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생뚱맞게 들리겠지만, 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끊임 없이 미디어에 기고를 했고, 토요일마다 열리는 광화문 촛불집회에 개근했다. 탄핵발의부터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을 거쳐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결정의 전 과정 마다 나는 마음을 졸였다. 박근혜의 탄핵이 확정됐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지만 안도의 숨을 몰아쉬는 내 마음 한켠으로는 음험한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그 불안함의 정체는 박근혜 탄핵이 '탄핵의 일상화'의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물론 박근혜 일당이 저지른 국정농단의 죄는 하늘을 덮고도 남으며, 거기에 대해서는 마땅히 헌법과 법률의 엄정한 심판이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과 같은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제의 부재, 지역구 위주의 소선거구 단순다수제)가 온존하는 한 행정권력과 의회권력 간의 일상적 대치상태, 대통령에 대한 상시적인 탄핵위협, 퇴임한 대통령에 대한 정치보복 등의 가능성이 온존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현재 높은 지지를 구가하는 문재인 대통령도 퇴임 이후 정권이 자유한국당으로 넘어가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터무니 없는 혐의로 법의 올가미에 걸릴 수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험이 있는데 그런 일이 반복되겠느냐고? 지금과 같은 정치지형 속에서도 정치사기꾼 드루킹의 말만 듣고 김경수 경남지사를 사실상 법살한 성창호 판사 같은 사람이 있는데, 한국당 세상이 되면 모든 국가기관과 미디어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달려들어 만신창이를 만들 것이라고 예상하는게 오히려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인격살해했듯 말이다. 이명박과 박근혜 지지자, 한국당, 태극기 파쇼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짓거리는 생각치 않고 복수만을 꿈꾸고 있을 것이 가능성이 농후하다.
전쟁의 승리는 반복되지 않고, 선거승리는 장담할 수 없다. 민주당의 집권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는 없다는 말이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견고하고 민주당의 집권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지금이 대통령결선투표제를 도입하고 의원정수확대를 전제로 한 비례대표제 전면도입을 통한 다당제 구조를 안착할 호기라고 믿는다. 나는 다당제에 근거한 의원내각제가 우리가 종국적으로 지향할 목표라고 생각하지만, '대통령 결선투표제+비례대표제 확대를 매개로 한 다당제' 조합만으로도 '정치'라기 보단 '전쟁'에 가까운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승자독식구조를 혁파하며, 제 정당 간의 협치를 가능케 할 것이다.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영구적으로 끊어내고, '정치'를 '전쟁'이 아닌 '정치'로 자리매김하며, 협치의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할 선거제도 개혁에 대통령과 민주당이 올인하길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관계 정상화 및 남북관계의 질적 도약, 선거제도 개혁을 이뤄낸다면 그 업적은 영원히 죽백에 새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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