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와 일부 언론이 삼성전자 배상판결을 둘러싸고 격돌 조짐을 보이고 있다.
참여연대는 일부 언론의 보도 이면에 삼성전자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어 해당 언론사들과 한차례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참여연대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 기자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재계가 삼성전자 주주대표 소송 판결과 관련, 왜곡된 주장을 하고 있으며 일부 언론이 이러한 논리를 그대로 설파하고 있다”고 공개리에 언론의 보도태도를 문제 삼았다.
삼성전자 소액주주운동을 이끌어 왔던 장하성 교수(고려대 경영학과. 전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 위원장)는 특히 지난 3일자 중앙일보에 게재된 강위석 월간 에머지 새천년 편집인의 글을 예로 들며 “최근 중앙일보, 매일경제신문 등 일부 언론이 삼성전자 배상판결을 왜곡, 전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교수는 “이번 판결과 같이 이익이 대립하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 한쪽 주장만 일방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언론 폭력”이라며 “특히 중앙일보와 매일경제신문의 경우 참여연대 측에서 반론을 실어줄 것을 요구했는데도 거절했다”고 말했다.
장교수에 따르면 매일경제신문측은 참여연대에 “칼럼란이 한 면밖에 없고 다음주까지 꽉 차 있다”는 지면 부족을 이유로 반론을 실어달라는 참여연대쪽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다. 매경은 또 “외부기고에 대해 반론을 일일이 싣지 않는다”고 밝혔다고 장교수는 덧붙였다.
장교수는 또한 중앙일보에도 참여연대 입장을 대변해 김기원 방송대 교수가 쓴 반론을 보냈으나 “외부 기고 칼럼에 대해 반론 기고를 받을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싣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같은 중앙일보 태도에 대해 “월간 에머지 새천년은 중앙일보 계열의 월간지이고 강위석씨는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라며 “강씨의 글이 외부 기고 칼럼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그후 김교수의 글은 싣기 곤란하니 다른 사람의 글을 보내주면 게재해주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고 장교수는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해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반론을 싣지 않으려고 시간을 끄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장교수는 또 “언론의 일방적 보도 뒤에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고 주장했다.
그는 “며칠 전 모신문사 경제부장이 ‘한 대학교수가 삼성 판결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보내왔는데 이를 싣지 않자 삼성측에서 왜 글을 싣지 않느냐고 추궁하는 전화가 왔다’고 연락해왔다”며 “그 부장이 참여연대에서 반론을 쓰면 함께 실을 생각이라며 기고를 부탁하길래 반론을 쓸 생각도 없고 그 교수의 글도 싣지 말라고 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참여연대가 문제삼은 컬럼 가운데 대표격인 강위석 편집인의 글 전문이다.
***중앙시론-은밀한 反市場 혁명(2002.1.3 중앙일보)**
姜偉錫 월간 에머지 새천년 편집인
지난해 9월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빌딩 폭파와, 12월27일 한국 수원법정의 삼성전자 전.현직 임원 9명에 대한 9백77억원 배상판결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고 나는 판단한다. 둘 다 시장경제와 자유주의의 우등생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침공.파괴였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나 크게 다른 점도 있다. 미국쪽은 대통령과 사법기관.군인들이 총동원돼 테러범과 그 비호자들을 잡아 정의의 심판대에 세우겠다고 벼르고 있다. 한국의 법정은 이와는 반대 방향을 선택했다. 위에서 말한 판결에 이른 방향 말이다.
이 판결을 계기로 한국에서는 법원에 의한 反기업주의적 ‘재판경제’ 시대가 열렸다. 은밀하게 반시장 혁명이 완성된 것이다. 이런 사후적 재판경제는 스탈린의 사전적 계획경제에 대칭될 만하다. 만일 이 방향으로 내처 간다면 궁긍적으로 한국에서 자유시장 제도와 시장의 자생적 질서는 질식에 이를 것이다.
이 판결에는 9백77억원의 배상이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지켜야 하는 이사로서의 임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점이 인정돼’ 내려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재판은 주인(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지키는 경영 책임, 즉 회사와 주주의 이익 지키기라는 시장 활동의 승패를 문제삼은 민사재판이었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말이 있다. 한 전쟁의 승패는 여러 전쟁의 승패의 합산이다. 한 나라의 존망은 여러 전쟁의 승패의 합산이다. 경영의 승패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그 장래는 모르나 적어도 지금은 경영에서 최고의 승리를 거두고 있는 회사다.
이 재판이 판결한 이천전기(주) 인수에 관련된 투자실패는 한 전투의 패배에 불과하다. 그 패배를 현재적 및 잠재적 주주들의 주식시장은 철저하게 주가에 반영하고 있다. 이른바 효율시장 이론에 의하면 노태우 대통령에게 준 헌금도, 삼성종합화학(주) 주식의 처분에 따른 삼성전자의 假定된 손실도 주식시장은 모두 채점에 넣어 이 회사의 주가가 형성됐다고 본다.
그 반영 결과인 삼성전자의 주가는 시장에서 가장 비싼 주식에 속한다. 주된 생산품인 반도체 가격이 10분의 1로 떨어졌음에도 말이다. 이것은 이 재판의 판결과는 반대로 이 회사의 이사들이 주인의 이익을 지키는 임무를 제대로가 아니라 그 이상으로 이행했음을 증명한다. 주가 이외에 회사 경영의 승패를 보여주는 다른 눈금은 없다. 높은 주가는 주인인 주주가 경영자에게 주는 우등상장이다.
이런 반증에 대항하려고 참여연대쪽은 “이번 판결은 경영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 아니라 경영의사 결정과정의 부적법성과 불충분성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다른 주주가 시장을 통해 이 회사 경영진에게 수여한 상장을 찢으려고 하는 것이다. 경영 의사결정 과정의 부적법성이란 것은 그것이 형사상의 범죄가 아닌 한 부실한 회사만을 대상으로 삼아야 말이라도 된다.
회사의 경영체제나 의사결정 과정은 회사마다 다르고 나라마다 다르다. 사업 분야별로 전문 담당이사가 있을 수도 있고 그 밑에 전문부서도 있을 수 있다. 이사회는 이런 전문부서의 성실성과 전문성을 철저히 신뢰할 수 있다. 좋은 조직일수록 그렇다. 그리고 이사회 상정에 앞서 안건의 토의와 처리 과정을 미리 잘 알고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이사회의 공식적 처리 과정은 아주 간단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이사들에게 경영책임을 묻는 것은 임진왜란때 충무공을 감옥에 집어넣은 것과 비슷하다. 경영상의 의사결정 과정만을 흠잡아 거액을 배상시키는 것은 최우등생에게 공부하는 방법을 흠잡아 낙제를 주고 거기다가 체벌을 주는 것과 똑같다. 아니면 교활한 순억지다.
경영에 관한 재판권은 그것이 범죄가 아닌 한 시장이 가진다. 법원이 꼭 개입할 처지라면 법원도 시장의 결과를 준용하는 수밖에 없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시장에 관한 일을 시장보다 법률이나 판사의 이성과 양심이 더 잘 판단한다고 믿는 지적 교활과 오만에 대해 상급 재판과 우리나라 시장경제 전체가 어떤 시간을 두고 어떻게 반응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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