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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도와주는 청와대

[기자의 눈] 민주노총이 기득권인가?

1. 민주노총이 더 이상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 민주노총이 더 이상 사회적 약자를 도와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노조를 비판하기 위해 대통령 비서실장이 1번을 선택했다. 이게 어떤 의미일까.

2017년 4월 27일,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는 자유한국당이 제기한 '귀족 노조' 논란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귀족 노조가 얼마나 되겠느냐. (귀족 노조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재벌이 미치는 영향의 새발의 피"라고 했다. 문재인 후보는 "대기업 노조의 행태를 개선해야 하지만, 재벌 개혁과 함께해야 균형이 맞다"면서 "한편으로는 10%밖에 안 되는 노조 조직률을 높여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당시 문재인 후보의 발언은 "청년 일자리 절벽 시대가 된 것은 강성 귀족 노조 때문"(2017년 4월 9일)이라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의 주장과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홍준표 후보는 공공 병원인 진주의료원을 '강성 노조' 프레임을 덧씌워 폐원시킨 당사자다. 어디 홍준표 후보뿐인가.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2015년 9월 2일 "노조가 쇠파이프를 휘두르지 않았더라면 국민 소득 3만 달러가 넘었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이들과 달리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직전까지만 해도 "노조 조직률 제고"나 "산별 교섭 확대"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그때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2015년 노동절 연설이 떠올랐다. 지금도 명연설로 회자되는 오마바의 연설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내 가족의 생계를 보장할 좋은 직업을 원하는가. 누군가 내 뒤를 든든하게 봐주기를 바라는가. 나라면 노조에 가입하겠다." 오바마 연설은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 시민들에게 '노조에 가입해 자신의 권리를 지키시라'고 부추기는 '불온한' 상상으로 이어졌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귀족'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고 했다. "톰 브래디(유명 미식축구 선수)는 노조가 있어서 행복하다. 브래디가 노조가 필요하다면 여러분도 노조가 필요하다"고 했다(당시 톰 브래디는 한화로 76억 원대 연봉을 받고 있었다). "내가 여러 나라를 다녀보니, 노조가 없는 나라에서는 가혹한 착취가 일어나고, 노동자들은 늘 산재를 입고 보호받지 못한다"고 했다.

▲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노동 존중 사회'와 '재벌 개혁'을 공약했다. ⓒ문재인 캠프

문재인 정부 집권 3년차를 앞두고 있지만, 문 대통령에게서 노조 조직률에 대한 언급은 사라졌다. 노동 정책에도 부침이 있었다. 정부는 2019년도 최저임금을 8350원으로 올렸지만,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정기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포함시켜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도로 깎았다. 일부 불안정 노동자에게는 '줬다 뺏는 최저임금'이 된 셈이다. '저녁이 있는 삶'도 줬다 뺏고 있다. 주 52시간제를 도입해 노동 시간을 감축했지만, 자유한국당과 탄력근로제 확대에 합의함으로써 노동 시간 단축 효과를 무력화하려 하고 있다.

탄력근로제는 일부 노동자들의 임금도 줄인다. 탄력근로제 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면 어떤 비정규직 노동자들, 미조직 노동자들은 직격탄을 맞을 것이다. 어떤 에어컨 공장 노동자들은 여름에 52시간 넘게 일하고도 연장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이다. 여름에 바짝 일하고, 비수기에 쉬게 해 6개월 평균 노동 시간 52시간을 맞추어 연장 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약자'를 제대로 대변하는 조직이라면, 이런 정부 정책에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민주노총은 탄력근로제 확대가 가장 열악한 노동자에게 피해를 주는 '노동 개악'이라고 규정했다. 여기에 민주당과 청와대 수뇌부는 짜고 친 듯 같은 주장을 했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민주노총이 들어와서 '탄력근로제'에 대해 논의하라고 요구하는 한편, 아니면 국회에서 관련 법을 강행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밝혔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도 지난 6일 "전교조와 민주노총이 더 이상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민주노총은 이제 상당한 사회적 책임을 나눠야 하는 힘 있는 조직"이라고 거들었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을 틀리다. 민주노총 안에서도 비정규직 노조보다 정규직 노조의 입김이 센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와 같이 물러설 수 없을 만큼 최악의 상황에 내몰릴 때, 울타리가 되어주는 곳도 역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조합이다.

같은 말도 누가, 어떤 맥락에서 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정규직 노조에 양보를 요구받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민주노총을 향해 "더 이상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면, 민주노총은 그 말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같은 말을 한 화자가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면 그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정부가 추진하는 탄력근로제는 재계의 오랜 숙원이었다. 재계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책을 펴면서 거기에 반대하는 노동조합에 '기득권' 딱지를 붙인 셈이 된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탄력 근로제 확대'에 대해 논의할 테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자유한국당과의 공조 속에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면 그만이라는 집권 여당의 태도는 민주노총에게 공평하지 않다. 칼자루는 정부가 쥐고 있다. '민주노총 패싱'을 통해 강행하든지, 민주노총의 양보를 받고 강행하든지 어차피 결론은 같다. '답정너'다.

탄력근로제 확대는 집권 2년 차에 접어들면서 문재인 정부 정책이 조금씩 보수화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문 대통령이 지난 7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일자리 창출'을 당부한 장면은 상징적이다. 문 대통령은 더는 '재벌 개혁'을 말하지 않는다. 청와대와 여당에서 '민주노총'에 대한 날선 목소리가 나오는 시점과 묘하게 겹친다.

민주노총이 진정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기를 바란다면 해법은 어렵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인 '노조 조직률 올리기'부터 실천에 옮기면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 중에는 노조에 가입했을 때 얻을 불이익이 두려워해 노조 가입을 꺼리는 사람이 많다. 문 대통령이 사회적 약자들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도록 밀어주면 된다. "나라면 노조에 가입하겠다." 대통령이 나서 한마디만 해도 효과는 다를 것이다. 민주노총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늘어날수록, 민주노총이 사회적 약자를 대변할 가능성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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