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부쩍 '부동산-재벌 시스템'에 경도되는 느낌이다. '부동산-재벌 시스템'은 시효가 다 됐을 뿐 아니라 폐해가 너무 극심하다. 문재인 정부는 기존의 '부동산-재벌 시스템'과 ‘성장신화’가 파산했음을 인정하며, '부동산-재벌 시스템'을 대체할 체제의 마련에 많은 고통과 시간이 소요되지만, 대한민국이 지속가능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선 다른 방법이 없음을 취임 직후 주권자들에게 호소하고 설명해야 했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재벌 시스템'이 아닌 ‘시장생태계 복원 및 부동산공화국 혁파’가 대한민국의 신성장엔진이며, 성장이 아닌 분배와 복지가 새시대의 패러다임이라고 주권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천명했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절충과 미봉에 의존하다보니 성장과 투자와 고용 같은 기존의 지표에 강박적으로 매달리게 되고, 그 결과 감옥에 있어야 할 삼성 이재용이 버젓이 청와대를 활보하고, 예타면제를 통한 토건 SOC투자에 목을 매는 사태가 도래 중이다. 미디어들의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을 제외한 각 지역의 23개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해 곧바로 SOC 사업이 실시되게끔 조치했다고 하는데, 이들 사업의 총사업비는 24조1000억 원 규모며, 그 중 20조 원 안팎이 SOC사업이다.
문재인 정부의 예타면제를 통한 토건 SOC 투자에 대해서는 참여연대가 적절히 비판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이미 2016년 한국의 건설투자 비중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5%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0%에 비해 상당히 높은 반면, 경기 침체와 자동차, 유통 등 주요 산업의 구조 조정으로 인해 저소득층의 실업과 빈곤 등 경제적 어려움은 커지고 있다"며 "토목·건설사업 보다는 사회복지 SOC사업에 정부가 과감히 재정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참여연대는 "복지재정을 과감하게 확대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재정 지출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일자리와 저소득층의 사회안전망을 확보하는 과감한 경기부양 정책을 펼쳐야 할 시점에서, 묻지마식 토건 재정 확대로 경기부양을 추진하겠다는 정부 정책은 수년 뒤 문재인 정부의 실책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질타했다.
문재인 정부는 예타면제를 지렛대로 한 토건 SOC투자를 통해 고용과 성장을 촉진시키려 하는데, 이는 정확히 이명박 정부가 사용했던 방식이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여러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토건이 아니라 복지에 재정을 집중적으로 할당했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그와 함께 부동산공화국을 혁파하기 위한 담대한 도전에 나서야 한다. 부동산공화국이야말로 양극화의 진앙이고, 저출산의 몸통이며, 내수침체의 원흉이고, 혁신경제의 덫이다. 부동산공화국은 공화국 시민으로서의 일체감과 연대감을 산산조각내며, 지대추구 경향을 만연시킨다. 단언컨대 문재인 정부가 만사를 제쳐놓고 가장 먼저 심혈을 기울여야 할 국내 문제는 부동산공화국의 혁파다.
문재인 대통령에 앞서 부동산공화국 혁파를 위해 온몸을 던진 사람이 있었다. 바로 노무현이다.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은 역대 어떤 대통령도 보여주지 못한 철학과 열정과 의지를 가지고 부동산공화국과 정면으로 대결했다. 노무현은 현실이 아닌 역사의 눈으로,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위해 부동산공화국 혁파에 올인했다. 예컨대 2005년 5·4대책에 담긴 보유세 강화안을 보면 지금도 흥분된다. 당시 참여정부는 '03년 실효세율 0.12%에 머물던 보유세를 매년 21%씩 인상해 '08년 0.24%로, '13년 0.5%로, '17년 1.0%로 상향할 원대한 로드맵을 발표했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보유세 강화를 통해 부동산공화국 혁파를 꿈꿨던 노무현의 안목과 포부와 배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가 잘 드러난다. 만약 부동산공화국 혁파에 대한 노무현의 철학과 의지가 다음 정부들에서도 흔들림 없이 계승되었다면 시민들이 근래와 같이 부동산으로 고통받고 절망하는 시간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부동산에 대한 노무현의 철학과 의지가 단절되었다는 것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엄청난 불행이자 너무나 뼈아픈 일이었다.
나는 지금이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평생의 벗인 노무현을 따라 부동산공화국 혁파에 나서길 간절히 바란다. 그 첫걸음은 참여정부의 5·4대책에 필적할만한 보유세 강화 로드맵의 마련일 것이다. 참고로 현재 대한민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고작 0.16%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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