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부 아래서 자행된 사법농단에 대한 검찰의 기소가 일단락 된 모양새다. 보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지난 5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각종 사법 농단 범행에 가담한 의혹을 받고 있는 전·현직 법관 10명을 각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으며, 법관 66명에 대해서는 비위사실을 대법원에 통보했다 한다. (관련기사 : '사법농단' 전·현직 법관 10명 추가기소…66명 비위통보) 이미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전 법원행정처 처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기소된 상태이기 때문에 사법농단 관련 혐의로 기소된 전,현직 법관의 수는 총 14명으로 늘었다.
양승태를 우두머리로 하는 법비들이 조직적으로 자행한 사법농단의 실태는 전대미문 수준이다. 사법행정권 남용과 재판거래라는 알듯 모를듯한 말 속에는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송두리째 유린하고, 사법부를 소수 법관들의 사익추구기관으로 만들며, 주권자인 국민이 위임한 사법권을 사유화한 양승태 이하 법비들이 저지른 천인공노할 범죄행위들이 담겨 있다. 양승태 이하 법비들이 조직적으로 저지른 범죄행위들이 대한민국 헌정질서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사법부의 역사에 지워지지 않는 오점으로 남을 것임은 불문가지다. 아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와 비위에 상응하는 처벌과 징계를 각각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이 우리에게 무겁기 그지 없는 화두를 던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 화두는 '사법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인가'다.
배심제와 참심제는 법원의 보완재일 뿐 대체재라고 보긴 어려워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과 입법기관인 의회의 구성원인 국회의원은 민주공화국의 유일한 주권자인 국민의 선거에 의해 선출되고 임기가 끝난 이후(현행 헌법 아래에서 대통령은 단임이지만, 주권자들은 5년 마다 치러지는 대통령선거를 통해 전임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을 심판할 수 있다)엔 교체될 수 있다. 즉 불완전하긴 하지만, 주권자인 국민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선거를 통해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사법부는 다르다. 삼권분립의 한 축이자 주권자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법부에 대한 주권자들의 민주적 통제장치가 현재로선 너무 미약하다. 그저 주권자인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역시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을 임명하는 것, 대법원장이 제청한 대법관을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 정도가 주권자인 국민이 사법부를 통제하는 방식이다.
법관을 특수계급처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더해 민주적 통제장치마저 이렇게 약하다 보니 일부 법관들은 사법권을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았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고,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법관에 임용된 후 사적으로 획득한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양승태 이하 법비들이 저지른 미증유의 범법행위는 그 누구 보다 법을 지키고 수호해야 할 법관들이 헌법과 법률을 사정없이 파괴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지만, 지금처럼 법관들에 대한 민주적 통제장치가 극히 취약한 조건에선 언제라도 재발할 수 있는 사태다.
사법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장치를 말할 때, 우선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배심제(법률전문가가 아닌 시민이 배심원 자격으로 재판 또는 기소에 참여하여 사실문제에 관한 평결(評決)을 하는 제도, 주로 영미에서 발달, 대한민국에선 약한 배심제인 국민참여재판이 있음)와 참심제(선거 또는 추첨에 의하여 시민 중에서 선출된 참심원이 전문적 법관과 함께 재판부를 구성하여 사실관계 뿐 아니라 법률관계도 심리하고 판결하는 제도, 독일에서 발달, 대한민국엔 참심제가 없음)의 도입이다.
그러나 배심제를 채택하는 영미와 참심제를 채택하는 독일이 보여주듯 배심제와 참심제는 사법에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도입한다는 의미가 있긴 하지만, 직업법관제를 대체할 수 있는 장치가 되긴 어렵다. 배심제는 자칫 정념에 지배되기 쉽고, 참심제는 참심원이 직업법관에게 경도되기 쉽다는 단점이 각각 존재하는 까닭이다. 더구나 참심제는 사법권이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있다는 현행 헌법에 따라 개헌을 하지 않으면 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 마디로 배심제와 참심제는 법원의 보완재일 뿐 대체재라고 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사법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핵심은 법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
결국 사법권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핵심은 법원의 구성원인 법관을 주권자인 시민이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느냐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비례대표제를 근간으로 하는 의원내각제를 도입해 사법부를 의회로 하여금 통제하게 하는 것이다. 즉 주권자인 국민의 대표기관을 유일하게 의회(지금의 대통령제는 대통령과 의회의 항상적 이중권력상태를 전제한다. 현행 대법원장과 대법관 임명절차를 보라. 대통령과 의회의 이중권력 상태가 극명히 드러난다)로 통일하고 의회에서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임명하게 해 사법부의 중추를 국민의 유일한 대표기관인 의회가 구성하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법관에 대한 파면권을 의회가 적극적으로 행사해 사법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럴 경우 문제가 되는 해당 법관의 파면은 의회의 탄핵소추발의(현행 재적 의원의 3분의 1이상의 수로 발의)와 탄핵소추의결(현행 재적 의원의 과반수 찬성으로 성립)로 확정되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절차는 필요치 않은 것으로 헌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위에서 제시한 방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개헌이 필수적이다. 의원내각제도, 의회에서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임명하는 것도, 의회의 탄핵의결만으로 법관을 파면하는 것도 전부 헌법개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개헌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건 잘 안다. 그러나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개헌을 고민해야 할 만큼 중대하고 긴절한 과제라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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