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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미룡동은 마한의 서해안 중심지…국가사적 지정 바람직 [이춘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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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미룡동은 마한의 서해안 중심지…국가사적 지정 바람직 [이춘구 칼럼]

오늘의 문제를 생각할 때 우리는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게 된다. 오늘 우리가 난관이라고 생각하는 지역발전, 지역갈등 등의 문제도 그 근원을 찾아가면 역사적 뿌리에서 유래하는 사례가 많다.

역사에 매몰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그 연원과 계통을 이해하면 오늘뿐 아니라 내일의 문제도 해법을 찾을 수 있다.

공공역사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전북은 마한과 백제의 몸통이다. 특별히 만경강과 금강을 무대로 하는 마한과 백제 등 고대사는 전북이 그 중심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가을 국립군산대학교 박물관을 둘러보는 길에 미룡동 마한 고분군 발굴 현장을 찾았다. 바다와 인접했던 고분군은 마한의 역사를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준다. 지난달 국립군산대학교에서 열린 학술대회 발표 자료를 토대로 살펴보기로 한다.

「군산 미룡동 고분군의 위상과 역사적 가치」라는 학술대회 이름 그대로 국립군산대학교 박물관은 대학교 교내에 있는 고분군을 발굴 조사한 내용을 보고했다. 고분군은 서해와 인접한 40m 높이의 관여산 정상부와 그 주변에 위치한다. 서쪽 산기슭을 따라 10여 군데의 패총이 밀집돼 있다. 2012년 1차에 이어 2025년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9개 고분의 발굴 조사가 이뤄졌다. 유영춘 학예사는 고분군이 2~4세기에 분구묘 형태로 이뤄졌으며, 매장시설로 조성된 목관묘는 47기이고, 중심 매장시설은 장축 방향이 등고선과 평행하도록 조성됐다고 보고했다. 두향은 남쪽을 향하고 있다. 옹관묘는 33기이며, 주거지는 7기이다.

특별히 고분군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화재와 집석 유구가 발견됐다. 유영춘 학예사는 마한 유적 가운데 처음으로 제의 행위와 관련된 것으로 평가했다. 미룡동 고분군에서는 토기류와 철기류, 옥류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토기류 중 흑색마연토기는 마한의 전통적인 기형과 백제 등 외부 요소가 결합된 모습을 보여준다. 경배는 가야 권역 및 영산강 등 남쪽과 관련된 기종이다. 직구평저장경호는 만경강 상류에서 주로 출토되는 토기로 군산에서는 처음 출토됐다. 이 지역 마한 집단이 만경강 상류와도 교류했음을 보여준다. 외부와의 교류는 4세기 중반 이후 본격화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환두대도, 정(鋌), 소형 농공구 등의 철기류는 군산 미룡동 집단의 철기 제작 기술의 존재와 수준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특히 환두대도 등의 대형 철기와 모, 정 등의 부장 시기는 4세기 중반 무렵에 집중돼있다. 이로써 이 시기에 철기 생산기술이 크게 발달한 것으로 판단한다. 주거지는 방형계이며, 토기편의 산재를 통해 조리와 난방을 위한 부뚜막 흔적으로 추정한다. 이 역시 묘제의 변화 및 토기의 변화상과 더불어 백제 등 외부 집단과의 접촉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다.

전북대학교 김병남 교수는 1~3세기 중국 기록인 『삼국지』, 『한원』과 『삼국사기』 「지리지」를 인용하며, 당시 군산 일대에 적어도 3개 이상의 마한 소국이 활동하는 지역적 역동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군산 임피는 시산으로 흔문=신흔국에서, 옥구는 마서량으로 만로국=매로국=매라에서, 그리고 회현은 부부리로 비리국=비리에서 그 경역을 상정한다. 마한 소국과 중국 군현의 대외교섭을 감안하면 연안 수로 주변의 교역 거점과 그에 인접한 세력들이 주로 기재했다고 추정된다.

전북은 금강 유역과 만경강·동진강 유역에 소정치체의 존재와 성장이 유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금강 입구인 군산 일대는 마한 소국 형성에 유리했다고 본다.

이춘구 칼럼니스트(前 KBS 모스크바 특파원)ⓒ

결론적으로 노기환 온문화유산정책연구원장은 유적과 유물, 문헌 등을 통해 볼 때 미룡동 고분군이 마한 시대 서해안의 중심지 역할을 한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해 보존하는 절차 추진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중장기적으로는 한국의 마한사를 이해하는 데 미룡동 고분군이 갖는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구체적으로 밝혀서 국가사적 지정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여기에 덧붙여서 고분군이 대학교 내에 있는 점 등을 고려해서 노출전시관을 만들어 마한사 공부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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