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반도체 산업의 특수한 성격에 대해 배경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반도체 생산라인은 24시간 가동을 멈추면 안 된다고 흔히들 이야기하는데, 정말 그런가요? 어떤 화학물질이 사용되나요?
이수옥(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앰코지회 지회장, 이하 '옥') - 기업들은 기계가 멈추면 손해가 너무 커서 멈출 수 없고, 365일 24시간 내내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하죠. 그런데 제가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월 1회는 전체 셧다운하고 쉬었어요. 당시 3조 3교대를 했기 때문에 매달 첫주에는 시프트(근무조) 교체를 위해 쉬었던 겁니다. 그런데 4조 3교대로 전환한 후부터 365일 쉬지 않고 공장이 돌아가는 체제로 바뀌었어요.
삼성이나 하이닉스는 메모리반도체를 생산하잖아요. 그래서 웨이퍼를 만드니까 기계를 멈추면 손해가 많이 난다고 말할 수도 있는데, 저희는 시스템반도체를 생산하거든요. 그런데도 365일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니 현장에서는 이해하지 못하죠.
그리고 반도체 생산 과정은 화학약품의 총체와도 같아요. 노동자들은 그 화학약품에 얼마나 노출되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하고요. 외부에서 볼 때는 항상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다른 공장처럼 먼지가 날린다거나 하지 않으니 우리가 아주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일한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실제로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깨끗하고 몸에 좋은 환경은 아니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하청노동자(익명, 이하 '하') - 저는 반도체 대기업의 하청업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도 24시간 가동되는데, 과거에 반도체 사이클 하강기여서 수요가 적을 때는 공장의 일부를 멈췄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회사에서는 라인을 멈추면 손해가 막심하다, 웨이퍼에 손상이 생긴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어떤 공정 이후부터는 웨이퍼를 보관만 해도 되거든요. 그래서 이 산업이 라인을 24시간 계속 가동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지는 저도 의문입니다.
반도체 산업은 자동화 수준도 높은 편인 것 같아요. 클린룸 천장에 OHT라는 레일이 설치되어 있고요, 웨이퍼 박스를 운반하고 설비에 투입하는 것도 기계가 해요. 그런데 위험한 업무나 고강도 업무는 자동화되지 않고 남아 있다가 하청으로 넘어가거든요. 그래서 실제 라인에는 정규직 원청에 직접고용된 노동자보다 하청 노동자가 더 많다는 게 특징입니다.
이종란(반올림 상임활동가, 이하 '란') -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수백, 수천 종의 치명적인 화학물질이 사용됩니다. 화학물질이 얼마나 많은지를 자료로 정리해 놓은 게 있는데(자료집을 보여주며), 기본적으로 웨이퍼 가공 라인과 칩 조립 라인에서 노출 가능한 화학물질만, 여기는 최소 150개입니다. 위험한 물질도 많이 사용되는데 기업들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어떤 화학물질을 사용하는지를 투명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하 – MSDS(물질안전보건자료)가 비치되어 있긴 해요. 보편적으로 많이 쓰이는 물질은 명칭을 공개하지만, 어떤 물질은 '영업비밀 1', '영업비밀 2', '영업비밀 3' 이런 식으로 되어 있어서 정보를 전혀 얻을 수가 없어요.
반도체 산업에는 일반적인 물질들이 아니라 이 산업에만 쓰이는 특수한 화학물질도 많이 쓰이거든요. 그런 물질들은 발암성 평가를 한 적도 없고 실험 데이터도 별로 없는 경우가 많아서, MSDS에는 발암성이 '없음'이라고 되어 있어도 저는 안심이 되지 않더라고요.
2. 지금까지 수많은 반도체 노동자 직업병 피해를 목격하신 입장에서, 상황이 나아지고 있거나 앞으로 나아질 거라고 보시나요?
란 - 옛날에는 진짜로 너무 심했어요. 2인 1조 작업인데 둘 다 백혈병에 걸리기가 쉽지 않거든요.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려준 사건이 2007년도 황유미씨의 백혈병 사망이었어요. 그러면서 기흥 공장에 6명 정도 피해자가 있다고 알려졌는데, 당시 삼성반도체 임원이 나와서 '삼성의 전체 노동자 중 6명이면 발병률이 높은 게 아니'라고 말했죠.
과거에 라인이 노후화되어 있었고 안전보건 개념도 없었을 때는 피해자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특히 백혈병, 림프종, 유방암 등 무슨 질병의 종합백화점 같았어요. 지금은 당연히 옛날보다는 안전 관리가 나아진 측면이 있고, 자동화도 많이 되었지요. 그래서 직업병 피해가 옛날보다는 조금 줄어들었어요.
또 하나, 위험한 일을 하는 주체가 달라졌습니다. (원청 기업들이) 위험한 업무를 외주화해서 책임을 덜어내는 방향으로 갔거든요. 그러니까 오퍼레이터들이 설비 안에 반도체 웨이퍼가 담긴 런 박스를 넣어주고 빼주던 것이 지금은 자동화가 되었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주된 위험이 정비와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에게 넘어갔어요. 삼성과 하이닉스 모두, 제일 위험한 업무인 유지보수를 '전문 협력업체'라는 이름으로 모두 사내하청업체에 넘기고 있어요.
옥 - 저는 정부가 지금처럼, 반도체 기업들에게 규제를 풀어주고 노동자나 시민사회단체들의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방식대로 간다면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고 보지 않습니다. 앰코의 경우 현장에 20~30년 장기근속자들이 많거든요. 요즘 들어 암에 걸린다거나 심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지거나 사망하는 노동자들이 생기고 있어요. 그런데도 건강 관리를 못 해서 아프다는 식으로 개인의 책임으로 미루는 분위기가 여전히 있어요.
반도체가 국가적으로 중요한 산업이라는 명분으로, 노동자가 현장에서 어떤 피해를 입더라도 그걸 입증하기 위한 녹음, 녹취, 촬영 같은 활동 일체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일하다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것을 증빙할 자료를 사측이 주지도 않고요. 아픈 사람들이 스스로 증명하는 것까지 막혀버리는 상황이라, 더 나아질 가능성은 별로 안 보이네요.
하 – 정보 수집이 불가능한 것도 반도체 산업의 특징인 것 같네요. 카드 찍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면 핸드폰 카메라가 안 켜져요. 촬영과 녹음이 다 안 되는데, 저 같은 하청 노동자 입장에서는 제가 어떤 일을 당해도 증거 수집을 못 하는 거잖아요. 종이 한 장이라도 가지고 나가면 바로 경보음이 울려요.
예를 들면 하청 노동자가 원청 사원에게 업무 지시를 받으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저희 작업장에서는 일상적으로 그런 지시가 이뤄져요. 현장에서 원청 사원이 CCTV로 우리를 보면서 이런저런 지시를 하는데,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뭘 할 수가 없어요.
3. 앰코에서 오래 근무했던 여성 노동자가 산재 인정 판결을 받았던데, 노동조합에서는 어떤 의미를 부여하시나요?
옥 - 세 가지 정도입니다. 첫 번째는 노동자들이 아프면 자기 탓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번 산재 인정을 계기로 질병이 개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일터 안전 보장의 문제라는 것이 알려지길 바랍니다.
두 번째는 언론이나 외부의 시각에서는 반도체를 만드는 클린룸이 항상 밝고 깨끗한 곳으로만 보이는데, 현장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수많은 화학 약품들을 생각해보면 클린룸이 그렇게 깨끗하기만 한가라는 의문으로 이어질 수 있는 판결이었습니다.
세 번째로는 그동안 근로복지공단이 기계적으로 '근속 기간이 짧으니까 산재가 아니다', '야간 근무를 얼마 했으니까 산재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판단했는데, 이번 행정소송에서는 단순히 기간만으로 보지 않고 짧은 기간에도 충분히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봤어요. 우리 사업장에서도 암 환자들과 심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지고 사망하는 노동자가 매년 늘어나는데, 각자 대처하려 하기보다 근무환경을 바꿔내려는 노력도 병행해야겠다는 입장입니다.
4. 하청업체 노동자의 시각에서는 반도체 산업의 구조가 또 다르게 보일 것 같아요.
하 – 우선 방진복 색깔이 다릅니다. 하청 노동자들은 파란색 방진복, 원청 정규직들은 흰색 방진복을 입어요. 그런데 TV 뉴스에 나오는 자료화면 같은 걸 보면 클린룸에 흰색 방진복 입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잖아요. 그거 다 거짓이에요. 그 흰색 방진복 입은 사람들은 라인에 거의 들어오지도 않거든요. 파란색 방진복이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라인에서 사람의 손을 거치는 일들은 하청 노동자들이 다 합니다. 설비를 점검하고, 약품이 묻은 것을 닦고, 웨이퍼를 담는 박스를 관리하고, 중량물을 옮기는 등 제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위험한 일들이 하청 노동자에게 오는 거죠.
가만히 보면 하청 노동자가 하는 일이 정말로 위험한 것들이 많아요. 올해 돌아가신 하청 노동자가 있는데, 그분도 분진이 많이 날리는 반도체 폐기물 처리를 맡으셨거든요. 작년에 돌아가신 다른 노동자는 삼성전자 반도체 화성 공장에서 화학물질 공급 업무를 하셨고요. 제조 공정에 쓰이는 화학물질이면 당연히 삼성에서 직접 취급할 것 같잖아요? 이것도 다 하청으로 돌려버렸어요. 하청의 하청일 때도 있고요. 설비에 직접 들어가는 약품이고 제조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것들도 다 하청에 넘깁니다. 심지어 포토라는 공정이 있는데, 포토 설비의 약품 교체도 다 하청이 해요. 포토 약품은 엄청 독하거든요. 근처를 지나가기만 해도 막 달콤한 냄새가 나는데, 가까이 가면 시너 냄새처럼 바뀌어요. 그런 일들을 다 하청으로 돌리는 거죠.
그리고 도급 계약 관계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엔지니어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기도 하고, 원청 제조 사원들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기도 하거든요. 원청에서도 이걸 인식하고 있어서, 전화로 지시하다가 이메일로 지시하는 등 왔다 갔다 하더라고요.
옥 – 앰코의 경우 물류창고에서 원자재나 부자재를 각 부서로 배달하는 업무를 도급으로 돌렸는데, 6년 전에 하청 노동자가 사진을 찍어서 고발한 일이 있어요. 그래서 노동청에서 불법도급 판결을 받고, 시정 명령도 나와서 정규직 전환을 했습니다. 정규직 전환을 하면서 상여금 없이 최저임금만 받는 근로계약서에 서명하게 했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요.
5. 교대근무가 노동자 건강에 당연히 영향이 있을 텐데, 제대로 된 휴식이 가능한가요? 건강을 위한 어떤 조치나 예방 대책이 있나요?
하 - 저는 3조 2교대로 일하는데, 몸에 무리가 간다는 걸 항상 느끼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야간 근무를 하다가 주간으로 바뀌는 시점이라든지 주간에서 야간으로 바뀌는 시점에 적응이 힘들어요. 특히 야간 근무가 힘든데, 야간이라고 해서 업무가 경감되는 것도 아니고 주간이랑 휴식시간도 똑같아요. 충분한 휴식 같은 건 없고, 그냥 근로기준법에 정해진 최소한만 지키는 거죠. 물량은 오히려 야간이 더 많고요. 교대근무가 신체적으로 무리가 크다는 건 경험해본 분들은 다 아실 거예요.
옥 – 앰코에서는 4조 3교대로 근무를 하는데, 사람이 없다 보니 실제로는 4조 2교대처럼 잔업을 매번 해요. 그리고 일을 하는 내내 각성 상태로 있어야 합니다. 기계가 계속 돌아가는데 잠깐이라도 놓치면 불량률이 올라갈 수 있거든요. 그렇게 계속 각성 상태로 일하다 보니 녹초가 되어서, 집에 가면 계속 누워만 있어요. 가족들은 '그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는 왜 잠만 자냐?'라고 묻죠. 그런데 푹 자는 것도 아니에요. 한두 시간마다 계속 깹니다. 혹시라도 깊이 잠들었다가 다음 출근을 못 하면 안 되니까요. 동료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다들 수면장애가 있더라고요. 6시 출근인데 1시에 한번 깨고, 2시에 한번 눈 뜨고, 4시에 또 깨다 보니 '이럴 바에는 그냥 출근 준비나 하자'가 되죠.
란 – 삼성전자 노조가 파업했을 때, 반도체 공장은 절대 멈출 수가 없으니 파업을 제한해야 한다는 논리도 나왔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보면 웨이퍼 가공 라인조차도 설비를 항상 완전 가동하는 게 아니라 생산량에 따라 조절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야간에 최소 인력만 배치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야간 교대근무 일정도 변화를 줄 수 있지 않을까요?
하 – 저의 경우 3조 2교대에서 4조 3교대로 전환하게 되면 부담이 줄어들겠죠. 그런데 임금이 너무 낮으니까, 연장근로를 통해 수입을 보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거든요. 3조 2교대는 연장근로수당이 지급되니까요. 만약 4조 3교대로 전환하게 되면 연장근로수당이 없어져서 임금이 많이 하락할 겁니다. 그래서 오히려 노동자들이 4조 3교대 전환을 반대하는 역설적인 상황이에요. 저임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3조 2교대라는 더 열악한 노동조건을 선택하는 거죠. 아니,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죠.
옥 - 맞아요. 몸에 안 좋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야간수당이라도 있어야 그나마 생활이 가능하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이 야간 근무를 희망해요. 그 사람들에게 '야간근무를 안 해도 야간수당만큼 급여가 올라간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봤더니, 그렇게 되면 야간 근무를 안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잔업도, 특근도 마찬가지에요. 급여가 낮으니까 어쩔 수 없이 야간 근무를 선택하는 거죠.
6. 반도체 특별법 이야기로 넘어가서, 상위 3% 고소득 연구개발직의 노동시간 제한을 완화하자는 것에 대한 의견을 들려주세요.
란 – 연구개발직은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이니 장시간 노동을 해도 괜찮다? 그렇지 않습니다. 연구개발직이었던 고 김치엽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삼성에서 성과 압박이 심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잤거든요.
반올림에도 반도체 연구개발 노동자의 제보가 가끔 들어옵니다. 한번은 직급이 꽤 높은 HBM 연구원이 아침에 출근했다가 화장실에서 쓰러져서 의식을 못 찾고 사망했거든요. 추석이 껴 있어서 52시간이라는 과로 기준에는 못 미쳤는데, 이분이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바로 그날 화장실에서 쓰러졌어요. 그만큼 스트레스가 크다는 거죠. 연구개발 노동자들은 식사하면서도 일을 생각하고 자다가도 일을 생각할 수 있는데 이들의 노동시간을 무제한으로 허용하겠다는 건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에요. 돈을 떠나서요. 어느 누구도 법적 기준을 초과하는 장시간 노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옥 – 앰코는 세계 각국의 반도체 회사들에서 주문을 받아서 시스템 반도체를 만드는데, 그 고객사들이 일하는 시간이 한국과 다릅니다. 우리는 밤이지만 그쪽은 낮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교대 근무를 하는 현장 노동자들뿐만이 아니라 엔지니어들도 24시간 대기 노동을 하거든요. 회사에서만 일하는 게 아니라 집에 가서도 업무용 노트북을 놓을 수가 없어요. 휴가를 사용하더라도 업무용 노트북은 항상 챙겨가야 해요. 이분들이 너무 힘들어서 퇴사하려고 했는데 사표 수리도 제대로 안 됩니다. 그리고 퇴사 후 6개월 동안은 동종업체 취업이 금지라서 여기를 그만두면 다른 데서 엔지니어 업무를 할 수 없어요. 그래서 5~6년 전에 엔지니어 중에 극단적 선택을 하신 분들도 있었어요. 유족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10년 근속하는 동안 단 하루도 제대로 쉰 날이 없더라고요.
지금도 엔지니어들이 52시간 넘게 일하고 있는데, 그래도 불법이 되니까 회사가 52시간을 안 넘기려고 노력은 하죠. 그런데 이 연구개발직 노동자들에게만 근로기준법을 예외로 한다면 그런 노력조차도 없이 무한 노동의 굴레에 빠져들게 되겠죠. 앰코의 경우 현장에서 엔지니어랑 일하지 않는 오퍼레이터들은 없어요. 지금은 제조 몇 팀, 이렇게 부르지만 나중에 그냥 기술개발직 1팀, 2팀 이렇게 이름만 바꿔버리면 현장의 오퍼레이터들도 언제든지 장시간 노동에 노출될 수 있겠죠. 그리고 그런 식으로 장시간 노동을 시켜서 과연 반도체 산업이 발전할지도 의문이에요.
7. 최근에 반도체 특수에 대한 성과 배분 논의가 있었는데 하청 노동자는 배제된 것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어떤 대안이 필요할까요?
옥 – 기업의 성과는 정규직 노동자들만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건 아닙니다. 그래서 성과를 나눌 때도 정규직들만의 잔치가 아니어야 하고, 그 성과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했던 하청 노동자들도 똑같이 나눠야 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한국은 노조 조직률이 10퍼센트대잖아요. 특히 반도체는 조직률이 아주 낮거든요. 그래서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 단체행동은 꿈꿀 수도 없는 노동자들을 보호하려면 회사가 어느 정도의 성과를 냈을 때 노동자들과도 분배할 수 있도록 법적 기준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얼마 전 삼성 초기업 노조가 했던 주장은 아쉬웠습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기 전 삼성 경영진들이 늘 하던 이야기와 똑같더라고요.
란 - 오늘 오전에도 혈액암에 걸린 반도체 노동자 산재 상담을 했는데, 그분도 기본급은 최저임금보다 못하고 상여금인지 성과금인지를 합쳐서 총액으로 계산해야 간신히 최저임금이 되더라고요. 가장 힘든 생산라인에서 일하는데도요. 그런 하청 노동자들이 이번 성과금 지급 대상에서 완전 배제가 됐잖아요. 너무나 불공정하죠. 그런데 요즘에는 '더 많이 배운 사람들한테 더 많이 분배되는 것이 공정하다'는 식의 정서가 있죠. 저는 그렇게 엘리트주의적인 시각으로 제조 현장 노동의 가치를 평가절하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반도체 성과급은 반도체를 만든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하는 거잖아요. 예전에 헌법에 이익균점권이라는 개념이 있었다는데 그런 게 필요한가 싶네요.
하 – 저는 삼성이 하청 노동자들에게 정규직과 동일한 수준의 성과급을 준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정규직과 똑같이 상시지속 업무를 하고 있으니 원칙적으로 원청이 직접고용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삼성이나 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대기업들은 이미 특혜를 많이 받고 있잖아요. 세금 혜택을 많이 받고, 자금 지원도 받고, 자연환경을 훼손해가며 용수나 전력을 공급받는데 왜 상시 업무를 다 외주화하고 자신들에게 편한 대로만 사람을 쓰려고 하느냐는 거죠. 직접고용은 반도체 대기업들이 이행해야 할 사회적 책임 중에 극히 일부라 생각해요.
8. 반도체 공급망에서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문제가 뭐라고 보시나요?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일까요, 아니면 의지의 문제일까요?
옥 - 가장 급한 문제는 환경의 위협으로부터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라고 생각해요. 환경의 위협이라는 것이 자연환경일 수도 있고 노동환경일 수도 있는데, 광주 지역에 삼성과 하이닉스가 온다고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매년 가뭄에 관한 뉴스를 보거든요. 식수를 담당하는 어느 댐에 물이 몇 퍼센트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매번 나와요. 그런데 삼성의 경우 하수 재이용 없이 그냥 물을 사용하겠다는 입장이에요. 전력도 엄청나게 많이 필요한데, 이미 한계에 다다른 원전을 다시 승인해서 더 사용하게 한다는 거잖아요. 이게 과연 인간에게 이로운 일일까요? 반도체든 피지컬 AI든 사람을 편하게 해야 의미가 있잖아요.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 모든 규제를 풀어버리고 장시간 노동하는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없는 시스템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문제입니다. 기업들이 이윤에 대한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는다면 충분히 개선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하 - 저도 비슷한 의견이에요. 이윤 추구에 대한 집착을 좀 내려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도체 기업이 최태원이나 이재용이라는 개인들의 소유물처럼 취급되고 있잖아요. 그들이 요구하는 규제 완화나 혜택이 실제로 국가 산업정책에 반영되고,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의견은 무시되고 있어요. 그런데 기간산업이고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는 산업을 개인 소유로 남겨두는 게 맞을까요? 저는 이걸 사회적 소유로 전환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대만만 해도 TSMC 경영에 정부가 개입을 많이 한다고 들었거든요.
물론 국가 기관이라고 다 좋은 선택만 하는 건 아니죠. 그래서 해당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나 공장이 위치한 지역의 주민들이 (반도체 산업의) 생산과 운영에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란 - 사회적 소유라는 게 실현되면 좋겠지만, 일단은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정도라도 공감대가 있으면 좋겠는데… 지금 전 국민이 반도체 산업을 초과 이윤이나 주식, 결국 돈으로 바라보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아까 물 이야기가 잠깐 나왔는데, 솔직히 말하면 물이 더 중요하지 않나요? 기후위기에 먹을 물도 없는데 공장에 물 대느라 강물을 다 마르게 하고, 공장을 돌리기 위해 농업용수와 심지어 생활용수까지 제한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반도체 생산은 적정한 양만큼 하고, 노동자에게 무리가 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야죠. 지금 AI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서 우려도 많이 나오는 상황인데 (한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을 무한 확장하고 AI 연관 산업에 올인하는 것이 과연 옳은 방향인가요? 이걸 냉철하게 판단하는 시선이 생각보다 적어 보여요.
또 반도체 공장에서 배출되는 폐수 문제도 있어요. 폐수에 파스(PFAS)라는 과불화 화합물이 섞여 나오는데, 이 파스가 영원히 분해되지 않아서 '좀비 화합물'이라고도 불리거든요. 그 물로 농사를 짓게 되고, 그게 쌀에 들어가도 될까요? 전력이 막대하게 들어가니까 영광 원전을 더 가동시키고 원래는 멈춰야 하는 석탄화력 발전소도 더 가동시키려고 하는데, 이것도 사실 무리한 일이죠. 기업들이 이렇게 무한질주를 하려고 하면 정치권이 어느 정도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9. 정부가 추진 중인 메가 프로젝트에 대한 입장과 함께,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란 - 반도체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하고 싶다면 제대로 하라는 거죠. 안전이 지켜지고 노동권이 보장되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방식으로 재편하라는 거죠. 지금은 그게 아니라 또다시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쪽으로 역행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메가 프로젝트는 일단 중단하고 숙의 민주주의를 해야 합니다. 지금은 따져보지도 않고 그냥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거잖아요. 우려되는 지점들이 있어도 그냥 따라오라는 식이에요. 문제는 공영방송을 포함한 언론도 이 문제를 공정하게 보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반도체 산업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도 충분히 다뤄져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겠지요.
옥 - 소년공 출신의 대통령과 민주노총 출신의 노동부 장관이 나와도 세상이 변하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나타나기 시작한 게 IMF 무렵부터고, 2000년대 이후에는 반도체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잖아요.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한다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고 노동자 보호를 완화하면서 만들어낸 것들이 진짜 국가 경쟁력 맞나라는 의문도 들어요. 지금도 정부가 이렇게 기업 위주로 성장 전략을 밀어붙이는데, 이게 현재를 사는 나와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진짜 좋은 건지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하 - 저도 그래요. 기업의 이윤만을 중심에 놓고 너무 몰아붙인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반도체 산업에 관여하는 노동자들이 자기 사업장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목소리를 주도적으로 내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하청 노동자들은 조직이 많이 안 되어 있어서, 앞으로 과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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