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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대통령 논쟁보다 더 급한 것은…"

[시민정치시평] '여성 대통령' 이전에 성평등을 말하라!

'여성' 대통령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전략적 공천지역의 여성후보 배치나 여성후보 의무할당 비율을 두고 역차별이라거나 정당은 여성운동을 하는 곳이 아니라거나 하는 서슬 퍼랬던 지난 총선의 기억이 새로운데, 각 후보 측에서 여성대통령의 존재 그 자체가 통합과 쇄신의 상징이라느니 성별 그 자체가 정치혁신과 성불평등의 쇄신을 약속하지 않는다느니 설왕설래하고 있다. 논란이 뜨거워진 배경에는 '여성'대통령론이 득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이 개입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논의는 근본적으로 여성의 정치적인 역량이 강화된 결과가 아니라 '여성성'으로 대변되는 표피적 이미지만 차용한 결과이기 때문에 여성대통령론으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리더십의 유형이나 가치에 대한 진지한 갑론을박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적으로 세력화된 여성의 강력한 요구가 없기 때문에 여성들의 정치적 지향이 무엇이고 어떤 정책이 그에 부합하여 득표에 유리할 것인지를 판단할 필요를 각 후보 측이 굳이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 '여성' 대통령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연합뉴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여성'대통령의 논의에서 진정성을 보이는 길은 개인에 대한 비판과 지지에 머물러 있는 현재의 양상을 여성이나 사회적 소수자의 불안과 걱정을 덜어 줄 성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할 정책의 각축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정확한 진단에 근거하지 않은 어설픈 정책은 성평등을 더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원회의 활약에 대한 기억이 새롭다. 당시 여성부를 없애겠다는 인수위원회의 정부개편안 때문에 모든 여성계가 여성부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 힘없는 여성부가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젠더정책을 총괄하거나 조정할 수 없어서 기능에 대한 비판을 거세게 받았던 것인데, 당시 인수위원회는 여성부를 강화하기는커녕 있는 그 기능을 다른 부처에 분산하고 여성부를 없애는 데서 해법을 찾은 것이다. 본말이 전도된 해결책이었다.

여성폭력에 관한 정책도 마찬가지다. 여성폭력의 근본 원인은 성차별이다. 이는 유엔에서도 인정한 것이다. 폭력은 차별적 사회구조에서 비롯되므로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차별을 근절할 광범위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공권력을 총동원해 여성과 어린이 대상 반사회적 범죄를 발본색원하고 가해자의 형량을 강화하는 것을 여성의 안전대책이라고 내세우는 것은 눈앞의 현상에만 급급한 대응책일 뿐이다. 80% 이상이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인데, 경찰인력을 늘려서 감시를 아무리 촘촘하게 한들 일상의 성폭력을 발본색원하기 어렵다. 성인성폭력의 경우 피해자가 합의금을 목적으로 한 꽃뱀으로 의심받는 경우가 다반사고 성폭력 피해 자체를 인정받기가 어려운 형편인데, 형량을 강화한들 그 적용을 받아 처벌받게 되는 가해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흉악한 아동성폭력범죄의 억지력을 위해 사형제를 존속한다 한들 친족성폭력은 줄어들지 않는다.

유엔사무총장은 2006년 여성폭력 종식에 관한 보고서에서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를 띠는 여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 포괄적이면서도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여성폭력은 여성에 대한 차별의 원인이자 결과기 때문에 국가는 양성평등을 보장하고 여성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신속하고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고, 국제적 기준과 국내법 정책, 실행 간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국가가 여성폭력에 대처하고 이를 일소할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충분한 자원과 기금을 할애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지금껏 여성폭력 문제는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정도의 정책 우선순위에 올라본 적이 없다. 국가가 여성폭력 근절의 긴급한 필요성을 인정하고 모든 폭력에 대한 공적 책임을 분명히 하며 폭력 조장 및 정당화, 묵인과 관련된 제도 및 문화적 태도를 근절하는 데 나서야 한다. 각 후보의 성평등 정책에 제대로 된 관점이 반영되어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수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최근 1000명의 여성에게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각 후보 측에 여성의 바닥 민심을 전하기 위한 일명 '불안프로젝트'였다. 예상하다시피 여성들은 일자리, 자녀양육과 교육, 폭력, 건강, 노후빈곤 등을 주된 걱정거리로 꼽았다.

여성들의 이러한 불안을 담아서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차기 대통령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성평등 8대 과제'를 제시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남녀임금격차를 OECD 평균수준으로 축소하는 것, 여성폭력 근절 국가행동계획을 수립하는 것, 국공립 어린이집·병원·요양시설 30%를 확충하고 사회서비스지원센터를 설치하는 것,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해소 및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것, 여성부 강화 및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는 것, 사회경제적 사유의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것, 정치·사법·통일·평화분야 남녀동수 참여를 보장하는 것, 비정규직 출산휴가를 확대하고 아버지 영아휴가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흔히 남성들은 '요즘은 여성상위시대가 아니냐, 나는 집에서 꼼짝 못한다'라는 식으로 여성문제에 대한 무관심이나 무지를 눙친다. 2009년 기준 남녀 정규직 임금격차 38.9%로 OECD평균 15.8%의 2.5배 수준, 최저임금 미달자 63%가 여성인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어려운 존재이고 생계를 의존하는 남성의 폭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시간당 성폭력사건 1.8건 발생, 실형 선고율 1.2%, 2010년 가정폭력비율 53.8%로 우리나라 여성은 일상의 삶이 두렵고 불안하다.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포럼의 2012년 세계성격차지수 중 한국의 정치부문은 84위, 공공분야 여성참여율 20% 대, 2010년 기준 중앙행정기관 40개 기관의 고위공무원 중 여성비율 3.1%로 가난하고 폭력에 취약한 여성들은 공적 권한이나 대표성도 열악하기 그지없다. 이것이 대한민국 여성의 삶이다. 이러한 삶을 돌아보는 후보가 진짜 여성의 편에 선 대통령이다.

'여성' 대통령 논쟁에 말을 보탠다고 해서 모든 후보가 성평등이 당위적이라거나 여성의 지위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이 당연히 필요하다는 입장에 서리라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 것이다. 지난 6일 치러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여성유권자들은 수적으로도 절반을 넘었을 뿐만 아니라 남성보다 더 많이 투표함으로써 선거의 판세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특히 여성들은 투표에 참여하여 자신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주요 이슈인 낙태나 일자리 문제 등에 관한 정책에서 여성의 편에 선 오바마를 지지함으로써 그를 재선시키는 정치적 힘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향후 업무를 추진하는 데 있어 여성유권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강간으로 임신했다고 가해자를 고소한 청소년에게 검사가 유죄여부에 대한 기소가 결정 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낙태지휘를 해주지 않아 결국 출산할 수밖에 없고, 여성이 자신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출산 여부나 시기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여성의 몸이 출산율 저조를 타개하기 위한 정책의 도구가 되고 있음에도 낙태문제는 중요한 의제조차 되지 못한다. 이러한 현실이 우리의 논의가 허구적 '여성'대통령론에 머무르는 원인이다.

결국 이러한 상황을 뒤바꿀 힘은 자신의 이해가 과연 무엇인지에 눈뜬 정치적으로 세력화된 여성뿐이다. 여성의 현재적 삶과 이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토대로 이제 여성대통령이 아닌 성평등정책을 논할 때이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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