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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서 '가야 허왕후' 띄우기가 우려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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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서 '가야 허왕후' 띄우기가 우려되는 이유

'허왕후 신화'는 인도 민족주의와 어떻게 결합했나

김정숙 영부인이 11월 4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단독으로 인도에 간다. 가장 큰 이벤트는 6일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아요디아에서 열리는 허왕후 기념공원 기공식에 참석해 기념비에 헌화하는 일정이다. 허왕후는 인도 아유타국에서 가야로 건너와 김수로왕의 부인이 됐다는 신화 속 인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인도를 국빈 방문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아요디야에 건립된 '허왕후 기념공원' 확장 및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인도 방문은 모디 총리가 김정숙 영부인에게 착공식 행사 주빈으로 참석해달라고 요청해 성사됐다. 현직 대통령 배우자가 단독으로 외국 방문 일정에 나서는 것은 2002년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의 뉴욕 방문 이후 16년 만이다. 이례적이다.

이번 일정은 문재인 대통령의 가야사 사랑과도 맞물려 눈길을 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9일 인도를 국빈 방문해 두 차례나 '고대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에는 2000년 전 가야를 찾아온 김수로 왕의 왕비 허황옥의 고향 아요디아가 있다"며 "한국의 고대 국가 가야는 인도에서 전파된 불교 문화가 활짝 꽃피운 곳"이라고 말했다.

▲ 김정숙 영부인이 11월 4일부터 3박 4일간 인도를 방문할 예정인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31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에게 선물로 받은 자켓을 입고 있다. ⓒ청와대

'허황후 띄우기'가 우려되는 이유

'허황옥 설화'는 한국과 인도의 외교 무대에서 두 나라를 이어주는 화젯거리로 꼬박꼬박 등장해왔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김수로 왕의 왕비 허왕후가 인도에서 왔다는 설은 역사적 '사실'보다는 '설화'에 가깝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푸른역사 펴냄)의 저자 이광수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는 "기원 후 5세기 이전에 '아요디야'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는 실제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허왕후의 이야기는 1000년에 걸쳐서 김해 김씨, 불교사찰, 양천 허씨, 일부 민족주의자 등에 의해 이야기가 덧대졌다. 허왕후의 오빠 '장유화상'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한반도가 중국을 통하지 않고 불교를 들였다거나, 허왕후의 아들들은 신선이 되고, 딸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국을 건국했다는 이야기가 추가됐다. 이광수 교수는 "허왕후 설화가 민족주의 첨병으로 한국인의 역사 콤플렉스를 건드리면서 일본국을 세운 역사로 뒤바뀐 것"이라고 지적한다.

설화는 설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과 결합될 경우 복잡한 문제를 낳게 된다.

허왕후의 이야기가 인도에 본격적으로 역수출된 것은 2002년 이후다. 김해김씨 가락중앙종친회가 2002년 인도 우타르프라데시 주 아요디야시 사리유 강가에 허왕후 탄생 기념비를 세우기에 이른다. 논란거리는 '허왕후 신화'를 인도의 '힌두교 극우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인도국민당(BJP)도 이용했다는 점이다. 이들이 '위대한 인도 문화'가 변방의 한반도에까지 미쳤다는 점을 선전하면서다.

"인도국민당은 힌두 민족주의 중심의 극우 파쇼적 정치를 표방하는 정당으로 정치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아요디야에 두고 있다. 인도국민당과 그 방계 세력들은 1992년 12월 아요디야에서 '라마야나' 신화에 등장하는 라마 사원을 복원한다면서 기존의 이슬람 사원을 파괴하고 232명의 인명 살상을 초래했다. (중략)

이러한 양상은 지금도―특히 총선과 관련된 시기에 집중적으로― 끊이지 않고 있다. 그들은 외국인을 매우 혐오하는데, 특히 이슬람과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심하다. 그들 중 심한 수구 파시스트들은 수녀 강간, 기독교인 살해, 무슬림 학살의 배후 세력이라는 의심까지 받고 있다. 이 같은 인도의 극우 패권주의 세력들에게 한국의 '아요디야에서 온 공주 허왕후'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정권 정당성의 근거가 될 가능성마저 있다." (<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 171쪽)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초인 2017년 6월 영호남 공동 '가야사 복원'을 주문했고, 가야사 연구 복원 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 과제에 포함됐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허황옥을 인도에 실재했던 가야의 왕비로 언급하고, 김정숙 영부인이 아요디야에 건립된 '허왕후 기념공원'에 방문하는 것은 '인도에서 온 허왕후'를 역사로서 기정사실로 하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실제로 경남 김해시는 2000년 전 허왕후가 인도에서 배를 타고 처음 도착지로 추정되는 '망산도(望山島)' 발굴 조사에 착수한다고 지난 9월 밝혔다. 설화가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은 왜 위험한가. 이광수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관련 기사 : 文대통령, 갑자기 '가야사 복원' 지시…왜?, 文대통령의 '가야사' 발언이 반가운 이유)

"설화가 역사적 실체를 가질 때 그것은 역사를 특정한 방향으로 추동해나가는 힘을 확보하게 된다. (중략) 허왕후 신화가 한국사와 사회에 직접 끼치는 폐해는 나치의 아리야인 신화만큼 크지는 않겠지만, 무시하고 넘어갈 수준도 아니다. 사이비 역사학 하는 한국 사람들의 위대한 인도, 세계 문명의 요람 인도라는 주장을 인도에서 역사적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로 악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한 주의가 필요한 주장이다." (<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 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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