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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학생도, 어떤 아이도 배제되지 않는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누구도 예외가 되지 않는 '모두의 학교'를 위하여…

학교가 특정한 학생과 가족을 '정상'으로 전제하여 설계될 때, 그 기준에서 벗어난 아이들은 특별한 존재로 구분되고 일상적인 배제를 경험하게 된다.

먼저, 저시력 장애인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A의 사례이다.

A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계단에는 미끄럼 방지를 위한 무채색 논슬립 테이프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저시력 학생에게는 계단의 시작과 끝을 분명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국토교통부·한국장애인개발원의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F) 인증 기준'에서는 저시력인의 안전한 이동을 위해 계단 끝부분에 명도 대비가 큰 색상을 부착하는 '계단 단부 식별표시'를 권고하고 있다.

A는 자녀가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계단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학교에 환경 개선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학교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이 보고 복도 끝에 선생님들 엘리베이터 타라고 하세요. 아무리 그래도 학교가 어떻게 아이 한 명 때문에 모든 계단에 예산을 들입니까."

학교는 계단 환경을 개선하는 대신 A의 자녀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도록 하였다. A는 이러한 대응에 당황했지만, 민원을 계속 제기할 경우 자녀가 학교생활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며칠 뒤 A는 자녀로부터 같은 반 아이들이 "왜 ○○이만 엘리베이터를 타요?", "나도 타고 싶어요"라고 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장애 학생을 기준으로 설계된 학교에서 A의 자녀는 일상적인 이동을 위해 늘 별도의 조치를 받아야 하는 '특별한 학생'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A는 주변으로부터 "왜 ○○이만 특별 대우를 해서 다른 아이들이 소외감을 느끼게 하느냐"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처음부터 저시력 학생을 포함한 모든 학생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계단이 설계되어 있었다면, A의 자녀는 혼자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하는 '특별한 학생'으로 구분되지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 사례, 재혼가정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B가 있다.

B는 자녀가 다니는 학부모회 임원 출마를 결심하였다. 그러나 학교는 학부모회 임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을 친권자 또는 친모로 제한한다는 이유로 B의 입후보를 허용하지 않았다. B는 자녀와 함께 생활하며 실질적으로 양육하고 있었지만, 법률상으로는 자녀의 동거인으로 규정되기 때문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5년 이 사건을 가족 형태 등을 이유로 한 평등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보고 학교장에게 실질적인 가족 상황을 고려하여 계부모에 대한 피선거권을 제한하지 않도록 관련 업무편람을 개정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학부모협의회'나 '녹색어머니회'와 같이 참여 주체를 '부모' 또는 '어머니'로 한정하는 명칭과 자격 기준은 다양한 가족 형태와 실질적인 양육관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처음부터 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실질적으로 양육하는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되어 있었다면, 다양한 가족 형태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은 '특별한 학생'으로 구분되지 않았을 것이다.

A와 B의 사례는 필자가 상담하거나 다루었던 여러 사례를 결합하여 '극히 일부'만을 재구성한 것이다. 두 사례는 마치 전혀 다른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 근저에는 학교가 '정상적인 학생'과 '정상적인 가족' 즉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성(normality)'를 기준으로 학교 제도가 설계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교육기본법」 제3조는 '모든 국민은 평생에 걸쳐 학습하고, 능력과 적성에 따라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도 학교에는 이 '모든'에 들어가지 못하는 아동·청소년이 너무 많다.

장애 아동·청소년의 경우를 보면 이러한 현실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보건복지부의 '연도별 등록장애인 현황'에 따르면, 2025년 12월 말 기준 전국의 등록장애인은 총 262만 7761명이며, 이 가운데 0∼19세 장애 아동·청소년은 10만 5967명이다. 같은 시기 주민등록인구통계상 우리나라의 0∼19세 인구가 총 823만 430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등록장애 아동·청소년은 전체 아동·청소년 인구의 약 1.3%에 해당한다. 수적으로 소수인 이들의 필요와 권리는 다수의 학생을 기준으로 설계된 학교 환경과 제도에서 쉽게 간과될 수 있다.

다양한 가족 형태에서 성장하는 아동·청소년도 마찬가지다. 재혼가정 역시 전체 혼인의 일부를 차지하며, 성평등가족부의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재혼가구의 상당수는 미성년 자녀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처럼 학교에는 다양한 구조적 소수자가 존재하지만, 학교 제도는 여전히 다수 학생을 중심으로 설계되는 경향이 있다.

장애나 가족 구성 형태만이 아니다. 이주배경, 국적, 사회적응 어려움, 빈곤, 시설 보호 등 다양한 삶의 조건을 가진 아이들 역시 학교에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의 학교 교육과 생활 지도는 여전히 다수 학생을 중심으로 설계되는 한계가 있다. 모든 아이가 평등하게 생활하고 성장할 수 있어야 하는 교육기관에서의 구분과 배제. 외면이 구조적 소수자 위치에 놓인 이 아이들에게 남기는 첫 번째 메시지는 결국 차별과 배제의 경험일 수밖에 없다.

"어떤 학생도, 어떤 아이도 배제되지 않는다(Leave No One Behind)."

"모든 학습자는 동등하게 중요하다(Every Learner matters equally)."

유네스코(UNESCO)의 포용 교육(Inclusive Education)의 핵심 원칙을 되짚어 볼 때이다. 지금 우리의 학교는 과연 모든 아이에게 환대의 공간이 되고 있는가. 장애 여부, 가족 형태, 성장 배경, 문화적 배경 등과 관계없이 모든 아이를 처음부터 상상하고, 모두가 사회 구성원으로 어울려 함께 동료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학교를 설계하고 운영하고 있는지 말이다.

학교란 아이들이 가장 먼저 사회를 경험하는 모두의 공간이다. 그곳에서 누군가로부터 밀려나거나, 누군가는 예외로 구분되어야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아이들이 배우는 첫 번째 차별일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학교가 모든 아이를 위한 공간을 상상하고, 끊임없이 배제되는 아이들을 찾아내고, 그들을 포용하는 공간으로 변화한다면 우리는 비로소 모두를 위한 사회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AI 교육의 속도와 경쟁을 이야기하는 지금, 우리가 그보다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모든 아이가 환대받는 학교이다. 모두를 위한 학교는 소수만을 위한 특별한 학교가 아니다. 다양한 아이를 상상하며 설계되고 운영되는 학교는 비장애 학생에게도, 전형적인 가족 형태에서 성장하는 학생에게도 더 안전하고 따뜻한 학교가 된다. 누구도 예외가 되지 않도록 설계된 학교, 결국 모든 아이가 안전하게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학교인 것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모두의 학교'를 꿈꿔야 하는 이유이다.

▲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 18개의 학부모, 교사, 시민사회단체 등이 지난 2023년 8월 서울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교사와 학부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교육부 규탄 기자회견을 연 모습. ⓒ비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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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시민들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직접 나서는, '아래로부터의 복지 주체 형성'을 목표로 2012년에 발족한 시민단체입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사회복지세 도입, 기초연금 강화, 부양의무제 폐지, 지역 복지공동체 형성, 복지국가 촛불 등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칼럼은 열린 시각에서 다양하고 생산적인 복지 논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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