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사 간부 백모 씨가 편집국 기자들에게 성차별 발언을 가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기자들이 공개한 발언은 구체적이다. 기자들은 해당 간부가 성차별적 인식을 바탕으로 지면을 사유화했다고 규탄했다.
지난 12일 한국여기자협회 한경지부와 한국기자협회 한경지회, 한국경제신문 바른언론실천위원회가 공동으로 낸 성명에 따르면, 해당 간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내뱉었다.
기자들이 공개한 해당 간부의 발언은 언론 관계자의 말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다.
"아무리 많이 배운 여자도 '맘'이 되면 다 벌레가 된다", "어디서 저런 여자들이 기어나온 것이냐", "여자들이 겁도 없이 남의 차 타니 문제가 생긴다."
기자들에 따르면, 백 씨는 지난 11일 오전 '맘카페 갑질' 기사를 발제한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 같은 발언을 했다. 기자들은 통화 중 백 씨가 이처럼 비하 발언을 내뱉은 후 담당 기자에게 "너도 맘충 같은 행동 안 할 거라고 장담하지만, 결혼해서 애 낳으면 아무리 많이 배웠어도 여자들은 다 그렇게 되는 묘한 게 있다"고 주장했다고도 전했다.
백 씨는 지난해 5월 부서회의에서도 여성 비하 발언을 했다고 기자들은 전했다. 회의에서 백 씨는 '카풀앱(승차공유 어플리케이션) 이용자를 노리는 성범죄가 있다'는 보고를 받자 "여자애들이 겁도 없이 남의 차를 타고 다닌다"고 주장했다. 성범죄 가해자를 비판하지 않고, 피해자인 여성을 비난했다.
백 씨는 지난 6월 여성들의 혜화역 시위에 관해서도 왜곡된 성인식을 드러냈다고 기자들은 지적했다.
백 씨는 일부 시위 참가자 사이에서 극단적 발언이 나온 것을 두고 "그동안 여자들을 봐준 줄도 모르고 (...) 자기들 위치가 어딘지 (기사를 써서) 똑바로 알려줘라"고 일갈했다.
한 페미니스트 단체가 여성의 가슴은 음란물이 아니라며 반라 시위를 한 것을 두고는 "여성의 가슴이 음란물이 아니면 뭐냐"고 왜곡된 성인식을 거리낌없이 편집국에 밝혔다.
과거 검찰 내 미투운동을 다룬 이 매체 기사에 "조직 내 여성 비율이 30%를 넘어가면 문제가 생긴다"는 내용이 실렸는데, 이처럼 피해자에게 화살을 돌린 문구가 실린 원인 역시 백 씨와 무관하지 않다고 기자들은 지적했다.
백 씨는 자신의 성차별적 인식과 관련해 부서 회의에서 "내 생각이 곧 신문의 생각이고, 오피니언 리더들의 생각"이라며 "동의하지 않아도 예민하게 굴지 말고 따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들과의 논의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는 발언으로 이해될 여지가 크다.
성명을 낸 기자들은 "이런 인식을 부원과 후배, 나아가 한경 조직 전체와 한경 독자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지면을 사유화하는 일"이라며 "그간 사회부에서는 건전하게 비판하려는 기사도 혐오를 조장하는 형태로 바뀌어 왔다. 팩트가 맞지 않는데도 데스크 시각에 맞춰 기사를 '만들어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취재기자들이 발제 단계에서부터 무한한 자기검열에 빠지면서 민감한 이슈는 발제 자체를 포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자들은 "특정인의 왜곡된 인식이 한경 지면의 질과 언론의 품격을 크게 떨어뜨렸다"며 "불편부당하게 사회 현상을 바라보고 성찰해야 할 언론이 기존의 혐오와 선입견을 강화하고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면, 이를 뿌리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당 기자들은 백 씨에게 그간 자신의 언행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공개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아울러 사측에는 백 씨를 중징계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를 촉구했다.
백 씨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기자들의 성명이 사실 관계와 다르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