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朴昇.66) 중앙대교수 겸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이 빠르면 내주중 확정될 것으로 알려진 차기 한국은행 총재 후보로 유력시되고 있다.
박교수와 같은 지역 출신인 진념 재경부장관, 전윤철 청와대 비서실장, 전철환 한은총재 등이 그를 강력추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은과 경제학계 일각에서는 박교수의 한은총재 자격 여부를 검증해야 한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한은 총재란 단순한 하나의 '자리'가 아니라, 금융선진국인 미국에서처럼 한 나라의 경제정책을 총괄할 '경제대통령'이라는 측면에서 철저한 사전검증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정치대통령'을 뽑는 데에는 온 나라가 떠들썩하나 정작 장래의 경제대통령을 뽑는 일은 소홀히 하는 전(前)근대적 관행을 타파할 때에만 한국경제의 한 단계 질적 도약이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한은총재를 경제대통령으로 인식하고 있는가부터 짚어보아야 할 대목이나, 이런 문제 제기가 시작됐다는 사실부터가 의미있는 변화라 할 수 있다.
***'할 말을 하는 직선적 논객'**
박승 교수는 '할 말을 하는 직선적 논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신문 등에 칼럼을 쓰면서 정부 등의 실정(失政)을 거침없이 비판하곤 했기 때문이다.
박교수의 한은 재직시절(61~76년) 함께 재직했던 한은 고위관계자는 "박교수는 앞뒤 재지 않는 직선적 스타일"이라며 "박교수는 한은 재직시절 이론보다는 실물경제에 관심이 많았던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교수가 한은을 떠난 뒤 80년대말 노태우정부의 초대 경제수석을 비롯해 건설부장관 등을 맡았던 것도 이같은 실물경제에 대한 높은 관심의 결과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박교수는 한은을 떠난 뒤에도 '한은맨'의 입장을 고수했다.
지난 95년 2월과 97년 7월 두차례 한은은 재정경제원과 한은법 개정 문제를 놓고 격돌하며, 한은 입장을 지지하는 교수 등 경제전문가들의 집단성명을 발표했다.
이 때에도 박승 교수는 성명에 지지서명을 했다. 당시 박교수가 원로급 교수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결단'이었을 것으로 한은 관계자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2백만호 아파트 건설'의 주역**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은 안팎의 일각에서는 박승 교수가 과연 차기 한은총재로서 적격자인가에 대해선 검증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박교수가 비록 한은 출신으로 한은 입장에서 보면 굳이 거부할 이유는 없으나, '정책적 검증'은 별개의 문제라는 이유에서다.
정책 검증이라는 측면에서 현재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대목은 박교수의 지난 80년대말 노태우정부 시절에 입각해 행한 일련의 부동산 정책이다.
박교수는 88년초 노정부 출범직후 청와대 경제수석을 거쳐 그해말 20대 건설부장관을 맡아 다음해까지 재직했다.
이때 그가 주도적으로 관여한 것이 훗날 노정부의 최대 경제 실정(失政)으로 일컬어지는 이른바 '2백만호 아파트 건설사업'이다. 박교수는 당시 '분양가 자율화'를 주장하는 등 부동산 경기 부양에 깊게 관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기부양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2백만호 아파트 건설은 당시 단기적인 수치상의 성장률을 높이는 효과를 거두기는 했으나, 과도한 '부동산 거품'을 초래함으로써 90년대 들어 한국경제가 내리막길을 걷다가 끝내는 97년 IMF사태를 겪게 만든 근원을 제공한 대표적 경제 실정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2백만호 아파트 건설은 지금 돌이켜 생각하더라도 정치논리에 휘둘려 경제를 망친 악몽같은 정책적 실패였다"며 "당시 이 정책의 일선 책임자였던 박교수는 '실패한 관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은의 한 관계자도 "한은법에도 규정돼 있듯 한은 총재는 한마디로 물가를 잡는 '인플레이션 파이터(inflation fighter)'여야 한다"며 "과거에 거품을 만들었던 분이 한은 총재로 온다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고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는 "거품을 만들면서라도 성장률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라면 올해에도 10%대 성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며 "그러나 한은이 맡은 역할은 그런 게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경제팀의 특정지역 인사편중도 문제**
일각에서는 십수년전 경제 실정을 과도하게 문제삼는 것은 지나치지 않느냐는 반론도 있다.
'당시 자리'가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을뿐, 박교수가 그후 보여준 일련의 태도는 '반(反)거품론자'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는 반론이다.
이같은 거품 논쟁의 옳고그름을 떠나, 또하나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것은 '특정지역 인사 편중론'이다.
박승 교수는 전북 김제 출신으로, 전북 익산 출신인 전철환 현 한은총재와 중학교 동창이다.
문제는 이번에 박교수를 차기 한은총재로 적극 추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을 비롯해 주요 경제부처의 수장이 예외없이 특정지역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우선 진념 부총리는 전북 부안 출신으로 전주고를 나왔다.
장승우 기획예산처장관은 광주 출신이다.(장장관은 그러나 고등학교는 경기고를 나왔다)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 역시 전북 김제 출신으로 김제고를 나왔다.
손영래 국세청장 역시 전남 보성 출신에다가 광주고를 나왔다.
여기에다가 김대중대통령 지근거리에서 경제정책을 총괄조정하고 있는 전윤철 청와대 비서실장 역시 전남 목포 출신이다.(고등학교는 서울고를 나왔다)
한마디로 말해, 핵심 경제부처 수장은 특정지역 출신이 싹쓸이하고 있다고 해도 딱이 변명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같은 현상은 김대통령 집권 중반이래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경제팀의 팀웍'을 강조하다보니 그렇게 된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진념 부총리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게 지배적 분석이다.
진부총리가 특정지역 출신을 선호하다 보니, 그 결과가 특정지역 출신의 경제팀 싹쓸이로 결론났다는 비판이다.
진부총리와 전윤철 비서실장 등이 박교수를 한은 차기총재로 강력 추천하고 있다는 대목이 최근 들어 도리어 박교수에게 불리한 악재로 작용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런 싹쓸이 현상에 대한 세간의 비판여론 때문이다.
***1년짜리 한은 총재가 돼서는 곤란**
차기 총재와 관련, 요즘 한은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차기 총재가 '1년짜리 단임 총재'가 돼서는 곤란하다는 우려이다.
한은 관계자는 "박교수의 능력 여부를 떠나 박교수가 차기 총재로 올 때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특정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기정권이 들어서면서 4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하차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은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전철환 총재처럼 집권세력의 기간내에 임기가 다해 임기를 채운 총재는 있으나 정권이 바뀌면서 남은 임기를 채운 한은총재는 단 한명도 없다"며 "특정지역 출신이 총재가 되면 내년초 정권교체후 중도하차해야 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정권교체후에도 임기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한은 안팎에서 신망이 높으면서도 특정지역 출신이 아닌 분이 차기총재가 돼야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또 "한은과 재경부의 역(力)관계를 고려하더라도 한은 차기총재를 재경부장관이 강력추천하는 모양새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지역성 및 거품 논란에서 자유로운 제3의 인물이 오기를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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