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제교류재단(KF)과 일본 국제교류센터(JCIE)가 공동 주관한 제34차 한일포럼이 지난달 29일부터 31일까지 일본 도쿄에서 개최됐다. 국제교류재단은 이번 행사에 양국 정·재계, 학계, 언론계 주요 인사 50명이 참석해 실질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프레시안>은 위 행사에 참석했던 전 주일대사인 이수훈 한일평화포럼 이사장을 만나 일본 현지 분위기를 들어보고 한일관계를 비롯해 이재명 정부의 외교를 조망해봤다. 이 이사장은 행사에 참석한 일본 측 인사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그는 "일본 참석자들이 군수지원협정을 체결해야 하지 않냐는 의견을 강하게 제기했다. 다카이치 총리 내각의 주요 목표 중 하나가 한국과 협정 체결"이라며 "일본의 이같은 요구에 대해 저는 한국의 상황이 좀 다르다는 점을 언급했다. 국민 정서상 아직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도 전했다"고 밝혔다.
이 이사장은 "일본 인사들에게 차분하게 국민들 정서를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 양국의 관련 전문가들이 만나서 토론을 한다든가 공공외교로 양국의 접점을 늘린다거나 국방 당국 간 대화를 많이 해서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이유에 대해 황실 전범 개정 및 고물가와 낮은 환율 등을 꼽으면서 "공교롭게도 다카이치 총리와 이재명 대통령이 유사한 시기에 지지율이 내려가고 있는데, 이러면 한일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개연성이 높아진다. 상당히 불안하게 보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이사장은 "한일 간에는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는 의제들이 잠복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지율이 강할 때는 잠복된 상태라 관리할 수 있는데 그게 안되면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어서 위험하다"라며 과거사 문제를 포함해 해결이 어려운 양국 간 난제들이 다시 전면에 나올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그는 현재 정부의 외교가 대통령 개인의 개인기에 의존하고 있다면서 "현재 한국의 대외관계 상황을 보면 일본과는 어느 정도 관리가 되지만 미국과는 복잡다단하게 엉켜있고 중국과는 싸늘하고 러시아와는 관계가 끊어진 상황이다. 남북관계는 아예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 이사장은 "팀워크를 통해 체계적으로 주요 국가와 관계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그 때 그 때 순발력을 발휘해서 외교를 잘한다는 평가가 있고 그것이 지지율에 보탬이 된 셈"이라며 "외교 전략의 큰 틀을 다듬으면서 체계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 대통령 개인기에 주로 의존하는 외교, 정치참모들이 전면에 나서는 외교는 지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터뷰는 11일 진행됐다. 다음은 주요 내용이다.
프레시안 : 지난달 29~31일까지 제34차 한일 포럼에 참석하셨다고 들었다. 여기에 참석한 일본 측 인사들이 한일 간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을 강조했다고 하는데?
이수훈 : 이번 포럼에서 지정학 및 안보 세션이 두 번째에 배치됐는데 일본 참석자들이 군수지원협정을 체결해야 하지 않냐는 의견을 강하게 제기했다. 기회가 될 때마다 계속 이야기하더라. 다카이치 총리 내각의 주요 목표 중 하나가 한국과 협정 체결인데, 인도-태평양 지역의 주요 국가들인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과 협정을 체결한 일본 입장에서는 한국이 마지막 남은 미체결 국가라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이같은 요구에 대해 저는 한국의 상황이 좀 다르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필요성은 있지만 국민정서상 아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라고 답했다. 국민 정서가 있는데 너무 일방적으로 한국에 계속 체결하자는 압박을 넣으면 반작용이 일어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저는 일본 인사들에게 차분하게 국민들 정서를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예를 들어 한일 양국의 관련 전문가들이 만나서 토론을 한다든가 공공외교로 양국의 접점을 늘린다거나 국방 당국 간 대화를 많이 해서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 없이 체결하자고 한쪽에 자꾸 압박을 넣으면 될 일도 안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역사적 맥락도 이야기했다. 과거 이명박 정부 말기에 한일 간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려다가 강한 반발을 산 적이 있었는데, 일종의 패키지로 군수지원협정을 추진하다가 국민적 반발을 사 무산된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 국민들에게 이 협정이 한반도 유사시에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진출한다는 인식과 이해를 심어줘 지금도 이 협정에 대해 그렇게 반응한다는 점을 언급했다.
또 한국의 경우 한반도 평화를 가장 중시하는 외교안보 정책을 가지고 있는데 한반도 유사시를 자꾸 가정해서 거기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협정을 이야기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국제정세를 봤을 때 현실적으로 일본과 안보협력을 안하겠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면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고 차근차근 수준을 높여가는 것이 순서다. 점진적인 접근법을 택하는게 적절하다고 이야기했다.
프레시안 : 일본이 군수지원협정을 여러 국가들과 맺으면서 중견국 간 연대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데, 미국과 동맹인 일본이 이렇게 주장하는 것이 적합한지도 의문이다.
이수훈 : 중견국 연대는 기본적으로 다자주의를 전제하고 있다. 이건 동맹과 배치되는 개념이다. 이론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일본은 미국과 강한 동맹을 맺고 있는 국가라서 "동맹 있으면서 중견국 연대하자고 하는 게 말이 되냐"라고 지적하면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이 이를 언급하는 것은 미국과 동맹도 유지하면서 호주와 뉴질랜드, 필리핀 등과 연계해 대(對)중국 견제 전략을 구사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일본의 국익과 그에 부수된 안보 전략이 있는 셈인데, 중국과도 전략적 협력 관계를 유지 혹은 발전시켜야 하는 한국과는 전략이 같을 수가 없다. 이런 부분에 근거해서 이 다름을 상호 존중하는 것으로부터 관계가 출발해야 하고 그래야 성숙한 한일관계로 갈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즉 한일 간 안보 전략이 다른 것을 상호 존중하고 인정하는 차원에서 접점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해야지, 자신의 전략을 타국에 일방적으로 올라타라고 강요하는 것은 국민들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프레시안 : 최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는데 일본 내에서는 어떤 이유에서 이러한 흐름이 나타난다고 분석하고 있나?
이수훈 : 우선 일본 황실 전범 개정 문제가 있다. 나루히토 일왕 부부의 딸인 아이코 공주가 인기가 많다. 일본 적십자사에서 근무하면서 다양한 공적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일본 국민들은 다음에는 저분이 왕위를 계승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는데 이번 개정에서 자민당이 여성은 왕위를 계승할 수 없다고 못박으면서 국민적 반발을 샀다. 이것이 국제사회 및 시대 흐름과도 좀 다른 부분이라 민심을 많이 잃었다고 한다.
또 일본도 고물가 문제가 있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불만들이 나오고 있는데, 식료품 소비세 인하와 관련해 자민당 내에서도 반발이 있다. 엔화 약세 및 변동성이 너무 커서 미국이 개입했는데도 별다른 성과가 없는 측면도 있다.
공교롭게도 다카이치 총리와 이재명 대통령이 유사한 시기에 지지율이 내려가고 있는데, 이러면 한일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개연성이 높아진다. 상당히 불안하게 보고 있다.
프레시안 : 한일 양국 정부 지지율이 낮은 이유는 상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대상으로 보게 되기 때문인가?
이수훈 : 정부가 외교를 잘한다는 평가가 있는데, 따져 보면 체계적으로 외교 정책을 잘 구현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이재명 대통령이 순발력 있게, 임기응변을 발휘한 특징이 있다. 어떻게 보면 대통령에게 외교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팀워크를 통해 체계적으로 주요 국가와 관계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그 때 그 때 순발력을 발휘해서 외교를 잘한다는 평가가 있고 그것이 지지율에 보탬이 된 셈이다.
그런데 지지율이 낮아지면 이러한 평가는 정반대로 나타난다. 대통령이 똑같은 행위를 하지만 다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가령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가면 뭐하려고 그렇게 자주 나가냐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항간에는 이미 이런 민심이 없지 않은 것 같다.
또 한일 간에는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는 의제들이 잠복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지율이 강할 때는 잠복된 상태라 관리할 수 있는데 그게 안되면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어서 위험하다. 일본은 지지율 하락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통해 한일 관계의 가이드라인으로 제시된 투트랙 외교는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를 지향한다는 것이었다. 이게 민주당 정권에서 정립된 외교 노선인데, 김대중 대통령의 "상인의 현실 감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노무현 대통령의 "명분이나 진영을 따지지 말고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복리를 최선으로 생각하자"는 것 모두 실용주의로 볼 수 있다.
한일 관계에서 과거 직시와 미래 지향이 김대중 대통령 때는 반반 정도였다면 노무현·문재인 정부 때는 과거사 40%에 미래지향적 관계 60% 정도 됐던 것 같은데 지금은 과거사 문제는 10% 정도 밖에 안되는 것 같다. 이렇게 가서 되는지 되물어보고 과거 직시 트랙에 대한 보다 적극적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한일 정상이 일본 나라, 한국 안동에서 만나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과거사 문제 개선 위해 점진적으로 노력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대표적으로 평가받는 사례가 조세이 탄광 희생자 유해 발굴 조사한다고 하는데 이것도 별로 진전이 없다.
사도광산에 대한 일본 정부의 조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윤석열 정부가 불법적 일제 식민통치를 합법적이라고 인정한 것과 같다. '조선반도출신 노무자들'이라는 표현이 있기 때문이다. 이건 한반도 출신 노동자들도 다 일본 국민들이라는 이야기, 즉 식민지배가 아니라는 인식이다. 지금 우리가 유네스코에서 채택한 것을 돌릴 수는 없지만, 일본 정부가 본인들이 지키겠다고 한 것은 지키도록 해야 한다.
물론 과거사를 전면에 내세워서 한일 관계를 불안정하게 만들 이유는 없다. 내가 기회있을 때마다 얘기해온 바다. 다만 성숙한 한일관계를 통해 지속 가능한 궤도에 올리려면 과거사라는 축에 대한 노력도 더불어 실현해야 한다.
한국, 중일관계 중재할 수 있는 동력 부족해
프레시안 :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 정부가 전후 지켜왔던 '비핵3원칙'을 흔들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일 히로시마 핵폭탄 희생자 추도식에 이어 9일 나가사키 추도식에서도 '비핵3원칙'에 대해 현재 정부가 지키고 있다면서도, 이후에도 지킬지에 대해서는 분명히하지 않고 있다. 결국 이를 변경하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어 보이는데, 특히 핵 반입 의지가 강하다는 분석도 있다.
이수훈 : 핵 반입 움직임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도 그런 발언을 했고, 아베 신조 총리가 집권 당시 보통 국가, 헌법 수정까지 이야기했는데 정치적 환경과 국민적 여론이 따라준다는 전제 하에 실행하겠다는 것이 다카이치 내각의 확고한 정책 목표이기도 하다. 다만 여론이 따라주지 않고 한국이나 중국 등 외부 압박도 작용해서 실제 목표를 달성하긴 어려울 것 같다.
물론 계속 추진하려고 할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의 어젠다를 보면 그런데 지금 정치적인 여건이 안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 일본이 비핵, 평화 등의 노선을 견지하면서 오늘날 일본을 만들었다는 점이 있으니, 우리는 일본이 이 방향으로 가도록 압박해야 한다.
프레시안 : 일본이 중국과 관계가 악화돼있는데 이대로 계속 가져갈 것이라고 보나?
이수훈 : 중국과 당분간은 풀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럼에도 중일 저변에 있는 경제 관계나 네트워크는 원만히 움직이고 있다.
우리가 개입해서 이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정도의 동북아의 판세가 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이재명 대통령도 한중일 3국 간 공통점을 찾아 확대해야 한다고 하는데 옳은 방향이기는 하다. 그런데 우리가 역할을 하기 어려운 것이 중재를 할 만한 레버리지가 없다. 중국은 한일,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가장 달갑지 않게 생각하기도 하고.
우리가 중국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면서 북한의 비핵화에도 힘을 써달라고 하려면 중국에 대해 어느 정도 좀 성의를 보여야 하는 측면도 있다. 예를 들어 지난달 17일부터 20일까지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대회(WAIC) 2026 같은 행사에 우리도 장관급 인사 정도는 보냈어야 한다.
시진핑 주석이 참석하는 행사고 29개국 대표가 '세계인공지능협력기구(WAICO)' 설립 협정에 서명을 할 정도의 행사였다면 더더욱 그랬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주중대사관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재관과 외교부 AI 담당 과장급 실무자가 참석했다고 한다. 이러면 중국에 무슨 말이 통하겠나.
결국 현재 한국의 대외관계 상황을 보면 일본과는 어느 정도 관리가 되지만 미국과는 복잡다단하게 엉켜있고 중국과는 싸늘하고 러시아와는 관계가 끊어진 상황이다. 남북관계는 아예 없다. 이재명 정부가 외교 전략의 큰 틀을 다듬으면서 체계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 대통령 개인기에 주로 의존하는 외교, 정치참모들이 전면에 나서는 외교는 지양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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