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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갑 퇴장의 3가지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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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권노갑 퇴장의 3가지 배경

노무현 시대 개막, DJ 외면, 권력비리 수사

권노갑 민주당 전 최고위원이 18일 마포 사무실을 폐쇄, 금명간 미국 하와이로 떠나겠다고 발표했다. 사실상의 정계은퇴 수순으로 보인다. 하지만 언론은 그의 퇴장에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예견됐던 일이라는 반응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치거물의 쓸쓸한 퇴장이다.

권노갑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언론이나 정치권으로부터 이런 푸대접을 받던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뉴스 메이커'였고 '정치 변수'였다. 크고 작은 사건에 비록 '여권 실세 K모씨'라는 이니셜로 처리되기는 했으나 언제나 그의 이름이 거론되곤 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사실상의 정계은퇴를 선언한 2002년 4월18일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의 한 측근이 "권 전 위원은 정치역정을 서서히 정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안다"고 사실상의 정계은퇴 의사를 전했으나 주위에서 보이는 반응은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이다. 냉혹한 권력세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풍속도이다.

***권씨 정계은퇴 결정의 세 가지 이유**

권노갑 전 최고위원은 왜 이렇게 쓸쓸히 정계에서 사라지나.

정가에서는 세 가지 요인을 꼽고 있다.

첫번째, '노무현 시대'의 도래,
두번째, 김대중 대통령의 외면,
세번째, 그를 옥죄어 오는 검찰의 비리의혹 수사이다.

***'노무현 시대'가 열렸다**

첫번째 요인으로 꼽는 '노무현 시대'의 도래와 권노갑씨 퇴진의 상관관계는 무엇인가.

이인제 후보의 '김심 음모론'이 한창이던 지난 10일의 일이다. 노무현 후보측이 '참고 견딘 콩쥐도 있는데 난데없는 팥쥐의 생트집이라니...'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이인제 후보가 김대중 대통령을 직접 거명하며 공세를 펼치고 있다. '김심이 개입한 불공정 경선'이라는 것이다. 심술궂은 '팥쥐'의 생트집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중략)

상황은 (2000년 4월) 총선이 끝난 후 더욱 심각해졌다. 이인제씨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이른바 '영남 포위론'을 거론하면서 '이인제 대세론'을 적극적으로 언론에 퍼뜨리기 시작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동교동이 지지한다' '권고문이 밀고 있다', 심지어는 '자금도 지원한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대세론은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서서히 굳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노무현 후보가 한 일이라곤 권고문을 한 차례 조용히 찾아가 '중립을 지켜달라'고 요구한 것뿐이었다. 그밖에는 당과 대통령을 상대로 한번도 불평을 토로한 일이 없었다. 아무튼 집안일이고, 해보았자 '누워서 침 뱉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왜 한사람은 업고 가면서 다른 한 사람은 걷게 하여, 이렇게 여론을 불리하게 만들어가는가?'라고 항의하고 싶었지만, 그(노무현)는 결국 신의를 지키는 길을 선택했다.

심지어는 그가 '당에서 뛰쳐나가 한나라당의 영남표를 잠식해 주기'를 노골적으로 바라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그는 끝까지 이를 참아내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의 정치는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여론조사의 결과가 정반대로 변해버리자, 이인제 후보는 뜬금없이 청와대를 향해 연일 공세를 퍼부으면서 당을 흔들고 있다. 실로 고생을 참고 견딘 '콩쥐' 앞에서 심술궂은 '팥쥐'가 생트집을 부리고 있는 형국이다.

'권노갑 고문'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통령의 심중'을 떠올린다. 그런 '권 고문'의 '이인제 지원'이 공공연히, 또 수도 없이 언론에 보도될 때에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던 사람이 바로 이인제 후보가 아니었던가? 정작으로 '음모론'이나 '불공정 경선'을 주장해야 할 당사자는 잠자코 있는데, 이제까지 침묵으로 그것을 즐겨온 사람이 느닷없이 '김심'을 공개하라니...

적반하장도 이 정도면 참으로 목불인견이 아닐 수 없다."

이 보도자료는 권노갑과 노무현, 이인제 3자간의 관계가 어떤 것이었는가를 극명히 보여주는 자료라 하겠다. 아울러 이인제 후보가 17일 전격 후보사퇴, '노무현 시대'가 열리면서 권씨의 향후 정치적 위상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를 보여주는 예광탄이기도 했다.

노무현 시대의 개막은 민주당내 권씨의 입지 소멸을 의미한다.

민주당은 18일 당체제를 노무현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구체적 움직임에 착수했다. 노무현 체제로의 전환에 1차적 걸림돌은 권씨의 존재다. 비록 위세가 크게 줄어들었다 하나 그동안 '안티 노' 노선을 고수해온 권씨 및 그로 대표되는 동교동 구파는 어떤 형태로든 정리돼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18일 권씨의 정계 은퇴는 이같은 당내 권력투쟁의 실패에 따른 부득이한 선택이었으리라는 게 민주당 안팎의 지배적 해석이다.

***DJ와의 사이에도 틈새가 벌어졌다?**

두번째 요인은 김대통령과의 관계 악화라는 해석이 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흔히들 권씨를 김대통령의 그림자에 비유해 왔다. 권씨는 김대통령의 고향 후배이자 목포상고 후배다. 지난 63년 김대중 의원의 비서관이 된 이후 그의 장장 40년에 걸친 정치역정을 돌이켜볼 때 틀리지 않은 비유라 하겠다. 권씨는 그동안 '동교동계의 맏형'으로서 김 대통령이 정치적 수난을 겪을 때에도 언제나 김대통령 지근거리에 있어왔다. 그는 96년 자신의 지역구인 목포를 김 대통령 장남 김홍일 의원에게 물려주기도 했다.

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에도 권씨는 권력 음지에서 지내야 했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위상은 대단했다. 정권 출범후 그가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 등록하자 이 대학원에 입학하려는 이들이 홍수를 이룰 지경이었다. 98년 잠시 일본 게이오대학 객원연구원으로 있다가 국내에 복귀하자 공항에는 그를 맞이하려는 인사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99년 신년하례때에는 그의 집에 1천명의 세배객이 몰려들 정도였다. 2000년 4월 총선때에도 권씨는 자금공급책으로서 선거의 중심축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이같은 권씨의 행보는 자연 김 대통령에게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권씨를 둘러싸고 부단히 제기되는 비리의혹설이나 권력암투설은 상당한 정치적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권씨는 견제대상이 됐고, 이 과정에 영원할 것같았던 '주군과 가신' 사이에도 틈새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 여권 관계자는 "2000년 4월 총선과정에 목포 공천 건을 둘러싸고 권노갑 고문과 김홍일 의원간에 상당한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96년 눈물을 머금고 지역구를 김홍일 의원에게 물려주었던 권 고문은 2000년 선거에서는 김 의원이 전국구로 빠지는 대신 그 자리를 자신의 아들에게 공천해주고 싶어했다 한다. 그러나 김의원이 이 제안을 거절하면서 권씨와 DJ 일가 사이에 미묘한 틈새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같은 갈등은 권씨가 이인제 후보를 민주당내 차기 대권주자로 강력 옹호하는 과정에 한층 증폭된 것으로 알려진다. 일설에는 권씨와 이 후보가 차기정권 재창출을 협의하는 과정에 "정권 재창출을 위해선 DJ를 세번은 밟고 올라서야 할 것"이라는 논의가 있었고, 이 사실이 권력 상층부로 알려지면서 권씨와 DJ 일가 사이는 회복불능 상태로 벌어졌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권씨가 정치생명을 걸고 밀었던 이인제 후보가 후보사퇴를 하며 노무현 시대가 열리자, 권씨가 마침내 정계은퇴를 결심하기에 이르렀다는 해석이다.

***정치적 도박에서 실패, 더이상의 보호막 기대하기 힘들어**

세번째 요인은 최근 그를 옥죄어오는 검찰의 비리수사이다.

최근 '최규선 게이트'가 터지면서 김 대통령 3남 김홍걸씨외에 권씨의 연루설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규선 게이트의 핵심인물로 지목되는 최규선이나 김희완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모두가 2000년 그의 특보를 지냈던 측근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8일 최씨의 전 운전기사였던 천호영씨가 공개한 최씨와 손회장간의 녹취록에서는 '권노갑 사위'라는 명사가 등장, 권씨의 연루 의혹을 한층 짙게 하고 있다.

권씨의 정경유착 연루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97년에는 한보철강 정태수 회장으로부터 4억원의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또한 현정부 출범후 정경유착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익명이긴 하나 그의 이름이 나돌았다.

실제로 권씨는 대선이나 총선같은 굵직한 정치행사가 있을 때마다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궂은 일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나는 정거장"이라는 표현을 썼을 정도로, 그의 당내 역할은 분명했다. 이같은 정경유착은 권력의 서슬이 시퍼럴 때에는 큰 잡음없이 지나갈 수 있다. 그러나 정권말기가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쇠고랑을 차기 십상이다.

특히 그를 보호해줄 보호막이 없다면 사정은 더욱 급박해진다. 그런 면에서 정치적 도박에서 실패한 권씨에게는 더이상 보호막이 없다 할 것이다.

이런저런 복합적 이유는 권씨는 사무실을 폐쇄하고 외유에 오르기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최측근인 이훈평 의원은 18일 "아직 권 고문의 정계은퇴를 거론할 때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권씨는 이미 지는 태양이라는 게 정가의 지배적 평가다.

권씨의 퇴장, 이는 한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또하나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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