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민주화 추진에 제동이 걸리고 경제적인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사회적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촛불 혁명의 덕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를 향한 사회적 기대감이 식어가는 분위기다. 정부는 그간 개혁 입법을 거의 한 건도 성사시키지 못했다. 여당에는 개혁 의욕조차 보이지 않는다. 촛불을 통해 현 정부에 기대감을 걸었던 세력들은 이제 청와대와 여당 지지를 접고 있다. 다만 남북관계 정상화를 향한 희망 때문에 비판을 자제한다는 입장이다.
현 정권을 적극 반대한 세력은 박근혜를 지지했던 적폐청산 대상인 수구보수 정치 세력이다. 박근혜와 함께 사라졌어야 할 이들이 이제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수구 세력은 박근혜가 최순실 게이트로 궁지에 몰렸을 때 탄핵에 동조하거나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면죄부를 확보한 뒤, 이제 현 정권의 거듭된 실정에 힘을 얻고 있다. 현 정권이 그들 기사회생의 빌미를 준 것이다.
촛불 뒤 무엇이 달라졌나? 여의도 정치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경제적 불평등도 마찬가지였다. 국내외 경제 사정으로 인해 취업과 실업 문제, 자영업 문제 해결은 더 어려워졌다. 경제문제는 선거에서 가장 큰 이슈다. 경제가 어려우면 여권은 패배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권은 고작 ‘20년은 더 집권해야 한다’는 국민 화를 돋우는 발언이나 내놓는 한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침묵 속에서도 현 정권에 가장 화를 많이 낼 사람들은 누구인가? 촛불 혁명 때 박근혜 때문에 못 살겠다고 거리로 나온 일반 시민들이다. 그들은 촛불 혁명 당시 광화문과 전국 여러 지역의 시위 현장에서 특이한 모습을 보였다. 적지 않은 이들이 초등학생 또는 고교생 자녀와 함께 촛불을 들었다. 부모가 겪고 있는 사회경제적 어려움은 기득권 세력의 책임이라는 점을 자녀에게 보여주려는 듯했다. 더 잘해주지 못하는 결정적 원인이 자신들이 아닌 박근혜 정권에 있음을 자녀들에게 확인시키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일반 시민들은 사회경제정치적 개혁으로 좀 더 나은 삶이 이뤄지길 원하면서 광장에 나왔다. 그러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먹고 사는 문제는 더욱 팍팍해졌다. 적어도 박근혜 정권보다는 나아지리라 기대한 그들이 이제 언제든 다시 광장으로 쏟아져 나올 심리 상태에 처했으리라 여겨진다. 사회 도처에서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하면 엄청난 분노를 수반한 집단행동이 벌어진다. 국민청원홈페이지에 수십만 명이 찬반 의사를 표하는 것은 이 사회가 분노의 출구를 찾고 있다는 또 다른 징후다. 언제 어떻게든 결정적 계기가 주어진다면 폭발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현 정권은 민생 문제 해결을 위해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최저임금 인상 등을 추진했지만 그 그늘이 너무 짙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접근 방식은 노동 현장의 차별을 철폐하는 법제화가 아닌 행정 지도 형식이어서 그 범위가 지극히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민간 기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커진 감이 있다.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영세 기업주나 자영업자들의 불만을 가져왔다.
이 가운데 아파트 가격이 폭등했다. 사립 유치원 문제도 터졌다. 이들 난제 해결을 위한 시원한 해법은 여전히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 서민과 중산층을 화나게 만드는 일이 연이어 터진 셈이다. 정부는 해결사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한국 정치 최대의 문제는 대의정치가 제대로 작동치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이 선거 전과 달리 당선 후 공약을 헌신짝처럼 버리듯 태도를 바꾸거나 심지어 유권자를 배신하는데도 현재의 선거제도에는 이를 응징할 장치가 없다. 그래서 촛불이 한참 타오를 때 국민 주권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선거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오늘날 거대 여야 정당은 공통적으로 이를 거부하는 막가파식 정당정치를 자행하고 있다. 그들은 당리당략에 매몰된 추한 모습으로 국민을 능멸하고 있다. 정치를 정상화하자는 선거제도 개혁 요구를 향한 청와대와 여권의 반응은 실망 그 자체다. 촛불의 약속은 잊어버리고 추악한 당리당략에 휘둘리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법부 적폐 청산은 부지하세월이고 기무사 내란 음모 관련 수사는 진전이 없다. 박근혜 정권하에서 부당하게 취해진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 노동운동 문제 등의 해결 조짐도 없다. 촛불로 들어선 정권은 실종 상태다. 광화문과 청와대 앞의 시위와 농성은 이명박근혜 시절처럼 여전히 진행 중이다. 촛불 혁명 주체 세력 일부는 현 정권의 개혁 조치 외면을 정면에서 비판하고 있다. 미투 운동, 성적 소수자 문제 등으로 인한 사회적 열기가 더욱 뜨거워지는가 하면, 혼인율과 출산율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 하락세도 가속화하고 있다. 태극기 부대는 여전히 박근혜 석방을 외친다.
이 사회는 어디로 갈 것인가. 단정적인 전망이나 예측은 금물이다. 그러나 가까운 과거와 현재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면 미래의 윤곽은 나온다. 우리 현대사는 역동적이다. 1960년 4.19 혁명과 80년 광주민주화 운동, 87년 민주항쟁, 2016년 촛불혁명이 발생했다. 누구도 예측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발생했다. 지배 계급, 지식인 계층 등이 무사안일했거나 민중의 힘을 경시한 결과다.
촛불 혁명으로 들어선 현 정권은 자신이 혁명 정권이라는 점을 외면했다. 이에 시민 사회의 기대는 철저히 배신당하고 있다. 현 정권은 촛불을 까맣게 잊고 선거 제도 개혁에 반대하는 수구 세력과 야합하는 행태를 서슴지 않는다. 거대 여야정당이 간판만 달랐지 그 체질은 유사하지 않느냐는 의구심이 입증되는 참혹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거듭된 시민의 분노와 피 흘린 투쟁을 통해 혁명에 준하는 격렬한 사회 변동 과정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그러나 한 번도 시민 사회가 정치의 주체가 되어 새로운 시대를 열지는 못했다. 혁명 이후 기득권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고 시민 사회는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 계속되었다. 촛불 혁명 이후에도 그랬다. 시민 사회는 스스로 촛불 혁명 지도부를 공중분해하듯 해체하고 현 정권에 모든 것을 일임했다. 그러나 결국 박근혜를 탄핵한 시민이 또 배신당한 모습이다.
겉으로 볼 때 우리 사회에 잔존했던 군사 독재의 독기 어린 제도나 잔재는 거의 청산되었다. 하지만 완결되지는 않았다. 정치적 민주화와 제도화 추진에 대한 시민 사회의 열망은 여전히 뜨거운데, 이는 온전한 민주화를 위한 법치가 아직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제도화란 규제가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곧 자유 경쟁의 공간이 넓어짐을 의미한다. 제도가 민주화된다 해서 일반 사회 전체가 곧바로 민주화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걸린다. 각종 법을 만들어 독재와 전횡을 막는다 해서 사회가 바로 맑아지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법으로 일일이 규제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데, 이런 곳에서 꼼수와 갑질 등이 벌어진다.
임기제로 고위직을 선출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돈 없으면 정치를 할 수 없다. 한정된 이 중 당선된 정치인이 공약을 지키는 모습은 눈 씻고 찾아보기 어렵다. 촛불 혁명 덕분에 정권을 잡은 이들이 촛불을 까맣게 잊는 모습을 모두가 보아야 한다. 집권 여당은 개혁 입법엔 입을 다문 지 오래다. 자영업자, 노동자보다 재벌을 더 챙긴다. 사법 적폐, 행정 적폐, 국정원 적폐, 군인 적폐 청산은 요원하다. 이미 물 건너 간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은 나날이 커가고 있다.
탄핵당한 대통령을 받들던 정당과 정치인들은 촛불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무기력을 빌미로 기사회생의 기회를 찾아 대정부 투쟁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보수 정치를 욕하던 이른바 진보 정치 집단이 보수 정치 집단 못지않은 잘못된 정치를 하면서 악취가 진동한다. 욕했던 상대를 닮아가는 모습이 하루가 다르게 심화된다.
특히 정권이 바뀌었어도 범죄를 저지른 재벌이나 고위직의 과오를 봐주는 잘못된 관행이 바뀌지 않아 법치가 무색하다. 재벌은 거개가 실형을 살지 않고 집행유예로 형을 마치고, 장차관급 거물은 위장전입이나 탈세 현실은 TV로 만천하에 공개되는데도 대통령의 신임장을 받고 귀하신 몸이 되는 일이 21세기 한국에서는 흔한 일이다. 이러니 법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나 감정은 대단히 부정적이다. 바닥이다. 고교생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10억 원을 벌 수 있다면 몇 년 감옥 가는 것을 감수 하겠다’는 견해가 상당수로 나오는 실정이다.
이런 설익은 민주 체제에서 양극화와 노동 현장의 불평등이 심화하다 보니, 법에 저촉되지 않거나 법의 제재를 피할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상이 심화된다. 적잖은 이들이 개인적 이익을 취하는데 파렴치하다. 준법과 도덕, 그리고 수치심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은 탓도 있다. 그 뿌리가 깊다 해도 현실 정치는 너무 막나가고 있다.
사회가 사막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청년 세대는 결혼과 자녀 생산을 기피한다. 가족이 해체되고 있다. 너와 내가 더불어 살면서 서로를 배려하는 훈훈한 사회와는 거리가 자꾸 멀어진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나날이 심화된다. 대자본이 골목 상권까지 차지하고, 비정규직은 더 늘어나고 있다. 자영업에 많은 사람이 뛰어들지만 결국 자본의 논리에 밀려 망해서 빈털터리가 되고 만다. 정치가 자본과 결탁했거나 자본의 손아귀에 정치가 놀아나는 결과다. 정치적인 민주화와 경제적인 평등이 동시에 이뤄졌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 같아 안타깝다.
사실 남북 관계도 아슬아슬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불안한 정치 철학, 방법론 때문에 매우 불안하다. 트럼프는 대북 대화를 강조하면서도 대북 제재는 강화하는 모습을 멈추지 않는다. 트럼프는 여러 국제 협정, 협약을 파기 또는 외면하고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보듯 미소 속에 비수를 감추고 있다. 그러면서 러시아 스캔들이나 혼외정사 문제 등으로 정치적 궁지에 몰리는 형국이다. 그는 언제 대북 태도를 바꿀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한에게 항복과 같은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 행정부는 북한을 대등한 유엔회원국으로 인정하는 협상 태도가 아닌, 전승국과 같은 오만방자한 태도를 취한다. 동시에 남한에는 비핵화와 남북관계가 같이 가야 한다는 식으로 경고를 발하면서 남남 갈등을 부추기는 심리전을 전개하고 주한미군 주둔비를 대폭 부담하기를 요구한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은 그 폭이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모든 경우에 대비하는 치밀한 전략 전술이 필요한 때다. 어쨌든 지금까지 현 정권이 취한 대북 접근책의 큰 가닥은 일단 박수갈채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현 정권은 대북 정책을 제외한 다른 정치 분야에서 대오 각성해야 한다. 현재의 태도를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우선 국민 주권을 과학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제도인 선거 제도 합리화 작업에 적극 나서야 한다. 집권 여당이 적폐청산 대상인 수구 정당과 손을 맞잡고 야합하는 모습을 보인데 대해 국민 앞에 석고 대죄해야 마땅하다. 당리당략만이 춤을 추는 삼류 정치를 당장 청산해야 한다. 국민 주권 정치를 실현하고 노동현장의 불평등, 부정부패, 갑을 관계를 청산할 개혁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현 정권은 국민이 뽑아준 정치 머슴답게 국민을 섬기는 정치를 해야 한다. 그것만이 지금의 난국을 정상화할 유일한 해법이다. 지금은 시간을 끌 때가 아니다. 때를 놓치면 안 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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