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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대유행(?)할 '신종 주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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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대유행(?)할 '신종 주례법'

"결혼식이 끝나고 몇 사람이 뒤집어졌다나?"

이 글은 본지에 좋은 글을 자주 보내주시는 천주욱 스탠다드텍 대표가 지난 8월25일 자신이 섰던 주례 이야기다. '아, 이렇게 간단하면서도 뜻깊은 주례도 가능하구나'라는 생각에 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앞으로 상당한 유행(?)을 불러일으킬 게 확실한 '신종 주례법'을 소개한다. 편집자

***어느 주례사**

오늘 나는 결혼식 주례를 했다.

대기업에 다니다 4년전에 벤처회사를 세워 열심히 하고 있는 신랑의
간곡한 부탁을 몇 번이나 뿌리치다 마지 못해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왕 주례를 한다면 좀 의미 있게 주례를 할 수 없을까 생각하다
얼마 전에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들은 방법으로 주례를 하기로
작정했다.

며칠 전 사무실로 인사를 온 예비 신랑 신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각자 상대편에게 보내는 A4지 한 장 분량의 편지를 하나씩 적어
달라. 그 날 결혼식장에서 그 두 통의 편지를 주례사로 갈음할까
생각한다."

오늘 결혼식은 오후 3시 서울대 호암관에서 있었다.
결혼식 바로 직전에 신랑과 신부로부터 문제의 편지를 받았다.

그리고 주례사를 하는 순서가 되자 나는 이렇게 서두를 꺼내면서
두 사람의 편지를 읽었다.

"제가 아무리 좋은 주례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오늘의 주인공들인
이 두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두 사람은 긴장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동안의
결혼 준비로 인하여 심신이 피로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례사 보다는 이 두 사람이 각자에게 보내는 마음의 편지를
제가 읽는 것으로 주례사에 갈음하고자 합니다.

참고로 이 편지는 사전에 제가 두 사람에게 부탁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 장의 편지는 결혼식이 끝난 후 제가 액자에 넣어서
각자에게 결혼 선물로 줄 생각입니다.

먼저 신부의 편지입니다.


***신부가 신랑에게 보내는 편지**

2002년 8월 25일
결혼식을 몇 시간 앞 두고

"처음 오빠를 봤을 때, 권위적이지 않으며 회사 직원들과 격의 없이
지내고, 어떤 사람에게든지 예의 바르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참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보아오면서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은 많은 놀라울
만한 장점을 갖고 있지만, 또 그런 것들에 대해 놀라우리 만큼 겸손
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들은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렇게도 찾던 제 이상형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제일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다지 길지 않았던 연애기간에, 바로 또 결혼 준비로 서두르느라
갑작스럽게 이리저리 나의 단점들도 많이 보였을 텐데 그런 단점
들을 다 잘 이해해 주는 것이 정말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임을 저는 요즘 오빠
한테서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요 근래 마음이 한결 평온해 진 것도 오빠의 숨은 공이겠죠.

이제 앞으로 평생 지금 같은 평온하고 행복한 느낌으로 살 수
있게 해 준 오빠, 고마워요.

이런 훌륭한 우리 오빠를 있게 해 주신 우리 어머님,
잘 하는 것도 없는 저를 이뻐해 주시고 챙겨 주시는 것,
너무 감사합니다.

오빠의 어머님에 대한 마음, 그 이상으로 어머님을 모실 것이며
행복하게 해 드리려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엄마, 아빠, 외할머니,
여태껏 저를 사랑으로 키워서 이렇게 좋은 사람 만나서 시집 갈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빠랑 잘 살을께요."

하객 여러분, 어떻습니까?
박수 한 번 치시죠.
(사실 박수를 유도 하면서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다음은 신랑의 편지입니다.

***신랑이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

사랑하는 XX씨,
제 인생에 있어서 아직까지 이렇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날은
없었습니다.

한 없이 기쁘고 행복한 순간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 만큼의
책임감과 각오를 새롭게 다져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을 만난지 얼마 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동안의 대화와 생각의 공유를 통한 교감은 이미
우리가 서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금 나는 감사 드려야 할 분이 너무도 많습니다.
너무 일찍 혼자 되셔서 이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신
어머님, 내겐 너무 예쁜 당신을 이 세상에 보내 주시고
또 흔쾌히 허락해 주신 장인 장모님,

자기 일도 힘들면서 묵묵히 오빠를 챙겨 주었던 여동생,
아직까진 고생만 많이 하면서도 항상 자기 일은 꼭 처리해
주었던 우리 XXX 임직원들, 그리고 항상 제게 힘이 되어 주었던
친구와 선후배님들…

어찌 고마운 분들을 이 자리에서 일일이 말씀 올릴 수 있겠습니까만은
제게 가장 고마운 사람은 지금 바로 옆에 서 있는
당신입니다.

일생에 단 한 번뿐인 행사를 미루어야 하는 상황마저도 웃음으로
받아 준 당신!

그것이 사랑과 이해였음을 알기에 더욱 고맙고 또 너무 미안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해와 사랑을 당신께 드릴 사람은 또한
당신 옆에 서 있는 나라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자신 있게 다짐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태어난지 꼭 11,730일이 되는 날입니다.

앞으로 펼쳐질 더 많은 모든 날들은 당신과 함께 입니다.
모든 기쁨과 희망을 당신께 바칠 것입니다.
앞으로 우린 모든 것을 함께 하고 같이 세상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이렇게 한 여인을 사랑할 기회를 준 당신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항상 해 왔던 말, 앞으로도 많이 들어야 할 말이지만….

사랑합니다."

박수 한 번 더 치시죠.
(생각보다는 박수 소리가 크게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커플이 되길 기원하며
주례사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상이 오늘의 내 주례사였다.

신랑 신부는 주례사가 짧아서 좋아하는 것 같았다.

결혼식이 끝나고 들으니 내 색다른 주례사에 몇 사람이 뒤집어졌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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