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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신화의 이면 <4>

"해외취재 10일에 골프장 7번"

국세청의 경기도 이천 세무서는 우리나라의 전체 세무서에서 다섯 번째 안에 들 정도로 세금을 많이 거두고 있는 곳이다. 주위에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초대형 기업들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곳은 국세청장의 측근인사가 나가는 요직으로 알려져 있다.
측근인사가 배치되는 이유는 단지 이곳의 세수가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국세청으로 몰려드는 접대성 민원을 처리해줘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민원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각 정부부처 홍보실의 골프 부킹이다. 이천 주위에 골프장이 운집해 있는 탓이다.
이천 세무서의 한 관계자는 이태 전에 “골프 부킹 부탁할 일이 있으면 출입부처에 복잡하게 부탁하지 말고 바로 나에게 부탁하라”며 “재경부 등 출입처에 부탁해봤자 어차피 우리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 앉아 있으면 기자 누가 얼마나 자주 골프장에 나오는지를 훤히 알 수 있다”며 “어떤 주말에는 한 신문사에서만 11명이 골프부킹 민원을 해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얼마나 골프부킹 민원이 쇄도하던지, 지난해 국세청장은 “골프부킹 민원을 일체 해주지 말라”는 특명을 내리기까지 했다. 언론을 겨냥한 골프부킹 중단 지시였다.

***골프가 취재의 필요수단이기는 하나 ‘공짜 골프’가 문제**

그의 증언에서 엿볼 수 있듯, 골프는 이제 기자사회에서 ‘대중 스포츠’가 되다시피 했다.
언론계에 골프인구가 급증하는 이유는 골프가 술자리보다 건강에도 좋고 취재하기에 용이하며, 술자리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든다는 이유에서다.
한 기자는 “술 한번 마시자던 관행이 이제는 운동 한번 하자며 골프를 치는 것으로 변화되고 있다”며 “골프를 즐기는 정치인이나 관료, 기업인 등을 취재하는데 기자가 골프를 치지 못하면 인간적 교감을 나누거나 취재에 도움을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요컨대 ‘골프는 기자의 필수조건’이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돼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골프는 이너서클의 필수 교양종목이 된지 오래다. 삼성그룹의 경우 90년대초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 드라이브를 걸어 아침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 지시를 내리면서 직원들은 남는 시간에 반드시 골프를 배우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골프를 모르면 안된다는 판단에서였다.

실제로 비즈니스 세계에서 골프는 필수조건이다. 미국 포브스지의 경우 지난해말 “골프는 비즈니스의 가장 훌륭한 파트너”라는 특집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골프의 중요성은 최근 중국 지도부에게까지 인식될 정도다. 중국의 고위층인사는 지난해 골프대학 인가를 내주며 대학 책임자에게 “미국에 건너가 중국유학생들을 만나보니 한국이나 일본 유학생들이 주말에 서양인들과 어울러 골프를 치러가며 두터운 꽌시(關係)를 맺는 반면, 중국유학생들은 골프를 할 줄 몰라 끼리끼리 산이나 호수로 놀러다니고 있더라”며 “대학에서 골프지도자를 많이 키워 앞으로는 중국 유학생들이 모두 골프를 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을 정도이다.

이런 큰 흐름에서 볼 때 기자가 골프를 친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잘못이다. 기자가 비즈니스맨은 아니나, 각종 권력층 인사들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가능한 한 자주 만나 정보를 얻어야 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가 골프를 치는 데 대한 언론계 안팎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취재 목적이든, 취재이외 목적이든 간에 제 돈 내고 골프 치는 기자들이 거의 없는 탓이다. '공짜 골프’가 문제인 것이다.

***해외 취재기간중 7차례나 골프를 치기도**

기업은 출입기자들의 골프부킹 민원을 자사 홍보에 적극 활용하는 편이다.
5대 재벌그룹중 하나인 A그룹 홍보실이 직접 갖고 있는 골프장 회원권은 없다. 홍보실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요일이 되면 출입기자와 계열사 임원간의 주말골프 일정을 짠다. 매주에 한두 팀 골프를 내보낸다. 부킹과 비용은 모두 계열사에서 처리한다. 대신 A그룹 홍보실은 기자들끼리만 가는 골프는 부킹해주지 않는다.

한번은 계열사 사장이 토요일 출입기자들을 골프에 초대한 적이 있었다. 평소 사장을 만나기 어려웠던 탓에 출입기자 20명중 11명이나 참석했다. 계열사 홍보임원은 그린피와 점심식사에 2백만원정도 지출했다.
계열사 홍보임원은 다음주 구조조정본부 부사장으로부터 핀잔을 받았다. “사장이 골프초대를 했으면 일부 기자라도 2차 술자리에 데리고 가야지 식사만 하고 끝내면 어쩌느냐”는 것이었다. 골프를 쳤던 한 기자가 기자실에서 불평했던 것이 부사장 귀에 전달된 것이다. 이 임원은 한 달 뒤 그룹출입기자 3명과 다시 골프 모임을 가지고 자신의 ‘실수’를 만회했다. 비용도 꽤 들어갔다.

정부부처 공보관들의 골머리 아픈 주요업무중 하나가 출입기자들의 골프부킹 민원해결이다. 골프장 회원권을 갖고 있지 않으니 산하단체나 아는 기업에게 부탁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B관공서의 공보관은 매주 3,4건의 출입기자 골프부킹 요청을 받아 산하단체에 보낸다. 이는 출입 언론사의 기자들끼리만 나가는 것이다.
티업 시간이 토요일 오전이어서 부킹이 비교적 쉽고 그린피도 기자들이 스스로 부담해 공보관으로서는 그리 부담이 되지 않는 편이다.
산하단체는 사장의 회원권과는 별도로 홍보실에 부처 출입기자용 회원권을 따로 갖고 있으며, 필요하면 거래업체의 회원권도 빌려 이용한다.

공보관은 신문의 날이 낀 4월과 어린이날이 있는 5월, 추석이 낀 달에는 “부킹을 못해줘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이런 때에는 토요일이 아니라 일요일 부킹 요청이 들어오기 때문에 겨우 한두 건 정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모언론사 기자는 ‘부장의 요청’이라면서 일요일 오전에 연속으로 세 팀의 부킹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공보관 힘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어서 기획관리실장까지 나서 관련 단체장에게 직접 부탁했고, 산하단체 비서실은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마침 모재벌의 오너가 예정했다가 취소한 시간대에 간신히 부킹해줄 수 있었다. 그 관공서는 모재벌에게 빚을 진 셈이다.

공보관은 그 후 술자리에서 출입기자에게 “제발 일요일 부킹만은 부탁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러자 기자는 “나도 부킹 부탁하기가 싫다”면서 “그러나 한직(閑職)에 있는 선배가 부탁했는데 이를 들어주지 않았다가는 섭섭해할 것 같고 내 맘대로 안 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부장이나 내근부서 선배들의 골프부킹 민원까지 처리해야 하는 말단기자의 어려운 입장을 이해해 달라”는 하소연이었다.

C관공서는 골프장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으나 협의를 거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수도권의 골프장 여러 곳에 직접 부킹을 요구한다. 출입기자들로부터 받은 부킹 요청을 직접 처리하는 6급 직원이 별도로 지정돼 있어, 공보관실은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장회의에서 출입기자의 부킹 건이 가끔 거론되기 때문에 간부들은 이를 모두 알고 있다.

D경제부처의 경우 일년에 한차례 정도 출입기자들과 함께 해외취재를 나간다. 출입기자들과 함께 미국에 국제금융회의 참석차 열흘 일정으로 나갔을 때 일이다. 한 출입 중견기자는 유명한 골프 매니아였다. 평소 기자실에서도 틈만 나면 영어로 된 골프관련 서적을 뒤적일 정도다.
이 기자의 민원은 "최대한 골프를 많이 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공보관은 해외주재 금융기관들을 총동원해 골프접대 일정을 짜도록 했고, 그 결과 이 기자는 열흘 동안의 취재기간중 7번이나 골프장에 나갔다. 매일같이 골프장에서 살다시피 한 것이다. 어떤 때는 공항에서 곧바로 기자단과 별도로 골프장으로 직행할 정도였고, 한번은 골프장에 나갔다가 제 시간에 공항에 도착 안해 기자단 전체가 출발을 못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시간을 내 반드시 골프를 배워두라"**

중앙언론사 정치부 기자들의 경우 1, 2진에 속하는 고참급 기자들은 대개 골프를 칠 줄 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출입기자 현황을 살펴보면 각 언론사는 여당인 민주당에 5∼6명(방송3사의 경우 카메라기자 포함 8∼10명), 야당인 한나라당에 3∼5명 정도의 취재기자를 내보내고 있다. 각 당별로 중앙언론사 기자만 1백여명 이상이 출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자들중 골프를 칠 줄 아는 골퍼의 비중은 30% 정도이나 지속적으로 골퍼가 늘어나는 추세다. 선배들도 후배들에게 “머리를 얹어줄 테니(처음으로 골프장에 나가는 것을 이렇게 부른다) 시간을 내 골프를 배워두라”는 조언을 하고 있다.

기자들이 골프를 치는 날은 신문사의 경우 대개 쉬는 날인 토요일로 제한되는 경우가 많으나 일부 매니아급 기자 골퍼들은 일요일에도 라운딩을 하고 있다. 대부분은 토요일 새벽 일출시간을 이용해 골프를 치는 경우가 많으며 4∼5시간 골프를 친 후 취재원과 사우나를 하고 식사자리를 갖거나 간단히 낮술을 마신다. 경비는 일반적 경우 1인당 15∼20만원 정도이나, 술자리가 벌어질 경우에는 50만원까지 소요된다.

출입기자들을 위해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별도로 일주일에 한두 라운드 정도(라운드당 참여인원은 4명)를 당 차원이나 의원 개인자격으로 중부CC 등 경기도 인근 골프장에 예약해주고 있다. 이같은 부킹서비스는 기자들만의 골프모임을 위해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정치인들은 메이저급 언론사 1진 기자들만을 별도로 초청하거나 각 사별 기자들과 골프모임을 갖기도 해, 일부 골프매니아 기자들은 거의 매주 필드에 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술이나 골프는 핑계에 불과할 뿐이다"**

기자들의 골프가 문제가 되는 부분은 주로 민원성 청탁을 통한 골프장 부킹과 경비부담 부분이다.
억대에 달하는 회원권을 소지하고 있지 않은 기자들이 기업체나 정치인에 골프장 부킹을 부탁하거나 골프에 들어가는 비용을 내달라고 부탁하는 행위 자체가 상대방에게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골프취재의 가장 문제는 기자들이 무의식적으로 골프접대에 길들여진다는 사실이다.
기자들은 취재 목적에서는 접대골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만나기 어려운 장관 등 고급취재원과 만나기 위해 골프장에 나가는 게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일부 기자들은 취재차원을 벗어나 자신이나 주변 동료 간부들의 민원해결을 위해 골프청탁을 하거나 골프비용을 당연히 취재원들이 지불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동아투위 출신의 한 대선배 언론인은 얼마 전 요즘 후배 언론인들에 대한 불만을 이렇게 토로했다.

“요즘 후배들을 만나보면 골프 접대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놀랍다.
고급 정보를 접하려면 골프가 필수불가결하다는 주장들을 펴고 있으나 과연 골프장에 나가야만 취재가 가능한가. 오히려 골프장에서 농도가 짙어진 친밀한 사적 관계가 기자가 써야 할 것을 못 쓰게 막는 ‘자기 사전검열’ 기능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술 한 방울 입에 못대지만 요정정치가 풍미하던 60, 70년대 정치권 취재를 아무런 불편 없이 할 수 있었다. 술이나 골프는 한낱 핑계에 불과할 뿐이다.”


기자사회 내에서도 최근 들어 골프접대 문화에 대한 자정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기자협회 KBS지회(지회장 용태영)는 보도국 기자들을 상대로 접대골프 실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후 ‘접대골프에 대한 우리의 다짐’을 선언했다.
KBS 기자들의 결의문은 “과거 촌지로 얼룩졌던 기자사회의 윤리가 이제는 골프접대로 물들고 있다”며 “한 회 20만원에 이르는 골프접대는 우리가 거절해야 할 과도한 수준의 접대이며 기자들의 부킹청탁은 언론의 힘을 빌려 타인의 권리를 박탈하는 잘못된 행위”라고 밝혔다.

KBS지회의 골프접대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한 기자 2백8명중 골프를 치는 기자는 77명으로 37%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 골프장에 나가는 숫자가 한달에 한두번과 1년에 10회 이내가 각각 36명(17%)과 33명(16%)으로 가장 많았다. 상대방이 비용을 부담하는 ‘접대골프’의 빈도에 대해선 36%(28명)가 10% 미만, 30%(23명)는 10∼50% 정도, 16%(12명)는 50∼80%, 14%(11명)는 거의 다 등으로 응답했다.

접대골프가 보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56%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문제의식은 갖고 있음에도 접대골프를 치고 있는 기자가 많다는 얘기다.

언론계에서는 골프에 대한 논란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선 골프장에서의 취재원과 접촉을 '취재 목적'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취재 목적에 따른 골프장 이용비용을 회사 차원에서 취재비로 지불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언론이 더이상 '공짜'를 바라지 않을 때에만 비로소 '할 말'을 할 수 있는 자격과 여건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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