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영남에서 대승하고 수도권에서 참패한 선거 결과에 따라 결국 당내 힘의 균형추가 영남 쪽으로 쏠릴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또 새누리당 체제가 사실상 2인자를 인정하지 않는 '1인 체제'인 점을 감안하면, 박근혜 위원장의 정세 판단에 영남, 특히 T·K(대구·경북)인사들이 막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결국 수도권을 비롯한 '비영남' 당선자들의 쇠락으로 귀결될 수 있다.
▲ 김형태 후보 지원 유세 중인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뉴시스 |
김형태, 문대성 탈당 사태가 박근혜에 남긴 '교훈'?
제수 성폭행 미수 의혹을 받고 있는 김형태 당선자가 공천을 받고 당선된 과정을 복기해보면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먼저 공천을 받게 된 배경과 관련해 친박계 T·K 실세의 힘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당선자는 지난달 7일 이상득 의원 지역구인 포항 남울릉 지역에 전략 공천을 받았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언론 특보 출신이 이명박 대통령 고향이고, MB정부 실세 의원이자 이 대통령의 친형의 '텃밭'에 투하된 것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당시 친이계 인사들은 "격세지감이다. 박근혜 위원장에게 정치적인 '도의'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는 말들을 했다. 친박계 실세가 김 당선자를 밀고 있다는 말도 들렸다.
이후 지난달 14일 포항시 남구 선관위는 김 당선자가 서울 여의도에 '선진사회언론포럼'이라는 불법 사무실을 개설한 뒤 여론조사를 가장한 선거 홍보 활동을 벌인 혐의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공직선거법 89조 유사기관 설치 금지 등의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당 내에서 "문제가 있는 후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음에도 김 당선자는 낙마하지 않았다.
오히려 박근혜 위원장은 선거 운동이 시작된 후 지난 5일 포항 시청앞 광장 유세를 통해 "(김형태 후보는) 그동안 언론사 기자로써 소신 있고 현장 감각이 뛰어난 사람으로 포항을 발전시킬 적임자"라고 추켜세웠다.
박 위원장이 포항에 다녀간 이후 김 당선자의 제수 최 모 씨가 김 당선자가 자신을 성폭행 하려 했다고 폭로했고, 김 당선자의 육성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됐다. 당선을 확정 지은 후에도 파문은 가라앉지 않았지만 박 위원장은 당내 출당 요구에도 "사실 확인 후 논의하겠다"고 일축했다. 이는 당내 T·K 의원들의 발언과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다. 이한구 의원은 "그 사람들도 인권이 있는 거잖나. 확인을 해서 처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고, 최경환 의원, 유승민 의원도 모두 "사실 확인 후 조치"를 강조했었다.
박 위원장은 김 당선자의 거취를 거듭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난 번에 제가 당의 입장을 발표했지 않습니까"라면서 "사실이 확인되면 거기에 따라 당이 (결정) 할 테니까 더 되풀이할 필요는 없는 얘기"라고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수도권 정서를 대변하는 이상돈 비대위원이나 이준석 비대위원의 "선제적 출당 조치"는 박 위원장에 의해 사실상 묵살됐다.
박 위원장의 말 뒤집기도 논란이다. 박 위원장의 새로운 '복심'으로 떠오른 이상일 대변인은 이날 "어제 (김형태 당선자의) 음성 분석 결과도 나왔고 당 자체적으로도 조사했다"고 사실상 김형태 당선자에 대한 출당 압박이 있었음을 밝혔다. 박 위원장이 "더이상 되풀이할 필요는 없는 얘기"라고 일축해놓고, '사실 확인 후 출당 조치'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김형태 당선자의 자진탈당으로 귀결된 모양새도 좋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이상돈 비대위원은 "자진 탈당보다 출당 형식이 더 좋다"고 지적했었다. 빠른 판단이 필요한 일이었음에도 박 위원장이 질질 끄는 바람에 일을 그르친 셈이다.
▲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비대위원장 ⓒ청와대 |
소장파 지고 T·K 중심 영남 뜨고…'MB 실패 사례' 재현될까?
김형태 당선자 탈당 사태는, 새누리당 T·K 실세들의 '버티기'가 무너진 결과다. '김형태 탈당 사태'는 박근혜 위원장의 핵심 보고 라인이 영남권 실세들에 의해 장악됐다고 볼 근거가 된다. 특히 T·K 세력의 파워가 상상 이상으로 크며, 수도권을 포함한 '비영남권'의 목소리는 박근혜 위원장에게 제대로 닿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한 것이다.
당장 5월 중에 개최될 새누리당 전당대회와 관련해 영남권 인사들 중심으로 수도권 당 대표를 비토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수도권 5선에 40대인 남경필 의원이 유력하다는 보도에 대해 영남 지역 의원들은 "개혁을 입으로만 외치며 주류의 움직임에 딴죽만 걸었던 남 의원이 제대로 개혁을 한 적이 있느냐"고 불만을 표하고 있다. 당 대표 폐지론을 주장했던 남 의원이 대표가 될 자격이 있느냐는 말도 나온다.
T·K뿐 아니라 P·K(부산·경남)지역의 '친위 인사'들도 문제다. 부산 정가에서는 "박근혜 위원장의 핵심 측근 A 의원과 B 의원이 부산시장을 노리는데, 이를 위해 자신의 경쟁자가 될 만한 인사들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다"는 말들이 나온다. 민심 이반을 경험한 부산 당선자들의 위기 의식이 '부산 소외론'으로 발전해 '소지역주의'로 갈 수 있다. 결국 T·K와 P·K 출신 인사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비영남' 지역 당선자들은 소외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태면 수도권에서 당대표 후보가 나와도, 대의원을 장악하고 있는 영남 지역 당선자의 지지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영남-비영남 힘의 균형추가 무너진 결과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7년 대선 경선에서 승리했을 때, 이 대통령의 측근은 대부분 수도권 기반의 개혁 성향 소장파들이었다. 당선 직후 이들이 권력을 장악하는 듯 했지만, 결국 힘의 균형추는 이상득 의원과 '영포 라인'으로 불리는 T·K 세력으로 급격히 쏠리게 된다. 정책이 아니라 조직을 주로 담당했던 선진국민연대 출신 등 영남 지역 인사들이 '실세' 역할을 하면서 초반 '개혁' 이미지의 이 대통령은 급속히 보수화의 길을 걸었다. 측근 비리도 이같은 '비선 실세'들을 통제하지 못한 이 대통령의 잘못이 크다. '수도권 대통령'이라 불리던 이명박 대통령이 불과 4년만에 수도권 지지율을 다 까먹은 이유다.
박근혜 위원장도 표의 확장성을 잃고 '영남 좌장'으로 주저 앉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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