현재 약 65만루피아(약 72불)인데 이를 내년부터는 약 80만 루피아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매우 파격적인 인상이 아닐 수 없다.

세상 어느 나라에서 98년 외환위기이후 이처럼 국민을 위해 거의 25%나 되는 최저임금을 상향조정해 주는, 그야말로 국민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는 자애로운 정부가 또 있겠나?

여기서 본 노동의 질이란 그야말로 최악이다. 무단 결근도 예사이고, 계획되지 않는 야근은 언제든지 거부할 수 있다.

근무는 사실상 주5일이다. 금요일은 회교성일이라 정상근무가 힘들고 토요일은 오전근무만 한다. 정시작업 시작을 위해 근로자가 미리 출근해 작업준비를 하는 건 근로자에 대한 박해쯤으로 취급한다.

해고? 해고를 하려면 근로자가 2주이상 무단 결근해야 정부 노동위원회에 해고를 위한 신청을 하고 거기서 다시 노동자의 입장을 듣고 결정을 하는데, 해고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가 현지 한국기업인에게 들은 예를 들어 볼까?

"왜 무단결근을 했느냐?"
"아파서 1주일간 병원에 있었다."

"그럼, 회사에 연락은 왜 취하지 않았나?"
"우리집엔 전화가 없다."

"그래? 지금은 괜찮냐?"
"물론…"

"그래? 그럼 다시 복직."

판결 끝….

자, 이쯤 되면 여기 기업이 얼마나 노사관계가 골치 아픈지 조금은 상상이 가겠나?
이런 노동자의 기본적인 자질은 물론이고 숙련도 또한 매우 떨어진다. 생산성은 항상 제자리인데 임금만 상승한다면 견딜 기업이 어디 있으랴?

이런 문제점을 심각하게 걱정하는 건 비단 이곳에 진출한 외국기업들만이 아니다. 현지인도 자신이 경영하는 기업이 생산성을 추월하는 임금상승에 힘들어 하기는 마찬가지다. 내 파트너도 차라리 현재의 임금을 동결하고 고용인수를 늘이도록 하는 게 기업에게나 노동자에게나 유리할 것이라고 한다. 자신도 그럴 용의가 있다고 한다.
일부의 노동자들도 최저임금의 상승은 결국 기업의 폐쇄나 감원으로 이어질 것이란 걸 안다. 정부도 이를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도 고통을 분담하자거나 지금의 상황이 잘못됐으니 개선하자고 외칠 용기가 없다는 것이다.
그 후에 있을 비난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것이다. 무능한 정치인과 관료의 부패는 스스로를 떳떳치 못하게 하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올곧은 정치가보다는 선동정치가만이 판을 친다.

이 점에선 어쩌면 그렇게도 우리나라와 같은지 모르겠다. 우리도 정치인이 하는 일이란 게 매일 근거도 희박한
폭로전이나 일삼고, 나에겐 이런 비전이 있다는 얘기는 하나도 없고, 저 사람의 저 의견은 이것이 틀렸네, 저것이 틀렸네 타령만 해 대고 있으니까…
아마도 만국의 정치인은 모두 한 핏줄을 이어 받은 형제들인가 보다.

자국에 이렇다 할 산업이나 기업이 없는 이 나라에서 외국기업의 철수로 2만명이나 실직을 했다면 심각하게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게 정상이겠지만 관료는 걱정하지 않는다. 남아 있는 기업을 더 쥐어짜면 되니까. 노동자는 이 상황이 불안해서 더 극단으로 치닫고 있지만 정치인은 그것을 조정할 능력이 없어 보인다.

자, 그럼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그럼 과연 철수하는 한국기업인에겐 아무 책임이 없을까?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 너도 똑같아!"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매일 출근하면 "X새끼"로 시작해 "X새끼"로 끝나는 회의를 하고 조그만 일에도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대는데 누가 좋아하겠나?

회사가 어렵다는 타령은 매일 하면서 저는 술을 마시면 노동자의 월급의 2배가 넘는 가라오케에서 1주일에 서너 번 씩 돈을 써대고, 임금은 최저임금만을 달랑 주면서 제 아이들에게 주는 용돈은 노동자 월급보다 많다면 어느 노동자가 과연 기업인의 고통을 이해하려 하겠나?

그러면서 늘 같은 타령을 한다.
"여기 인도네시아 놈들은 글러 먹었어!, 게으른 게 욕심만 많아 가지고…"

그러면 당신은 얼마나 그들에게 성실했으며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줬냐고 묻고 싶다.

어차피 관용은 강자만이 베풀 수 있는 것 아닌가? 약자인 그들에게 먼저 요구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치 않나? 당신은 기업인으로의 책임을 얼마나 다했나?,

여기서 보통 5년, 길게는 10년을 살면서 언제나 안테나는 한국으로 향한 채, 정작 당신에게 실질적인 생활의 터전인 이땅에 관심이나 있었나? 조선일보,중앙일보는 공수를 해가며 보면서 현지 신문은 얼마나 자세히 읽어 봤나?

인도네시아의 고통을 한번이라도 이해하려 한 적은 있고 당신의 직원이 어떻게 사는지 알기나 하나?

난 IMF관리하의 시절을 한국에서 지냈다. 어떤 외국기업은 떠났지만, 클라크나 볼보는 삼성이나 대우의 계열사를 사들였다. 우린 외국기업이 떠날 때 그들을 비난했다. 무책임한 자국이기주의 기업이라고. 외국기업의 한국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들고 나올 때 기업의 사회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들이댔다.

내가 외국계 기업에 있으면서 가장 어이없었던 일은 취직하겠다고 찾아온 대학졸업 신입사원이 자신의 급여를 주장하는 근거가 자신의 능력이나 지적호기심, 업무의 이해도가 높다는 등의 이유가 아니라 "너희는 외국기업이니까 한국기업보다는 월급을 더 줘야 한다"는 논리였다. 물론 그는 취직하지 못했지만 그는 한국에서 그래도 서울에 위치한 속칭일류(S,K,Y대)는 아니어도 꽤 역사가 깊은 상위급의 4년제 대학졸업자였다.

난 이곳에서 떠나는 기업인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당신이 이들에게 정직하지 않는 한 이들도 당신을 믿지 않는다.

기업의 도덕적 책임과 기업인의 양식은 한국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오히려 여기처럼 하루 살기가 더 힘든 저개발국가에 더 필요한 덕목이다.

당신이 기르는 개가 아프면 밤잠도 못자면서 어떻게 당신의 직원에겐 그렇게 매정한가?

당신은 떠나지만 다른 이는 잘도 기업을 경영하고 있지 않나? 그들과 당신이 다른 점이 뭔가를 잘 연구해 보라.
베트남이나 미얀마도 언젠가는 여기처럼 될 것이다.

그 때는 어디로 갈 건가? 아프리카의 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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