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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판도를 뒤흔든 '조순의 부동층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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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선판도를 뒤흔든 '조순의 부동층 바람'

<손광식의 '1997 비망록'> (33) 조순의 대선출마 선언

***33. 조순의 대선출마 선언**

이날(8월6일)의 대형참사와는 무관한 것이지만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S&P사는 한국을 ‘안정적’이라는 평가로부터 ‘네거티브(부정적)’로 바꾸었다. 경제 전반에 대한 전망은 은행부실화에 북한의 경제상황 악화까지 얹어 신용상태가 불안정하다고 했다. 국가신용도마저 추락하고 있었던 것이다.

괌 참사사건에도 불구하고 이날 주가는 대한항공 관련 주식의 폭락세를 제외하고는 상승기조를 그대로 유지, 오히려 4%포인트가 상승했다. 한편 대농의 주거래은행인 서울은행은 대농측이 주식 및 경영포기각서를 제출 완료함에 따라 1백95억원의 긴급자금을 모두 풀어주었다. 지리멸렬한 상태에 있는 기아사태 수습에 외곽을 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조치였다.

그렇지 않아도 채권은행단은 기아경영진과 노조에 대해 계속 ‘항복’압력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터에 나온 조치라 일변한 시국의 국면과 더불어 강한 압력카드로 이해되었다. 기아사태는 채권단의 경제논리와 기아측의 사회논리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왔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집중력이 강했을 때에는 기아쪽에 기울었던 면도 없지 않았으나, 괌 참사로 집중력이 이동됨으로서 이른바 ‘정서논리’는 크게 후퇴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기업문제는 이제 기아로부터 대한항공 그룹으로 옮아갈 잠재성이 있다는 관측마져 대두되어 새로운 국면을 깔아 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두 국내 항공사의 확장전략과 이에 따른 경영위기 문제가 금융계 내부에서 부글 부글 끓어오르고 있던 참이었다.

정치권이 ‘괌 사건’으로 일시 휴전상태로 들어간 시기를 신한국당은 적절히 이용했다. 당 3역을 전격적으로 경질하여 새 당정책위원장에 이한동계열의 이해구의원을, 사무총장에 강삼재의원을, 대변인에 이사철의원을 각각 임명했다. ‘경선상처’를 봉합하기 위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강삼재의 총장 재기용으로 YS의 이니셔티브 구축이라는 해석들이었다.

그러나 당직개편보다 신임 검찰총장에 김태정 법무차관이 기용된 것이 더 관심의 초점을 모았다. 당초 최영광 법무연수원장이 내정되었다는 신문보도를 오보로 만든 이 검찰총수의 인사는 YS가 직접 낙점을 했다는 점과 그가 아주 드믈게 호남출신이라는 점으로 여러 가지 해석들을 끌어냈다.

신임 김태정 검찰총장은 전남 여수중-광주고를 나와 검찰안에서는 호남인맥으로 통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YS의 개혁초기 중수부장을 역임한 바 있어 이미 ‘충성도’는 검증되어 있었다. 한보와 김현철게이트 처리의 후유증으로 있을지도 모를 새로운 정치적 공격을 그의 측근에서 막아낼 유일한 인물로 평가된 것이 발탁의 배경이었다. 언론은 그가 부산 출신이지만 ‘호남출신 검찰총장’임을 부각시켰고 이 점을 대선의 공정집행과 연결시켰다. 야당도 이런 분석에 따라 ‘김총장 카드‘에 호의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이런 반응까지 미리 예측한 인사 시나리오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YS로 볼 때는 이회창정권이나, 만에 하나 DJ정권이 탄생되더라도 그 심장부에 정치적 ’보디 가드‘를 하나 심어 놓은 셈이 될 수도 있었다.

검찰총장 경질로 고검장 등 후속인사가 뛰따랐다. 이 과정에서 한보사건을 지휘해 왔던 심재륜 중수부장이 대구고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현철사건의 3차 공판을 앞두고 대검중수부장이 바뀐 것은 상당히 미묘한 여운을 남겼지만 이 문제가 언론에 의해 표면화되지는 않았다. 정치적 해석으로 보면 사건의 종료를 의미할 수도 있고 재판이 계류중이라는 점을 감안해 보면 ‘강경한 수사권’을 발동해 온 검찰 지휘자를 바꿈으로서 피고쪽에 유리한 재판국면을 만들자는 의도가 잠재되어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8월의 둘째 주는 ‘괌 참사 사건’에 이은 태풍 티나의 기습으로 뒤덮여 경제이슈들은 모두 ‘실종 상황’에 들어갔다. 태풍 티나호는 8월9일 오전 영남내륙을 관통했다. 기상청은 95년 8월의 제니스 이후 몰아닥치는 이 중형 태풍은 “나무가 뿌리채 뽑힐 수 있는 초속 30m의 강풍과 폭우를 동반하고 있다”고 경보를 발했다. ‘태풍의 공포’는 ‘괌 쇼크’를 어느 정도 진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별다른 사고나 피해없이 태풍은 물러갔다. 한반도 상륙을 앞두고 그 위력이 급격하게 약화되어 티나의 충격은 다행스럽게도 ‘기상청의 엄포’로 끝났다. 충격의 기류가 또다른 충격기류에 의해 중화되다가 만 현상이었다.

‘괌 사건‘은 처참한 사고 현장과 온갖 비극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로 2-3일간 전 사회를 뒤덮다가 사고 원인을 둘러싼 원인규명을 놓고 대한항공측과 미국측 사이의 미묘한 긴장상태로 옮아갔다.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의 사고조사반 조지 블랙위원은 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KAL 사고는 착륙과 관련된 사람(조종사인지 관제사인지 특정할 수는 없으나)의 잘못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으레 항공기 사고에서 나타나는 사건 발생국가, 항공기 제작사, 항공사 사이의 신경전이 재연된 것이다. 미국의 방송사들은 예의 ‘국익주의’에 따라 괌 참사는 한국 조종사의 잘못이라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괌 쇼크와 태풍 티나에 밀려나긴 했지만 기아사태와 관련된 상황압력이 하나 있었다. 기아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의 류시열행장은 5천억원을 절감하는 은행 자구경영계획을 발표했다. 99년까지 1천1백명을 감원하고 1천2백명의 본부직원중 30%를 일선점포의 영업직원으로 내보내며 신한종합금융. 제일창투. 제일씨티리스. 일은상호신용금고. 제일금융연구원 등 자회사를 매각하여 총 5천1백25억원의 경영개선을 목표로 한 자구계획을 추진키로 한 것이다.

부실의 표상처럼 되어버린 제일은행으로서는 생존전략이 다급한 현실이기도 했지만 그 배경에는 주거래은행이 제시하는 조건을 옆으로 튕기고 있는 기아측에 대한 또다른 측면의 압력카드였다. 그동안 기아경영측이나 노조측은 "자기네 은행경영 하나 제대로 못하면서 우리한테 압력을 넣고 있다“는 비난을 해 왔으며 그런 정서가 기아에 대한 제일은행의 ’요구‘를 우습게 여기는 흐름을 만들어 놓았다고 은행쪽 실무자들은 분석했다.

지리멸렬하는 뉴욕의‘4자회담’보다는 ‘괌 참사’가 계속 8월의 뉴스기류를 관통했다. 조종사나 관제사의 실수로 몰려가던 ‘괌 참사’는 시스템의 결함이 드러남으로써 새로운 국면으로 바뀌었다. 8월10일 오후 한미합동조사단은 정례 브리핑을 통해 “괌 공항 관제시스템에 대해 이틀째 조사를 벌인 결과, 사고 당시 비행기가 추락 위험이 있는 구역으로 진입하면 경보신호가 나타나게 되어있는 최저안전고도장치(MSAW) 소프트웨어가 오작동, 경보신호가 작동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힘으로서 사고원인에 대한 한. 미간 신경전이 예각화되었다. ‘인재’에 원인이 있다고 의도적인 발설을 했던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의 조지 블랙은 이 사실은 시인했으나 그래도 사고의 책임은 기장쪽에 있는 듯한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KAL의 불량 비행과 허술한 정비문제를 공격하던 언론들은 일제히 방향을 바꾸어 미국쪽을 공격하고 나섰다. 예의 ‘국가주의적’ 가치관이 작동한 것이다. 조종사의 잘못으로 몰고있는 배경에는 미국의 ‘국익주의’가 도사려 있다고 보고 일제히 비판의 방향을 수정했다. 어떻게 보면 한․미언론의 ‘맞불질’같은 흐름이었다. 이 감성적 흐름을 경고한 것은 한겨레신문. 8월11일자 사설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아직 사고의 원인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항공기의 결함, 조종사의 실수, 관제시스템의 오류, 또는 불가항력적인 기상이 급변 등 어느쪽도 섣불리 단정할 형편은 아니다. 우리는 한-미 합동조사팀의 정밀한 조사와 정교한 분석을 통해 한점 오차 없는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 어느 한쪽의 국익을 고려하는 것은 두 나라의 관계를 해치는 불행한 일이다."

‘괌 기류’를 바꾸는 계기는 조순 서울시장에 의해 이루어졌다. 조순시장은 8월11일 민주당을 통해 연말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뜻을 밝힘으로서 정국은 다시 ‘대선기류’로 복원했다. 민주당의 장광근 부대변인은 조시장이 출마결심을 당에 전해왔다고 말했다. 조시장뿐 아니라 신한국당 경선에서 패배한 이인제 경기지사, 박찬종 고문 그리고 자민련의 박철언 부총재까지 ‘출마그룹’에 가세할 움직임을 보여 대선판도는 새국면으로 들어갔다. 이른바 ‘병역정국’으로 이회창 신한국당후보가 선거도 하기 전에 치명상을 입은 공간에 ‘후보 난립’이라는 새로운 사태가 들어선 것이다.

사실상 이후보는 ‘병역문제’로 선점고지를 상실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한길리서치의 여론조사(8월10일)에 따르면 지지도에서 단연 선두를 유지해 왔던 이회창후보의 주가는 상당히 큰 낙폭으로 내림세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조순씨가 출마하여 4파전이 붙는 경우, 김대중(28%)-조순(25%)-이회창(24%)-김종필(6%)로 이회창은 3위로 밀려났다. 정가 일각에서는 성급히 그의 ‘낙마’가능성까지 점칠 정도였다.

그러나 이후보는 이같은 지지율 하락을 대가로 하여 ‘병역의 덫’으로부터 해방되는 기회를 얻었다. ‘병역문제’는 그가 최강자이기 때문에 돌출된 문제라고 할 수 있었으며, ‘대통령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 여론이 증폭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역시 사회적 관심의 주류도‘조순 바람’이었다. 조순 서울시장은 8월13일 스스로 기자회견을 자청, “그동안 나는 사회지도자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고민을 해 왔다. 마침내 제 자신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대선에 투신하기로 했다”며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여야는 그의 출마가 어떤 변수로 작용할 것인지에 대해 새로운 시나리오 작성에 골몰하게 되었고 어떻든 피해지수가 높아질 것이라는 신한국당과 국민회의의 잠정 추정에 따라 여 야는 조씨를 향한 협공의 기류를 만들어 갔다. 여당은 그가 민선 시장자리를 유권자의 동의도 없이 대통령이 되려는 ‘야심’과 바꿔먹은 것은 물론 재임중 별로 해 놓은 일 없이 권력에의 꿈만 키웠다고 비난했다. 야당, 특히 그를 시장으로 만들어준 국민회의는 정치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그러나 차기선거를 놓고 갈등을 빚어왔던 이른바 ‘부동표 세력’은 조시장을 강력한 대안으로 여겨 시중의 관심도를 새로운 국면으로 바꾸고 있었다. 조시장이 대선 자체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이 분명해졌다.

이 즈음 정치 9단 YS의 반동이 표면화되었다. 새로 입각한 홍사덕 정무1장관은 “김대통령이 밝혔던 ‘중대결심’(5.30 대국민 담화)은 분명히 구체적인 내용이 있는 것이며 국회 정치개혁특위의 정치개혁입법이 여야간의 당리당략에 의한 누더기 타협이 될 경우, 적극 개입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치개혁에 대한 김대통령의 열정은 청교도적이라고 할 정도이며 ‘후세에 기록될 만한 업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정치개혁입법은 지리멸렬 상태에 있었으며 그 상징적인 면은 이른바 ‘떡값‘에 대한 인식에서 드러났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당초 정치개혁관련 입법에서 ’떡값 처벌‘ 조항을 신설키로 합의한바 있었으나 야당 단일안으로 두 야당의 정치개혁입법공동위(위원장 박상천. 이정무총무)가 만든 최종안에서는 이 조항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한보사건과 YS아들 김현철의 비리혐의, 구속으로 권력의 헤게머니를 상실한 YS가 이제 ’빛나는 말기‘를 회복해 내는 길에 와신상담하고 있을 것임은 가히 짐작되는 일이며 그 시나리오는 ’국민정서‘에 기초한 도덕성, 정통성의 회복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야에도 무차별적일 수가 있었다. 그것을 계산한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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