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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가격, 이렇게 높은 진짜 이유가?

[서리풀 연구通] 의약품 가격, 이렇게 높아야 할 이유 없다

오늘 저녁 밥상 위에 놓을 두부 한 모, 시금치 한 단의 가격이 100배 오른다면? 아마 장을 보러 간 사람들 모두가 대폭 인상된 가격에 놀라움과 분노를 금치 못할 것이다. 빗발치는 국민 청원으로 순식간에 청와대 홈페이지가 마비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동요와 저항 없이 100배 이상 뛴 가격이 있다. 바로 항암제 가격이다.

1965년 100달러(약 11만 원) 선이었던 항암제의 한 달 비용은 2017년 10000달러(약 1124만 원)를 돌파했다(☞관련 자료 : 항암제 한 달 비용의 중앙값 추이(1965~2017년)). 항암제를 포함하여 근래 개발된 신약의 가격은 그야말로 천정부지로 솟고 있다. 최근에는 한 병(5ml)의 가격이 1억 원대인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 '스핀라자주'가 국내에 들어왔다. 의약품은 왜 이렇게 비싼 것일까?

그 이유로 제약업계는 연구개발(R&D) 비용을 든다. 신약 연구개발은 많은 돈과 시간이 들 뿐 아니라 제품개발 실패의 위험과 기회비용을 감수해야 하기에 이를 모두 보상할 수 있는 수준으로 약가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매출의 일정 비율을 미래의 신약 연구개발에 재투자하려면 높은 가격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충분히 받아들인다고해도 약가 수준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공개되었다. 올해 1월 미국의사협회지(JAMA)에는 항암제 매출액이 연구개발비 1달러당 무려 14.5달러 수준임을 밝힌 연구가 실렸다(☞관련 연구 : 항암제 연구개발비와 매출액 비교 연구). 고가 항암제를 판매하여 제약사가 벌어들이는 금액이 개발 투입 비용의 14배를 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연구를 수행한 세계보건기구의 테이테오 박사와 동료들은 1989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처(FDA)의 승인을 받은 항암제들의 누적 매출액과 연구개발비를 비교했다. 총 156개의 항암제 성분 중 데이터 확보가 가능했던 99개(63.5%) 성분이 최종 분석에 포함되었다.

항암제 매출액을 파악하기 위해 연구진은 제약사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재무보고서와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재무제표 등을 자료원으로 활용했다. 일본, 영국, 프랑스 등 서로 다른 국가의 화폐가치로 보고된 매출액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기 위해 해당연도의 환율에 따라 모두 미 달러로 환산했다. 또한, 여러 시기에 걸쳐 발생한 매출액은 인플레이션을 고려해서 전부 2017년 값으로 환산했다.

항암제 연구개발비의 경우, 2017년 프라사드 박사의 선행연구(☞관련 연구 : 항암제의 연구 개발비 및 수익)에서 제시된 값인 7억9400만 달러(하한 2억1900만 달러, 상한 28억2700만 달러)를 적용했다. 이는 한화로 약 8921억 원(하한 2460억 원, 상한 3조1761억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항암제 연구개발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본 연구에 사용된 수치는 세계제약협회연맹(IFPMA) 등에서 인용하는 추정치의 범위 내에도 포함되는 값이다.

분석 결과, 연구진은 항암제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주요 정보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우선 항암제 매출액이 실제로 많았다. 연간 매출액 평균이 10억 달러(약 1조1235억 원)를 넘는 블록버스터 의약품이 전체의 33.3%(33개)나 되었으며, 누적 판매액이 50억 달러(약 5조6175억 원)를 초과하는 의약품이 49.5%(49개)로 절반에 가까웠다. 더욱이 항암제의 높은 매출은 특정 기간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고 장기간 지속되었다. 예를 들어 호중구감소증(암 관련 질환) 치료제인 필그라스팀(Filgrastim)의 경우, 시장독점권이 끝난 후에도 연간 5억 달러(약 5618억 원)가 넘는 매출을 유지했다.

이 연구의 또 다른 핵심 결과는 항암제 매출액이 연구개발비를 크게 상회한다는 사실이었다. 선행연구에서 제시한 항암제 연구개발비 7억9400만 달러(약 8921억 원)를 기준으로 계산해보았을 때 연구개발비 1달러당 누적 항암제 매출액의 중앙값이 14.5달러로 매출액이 연구개발비의 14배를 넘는 수준이었다. 연구개발비를 최대치인 28억 2700만 달러(약 3조1761억 원)로 보다 보수적으로 적용한다고 해도 블록버스터 성분들의 매출은 연구개발비를 수십 배 상회했다(리툭시맙(rituximab) 33.2달러, 트라스트주맙(trastuzumab) 31.2달러, 베바시주맙(bevacizumab) 29.5달러 등)

<그림 > 항암제별 누적 매출액 추이(출처: Tay-Teo et al., 2019)

지난 30여 년간 출시된 항암제 대다수에서 연구개발비의 수십 배를 넘는 막대한 매출이 발생했다는 이상의 연구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는 우리가 지불한 항암제 가격이 항암제 본연의 값어치를 넘어 불필요하게 높은 비용이라는 것을 함의한다. 즉, 항암제의 높은 가격과 그것으로 벌어들이는 제약사의 과도한 매출은 정당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비싼 항암제 가격은 환자와 가족을 넘어 건강보험과 사회를 위협한다는 점에서도 대응이 시급한 문제다. 항암제가 초래하는 재정부담 문제를 알리고자 국내외에서는 근래에 항암제 '재정 독성(financial toxicity)'이라는 말까지 사용되고 있다. 독한 항암 치료에 뒤따르는 구토와 각종 부작용도 무섭지만, 환자를 재정적 파탄에 이르게 하는 항암제의 재정 독성이야말로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또한, 높은 항암제 가격은 도리어 의약품의 혁신을 저해하고 있다. 이 연구를 진행한 연구진도 언급하였지만, 항암제 연구개발은 혁신을 추구할 수 없는 기형적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 항암제가 일단 출시되기만 하면 고비용으로 팔릴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신약 출시가 쉬운 부문으로 연구개발 노력이 중복되고 있으며 빠른 시장진입을 위해 근소한 개선만을 보이는 약들이 부지기수로 등장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2008년부터 2012년 사이 미국 식약처(FDA)의 승인을 받은 54개 항암제 중 오직 1/3만이 생존을 연장하는 효과를 보이는 등(☞관련 연구 : 대리지표에 기반하여 승인된 항암제들의 생존율 연구)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혁신이 부족한 상황이다.

결국, 우리는 현재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개인과 가정, 사회를 위협하며 미미한 임상적 개선만을 나타내는' 항암제에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시민들이 거대 제약사들이 요구하는 높은 항암제 가격에 대항하여 정당하고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면 항암제 가격은 계속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비싼 약이 필요한 소수의 환자들만이 아닌 여럿이서, 한 국가로 어렵다면 여러 국가가 약가결정을 문제시한다면 조금은 이 상황을 헤쳐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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