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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에게서 YS가 받았다던 6백억, 없던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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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에게서 YS가 받았다던 6백억, 없던 일로"

<손광식의 '1997 비망록'> (11) YS-DJ의 대선자금 야합

***11. YS-DJ의 대선자금 야합**

김현철 사건에서 '언론대책반'이 등장하고 있었다든가, YTN인사에 권력의 개입이 있었다든가, 케이블TV에 배정권이 작용되었다든가 하는 단면들에는 들어난 것 이상의 '대언론 공작'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처럼 빈번한 개각에서도 공보처장관이 유일하게 정권과 운명을 같이하는 장수장관이 된 것은 오인환 장관의 역량 때문이었을까. 이 소박한 의문에 대한 답변은 소박하지만은 않은 것으로 보여졌다.

검찰이 문제의 박태중의 집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언론과 유관한 비밀 메모지가 발견되었다. 김현철의 국조특위 증인 채택문제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검토된 것으로 보이는 이 문건에는 다음과 같은 메모들이 적혀 있었다.

'K(김현철)의 청문회 출석 요구는 야당의 정치공세이며 마지막 순간까지 막아야 한다.'
'한보사태 및 K의 한보대출 개입설은 검찰수사와 대통령의 사과로 일단락 됐기 때문에 이 문제가 여야의 정치국면으로 전환됐다.'
'야당은 어차피 정권창출을 위해 K문제를 대선국면까지 끌고 갈 수 밖에 없는데 여당이 여기에 동승해서는 안된다.'

검찰마저 불신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청문회에 나가도 어차피 김현철의 결백이 증명될 수 없기 때문에 청문회 불출석은 마지노선이 돼야 하며 신한국당은 청문회 출석을 막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주장도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야당에 대해서는 '근거도 없이 루머와 설로만 K를 음해하는' 'K조르기를 통해 대통령을 압박하는' '국가경영을 무력화 시키는'이라고 이 메모지는 표현했고, 그 대비책으로는 '야당이 계속 폭로전을 벌일 경우 DJ부자와 JP에 대해 마찬가지의 반격용 폭로전을 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언론에 대해서는 '보수를 가장한 일부 언론'이라든가 '설(說)로 일관하는 언론'이라는 비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이 문건의 내용은 이미 김현철이 자신의 입을 통해 한 잡지기자에게 말한 것과 거의 같은 맥락이었다. 약 4개월간 김현철과의 인터뷰를 위해 뒤를 쫓던 월간 <신동아>의 안기석․윤영찬 두 기자는 2월15일 김현철을 모처에서 만나는 데 성공했다. 그 모처가 박태중의 집인지 혹은 그의 사무실인지 기자들은 일단 장소를 비밀에 붙이기로 하고 인터뷰를 했다. 그 가운데 이런 대목이 나온다.

김현철의 말,

"야당이 무책임하게 근거없는 루머를 가지고 공식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습니까. 임시국회가 월요일(2월27일)부터 열리면 공식적으로 얘기하겠다고 말해 놓고도 계속 정치공세를 일삼고 있지 않습니까. 제보사항이니 어쩌니 하는데 아시다시피 사실로 확인된 것은 하나도 없는데 설만 가지고 정치공세를 일방적으로 일삼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제가 참을 수 없구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실제 증거를 가지고 있을 수도 없지만 그것을 갖고 그대로 있을 사람들이겠습니까.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사실 야당에 대해 조금 심한 말을 하고 싶은데요. 나라야 어찌 됐든 그야말로 정권욕에 눈이 먼 일부 야당과, 제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 음모세력과 결탁한 보수를 가장한 일부 수구 언론에 대해서도 이번 기회에 제가 분명히 경고를 해둡니다."

그는 이 사태를 몰고 가는 쪽은 야당, 일부 언론 그리고 여당 안의 음모세력이라는 나름대로의 분석을 하고 있었다. 음모세력은 누구인가. 이에 대한 해답의 힌트는 전격적으로 중수부장의 자리를 빼앗긴 최병국 인천지검장에 의해 던져졌다. 최 전 중수부장은 'PK출신 민주계'와 '경복고출신 민주계'간의 알력 사실을 털어 놓았다. 그는 수사 초기에 여야 중진․초선의원 수명에게 수천만원대의 돈을 주었다는 한보 정태수 총회장의 진술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수사기밀이 자꾸 새나가 수사가 부산. 경남출신 민주계와 경복고출신 민주계 인사들 사이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상당히 곤혹스러웠다고 했다.

YS정권내의 PK 민주계핵심으로는 최형우 고문, 김광일 전청와대 비서실장이 있고 안우만 법무부장관은 '대부'격이라는 소문도 나 있었다.

이른바 'K2'로 알려져 있는 경복고 출신으로는 김덕룡의원. 이원종 전정무수석이 있으며 현철씨도 경복고 출신이다. 그밖에 이석채 전경제수석. 오정소 전보훈처장이 있다. 김덕룡의원은 자신이 한보로부터 5천만원을 받은 것으로 조선일보가 보도를 했을 때 "여기에는 정치적 음모가 있다"고 했다. 김현철과 그 주변이 보고 있는 시각과 같은 맥락이다.

한편 김대통령이 아들에 대한 검찰조사 지시를 내린 것을 검찰에 흘린 장본인이 자기라는 지목을 받은 PK쪽의 김광일 전비서실장은 "김광일 죽이기 음모가 시작되었다"고 궁중암투가 진행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드러낸 바 있다. 검찰의 수사내용, 권력집단 안의 두세력간 암투, 최형우의원의 돌연한 뇌졸중, 이런 삽화들은 삽화 이상의 정치극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보사건은 다시 확대돼 갔다. 한이헌-이석채등 전청와대 경제수석의 은행에 대한 압력행사를 검찰이 확인하고 재수사에 나섰다. 그리고 1차 사법조치에서 면탈되었던 김시형 산은총재. 장명선 외환은행장을 비롯 은행 임직원도 '떡값'을 받았을 경우 입건한다는 수사방향이 나왔고 여.야 국회의원중 돈을 받은 사람의 명단을 공개할 것이라고 했다.

한보사태와 김현철 게이트는 몇 개의 연결 라인으로 걸쳐 있었지만 각기 흐름을 타면서 왔다갔다 하는 스윙현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융합'의 단서가 드러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서 이 태풍의 '극점'을 향한 또하나의 폭발이 일어났다.

임채정 의원은 3월24일 기자회견을 갖고 "김영삼 대통령은 92년 대선 직전 민자당 민주계 원로인 김모씨 집에서 한보 정태수 총회장으로부터 6백억원을 받은 것으로 안다"며 대선자금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현정부와 한보와의 컨넥션은 대선자금의 수수로부터 시작됐다고 했다. 이 정치자금 수수설은 이미 2월 임시국회에서 국민회의 신낙균 부총재에 의해 그 의혹이 제기된 바 있었다. 이수성 당시 총리는 이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해서 그동안 덮여왔던 의혹이었다. 의혹인가 실체인가. 경제적 상식과 관행을 뛰어넘은 한보사건은 이제 몸체를 그려내는 단계로 접어드는 것 같이 보였다.

흐름은 다시 두 갈래로 나뉘기 시작했다. 하나는 심재륜 신임중수부장의 수사팀이 한보사건의 전면 재수사에 착수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각제'가 정치 이슈로 부각한 것이다. 한보사건은 별다른 진전은 없었으나 검찰의 수사기록 일부가 흘러 나왔다. 이 기록에 따르면 장명선 외환은행장과 우찬목 전조흥은행장은 이석채 전청와대경제수석과 윤진식비서관이 한보를 담당하는 역할을 했다고 진술했다.

장행장은 96년 12월말께 한보의 정태수 총회장으로부터 1천억원의 대출요청을받았다. 그러나 한보가 자금압박을 받아 곧 부도가 난다는 소문이 있어 이를 거절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조성진 전무를 시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실의 윤진식 비서관에게 알려주었다. 그러자 윤비서관은 20분쯤 뒤 장은행장에게 전화를 걸어 "노동법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운데 한보가 부도 나면 사회 경제적 파장이 크다. 구정 전까지는 부도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게 좋겠다"며 대출을 종용했다. 장은행장은 "외환은행만으로는 어렵고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을 중심으로 4개 은행이 공동으로 협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음날 주거래 은행인 제일은행에서 전화가 걸려와 4개 은행장이 조선호텔 회의실에 모였다. 1천2백억원의 추가자금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은행장들은 합의했다. 회의 도중 신광식 제일은행장은 윤진식 비서관, 이수휴 은행감독원장, 임창열 재경원차관 등과 수시로 전화연락을 했다. 각 은행별로 분담액이 결정된 것은 이날 하오 4시. 그만큼 은행은 대출을 서로 기피하는 상황이었다.

이 결정이 내려지자 이석채 경제수석은 정총회장을 청와대로 불러 신광식 제일은행장을 만나보라고 했다. 그날 오후 정 총회장은 조선호텔 로비에서 신광식 행장을 만났다. 신행장은 대출을 해 주기로 했다고 통고했다. 그리고 1월8일을 전후해서 1천2백억원의 대출금이 풀려나갔다.

이에 앞서 우찬목 조흥은행장은 96년 11월말경 한보의 정총회장이 조흥은행에 대해 1천억원 대출을 요구해 오자 일단 이를 거절키로 했다. 그러나 정총회장은 자신의 배경을 과시했다. 우행장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청와대로 이석채 수석을 찾았다. 이수석은 이때 "부도가 나면 되느냐. 파장이 클 것이다"고 해 우행장은 그날로 대출을 해 주었다.

그러나 이 진술서에는 한보가 과시한 배후세력이나 경제수석을 움직이는 힘의 실세가 과연 누구인지는 밝혀내고 있지 않았다. 더 밝혀내지 않기로 한 것인지 아니면 검찰 기록에서 삭제한 것인지는 검찰만이 알 일이었다. 어차피 이 사건의 검찰대응이 '제2의 권력방어'로 설정되었다면 고위직들의 추가 징벌이라는 것이 상식적인 수순일 수밖에 없다. 언론에 흘리는 기미도 그런 방향과 일치한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한이헌-이석채 전수석의 직권남용을 추궁하고 돈을 안받은 것으로 면죄되었던 김시형 산은총재와 장명선 은행장의 업무상 배임죄 적용 여부를 검토했다.

그러나 주로 언론과 야당의 연합전선으로 이루어졌던 한보-김현철 공략은 3월25일 국민회의가 돌연 '정쟁중단'을 선언함으로서 또다른 기류로 바뀌었다. 정동영 국민회의 대변인은 "민심안정과 심리적 공황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야당이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는 노력을 기울여나갈 것"이라고 정쟁지양 방침을 새 카드로 던졌다. 정대변인은 "한보사건 김현철씨 문제 등 공격할 자료는 많지만 국회특위가 가동되고 있는 만큼 당 차원의 공격적인 논평은 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임채정 국민회의 의원이 "YS가 한보로부터 6백억원을 받았다"고 92년 대선자금 수수설을 폭로한 이후 곧바로 나온 이같은 야당진영의 반응은 무엇인가. 범권력집단의 내부에 움직임이 있었다는 징후를 감지케 했다. 양 진영은 '와일드 카드'를 내밀기 시작했다는 뜻이 된다.

정치자금 흑막은 한보라는 꼬리를 떼어놓고 본다면 피차간의 '약점'이 노출될 수 밖에 없는 것이며, 그것이 확대되는 경우 기성의 범권력집단을 한 데 묶어 심대한 타격을 가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 문제를 둘러싼 여야의 협박과 조율과 타협이 물밑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이 와일드 카드의 게임에서는 YS의 배팅이 DJ의 그것보다 더 위력적일 수가 있었다. YS는 이미 정치권력을 마감하는 단계이고 DJ는 쟁취하려는 입장이기 때문에 손실계산은 뻔한 이치였다.

어차피 시간이라는 요소는 '풍화현상'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한계국면에 몰려있는 집권세력의 탈출구는 '시간의 흐름'일지 모른다. 일부 여론은 경제위기와 공직기강 해이를 들어 '한보의 늪'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상 경제는 엄청나게 골탕을 먹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침체의 기류 속에 들어가 있던 경제는 좌절감이라는 요소가 가세되어 사실 이상으로 체감지수가 악화되고 있었다.

3월25일 스위스 로잔느의 IMD(국제경영개발원)는 3월말 현재 한국의 경쟁력은 46개 조사대상국중 31위라고 발표했다. 95년 25위, 96년 27위에서 급전직하로 추락한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정진호박사는 "이번 IMD보고서는 한보사태로 드러난 부정부패와 낙후된 금융산업, 기업의 의욕상실 등 한국경제가 겪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곧바로 반영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날 외환시장에서 환율은 달러당 9백원을 돌파하고 있었다.

한편 합종연형의 '고리'로 여러 갈래의 물꼬를 트고 있던 '내각제'는 여의도로부터 청와대로 흘러들어갔다. 3월24일 김수한 국회의장은 청와대로 김영삼 대통령을 찾아 단독 면담을 가졌다. 이 회동에서 김의장은 "현재의 당체제로도 난국이 수습되지 않을 경우 내각제 개헌을 검토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치권력의 분산이라는 제도적 차원보다는 각 정파의 이해를 가르는 정략적 카드로 내각제가 바뀌고 있는 대목이었다.

그동안 JP에 의해 주도되어 왔던 내각제 개헌론은 권력집중이 빚은 한보 사건과 김현철 게이트로 해서 현실적인 정치대안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바 있지만 DJP연합, 신한국당의 이회창 대표체제에 따른 헤게머니 쟁탈전, YS의 마지막 정치 해법이라는 정략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힘으로서 차츰 이 빅 카드는 정치적인 얼룩이 져 왔다. 그러나 국면전환이라는 점에서 잠재적 위력은 아직 살아있다고 보는 쪽이 더 정확할 것이었다.

김대통령과 김수한 국회의장이 회동을 한 이후 예각화되는듯 싶던 내각제 문제는 김대통령의 발언으로 일단 다시 잠복상태로 들어갔다. YS는 "내각제를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 당의 기본입장이다. 확고한 방침이며 개헌은 있을 수 없다"고 못박았다. YS는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이회창 대표로부터 주례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지금 이 시점에서 개헌논의를 하는 것은 당의 화합과 단합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김수한국회의장은 3월초부터 자민련의 김종필총재, 이정무원내총무와 내각제 개헌 문제를 논의해 왔는데 그는 같은 날 "내각제 개헌을 포함, 권력구조 개편 논의가 정국의 한 흐름이 되고 있는 것을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는 당무회의에서 강경한 어조로 "김대통령의 임기중에 개헌하지 않겠다는 것은 우리당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대표뿐만 아니라 여권 예비주자 가운데서도 박찬종, 김덕룡은 '개헌불가론'을 강력히 고수하는 입장이어서 이 과제는 복잡한 갈등구조를 보여주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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