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투표장에 나가야 할 4000만 가지 이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투표장에 나가야 할 4000만 가지 이유

[시민정치시평] 나라도 못 바꾸는 일을 해결할 단 하나의 제도

오는 12월 19일 투표해야할 이유는 4000만 유권자의 수만큼이나 많다.

지난 10월 29일 오후 6시경 경기도 파주시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집안에서는 13살 누나와 뇌병변 1급 장애를 갖고 있는 남동생이 나란히 쓰러져 있었다. 누나는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하여 사투를 벌이다 9일 만에 숨졌고, 눈물로 기도하던 부모를 뒤로하고 동생도 며칠 전 누나를 따라갔다. 엄마는 생활비를 벌기위해 일용직으로 일하러 나가야했고, 13살 누나가 중증장애를 가진 동생을 하루 24시간 돌봐왔다고 한다. 이 날도 동생과 함께 먹으려고 음식을 조리하다가 불이 났고, 동생을 데리고 나오려다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남매가 모두 변을 당한 것으로 소방당국은 보고 있다. (<노컷뉴스> 2012. 12. 13)

78세 김순미(가명) 할머니는 폐지를 모아 팔아서 벌어들인 돈과 기초노령연금을 합쳐서 한 달에 22만 원 정도를 손에 쥔다. 생활비의 전부다. 법적으로는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지만 남편과 전처 사이에 낳은 아이들로 이제는 왕래가 없다. 그래도 서운해 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 김 할머니의 낙천적인 성품이 고맙게 느껴지는 것은 최근 들어 부쩍 더 많이 들려오는 가난한 노인들의 자살소식 때문이다. 작년 7월에는 기초보장 수급 탈락 통보를 받은 뒤 70대 노부부가 동반자살을 하였고, 지난 8월에는 사위의 월급이 오르면서 수급자에서 탈락한 70대 할머니가 자식들에게 짐이 되는 것이 미안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민일보 2012. 12. 9)

3년 전 쌍용자동차 공장에서는 노동자 2600여 명이 어느날 갑자기 해고를 당했다. 이렇게 쫓겨나면 가족들과 함께 어떻게 사느냐며 농성을 했는데, 이들은 빨갱이로 몰렸고 경찰특공대가 농성장에 투입되어 살인적인 진압이 벌어졌다. 정신적‧ 육체적 후유증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이런 끔찍한 역사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이후로도 유성기업과 최근의 SJM에 이르기까지 노동권에 대한 침해와 노동자에 대한 폭력은 계속되고 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용역깡패가 동원되었고 공권력은 이를 묵인하는 방식이었다는 점. 며칠 전 유성기업 사태 당시 구사대로 동원되었던 노동자가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자살했다는 소식이 몇 몇 매체를 통해서만 조그맣게 다루어졌다.

아르바이트 경력만 3년째인 기민정(가명, 24세)씨는 여전히 구직 중이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기 위해서 취직시험 준비를 해야 하지만 들어앉아서 공부만 할 형편이 아니라서 아르바이트를 계속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여덟 번이나 취직 문턱까지 갔다가 떨어졌다. 자격증도 더 따고 싶고 취업준비를 집중적으로 하면 붙을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이렇게 나이를 먹다보면 정규직 취업은 영영 못해보는 것 아닌가 불안하다. 주변에 취업 비슷한 걸 한 친구들이 있지만 이들도 대부분 계약직이다. 여기서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것 같으면 그냥 열심히 일해야겠지만, 가타부타 얘기를 해 주는 경우는 드물다. 부모님께 취직했다고 말씀드려도 되는 건지, 취직공부는 그만두어도 괜찮을지 여전히 불안하다. (은수미, <날아라 노동>)

33세 이민규(가명)씨는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교육을 담당하다가 그만두고 나와서 치킨집을 열었다. 다른 사람에게 가게를 열어보라고 권하면서, 본인이 직접 하면 대박 터질 것 같은 생각이 들더란다. 분명히 위치도 잘 골랐는데, 닥치고 보니 모든 게 예상과는 달랐다. 무엇보다, 갑자기 주변에 치킨집이 네 군데나 더 생겼다. 작년에 문 닫고 쉰 날은 딱 닷새뿐이고, 매일 12시간씩 일하지만 월세와 전기료를 제하면 집에 월200만원 가져가기가 어렵다. (<경향신문> 2012. 7. 15)

'가난은 나라도 구하지 못 한다'는 옛말이 이제는 정말 옛말이 된 것은 이제 우리가 먹고 살만한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을 가난으로부터 구하는 일이야말로 나라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모두들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게 제 하기 나름'이라는 교훈으로 찍어 누르기 전에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졌던가? 실패한 사람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안전망은 제대로 깔아놓고 나서 사다리를 기어 올라가라고 하는 건가? 혹시 이런 이야기들이 내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하시는가? 정말 그리 생각하시는가?

위의 이야기들은 단순히 가슴 아픈 이야기, 동정심을 유발하는 이야기로 꺼낸 것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이나 신이 정한 운명에 관한 이야기는 더욱 아니다. 이 이야기들은 모두 정책의 실패, 제도의 실패가 초래한 비극이다. 장애인과 노인에게 필요한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책은 빈 구석이 너무 많다. 현 세대 노인의 경우 국민연금 사각지대가 매우 큰데, 이 분들은 기초노령연금 9만원 가지고는 극빈층을 면하기 어렵다. 빈곤층을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있지만 부양의무자기준을 기계적으로 대입하기 전에 국가가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기로 한 약속이 먼저 지켜져야 한다. 국제적인 경쟁이 심화되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노동자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그렇게 당연한 것이 아니다.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면 청년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생긴다더니, 그동안 고용불안정과 저임금이라는 위험을 노동자들이 오롯이 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청년일자리는 더 생기지 않았다.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걸 알면서도 창업 권하는 사회가 되었는데, 좋은 임금근로 일자리로의 유도가 필요하다.
ⓒ프레시안(최형락)
이런 현실을 바꿔내는데 가장 도움이 되는 단 하나의 제도를 꼽으라고 한다면, 대답은 당연히 '선거제도'이다. 사람을 바꾸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언제라도 부닥칠 수 있는 현실의 위험을 되짚어보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집중적으로 노력 하는 일은 선거가 아니었다면 결단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변화가 도무지 오기는 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지루하고 답답한 과정인 것 같지만, 세상을 바꾸는데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없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서구의 복지국가도 보통선거제도에 기반을 둔 '정치'가 이루어낸 것이다. 투표하지 않으면 정치가들은 우리를 무시한다고 누군가 말씀하셨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