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선 게이트'의 핵심 비리의혹인 타이거풀스(현재의 스포츠 토토)의 전자복표 낙찰 로비의혹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특수2부(차동민 부장검사)가 1일 밤 송재빈 타이거풀스 인터내셔널 대표(33)를 체포했다. 구속 사유는 6억원 규모의 업무상 횡령 혐의. 이틀에 걸쳐 전자복표 로비의혹을 집중조사했으나 송 대표가 혐의를 강력부인하자 일단 회사공금 횡령으로 잡아넣은 것이다.
검찰은 전자복표 로비의혹을 규명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김대중 대통령 3남 김홍걸씨의 구속 여부를 결정짓는 관건이 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수사력을 이 부문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검찰의 고민은 심증은 확실하나, 이를 뒷받침해줄 결정적 물증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송 대표가 횡령한 자금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국민체육진흥공단, 문화관광부 등에 로비를 벌인 정황을 일부 포착한 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만약 검찰이 로비의 구체적 과정을 밝히지 못한다면 최규선 게이트의 핵심인 타이거풀스 의혹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로비의 세 가지 가능성**
타이거풀스 선정과정에 제기되고 있는 로비 가능성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번째, 사업자 선정 배점기준을 작성하는 과정(2000.8~2000.11)에 로비가 들어갔을 가능성이다.
두번째, 사업자 심사 과정(2000.11.28~2000.12.2)에 로비가 들어갔을 가능성이다.
세번째, 타이거풀스가 우선협상자로 선정한 후 최종사업자로 확정될 때(2000.12.2~2001.1.18)까지 사이에 로비가 들어갔을 가능성이다.
***첫번째 가능성: 사업자 선정 배점기준 사전조작 가능성**
2000년 12월2일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심사결과 한국타이거풀스 컨소시엄이 한국전자복권 컨소시엄을 제치고 우선협상 대상업체로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타이거풀스가 1,000점 만점에서 917.060점을 얻어 877.314점에 그친 한국전자복권을 상당한 점수차로 앞질렀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탈락한 한국전자복권이 비공식적으로 상당한 의혹을 제기했으나 문제는 더이상 확산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로비의혹이 제기되면서 '사업자 선정 배점기준'을 만드는 과정 자체에 로비가 개입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25일 국회 문화관광위에서 한나라당 고흥길 의원은 가장 의혹이 가는 대목이 사업자 선정 기준 배점 구성이라고 지적했다. 얼마 전 국방부의 차기전투기(F-X) 선정과정에 배점 기준이 문제가 됐듯, 전자복표의 사업자 심사 기준이 애시당초 타이거풀스에게 유리하게 작성된 게 아니냐는 의혹 제기였다.
심사기준과 배점을 보면 총 1천점 만점에 자금조달능력평가 1백점, 주주구성·기여계획·수익금제시능력 3백점, 사업운영능력 3백점, 시스템구축운영능력 3백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로 받은 평가점수를 보면, 자금조달능력 평가에서는 한국전자복권 컨소시엄이 더 많은 점수를 받았으나 나머지 세가지 평가요소에서는 한국타이거풀스컨소시엄이 더 많은 점수를 얻었다.
자금조달능력평가에서는 한국타이거풀스컨소시엄이 78.8점인데 반해 한국전자복권컨소시엄이 88.4점으로 9.6점을 더 많이 얻었다.
그러나 나머지 주주구성·기여계획·수익금제시능력 평가에서는 3백점 만점에 한국타이거풀스컨소시엄이 2백67.16점을 얻어 한국전자복권컨소시엄의 2백41.114점보다 26.046점을 더 받았다.
사업운영능력 평가에서는 한국타이거풀스컨소시엄이 2백90.7점을 얻어 한국전자복권컨소시엄 2백77.6점보다 13.1점을 더 받았다.
마지막, 시스템구축운영능력 평가에서는 한국타이거풀스컨소시엄이 2백80.4점을 얻어 한국전자복권컨소시엄 2백70.2점보다 10.2점을 더 받았다.
고흥길 의원측은 이러한 심사기준과 평가 결과를 분석해 보면 한국타이거풀스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한국타이거풀스컨소시엄에게 불리한 요소는 배점을 적게 주고(1백점) 유리한 요소는 배점을 많이 주었기(3백점)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고의원은 "자금조달능력이야말로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국민체육진흥법 제22조 3항(체육진흥투표권 발행사업의 위탁 등)에 수탁사업자가 구비하여야 할 요건으로 '체육진흥투표권 발행사업 수행에 필요한 경제적·기술적 능력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는 조항을 들었다. 이러한 법규정의 취지는 경제적 능력을 하나의 큰 요소로 비중있게 다루어 달라는 것이다.
현재 체육복표 사업의 존립 자체가 불투명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사업수행자의 자금조달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타이거풀스측도 인정하는 사항이다.
결국 타이거풀스(현 스포츠토토)는 투표권시스템 구축비를 조달하기 위하여 금융기관으로부터 5백2억원의 대출을 받아야 할 형편이어서, 사업주체인 국민체육진흥공단이 법인연대보증까지 해주어야 했다. 하지만 최규선 게이트가 터지면서 이 사업의 이미지가 극도로 나빠지자 금융기관들이 체육진흥공단의 지급보증에도 불구하고 대출을 거부하고 있어 사업 중단 위기에 몰리고 있다.
고 의원측은 "이런 상황으로 볼 때 자금조달능력 평가요소에 배점을 적게 준 것은 잘못된 기준이었다"며 "이같이 편파적이고 왜곡된 기준이 만들어지게 된 데는 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로비 의혹을 제기했다.
이같이 의혹을 사고 있는 심사기준은 2000년 8월중순 구성된 평가기준설정위원회가 만든 것이었다. 이 위원회에 참석한 위원은 모두 13명으로, 이들은 석달간의 작업끝에 심사기준으로 4개 분야 22항목을 선정했다.
***두번째 가능성: 심사위원 매수 가능성**
타이거풀스 선정의 최대 미스테리는 어떻게 시민단체들까지 감시단으로 참여했던 전자복표 사업자 선정 과정에 '로비 낙찰'이 가능했냐는 대목이다.
로비자금으로 15억원의 현금과 주식을 최규선, 김홍걸, 김희완 등에게 뿌린 혐의로 구속된 송재빈 타이거풀스 대표는 "시민단체 5명이 감시단으로 참여했을 정도로 사업자 선정 절차는 더없이 투명하고 공정했다"며 로비 사실 자체를 강력부인하고 있다. 당시 감시위원으로 참석했던 시민단체 관계자들도 "로비는 불가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검찰을 가장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대목이 바로 이 심사과정이다. 체육복표 발행주체인 한국체육진흥공단이 외형상 로비 자체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심사과정을 투명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체육진흥공단은 2000년 8월 공동체개혁국민운동협의회,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한국공인회계사회, 대한변호사회, 한국체육학회 등 5개 시민단체 및 전문단체 고위관계자들로 구성된 시민감시단을 발족시켰다. 선정후 예견되는 잡음을 예방하기 위해 짜낸 묘책이라는 게 체육진흥공단측 설명이었다. 감시단 선정과정에 경실련 등에도 참여를 타진하는 문의가 갔으나, 사행사업에 기본적으로 반대한다는 단체 입장에 따라 참여를 거부했다는 게 경실련 등의 설명이다.
체육진흥공단은 또 2000년 11월27일 오후 대학(56개), 관련학회(13개), 시민단체(8개) 등에서 추천한 심사위원 후보 8백67명에 대한 제비뽑기를 해 26명의 위원을 확정해 본인에게 통보한 뒤, 28일부터 서울시내 모호텔에서 닷새간 심사작업을 한 뒤 2000년 12월2일 심사결과를 발표하며 타이거풀스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외형상 로비가 파고들 구멍이 없어 보인다. 만약 이들 심사위원과 감시단에게 로비가 먹혀 엉뚱한 결과가 나온 것이라면, 여기에 참석한 단체의 도덕성은 치명적 손상을 입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감시활동을 벌였던 시민단체나 전문단체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심사과정에 로비란 불가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음은 자신이 직접 감시위원으로 참석했던 한 시민단체 고위임원과 본지가 행한 인터뷰 내용이다. 이 관계자는 익명을 요구했다.
-감시위원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무작위로 선정된 심사위원들이 호텔에서 일주일간 숙박을 했는데 외부전화나 연락도 하지 못하게 지켰다. 심사에는 참여하지 않고 비디오카메라로 전 과정을 녹음하고 녹화했다."
-심사위원 선정과정은?
"3배수에서 5배수로 뽑힌 사람들에게 당일(2000.11.27) 저녁에 전화해 다음 날 오전에 모였다. 심사위원들을 공략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선정 자체는 돈이나 압력과 상관없이 이뤄졌다. 당시 체육진흥공단이 경륜장 선정시 문제가 발생한 적이 있어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과정에서는 감시 등의 절차를 철저히 밟았고,국정감사 등에 대비해 당시 일하던 공무원들이 모든 과정을 철저히 기록했다."
-참여 경위는?
"소속 시민단체에서 참여하겠느냐고 연락이 왔다. 나는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후 이력서를 만들어 보냈고 참여하게 됐다. 감시활동 이전에 채점을 위한 과목별 배점이나 편제 과정에도 참여한 시민단체가 있다고 들었다."
-당시 사업자 선정을 위한 로비 등은 없었나?
"왜 돈이 오갔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채점이 끝난 직후 기자들을 불러 바로 발표했다. 이유없이 돈을 줬다면 줬을 수 있겠지만 납득하기 힘들다."
-당시 분위기는?
"애초 한국전자복권이 비슷한 사업을 해본 경험이 있다고 해 다소 유리할 것으로 예상됐는데 떨어졌다. 당시 시연을 하는데 타이거풀스측이 잘해 높은 점수를 받았다. 또 타이거풀스에게는 세계적인 네트워크가 있어 체육진흥공단 입장에서 껄끄러울지도 모르겠다는 말도 나왔다."
-문제점은 없었나?
"심사과정의 공평성에 문제가 있다면 벌써 난리가 났을 게 아닌가. 선정과정상 돈이 오가거나 압력 등은 전혀 없었다. 사업자 심사중 질문과정에서 특정사업자에 유리한 질문이 나오면 제지할 수도 있었다. 심사위원중에는 개인적으로 어디를 밀 수 있었겠지만 선정과정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단 하나 특이했던 점은 당시 서울의 주요대학 교수들은 수업결손 등의 문제 때문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지 않았는데, 지방대학들은 학교선전도 되고 대외활동도 된다고 생각해서인지 추천을 제안받은 총장들이 교수들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이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 심사 과정에 로비란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불가능해보이던 심사 과정에 로비가 가능했다는 의문을 갖게 만드는 증언이 최근 나와 주목된다. 증언자는 다름아닌 최규선씨의 전 운전기사로, 이번 '최규선 게이트'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천호영씨이다.
천씨는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던 과정에 타이거풀스 선정 로비의혹과 관련,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규선씨가 2000년 12월초 송재빈씨에게 전화해 '내일이면 (체육복표 사업자) 심사위원들이 합숙에서 나온다. 다 잘 됐으니 걱정말라'고 말했다."
천씨의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로비가 불가능해 보이던 심사과정에 체육진흥공단등 유관 부처의 로비 또는 압박이 가해졌음을 의미한다.
검찰의 집중적 수사가 불가피한 대목이라 하겠다.
***세번째 가능성: 최종사업자 억지 선정**
2000년 12월2일 우선협상대상자 선정후 2001년 1월18일 최종사업자로 선정될 때까지의 과정에 제기됐던 석연치 않은 잡음도 반드시 규명해야 할 대목이다.
체육진흥공단은 타이거풀스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뒤 실사단을 구성해 축조심의에 들어갔다. 문제는 실사결과 상당히 심각한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실사단은 2000년 12월18일 타이거풀스의 시스템 부문에서 39개의 문제점을 찾아냈다.
실사단은 이어 2001년 1월4일 제출한 '우선협상대상자 실사결과 종합보고서'에서 발매 시스템 부적합, 시스템 통합솔루션 미검증 등 6개 부문의 결격사유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보고서에는 "이 업체의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을 박탈해도 법률적으로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는 법률자문 내용까지 첨부했다. 타이거풀스에게 치명적으로 불리한 내용이었다.
그러자 공단측은 실사단이 아닌 H연구원에 의뢰해 "1차 서류심사에서는 문제가 있었으나, 타이거풀스의 기술제휴사가 있는 이탈리아 현지실사 결과 정상판정이 나와 문제가 없다"며 타이거풀스를 1월18일 최종사업자로 선정하고 2월15일 서둘러 최종계약을 체결했다. 모종의 로비나 압력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강한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처럼 타이거풀스 로비 의혹은 최초로 사업자 선정기준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최종사업자로 확정되기까지에 여러 가지 미심쩍은 대목이 발견된다.
당시 이 사업이 제2의 강원랜드 같은 '황금알을 낳은 거위'로 인식되고 있었던 만큼 타이거풀스와 한국전자복권이 사활을 건 치열한 로비를 펼쳤으리라는 것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검찰이 이같은 물밑 로비 사실을 입증하기까지에는 적잖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그러나 어렵다고 중간에 멈출 일은 결코 아니다. 검찰의 실력에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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