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북특별자치도가 반도체 특화단지 조성을 추진하면서 반도체 관련 용어들이 지역 언론에도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반도체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펩(PeP)’, ‘소부장’, ‘전구체’, ‘식각가스’ 같은 말은 전문가에게는 익숙하지만 일반인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전북의 반도체 산업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용어가 ‘소부장’과 ‘펩(PeP)’이다.
소부장은 ‘소재·부품·장비’의 줄임말로, 반도체를 만드는 원재료(소재), 장비를 구성하는 핵심 부품(부품), 그리고 실제 공정을 수행하는 기계(장비)를 통칭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은 완성품 업체에 공급하는 ‘후방산업’을 의미한다.
펩(PeP)은 ‘Package & Panel’의 약자로, 반도체 후공정(패키징)과 대형 기판(패널) 기반의 차세대 패키징 기술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최근 AI·고성능 반도체 수요 증가로 ‘칩을 어떻게 작고 빠르게 묶느냐’가 관건이 되면서 주목받고 있다.
비유하자면, 반도체 공장은 요리 레스토랑이다. 소부장은 식재료(소재), 조리도구 부품(부품), 오븐·인덕터 같은 주방기기(장비)에 해당한다.
펩은 요리를 마친 뒤 예쁘게 담고 포장해 고객에게 전달하는 ‘플레이트 & 패키징’ 기술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반도체는 크게 8단계 공정을 거친다. 웨이퍼 제조→산화→포토(노광)→식각→증착·이온주입→세정·CMP→테스트→패키징 순이다. 이 중 최근에 지역언론에서 자주 거론되는 소재·가스 용어는 주로 포토·증착·식각·세정 단계에 등장한다.
포토(노광) 공정은 웨이퍼에 회로 패턴 ‘설계도’를 그리는 단계로, 감광제(PR)나 실리콘카바이드 같은 소재가 쓰인다.
건축 도면을 종이에 그리는 것과 비슷하다. 증착 공정은 회로에 전기적 성질을 주는 얇은 막을 입히는 단계로, 전구체(Precursor)나 연마제 등이 사용된다. 벽에 페인트나 방수 코팅을 바르는 작업과 유사하다.
식각 공정은 필요 없는 부분만 골라 깎아내는 정밀 조각 작업이다.
식각가스(SF6, CF4, Cl2 등)나 식각액이 쓰이며, 조각가가 돌의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 형상을 만드는 것과 같다.
세정 공정은 공정 중간중간 웨이퍼를 씻어 불순물을 제거하는 작업으로, 초고순도 세정 케미컬이나 강산·강알칼리 용액이 사용된다. 수술 전 기구를 고온·고순도로 세척하는 것과 비유할 수 있다.
이 세정공정에 대해 '축구장에서 바늘 하나를 찾는 것'과 같다는 표현이 자주 쓰인다. 그만큼 초정밀성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세정 공정은 웨이퍼 표면의 미세한 먼지(파티클), 유기 오염물, 금속 이온 등을 제거하는 ‘초정밀 세척’이다. 반도체 회로가 나노미터(10억 분의 1미터) 단위로 작아지면서, 머리카락 굵기보다 훨씬 작은 불순물 하나도 불량 원인이 된다. 그래서 일반 정제수나 세제가 아닌, 99.9999% 이상의 순도를 가진 특수 케미컬을 사용한다.
세정 방식은 크게 습식 세정과 건식 세정으로 나뉜다. 습식 세정은 강산·강알칼리 용액에 웨이퍼를 담가 화학적으로 오염물을 녹여낸다. 건식 세정은 플라즈마나 자외선(UV)을 이용해 가스 상태로 오염물을 분해·제거한다. 비유하자면, 일반 세차(수돗물+세제)와 수술기구 멸균(고온·고압·고순도)의 차이와 같다.
증착 공정은 웨이퍼 표면에 전기적 성질을 갖는 얇은 막(박막)을 입히는 작업이다. 이때 사용되는 기체 상태의 원료를 전구체(Precursor)라고 한다. 전구체는 챔버(반응용기) 안에서 열이나 플라즈마 에너지로 화학반응을 일으켜 고체 막으로 변한다.
증착 방식은 크게 ALD(원자층 증착)와 CVD(화학기상증착)로 나뉜다.
ALD는 전구체와 반응가스를 번갈아 흘려보내 한 층씩 정밀하게 쌓는 방식이다. 스프레이→남은 가스 제거→반응가스→제거의 과정을 반복해 두께를 조절한다.
CVD는 가스 상태 전구체를 한꺼번에 흘려 열·플라즈마로 막을 형성한다. 전구체는 금속게이트, 배선(구리·알루미늄), 캐패시터 등 부위에 따라 화합물 종류가 다르다.
식각은 포토 공정에서 그려진 패턴을 따라 불필요한 막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정밀 조각’이다. 식각가스는 플라즈마 상태에서 이온·라디칼을 만들어 막을 화학적·물리적으로 깎아낸다. 대표적으로 SF6(육불화황), CF4(사불화탄소), Cl2(염소), BCl3(삼염화붕소) 등이 쓰인다.
식각 방식은 건식 식각과 습식 식각으로 구분된다.
건식 식각은 진공 챔버에 반응가스를 넣고 플라즈마로 막을 제거한다. 정밀도가 높아 미세 공정에 필수다.
습식 식각은 화학용액에 담가 화학반응으로 막을 녹여낸다. 속도는 빠르지만 정밀도는 상대적으로 낮다. 식각가스는 식각, 방향성 형성, 선택비 조절, Polymer 형성, 부산물 제거 등 5가지 역할을 한다.
전북특별자치도가 산업통상자원부 ‘소재·부품·장비 산업 특화단지’ 공모에 신청한 ‘전북 반도체산업 소재·부품·장비 특화단지’는 군산시(새만금), 익산시(제3산단·국가산단), 완주군(일반산단) 일원 2625만6000㎡(코어 2개 산단, 연계 2개 산단)에 2027년부터 2031년까지 5년간 642억원(국비 450억원·지방비 25억원·민자 167억원)을 투입하는 사업이다.
이 특화단지는 소부장 기업들이 품질·신뢰성 검증과 연구개발(R&D)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한 ‘공동 인프라’를 핵심으로 한다. 초고순도 세정 케미컬, 전구체, 식각가스 등은 미세화·고도화될수록 순도와 안정성 요구 수준이 급격히 높아진다. 개별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검증 설비와 실증 라인을 갖추기 어렵기 때문에, 공동 연구개발·실증 인프라가 경쟁력의 관건이다.
공동 R&D는 소재·가스 순도, 막 두께, 식각 정밀도 등을 공동으로 측정·분석해 개발 기간을 단축한다. 실증 인프라는 실제 공정과 유사한 환경에서 시제품을 만들어 신뢰성(수명·안정성)을 검증한다.
사업화 지원은 검증된 소재·부품·장비를 대기업 공급망에 연결하는 매칭과 인증 지원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원은 소부장 기업이 ‘시제품→검증→양산’으로 이어지는 긴 터널을 단축하는 데 기여한다.
‘앵커기업’은 소부장 특화단지에 소재하거나 소재할 것으로 예상되는 소부장 관련 기업(수요기업 포함) 중 특화단지의 경쟁력 강화 및 생태계 구축에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거나 수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기술 리더십(R&D, 평가, 양산 등)을 발휘하고, 투자 유치의 구심점이 되는 기업을 뜻한다.
전북 특화단지의 앵커기업인 동우화인켐, PKC, 한솔케미칼, OCI는 반도체 소재·케미컬 분야에서 연구개발과 양산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은 특화단지 내에서 공동 R&D를 주도하고, 실증 인프라를 활용해 시제품을 검증하며, 후속 투자와 협력사 유치를 이끄는 ‘허브’ 역할을 맡는다.
비유하자면, 앵커기업은 ‘공동 주방’의 셰프이자 주방장이다. 레시피(공정 기술)를 개발하고, 식재료(소재·부품)를 검수하며, 다른 조리사(협력사)를 이끄는 중심축이다. 전북이 이들 기업을 앵커로 삼은 것은 반도체 소재·케미컬 생태계의 기술 리더십과 투자 유치 효과를 동시에 노린 전략이다.
반도체와 관련된 뉴스의 어려운 용어는 알고 보면 ‘정밀 요리’에 쓰이는 특수 식재료와 도구들이라고 이해하면 한결 친숙해 진다. 전북의 반도체 특화단지 추진은 반도체라는 요리에 쓰이는 소부장 기업들의 ‘공동 주방’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전북이 반도체 특화단지를 통해 소부장 기업들의 공동 R&D와 실증 인프라를 확충하면, 기업들은 품질·신뢰성 검증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이는 지역 반도체 생태계의 경쟁력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전북을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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