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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자신없는 자나 고시 보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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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지금은 자신없는 자나 고시 보는 시대다"

<김정태행장 대학강연> "내 대학성적은 C반, D반"

금융인, CEO, 학자들을 주로 만나던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이번에는 대학생들과 만났다. 12일 오후 서울시립대 자연과학관 대강의실에서 열린 '21C를 위한 경상대학 명사초청특강' 자리였다.

김정태 행장은 5백명이 넘는 학생들이 계단과 입구까지 대강의실을 꽉 채우고 자신의 강연을 기다리고 있자 "이처럼 많은 학생들이 모인 것이 강제동원이 아니냐"고 조크를 던지며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김 행장은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2시간으로 예정된 특강을 시작하면서 "명강의는 30분 늦게 와서 30분 일찍 끝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주어진 시간이 너무 긴 데 부담감을 느끼는듯 싶었으나, 모처럼 '미래의 주역'들과 만나자 자신도 모르게 흥분한 듯 예정시간인 5시를 넘기면서까지 열강을 했다.

김행장을 초청한 이근식 경상대학장은 "자기 분야에서 1인자가 된 사람들에게선 들을 게 많다"면서 "국내 최고의 CEO인 김정태 행장과 대학동기라는 것을 앞세워 바쁜 김행장을 팔을 비틀어 강제로 모셨으니 말씀을 잘 들어보자"고 소개했다.

김 행장은 2시간에 걸친 강연 내내 "세상이 바뀌었다"면서 "도덕성을 기본으로 갖추고 새로운 흐름을 읽으면서 도전적으로 자신의 일을 찾으라"고 강조했다. "요즘은 세상 살아가는 데 자신없는 자들이나 고시를 본다"는 등 사이사이에 특유의 독설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는 최초로 자신의 대학성적이 C학점 절반, D학점 절반으로 형편없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다음은 이날 강연의 주요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김정태 행장의 '변화와 도전'>**

예전에는 주어진 강의시간보다 30분 늦게 와 30분 일찍 끝내는 게 명강의라고 했는데, 요즘 어디 그렇습니까. 시간을 꽉 채우지 않는 교수님이 계시면 왜 충실히 강의하지 않느냐고 학생들이 항의한다고 하데요. 또 학생들이 교수들에 대해 평가도 하지 않습니까.

참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학교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겐 이처럼 세상이 바뀐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지켜보았듯이 요즘 총리 한 자리 하려면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합니다. 뭐 하나 하려면 오래 전부터 준비했어야 하는 세상이 된 거죠. 아들자식 군대에 꼭 보내고, 주소 함부로 옮기지 말고... 우선 도덕적으로 흠 잡히지 않아야 합니다.

***내 대학 학점은 절반이 D, 절반이 C**

그나마 학점 조사하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죠. 제 대학 성적증명서 떼보니 44학점 중 절반이 D고, 절반이 C입니다. 교수님들이 A와 B라고 매길 것을 잘못 쓴 게 아닐까 하고 생각도 해보았는데, 어디 창피해서 성적증명서 내라는 곳이 있으면 도망갔습니다.

성적이 좋지 않다보니 제가 처음 직장이라고 간 곳이 단자회사였어요. 그런데 그곳 월급이 당시 은행의 반도 안됐어요. 그런데 20년 뒤에 보니 단자회사들은 다 망했어요. 세상 일 참 모르는 것이죠.

세상이 변하는 한 예를 들까 합니다. 제가 75년 단자회사에 다니던 시절 실무책임자로 대신증권을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다음해 1월4일 대신증권의 사장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20여년 동안 증권업에 몸담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증권사 사장 대신 증권거래소에서 주식을 사고 파는 일을 담당하는 시장대리인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대신증권에 근무한지 이틀째에 오후 3시 증시가 마감된 후 시장대리인 한 사람이 나를 찾아오더니 "주식 1만주를 오전에 사서 오후에 팔았더니 주당 1백원씩 남았다. 이 주식을 받겠느냐"고 말합디다. 처음에 무슨 얘기인줄 못알았들었는데, 결국 1백만원의 뇌물을 주겠다는 것이었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이해할 수 없었어요. 알고 보니 당시 주식 거래가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다보니 매수 주문과 매도 주문이 들어온 순서대로 매치되는 게 아니라 시장대리인이 자기 마음대로 매치를 시킬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고민하다가 당시 6개 지점의 거래를 모두 본점에 내도록 하고 들어오는 순서대로 적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순서대로 매치를 시키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3명이던 시장대리인들이 모두 사표를 내더라구요.

회사에서 난리가 났죠. 모든 책임이 저에게 돌아와 그날 저는 직장생활 중 유일하게 울어보았습니다. 부랴부랴 다른 회사를 다니고 있는 상업학교 나온 사람들을 "깨끗한 거래풍토를 만들자"며 설득해 두 명을 데려와 위기를 넘겼죠.

이 참에 시장대리인제도를 없애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시장대리인들의 모임인 시장대리인회는 상업학교를 나온 고졸 출신들으로 구성돼 이들을 깰 수 없었어요. 시장대리인이 되려면 시장부장의 추천을 받아 시험을 봐야 하기 때문에 이들 조직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죠.

***대졸이 아닌 고졸만 시험볼 수 있던 시대도 있었다**

시장대리인제도를 깨기 위해 생각해 낸 것이 대졸 출신 공채였습니다.

75년 9월 대신증권에서는 증권사 최초로 대졸 출신을 공채했습니다. '고졸 출신만 시험을 볼 수 있게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시장대리인과 싸워서 2년 뒤부터 시장대리인 시험에 대졸 출신도 응시할 수 있게 했습니다. 고졸들도 다 붙는데 대졸이 합격 못할 리 없죠. 첫 번째에 12명이 시장대리인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이제는 "시장대리인 할 사람 많으니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상황이 되니 결국 시장대리인회가 없어져 버렸어요.

당시 주식 거래에 허술한 점은 이런 것뿐이 아니었어요. 유가증권이 회사별로 만들어지고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위조를 할 수 있었죠. 연초에 위조 유가증권을 만들면 연말에나 확인 작업을 하기 때문에 그동안 얼마든지 위조유가증권으로 돈을 챙길 수 있었던 겁니다. 동그라미 하나만 붙여도 열배가 왔다갔다 하는 겁니다.

결국 78년에 주식변조사건이 터지자 그후 조폐공사에서 통일규격 증권이 발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유가증권 변조로 한탕하기에는 늦어버렸습니다. 요즘 주식거래의 매매방식이나 증권의 변조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 있습니까. 그만큼 세상이 투명해진 거죠.

***"은행원놈들, 언제 안죽나"하고 이 갈다가 은행장돼**

은행쪽도 많이 달라졌어요. 증권사 시절에 은행에 가서 돈 빌리는 게 일이었습니다. 은행에 가면 대출해준다고 해놓고는 자꾸 위로 떠넘깁니다. 말은 '바쁘신데 뭐 일부러 이렇게 찾와왔느냐'고 부드럽게 하면서도 '제 선에서 곤란하니 제 윗사람을 만나보시라'는 식이죠.
그때 하도 데어서 "은행원 놈들, 언제 안 죽나"하고 이를 갈았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은행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돈 빌리는 사람 심정은 누구보다 잘 아는 은행장이 된 것이죠. 그래서 은행 직원들에게 "빌려가는 사람 입장을 단 1분이라도 생각해보라"고 말해줍니다.

그런데 당시 은행들은 담보를 잡고서야 대출을 해주는 게 관행이었어요. 관행이 아니라 아예 규정이 그렇게 되어있어요. 여신규정 1조가 "대출은 담보를 원칙으로 한다"고 되어 있어요. 그래서 "대출은 신용을 원칙으로 한다"고 바꾸었더니 실무자들이 "그러면 책임이 다 자기한테 돌아온다"며 "위에서 신용 대출을 지시한 경우는 책임 안진다"고 바꾸더라구요.

그런데 요즘은 신용대출해주기도 쉽지 않습니다. 오늘만 해도 제 일정이 어떤 줄 아십니까. 아침 7시반에 조찬이 거의 매일 있는데 오늘도 '금융산업의 미래'란 주제로 강연을 하니 9시가 되고 다음에 망우지점으로 가서 이 지역 중소기업 사장님들을 열 분 정도 만나 인사를 했습니다. 오후에도 세분 정도 만나기로 했는데 그만 여기에 와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팔 비틀려서 왔다"고 하지 않겠 됐습니까.

제가 직접 사장님들을 만나는 것은 사장님들이 지점장들은 우습게 생각하는데 은행장이라고 하면 알아주기 때문입니다. 은행장 명함이 값을 톡톡히 합니다. 인사한 뒤에는 반드시 예금이나 대출 등 비즈니스로 연결되니까요. 그 사장님들은 모두 다른 은행과 거래하는 분들입니다. 제가 그쪽 고객을 뺏어오는 것이죠. 비도덕적이라고 욕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경쟁이니 할 수 없어요.

요새 수재의연금을 걷는데 ARS로 해서 은행을 통하지 않고 통신을 이용해 모금이 되고 있어요. 은행이 할 일이 없는 겁니다. 은행만이 경쟁상대가 아닌 세상인거죠. 그래서 직원들을 핀란드 통신회사 노키아에 보내 '통신회사들과 어떻게 경쟁해야 하나' 연구를 하도록 했습니다.

SK텔레콤 주주가 되려고 했는데 막아서 못들어갔지만 한국통신에는 주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은행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세상 살아가는 데 자신없는 사람이 고시 봐**

세상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이런 예를 들었는데, 이제 빽 있다고 어디 총리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장상 총장을 잘 아는데, 제게 꾸지람도 많이 하신 분으로 그만한 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런 분도 총리인준을 통과하지 못했어요. 이게 뭘 말합니까. 과거의 기준으로 볼 때 문제가 되지 않던 것이 오늘의 기준으로 보니까 문제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2002년 기준으로 미래를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20~30년 뒤는 다른 세상입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미래를 결정하지 마십시오.

요즘 보면 고시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제가 보기에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고시를 합니다. 직장이라고 해야 별로 없었던 과거 60년대에는 그럴 수도 있어요. 제가 서울대를 간 것도 취직을 위해서였습니다. 서울의 D대학을 나온 분이 취직도 못하고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짓는 것을 보고 "아, 취직하려면 서울대에 가야 하는가 보다"하고 서울대에 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과거에는 돈도 안되는 공 차는 능력으로 웬만한 사람보다 돈을 잘 버는 세상 아닙니까. 과거에는 은행에 들어가면 돈 세는 것부터 배웠는데 지금은 그런 건 기계가 다 합니다.

이제는 직업이 다양해졌으니, 아무 직업에도 적성이 안 맞는다는 사람들만 고시를 봐야 합니다.

80년대 중반 이후 민간부문이 엄청난 발전을 했습니다. 공무원들이 반도체에 대해 더 잘 압니까, 삼성 직원들이 더 잘 압니까. 어떤 분야에 대해서는 공무원들이 모르는 게 나은 세상입니다. 필요없는 공무원 조직들이 많은데 그런 곳에 왜 가려고 합니까. 저는 공무원들이 지금보다 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대학생 금융의식 수준은 '저축해라'는 수준**

요즘 은행들은 큰 변화를 하고 있습니다. 국제 금융업의 흐름이 자산관리로 가고 있어요. 그런데도 국제화 시대라고 하니까 요즘 신입사원들은 전부 국제부에 가겠다고 손 들어요. 그런 식으로 줄 서서 가지 말라는 겁니다. 안전한 것을 추구하는 심리를 극복해야 합니다. 케네디는 지도자로서의 가장 큰 자질로 '용기'를 꼽았습니다.

현재 국내 은행이 20개가 있습니다. 이들중 앞으로 몇 개나 살아남을지 모릅니다. 은행에 니치마켓(틈새시장)이 있느냐는 등 의견이 분분하지만 미래의 흐름은 지금과 다를 것입니다. 지난 8월말 현재 국민은행의 자산이 2백조가 넘었습니다. 요즘 합병 논의가 나오고 있는 신한, 한미, 하나, 제일 등을 모두 합해도 국민은행에 못미칩니다.

국내총생산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세계 12위인데, 국민은행은 아직 세계60위권에 있습니다. 우리 위상에 맞게 은행 규모가 더 커져야 합니다.

경영합리화를 위해 매킨지에 컨설팅을 했더니 1년안에 6백억~7백억원의 경비를 절감해 주겠다고 하면서 이를 못하면 컨설팅비를 안받겠다고 했어요. 무조건 해보라고 했는데, 실제로 순식간에 경비를 절감해 냅디다. 정말 국제적 수준의 경험을 배워야 한다고 절감했습니다.

과거에는 한 직장에 오래 있는 사람이 높이 평가됐지만 요즘은 이곳저곳 다닌 사람을 '다양한 경험을 했다'며 선호합니다. 그만큼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우리 대학생들의 금융의식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대학생 금융의식을 국민은행에서 조사해보니 부모님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저축해라'는 수준이었습니다.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대학생들이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결제는 80%가 부모님에게 의존한다고 합니다. 미국은 신용카드 발급이 우리보다 두 배가 많지만 부모에게 의존 안합니다. '야, 이건 문제가 있다' 생각이 들어 선도은행으로서 국민은행이라도 국민금융의식을 개혁해야 한다는 생각에 중학생용 만화책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강밖에서 강물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볼 수 있어야**

우리 사회에 신용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신용대출을 하기 위해서는 투명경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중소기업들에게 신용대출을 하려고 해도 신용대출이 쉽지 않습니다. 자산 70억원 미만의 중소기업들은 감사대상에서 제외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감사비용을 알아보니 1천만원 정도 하더군요. 그래서 그 감사비용을 대주겠다고 하니 중소기업들보다 회계법인들이 일거리 늘었다고 제일 좋아합디다.

삼국지에 "흘러가는 강물 속에 있으면 그 강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른다"는 말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강밖에서 강물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말처럼 쉽지 않을지라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기 쉽지 않는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인재들이 필요합니다. 국민은행은 인재들을 무척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인재를 모으기 위해서 '사람값이 다르다'는 전제를 갖고 있습니다.

결과를 평등하게 하자는 것은 공산주의보다 더한 것 아닙니까. '북한도 성과급을 도입한다'는 기사도 나오는 세상입니다. 78년 중국의 등소평이 한 혁명도 별 거 아닙니다. 농사지은 것 중 일부만 정부에 내놓고 나머지는 다 가져라고 하니까 금세 식량이 자급자족하고도 남게 되었지 않습니까.

미국식으로 합리화한다고 계약직을 많이 쓰라는 건의도 있지만 저는 동양의 정서상 신분의 안정감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 계약직을 쓰는 것은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대신 사람을 확실하게 차별하겠다는 겁니다. 차별을 하지 않으면 경쟁도 없고 발전도 없습니다.

***"그래, 모두 성전환해라"**

우리 국민은행이 인재 확보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아십니까. 직원 2만명에 대해 1인당 1천5백달러 이상 교육비를 배정하고 교육책임자에게 이 돈을 다 못쓰면 자른다고 했습니다. 연말까지 그 돈을 다 못쓸까봐 겁났는지 영어학원에 등록만 하면 50만원씩 준다고 합디다.

대학교가 6년 일하고 1년 안식년을 갖는데 그런 좋은 직장이 어디 있습니까. 금년부터 국민은행도 안식년제를 도입했습니다. 10년 이상 근무한 사람으로 50세가 넘지 않는 사람이 대상입니다. 처음에는 과거 경험상 안식년 한다고 하고는 사실상 내보냈다고 의심했지만 "절대 그런 의도가 아니다"면서 "국제 금융 등 자기가 원하는 분야를 공부한 뒤 지원하면 우선적으로 배정하겠다"고 약속하며 설득하니 2백명이 지원해 외국증권사 등으로 연수를 보냈습니다.

신입사원들에게도 4년 근무한 뒤 모두 MBA에 보내줍니다. 어떤 조건도 달지 알고 해외유명MBA과정에 보낸 뒤 심사를 거쳐 다시 채용합니다. 이런 제도를 만들었더니 인사담당자가 지원자가 몰려들어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걱정하길래 아웃소싱으로 해결하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국민은행에는 내외국인 가리지 않고 세계 20위안에 드는 MBA 출신들이 많이 와 있습니다.

여성들도 우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성들이 영업을 안해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증권사 최초로 여성들을 영업직에 영입한 사람입니다. 전체 지점장 중 5%에 여성을 앉혔더니 남자들이 "성전환하겠다"며 볼멘소리를 했어요. 20명 중 1명꼴인데도 그러니, "그래 모두 성전환하라"고 야단쳤죠.

***김우중과 나는 반비례 관계**

오늘 제 강연을 듣는 학생들 중에 경상대학생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마 CEO를 목표로 하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성공한 CEO라고 하지만 사실 CEO는 운이 좋아야 성공하는 것입니다.

작년 9.11테러때 저도 큰 낭패를 볼 뻔 했습니다. 주택은행을 뉴욕증시에 상장하기 위해서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승인이 있어야 하는데, 테러 전날인 9월10일 오후 3시에 결재가 났습니다. 조금만 늦었다면 1년 정도 연기되었을 것입니다.

지난 번 태풍 루사가 왔을 때도 운이 좋았습니다. 주택은행과 국민은행 전산망 통합 테스트를 2주에 한번씩 해오다가 두 달전에 태풍 루사가 온 시기에만 3주 간격을 두었는데 그전처럼 2주 간격으로 했으면 수해지역 지점 탓에 전산망 테스트가 헛수고가 될 뻔했었죠.

대우 김우중씨와 저는 CEO로서 반비례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증권사 시절부터 김우중씨를 믿지 않아 대우 주식은 한 주도 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98년 주택은행장으로 와 보니 자기자본 1조2천억에 불과한 은행에서 2조나 대우에 대출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담당 상무와 부장을 불러 그해 12월까지 1조 이하로 줄이라고 지시했는데 한달 뒤에 점검해보니 6백억원만 회수했어요. 왜 그랬느냐고 하니까 만기가 된 것 중 10%만 회수하는 것이 관행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뜻은 100% 회수라고 하고 '못하겠으면 사표 쓰라'고 했어요. 그 사람들 나가면서 얼마나 내 욕을 했겠어요. 심지어 지점장이 시켜서였겠지만 어느 지점 여직원이 항의전화를 다 했어요. "대우가 얼마나 은행에 이익을 안겨주는데 왜 그러느냐"는 거죠.

그러나 결과는 제가 옳았습니다. 결국 대우에 대한 대출을 3천억원대로 줄여 공적자금을 받지 않아도 되게 한 것입니다.

***강원도 여직원들, 수해때 지하에 물들어오자 동전주머니로 막아내**

일전에 1백억원 대출을 받았다는 사람이 저를 부득부득 찾아오겠다는 거에요. 그래서 뭔 사고가 났구나 걱정했는데, 그 분 하는 말씀이 '자기를 모르냐'는 거예요. 무슨 말인가 했더니 과거 경험상 백억원 규모의 대출은 은행장이 직접 결제한 것으로 알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요즘은 은행장은 대출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해주었죠.

이처럼 달라진 세상에서 국민은행이 원하는 인재는 과거나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조직의 목표를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강원도에 한 지점 여직원들이 전산망이 있는 지하에 물이 들어오자 금고에 있던 동전주머니들을 끌어내 물을 막아냈어요. 금고는 어떤 경우에도 손을 못댄다는 사고방식에 굳어 있는 직원들이 아니라 바로 그런 직원들이 필요한 겁니다.

직원들이 직급 문제로 하도 다투길래 인사팀에게 '직급은 각자 알아서 붙이도록 하자'고 말해주었습니다. '행장이 드디어 미쳤나보다'했을 겁니다. 자기가 30대인데 부장 직함 달겠습니까. 이처럼 조직부터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져야 합니다. 조직이 유연한 사고를 하지 못하면 인재들을 뽑아도 지켜내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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