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사람이 어쩜 그럴 수 있을까? 돈벌이도 못하고 바쁘긴 엄청 바쁘면서도 입만 열면 '신나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 참여연대의 박원순 사무처장 말이다. 혹시 거짓말 아닐까?
그래서 오늘(1월 3일)의 주제는 시비걸기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더 나아가 존경하는 참여연대 박원순 사무처장(47)에게 그가 삼성에, 부패한 정치인에 그랬듯 사정없이 ‘딴지걸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딴지걸기’를 통해 우리는 그의 치명적인 약점들을 찾아냈다.
우선 그는 실정법(선거법)까지 어겨가며 낙천·낙선운동을 벌인 ‘범법자’다(총선연대 상임집행위원장이었던 그는 지난달 26일 항소심에서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는 자신의 부지런함으로 아랫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교묘한 독재자’다. 참여연대가 한번 물면 놓지 않는 ‘불독’으로 악명을 떨치게 된 것도 그의 ‘똥고집’ 때문이다.
권력과 명예, 게다가 부까지 보장되는 검사와 변호사 자리도 박차고 나올 만큼 지독한 '몽상가'에다 ‘보헤미안’ 기질까지 농후하다. 다들 보수와 안정을 희구하는 21세기 한국에서 '혁명적 개혁'을 이뤄야 한다며 초조해 하는 '혁명가'이기도 하다.
그뿐인가? 국내 제일의 기업인 “삼성이 망할 수 있다”고 말하는 지독한 ‘독설가’다.
***'교묘한 독재자'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실 아래층인 느티나무 카페에 박원순 처장은 약속시간보다 10여분 늦은 10시 40분경에 나타났다. 정관용 에디터는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으로 맞이하며 대뜸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지금 내복 입으셨어요?”
“안 입었어요.”
“환경단체에서 하는 내복입기운동에 동참 안 하십니까?”
박처장은 다소 머쓱해 하며 "원래 잘 안 입어요. 건강하니까 내복 안 입어도 춥지 않아요"라고 대꾸했다.
우리는 이어 불룩한 그의 배낭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양복에 자주색 배낭. 다소 안 어울리는 차림새지만 그는 ‘공식행사가 없으면’ 배낭을 즐겨 맨다. 책도 많이 들어가고 겨울에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가방에 책을 많이 들고 다니는 것이 ‘지나친 욕심 아니냐’, ‘과시용 아니냐’ 등 다소 억지스런 질문에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어 박원순 처장은 자진해서 자신의 ‘초기 치매현상’까지 실토했다.
“인상적으로 본 것은 오래 기억하지만 오늘 내가 누구를 만났더라, 이러면 기억이 안 나거든요. 그래서 연구 끝에 수첩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처럼 바쁜 사람에게 안성맞춤인 한국 리더십 센터에서 제작한 수첩엔 하루하루 해야 할 일/ 약속/ 실제 한 일,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몇 장 뒤적여 보니 거의 매일 6,7개의 약속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기자는 학교 다닐 때 외엔 별로 생각해본 일이 없는 ‘새해 소망’도 끼워져 있었다.
새벽 2-3시에 잠자리에 드는 그는 잠이 늘 부족하다. 모자란 잠은 차 속에서, 심지어 회의 시간에 보충한다. 참여연대 사무처장 7년 만에 반쯤 자면서 회의 내용을 듣는 득음(得音)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부지런함에 대해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몰려 있는 것 같다”며 애써 부정했다.
그러나 박 처장은 피곤한 지도자 유형중 하나인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간사급 사무처장’이라고 인정하는 그는 근면과 성실로 매번 간사들의 기를 죽이는 ‘교묘한 독재자’다.
***‘불독’ 참여연대에 물린 삼성**
이 ‘교묘한 독재자’가 이끄는 참여연대의 별명은 ‘불독’이다. 한번 물면 끝장을 볼 때까지 절대로 놓지 않기 때문이다.
초일류기업 삼성도 '불독' 참여연대에 물려 곤욕을 치르고 있다. 참여연대는 작년 말 소액주주운동의 일환으로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과 이사들을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9백77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4년여를 끌어온 싸움의 1라운드 승리는 참여연대에게 돌아갔다. ‘왜 그렇게 삼성을 못 살게 구느냐’는 질문에 박 처장은 삼성에 대한 ‘충정’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로 가면 삼성도 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우도 망하고 현대도 자동차와 중공업 빼고는 망했습니다. 5년전만 해도 현대가 망하리라고 누가 생각했습니까. 전근대적인 경영형태와 관행들이 자기 살을 갉아먹었기 때문에 망했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자동차의 실패는 삼성도 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그는 진심으로 삼성이 ‘세계 일류’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마치 참여연대와 ‘오기 싸움하듯’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세계 일류 기업답지 않다는 지적이다.
“앞으로도 삼성에 대해서는 소액주주 운동을 계속할 것입니까.”
“참여연대는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합니다.”
정말 그와 참여연대는 징그러울 정도로 ‘똥고집’이다.
***'보헤미안+혁명가' 박원순**
그만큼 그와 참여연대는 닮은꼴이다. 그런데 그가 지난해부터 후임 사무처장을 물색하고 있다. 스스로 “영원한 실무자”라고 말하는 그는 이제 사무처장 자리를 후배에게 물려주고 ‘현업’에 복귀하기를 바란다. 올해 참여연대에 재활용 사업을 하는 대안 사업국이 생겼는데 그 일을 해보고 싶다는 것.
그는 사무처장에서 물러나고 싶은 또 한가지 이유로 자신의 ‘보헤미안’적 기질을 들었다. 그는 결혼생활 이외에는 십여년 넘게 꾸준히 해온 일이 없었다.
정선 등기소장 1년, 사법고시 합격 후 검사 생활 1년, 9년 동안 변호사 일을 하면서도 임헌영, 원경선, 이호웅, 김성동씨 등과 함께 역사문제연구소를 만들었다. 1991년부터 2년간 미국 하버드대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있었다. 그런 그가 7년 동안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해왔으니...
‘보헤미안’ 박원순 처장이 꾸준히 시민운동을 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내면에 흐르는 ‘혁명가’적 기질 때문인 것 같았다. 그는 "나도 한때는 정치를 생각했었다"는 의외의 말을 던졌다. 지난 85년 전직 국회의원 등 고향선배들이 출마를 권유했던 것. 지역주민들한테 때 되면 편지도 보냈다. 그러다 '젊음의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뒀다고. 지금은 정치보다는 시민운동에서 자신이 할일이 훨씬 큰 것 같아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시민운동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고 한다.
그는 미국과 일본을 돌아보며 “나라는 개판이고 사회는 엉망이지만 할 일도, 바뀔 여지도 많아서 한국에서 시민운동을 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꼈다.” 16대 총선에서 낙선운동이 의외의 성과를 거두면서 ‘가능성’과 ‘희망’을 절감한 그는 “지금은 혁명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동시에 그는 자족적인 운동을 넘어서기 위해 어떻게 하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뛰어난 전략가이기도 하다.
우리는 한시간 반가량의 시비걸기를 통해 인간 박원순의 몇 가지 약점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모든 단점들이 지난 7년간 참여연대를 가장 신뢰받는 시민단체로 성장하게 만든 중요한 밑거름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우리의 시비 걸기는 ‘실패’로 끝났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올해 참여연대에서 어떤 사업을 계획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러나 참여연대 1년 사업은 매년 2월말에 있는 총회를 통해 결정된다고 한다. 아직 금년에 있을 지방선거와 대선 전략도 구체화되지 않았다. 확정된 것은 6월 지방선거에 낙선운동은 벌이지 않는다는 사실 뿐.
그밖에 금년 1년의 화두랄까 가장 역점을 둘 일이 뭐냐고 물었지만, "우리가 1년 단위로 사는 사람들도 아니고, 정부기관처럼 신년 역점사업 1, 2, 3.. 해 가며 액자에 걸어두는 사람들이 아니쟎아요"라고 되묻는다.
박 처장은 인터뷰를 시작한지 한 시간 반이 지나자 시계를 보기 시작했다. “저희 대표님이 오기로 되어 있어서...” 오전 8시부터 약속이 있어 늦었다던 그는 그 날도 예외없이 바빴다.
***인터뷰 주요 내용 (진행 : 정관용 정치 에디터)**
프레시안 : 작년 일년 동안 후임 사무처장을 구하려고 하셨다면서요.
박원순 : 맞습니다. 참여연대는 어느 한사람에 의해서 규정되는 조직으로 만들지 말자는 얘기를 해왔거든요. 지금 한 7년 됐으니까 후배들 중에 할 수 있는 사람이 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제가 참여연대를 떠난다는 말은 아니고.
프레시안 : 후임자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게 조직을 위해서 입니까, 본인을 위해서 입니까.
박원순 : 두 가지 다 있겠죠. 저는 실무적인 인간입니다. 그래서 사무처장을 그만두면 일반 평간사를 한다든가(웃음). 아무튼 저는 좀 실무적 일을 해야 되는데 자꾸 리더의 역할을 해야 하니까...그건 좀 싫습니다. 또 참여연대 내에서도 새로운 리더십들이 생겨나고. 조직은 자꾸 젊어질수록 좋습니다.
프레시안 : 통상적인 경우에 조직의 장을 하던 분이 후임자를 정하고 물러서게 되면 오히려 그보다 더 상급기관의 대표 역할을 하던데 오히려 정반대로 말씀하시는군요.
박원순 : 물론 상근하지 않는 상징적인 자리야 맡을 수 있겠죠. 원치 않아도 연배가 있으니까. 오십대 중후반 쯤 되면 공동대표 이런 자리로 갈 수도 있겠죠.
다만 제가 실무적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고 싶다는 거죠. 이번에 참여연대에 재활용 운동을 하는 대안 사업국이 생겼거든요. 누군가 제 역할(사무처장)을 맡아준다면 그 쪽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작년에 일본에 가서 생활협동조합(생협)운동에 굉장히 감명을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생협 운동을 막바로 시작하기는 힘들고 재활용 운동을 국민운동 수준에서 해 보려고 합니다. 일단 금년 내에 서울에 몇 개 모델 점포를 만들 것입니다.
프레시안 :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고 그것을 실현해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실무형이라는 말씀이군요.
***보헤미안 박원순?**
박원순 : 제가 본래 오래 같은 것을 못하는 것 같아요. 결혼생활만 20년 가까이 하지(웃음).
프레시안 : 보헤미안 기질이 있다...
박원순 : 뭐 그런 정도는 아니지만...제가 오래 한 일이 없어요. 등기소장, 검사도 일년씩 했거든요. 사실은 둘다 오래 할 수도 있는 일이잖아요. 변호사도 몇 년 하니까 힘들어지더라구요. 그래서 91년에 외국에 2년정도 유학을 갔다왔죠. 그때가 우리 동기 판사들이 단독 판사를 할 때니까 변호사로서는 가장 황금기라고 볼 수 있거든요. 쉬운 결정은 아니었는데 80년대 후반에 여러 가지 좌절감이 있었습니다. 80년대에 가졌던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나 환상이 무너지는... 유학 갔다와서는 인권운동을 고민했었는데 당시 참여연대를 준비하던 사람들과 만나서 시작하게 됐죠.
이렇게 보면 큰 맥락은 같지만 굉장히 많이 바뀌었죠.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지금 변화가 있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죠.
프레시안 : 앞으로 본인 스스로 인생의 행로에 대해 어떤 구상이 있습니까.
박원순 : 자기 계획대로 되는 것이 있습니까. 물론 자유의지도 있지만 동시에 주변환경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제가 감옥 안 가고 서울대에서 안 짤렸으면 지금 서울지검 공안부장이 돼서 참여연대 동태나 파악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큰길에서는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시민운동 언저리에 있어야 되겠죠. 또 사람이 직장이나 하는 일은 좀 달라져도 꾸준하다, 변하지 않는다는 게 참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우리가 한 십년쯤 지나다 보면 사람이 확확 변하잖아요.
프레시안 : 하는 일은 다소 변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유지하고 싶다는 말씀이시군요.
박원순 : 우리가 사람 얼굴을 보면 느낌이 있잖아요. 정부나 정치권에 간 사람 중에 벌써 태도가 굉장히 변해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거든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다는 거죠.
프레시안 : 개인적으로 시민운동가 중에 정말 정치를 안 할 것 같은 사람을 꼽으라면 박 처장을 꼽겠습니다.
박원순 : 그 신뢰를 한번 배반 해볼까(웃음)
프레시안 : 그러나 이 사회가 정말 달라지려면 정치도 변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지금 한두사람이 정치권에 진출한다고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정치도 한번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습니까.
박원순 : 저는 어떻게 하면 한국사회가 유효하게 바뀔 수 있는가를 고민한다는 측면에서 시민운동이나 정치나 언론이나 다를 게 없고 오히려 경쟁적인 관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정치권은 그런 것을 제대로 못하니까 국민들한테 욕을 얻어먹는 것이고.
***"한때 정치를 생각했었다"**
저는 정치가 더러워서 안간다 이런 생각은 아닙니다. 오히려 신념을 가지고 더러운 진흙바닥으로 간다면 추앙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원칙적으로 정치권으로 가서는 안된다는 생각보다는 시민운동이 현 시기에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또 그래야 하니까.
프레시안 : 정치가 안 좋아서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정치나 시민운동 모두 해야할 일인데 시민운동을 선택하겠다는 말입니까.
박원순 : 그런 셈이죠. 제 고향이 경남 창녕인데, 85년 총선때 전직 국회의원이 몇사람이 출마를 권유한 적 있습니다. 그때 나갔으면 지금 4,5선해서 중견 의원(웃음)..
프레시안 : 그때 어느 당으로 나오라고 했습니까.
박원순 : 뭐 당이야 어느 당이건 간에..거기가 좀 반골 기질이 있거든요. 또 유력한 사람이 별로 없는 지역이라서...
한때 정치도 생각했었습니다. 지역주민들한테 매년 편지도 보낸 적도 있죠. 근데 하다 보니까 젊음의 낭비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지역주민들 관리해야 하잖아요. 서울에 오면 맥주라도 한 박스씩 사들고 인사 가고...지금도 그렇던데, 그것 보다는 지금 하는 일이 훨씬 의미 있고 몰두할 수 있잖아요.
정말 정치인들이 지역주민하고 접촉해 그들의 소망과 원망을 듣고 정책으로 만들어 우리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노력들을 한다면, 국회의원 한 사람이 웬만한 시민단체 하나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잘 못하는지 이해가 안되더라구요.
전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이야기 했었는데 민주노동당도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 사실 정당은 정권을 장악하는 것이 목적 아닙니까. 그런 측면에서 민주노동당은 정당이기를 포기한 것 같습니다.
지난 총선 때 저 썩어빠진 비전 없는 자민련도 80-100석 확보를 목표로 세웠습니다. 민주노동당은 몇 석을 내세웠습니까. 커다란 비전과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과정에 대해 고민했다면 민주노동당이 저렇게 비참하게 참패했겠는지...
프레시안 : 지난번에 권영길 대표와 인터뷰 했을 때 나름대로 단계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고 2016년에는 집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박원순 : 그러나 구체적인 전략은 부족한 것 아닌가요. 저는 불가피하게 현실적 타협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컨대 민주노동당이라는 당명으로는...지금 노동자들 상당수가 중산층화되어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이 노동자들도 다 수용 못한다는 것은 엄연히 드러난 현실 아닙니까.
민주노동당도 일종의 정치운동을 하는 것인데, 저는 자족적인 운동은 운동이 아니라고 보거든요. ‘아, 저 사람 참 좋은 일 한다’는 말 들으려고 운동하는 것 아니잖아요. 오히려 우리 생각에 동조하지 않는 또는 잘 모르는 사람들을 계속 변화시켜 사회전체를 바꿔나가는 것이 운동입니다. 따라서 다수 대중의 소망과 정서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민주노동당이 그런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좀 부족한 것이 아닌가...의석을 하나도 못 가진다는 게.
프레시안 : 아시다시피 우리 정치 풍토와 지역주의적인 선거 행태 등을 봤을 때 진보정당이 의석을 확보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박원순 : 물론 조건이 어렵죠. 제도적 한계도 있고. 앞으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좀 나아지겠지만. 그러나 여건이 좋은 상태에서 저절로 되는 게 무슨 운동입니까. 전 힘들고 절망스러운 상황을 희망으로 바꿔내는 것이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외국의 시민단체들과 비교해봤을 때 한국에서 시민운동을 하는 것은 엄청난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프레시안 : 왜요?
박원순 : 미국이나 일본 지식인들은 절망과 포기 상태입니다. 전 굉장히 깊은 절망을 보고 오히려 행복해졌습니다. 우리는 나라는 개판이고 사회는 엉망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할 일이 많고 많이 바뀔 여지가 많고...신나잖아요, 할 일이 많으니까.
전 한국 사회가 굉장히 역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변화의 동력이 있다는 측면에서 아직은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낙선운동을 할 때도 지역주의 때문에 힘들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70% 이상, 수도권에서는 90% 이상 낙선 운동 대상자를 낙선시켰거든요. 수도권 사람들도 전부 영호남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데도 지역주의를 넘어섰거든요. 이런 것들을 통해 가능성과 희망을 보는 거죠.
***"혁명적 개혁을 꿈꾼다"**
프레시안 : 본인이 혁명가적 기질이 있다, 혹은 남보다 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박원순 : 아유, 저는 변호사인데...변호사가 무슨 혁명을 꿈꾸겠습니까. 그런 초조감은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지금 혁명을, 아니 혁명적 개혁을 요구하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 : 혁명적 개혁을 이뤄야 한다는 초조감?
박원순 : 네. 시민단체가 요구하는 것들을 정부가 하루 아침에 받아들일 거라고 기대할 수는 없지요. 그렇다고 정부가 제시하는 수준의 개혁, 재벌기업 정도의 의식을 가지고 운동하면 안됩니다.
지난번에 이석연 총장(전 경실련 사무총장. 박원순 처장은 작년 9월 ‘시민운동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공개토론회에서 시민운동에 관한 입장 차이로 이석연 총장과 설전을 벌인 바 있다)과 근본적인 입장차이가 그 부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분은 삶의 질을 위해 일하는 것이 시민운동이고 시민운동가는 순교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물론 순교자라는 말은 너무 거창해 밖으로 드러내놓고 이야기 하긴 힘들지만 스스로 그 정도 마음을 가지지 않고 어떻게 이 시대에 운동을 할 수 있습니까.
프레시안 : 그게 혁명가적 기질입니다.
박원순 : 아니, 제 내부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전 거창한 용어나 거대 담론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진보의 깃발 이렇게 나가면 우리 스스로는 굉장히 거창한 것 같지만 사람들은 일단 움추러듭니다. 이걸 풀어서 사람들에게 아주 따뜻한 목소리로 다가가자는 거죠.
프레시안 : 제 식으로 해석하면 혁명가적 기질이 농후하면서 전략전술도 능한(웃음)...
박원순 :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 위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은 전략전술이라기보다 상식입니다. 사회전체를 고민하는 운동하는 사람들의 열정이 바탕이 되어야 하지만 그게 너무 생경하게 드러나면 자족적인 운동에 그치고 맙니다.
프레시안 : 일각에서는 우리 사회가 폐허에서 반세기만에 엄청난 성과를 이뤘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이미 상당한 정도 발전했다, 세계 체제와 맺고 있는 관계만 보더라도 어느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바뀌기 힘든 것 아니냐, 따라서 시민운동의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원순 : IMF, 금융위기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은 60년대 이후 경제개발 양상과 모델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는 것입니다. 경제규모와 사회체제가 커졌는데 그것을 운용하는 시스템과 마인드는 못 따라 잡는 것, 사회 운용의 결핍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봅니다.
인프라는 반드시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운용하는 소프트웨어도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소프트웨어가 부족하지 않았나.. 전 IMF와 같은 위기상황에서 정부나 기업이나 비영리 시민사회나 이런 것에 대한 철저한 고민과 대안이 제시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어느 누구도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전 스스로 제도론자라고 생각합니다. 의식이나 문화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니니까. 결국은 제도를 지렛대 삼아 의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우, 현대도 망했다. 삼성은 건강한가"**
프레시안 : 좀더 구체적인 얘기로 들어가서 삼성하고 오랫동안 싸워왔습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가 세계를 제패하고 우리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기업이다, 이 정도로 이끌어 온 오너시스템을 부정하는 것은 삼성의 뿌리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또 삼성전자의 주주 구성을 보면 이미 70%가 외국자본인데 그 사람들은 이재용씨를 문제삼지 않지 않느냐, 이재용이 후계자가 되는 문제는 그가 이건희의 아들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것보다는 과연 경영을 잘할 수 있느냐 따져야 할 부분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왜 그렇게 삼성을 못살게 구느냐는 거죠.
박원순 : 참여연대가 삼성 못살게 굴어서 못 삽니까 (웃음). 못살게 굴어서 잘 살잖아요. 대우가 망했습니다. 현대도 자동차와 중공업 빼고는 거의 망한 것 아닙니까. 10년전, 5년전만 해도 현대가 망하리라고 누가 생각했습니까. 오히려 삼성보다 더 알찬 기업이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현대와 대우가 왜 무너졌습니까. 전근대적인 경영행태와 관행들이 자기 살을 갉아먹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삼성은 건강합니까. 삼성 자동차의 실패 과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삼성자동차가 3조원의 부채를 짊어졌습니다. 일부를 이건희 회장이 사재를 털어 넣어 갚았지만 상당 부분 채권단 은행으로 넘어가 국민들이 부담해야 합니다.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것이니까. 삼성도 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죠. 지금은 삼성이 잘하는 것 같지만 다양한 통제장치와 견제장치가 작동 안되면 언제든 망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제가 91년에 유럽에 있을 때 이미 그때부터 자동차 시장이 과잉이어서 볼보 공장이 일부 폐쇄되고 합병바람이 일고 있었습니다. 삼성 자동차를 만드는 것에 대해 김철수 상공부 장관 등 실무자들은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삼성의 로비에 누가 당합니까. 결국은 그렇게 반대했던 김철수 장관이 1년 만에 승인해줬어요. 삼성은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판 거죠.
또 3조원의 부채를 짊어졌으면 그 경영자는 책임지고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번 삼성판결도 그걸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투명해라, 그리고 잘못된 결정에 대해 책임져라. 전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시키는 것이야말로 개혁의 요체라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 : 앞으로도 삼성에 대해서는 소액주주 운동을 계속할 것입니까.
박원순 : 참여연대는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갑니다 (웃음).
프레시안 : 성과가 있을 때까지 계속 하겠다.
박원순 : 이미 성과가 있긴 한데....전 삼성이 저렇게 오기 싸움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이 뭐가 두렵습니까.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는데 외국처럼 우리도 정말 투명하게 해보자, 이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프레시안 : 이건희 회장을 만나보셨습니까.
박원순 : 아니요.
프레시안 : 삼성전자 쪽의 어느 분과 만났습니까.
박원순 : 윤종용 대표이사. 그분 말고도 여러 사람을 뵙고 우리 의견을 충분히 전달했습니다.
프레시안 : 대화가 안 됩니까.
박원순 : 아니 대화는 하죠. 아까 오기싸움이라고 표현했는데 개인이나 조직이나 과오가 있으면 솔직하게 인정해야만 미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이 정말 세계 일류답게 잘못에 대해 ‘정말 맞다, 과거 우리 관행이었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개선하겠다’라고 인정할 수도 있을텐데...아쉬워요.
저도 한국사람으로 삼성이 잘 되길 바라고 외국 나가면 백화점 가서 삼성 제품의 가격이 얼마인지 얼마나 팔리는지 유심히 봅니다. 삼성이 잘되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
***"낙선운동 한번 했으면 됐지..."**
프레시안 : 금년의 화두는 무엇입니까.
박원순 : 저는 연간단위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서, 특별히 없습니다. 평소에 해왔던 일들 열심히 꾸준히 하면 되는 것이고, 다만 금년에 선거가 있으니까 고민하고 있는데 아직은 마땅한 계획을 못 찾아내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 당장 지방선거에는 어떻게...
박원순 : 저희들 입장에서 지방선거는 개입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프레시안 : 참여연대는 지방선거에 후보를 내지는 않죠.
박원순 : 그럼요. 저희는 후보를 내는 전술은 안 쓰기로 했습니다.
프레시안 : 낙선운동 계획도 없고.
박원순 : 낙선운동은 한번 했으면 됐지(웃음). 아휴(웃음).
프레시안 : 선거 이외에 금년 참여연대의 역점 사업은 무엇입니까.
박원순 : 저희가 2월말에 총회가 있거든요, 그때 결정됩니다. 지금은 각 부서별로 논의 중입니다. 그리고 길게 보고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시민단체에서 신년사 이런 것 있으면 우스운 것 아닌가요. 중점사업 1,2,3... 이렇게 액자에 걸어 놓을 수도 없고.
저희들이 이미 던진 화두들도 있고 큰 방향은 이미 제시되어 있는 거잖아요. 그 다음에는 실무적이고 구체적인 노력들로 채워지는 것이죠. 작년의 큰 성과로 삼성 소액주주 운동, 부패방지법과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제정됐고 이동통신 요금인하 운동이 있었습니다.
프레시안 : 최근 몇 년 사이에 시민운동에 대한 비판도 제시되고 있습니다. 시민운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볼때 너무 과잉 권력화되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박원순 : 제가 ‘시민운동, 열두가지 오해와 편견'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열 두가지 중 하나가 권력화됐다는 것입니다. 시민운동이 그 정도 권력과 힘을 가지게 됐으니까 자연스러운 견제와 반발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참여연대는 권력이나 돈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눈에 가시죠. 힘깨나 쓰고 돈깨나 있는 사람들 치고 참여연대가 참견 안하는 데가 없잖아요. 당연히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죠.
또 선출되지 않았지만 선출된 권력 이상으로 시민운동이 감시와 견제를 받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작은 실수 하나라도 하면 회생불능입니다. 기관들은 실수한다고 없어지지는 않잖아요. 우리는 없어져요.
프레시안 : 시민단체에 대한 가장 지독한 음해가 민주당의 홍위병이라는 지적입니다. 참여연대 입장에선 DJ가 계속 개혁을 내걸어 왔기 때문에 개혁적 측면에 대해서는 비판적 지지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DJ 정부의 큰 문제라고 할 만한 편중인사나 작년 한해를 휩쓸었던 게이트 사건, 즉 권력형 비리 의혹과 관련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너무 작았던 것 아닙니까.
박원순 : 저희들은 변함없이 했습니다. DJ 정부도 겉으로는 개혁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제대로 안했습니다. 저희는 김대중 정부 백일 평가에서부터 그 부분을 비판해 왔습니다. 언론이 제대로 보도를 안 해서 그렇지.
물론 부분적으로 지지하기도 했지만 특검제 등은 한나라당과 같이 했습니다. 시민단체의 사업기준은 어느 정당이 더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는가이지, 특정 정당이기 때문에 같이 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별히 민주당이 그럴만큼 개혁적인 정당도 아니었고.
권력형 비리 사건에 대해서도 비판했습니다. 사람들이 모르는 거지. 사실 언론에서 보도 안해주면 모르죠. 그래서 요즘엔 우리 스스로의 매체를 갖는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 저희가 너무 시간을 뺏은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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