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나흘 남긴 지난 토요일, 연합뉴스의 헤드라인은 "총선 D-4 주말총력전, '김용민 파문' 최대 변수"였다. 이번 선거가 진지한 정책선거가 될 것이라고는 애초에 예상하지도 않았지만 첫 출마한 정치 신인이 8년 전에 인터넷 방송에서 한 발언이 '최대 변수'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야당을 곤혹스럽게 하는 것이 김용민의 '막말' 파문이라면 반대로 새누리당의 악몽은 민간인 사찰 사건이다. 둘 다 향후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 또는 채택해야 할 정책을 정하는 문제 등 미래지향형 이슈는 아니고 회고형 쟁점이다. 전세계적인 경제위기와 우리 사회 내 양극화의 심화 등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서 정작 중요한 문제는 논의되지 않고 '누가 누가 더 못했나'를 기준으로 표를 던져야 한다는 것은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각종 참신한 아이디어를 동원한 투표 독려 캠페인이 공허하게 들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기권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시해도 좋을 만큼 한가한 상황은 아니다. 잘못된 투표로 말미암은 고통은 이미 우리 모두가 충분히 겪어봤다. 현재까지 나타난 자료들을 검토해서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 여야가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서 밀어붙이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쟁점, 즉 '막말' 파문과 민간인 사찰에 대해서 양형(量刑)을 하는 심정으로 한번 평가를 해본다.
김용민 과거 발언, 당연히 문제가 크다
먼저 김용민의 과거 발언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밝히자면, 한마디로 용납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욕설이나 천박한 용어를 사용했다거나 혹은 노골적으로 성적인 얘기를 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드시 품위 있게 살아온 사람만 국회의원이 될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성인 대상 인터넷 방송이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한때 사용한 말의 수준 때문에 어떤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김용민의 발언 속에 드러난 그의 인권에 대한 시각이다.
우리가 테러집단의 목표물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유영철 같은 연쇄살인범을 보내서 특정국의 여성 정치인을 강간살해해야 한다는 것은 단순한 막말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다. 설사 그것이 아부 그라이브에서 있었던 미군의 만행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라고 해도 조금도 다르지 않다. 과장과 풍자에도 한도가 있는 법이다. 조금이라도 인권에 관한 감수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아무리 8년 전에 했던 발언이라고 하더라도, 그 정도의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도대체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있는지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김용민의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지지하는 정당이나 선거의 유·불리를 떠나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주장이고 어떤 면에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주장이기도 하다. 일부에서는 문대성 후보의 논문 표절 의혹을 지적하면서 김용민을 옹호하려고 하는데, 물론 다른 사람의 논문을 베껴서 학위를 받는 것은 인격을 의심하게 하는 일이고 당연히 공직에 나설 자격을 박탈할만한 일이지만, 여성을 강간살해해야 한다거나 어떤 이유에서든 군인을 인질로 잡아서 사흘에 한명씩 죽여야 한다고 방송을 한 것이 과연 그에 비해서 그렇게 가벼운 것인지 정말 의문이다.
▲ 자신이 민간인 사찰 은폐 사건의 "몸통"이라고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이영호 전 청와대 비서관. ⓒ연합 |
김용민과 사찰, 동일 평면에 둔 공방 자체가 어이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용민의 '막말'도 민간인 사찰에다 대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애초에 비교가 불가능한 사안이다. 일부 매체에서 김용민의 발언 파문과 민간인 사찰 사건을 동일 평면에 놓고 공방을 시키려고 하는 것 자체가 우리 언론이 얼마나 균형감각을 잃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막말' 파문은 김용민 개인에 관한 것이다. 물론 공천 과정에서 충분한 검증을 하지 못한 민주당의 책임도 가볍지는 않지만, 그것은 관리상의 잘못일 뿐 사안 자체에 관하여 어떤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민간인 사찰 사건은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개인이 저지른 잘못과 시스템 자체를 이용한 불법행위를 같이 볼 수는 없다. 국정에 책임을 진 여당으로서, 더구나 소속 의원마저 사찰을 당하는 상황에서, 소극적으로 방관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사찰 피해자에 대한 공격에까지 나선 새누리당은 사안 자체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민간인 사찰에 대해서는 또한 재범의 위험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의 관련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정부의 입장은(만일 입장이라는 것이 있다면) '공공기관인 것으로 착각했다', '공무원을 사찰하다보면 관련된 민간인에 대해서도 조사하지 않을 수 없다', 혹은 '과거에도 그런 정도의 사찰은 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총리실 산하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활동은 전체적으로 큰 문제가 없는 것이었는데 일부 실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인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정 지역 출신 사람들로 팀을 짜서 사회 각 분야를 대상으로 '충성심'을 검증하는 것이 어떻게 정부의 업무에 속하는 일이 될 수가 있나. 반성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정확히 아는 데서 출발한다. 현재 집권 세력의 상황인식이 이 정도라면 향후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이슈의 크기와 영향력에서도 막말 파문과 민간인 사찰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만약 김용민이 과거의 발언에 드러난 것처럼 인권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변하지도 않았는데 당선된다면 우리는 형편없는 국회의원을 한명 가지게 된다. 그러나 민간인 사찰에 대해 반성과 시정은커녕 상황인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정파가 세력을 얻거나 유지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 잘못을 용인하는 셈이 된다. 만일 같은 일이 되풀이된다면 과연 유권자인 우리에게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민간인 사찰 문제가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의 하나로 다루어져야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몇 년 후에 제2의 '이영호'보고 싶지 않다면
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부정적인 쟁점들이 '최대 변수'가 되는 것은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정책 공방이 벌어지는 진짜 선거를 언젠가 볼 수는 있는 것인지 실망스러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경중의 차이가 하늘과 땅인 사안을 하나로 묶을 수는 없다.
김용민의 막말 파문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고 사죄만으로 넘어갈 일도 아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가 국민의 대표가 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무조건 옹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과연 김용민과 '함께 비를 맞는' 길인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생각은 다를 수 있고, 선거를 통해서 심판을 받는다고 해서 반드시 잘못된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민간인 사찰은 김용민의 발언 파문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정부의 조직적인 불법행위이며, 수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전혀 바로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사안이다. 선거 때 민간인 사찰 정도의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 정치적 의사표현을 하지 않는 것은 유권자로서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잘못을 물을 수 있을 때 묻지 못하면, 우리는 몇 년 후 TV에 또 다른 이영호가 나와서 '버럭 기자회견'을 하는 것을 보면서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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