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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조원의 칭화대, 1조원의 서울대: 간판만 남고 지식은 사라진 사회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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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조원의 칭화대, 1조원의 서울대: 간판만 남고 지식은 사라진 사회의 미래

[원동욱의 외교광장] 대한민국 대학이 '간판 공장'으로 전락한 이유

최근 공시된 2026년도 중국 교육부 직속대학 예산 자료는 가히 위압적이다. 1위 칭화대학의 연간 예산은 403억 9,300만 위안, 현재 환율(1위안≈230원)로 환산하면 9조 3,000억 원에 육박한다. 2위 저장대학은 382억 4,600만 위안(약 8조 8,000억 원), 3위 상하이교통대학은 304억 1,100만 위안(약 7조 원)에 달한다. 베이징대(약 6조 4,500억 원), 하얼빈공대(약 5조 9,500억 원), 중산대(약 4조 9,200억 원)까지 상위권 대학들의 예산 규모는 이미 '조' 단위를 훌쩍 넘어선다.

반면 대한민국 최고 상아탑이라는 서울대학교의 연간 예산은 연구비를 제외한 순수 운영예산 기준으로 여전히 1조 원 안팎에 머문다는 것이 학계의 오랜 지적이다. 스탠퍼드대(약 6조 원대)의 6분의 1 수준이라는 비교가 나온 지도 이미 여러 해가 지났는데, 그사이 격차는 좁혀지기는커녕 오히려 중국 쪽으로 더 벌어졌다.

더 눈여겨볼 점은 균형과 생태계다. 2026년 예산 상위권에는 베이징 소재 대학(칭화대·베이징대·베이징과기대) 외에도 항저우의 저장대, 상하이의 상하이교통대, 하얼빈의 하얼빈공대, 광저우의 중산대, 시안의 시안교통대 등이 고루 포진해 있다. 지방 정부 재정이 뒷받침된 결과이기도 한데, 실제로 선전대·쑤저우대 등 '비(非) 985·211' 지방대조차 연간 예산이 60~70억 위안(약 1조 4,000억~1조 6,000억 원)을 넘어서며 웬만한 한국 사립 명문대를 능가한다. 국가적 투자가 특정 지역에 매몰되지 않고 두텁게 퍼져 견고한 지식 벨트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투자는 이미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올 초 발표된 네덜란드 라이덴대의 '2025 라이덴 랭킹'(연구 생산성 기준 세계대학평가)에서, 13년간 부동의 1위를 지켜온 하버드대가 3위로 밀려나고 저장대학이 세계 1위에 올랐다. 상위 10위권 중 무려 7곳이 중국 대학이었다. 2000년대 초반 이 자리를 미국 대학이 7곳 차지했던 것과 정반대의 풍경이다. 이런 흐름은 학부 교육 현장까지 번지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대·KAIST에 합격할 실력을 갖춘 한국 최상위권 학생들이 칭화대·저장대·상하이교통대 등 중국 명문 공대를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끊기지 않고 연구할 수 있는 인프라를 원한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이유다.

이 폭발적 성장의 배후에는 단순히 '돈의 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더 무서운 것은 지식과 교육을 사회적으로 우대하는 철저한 보상 체계다. 2023년 기준 중국의 대학원 재학생은 388만 명을 넘어섰고, 그중 박사과정은 61만 명, 석사과정은 327만 명으로 각각 두 자릿수, 한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985 프로젝트' 소속 명문대 30곳 중 25곳에서 학부 졸업생의 절반 이상이 대학원에 진학하며, 칭화대(80.8%)·베이징대(78.1%)·중국과학원대(90.1%)는 졸업생 대다수가 대학원행을 택한다. 대학원 진학이 청년 실업의 도피처가 아니라, 인문·이공계를 막론하고 직급과 호봉, 경력 산정에 확실히 반영되는 합리적 유인 구조이기 때문이다.

반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떤가? 우리의 대학 교육도 위기지만, 그보다 더 치명적인 위기는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가 '대학 간판' 외의 교육과 지식은 철저히 푸대접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점이다. 언론과 대중은 매일 쏟아지는 트렌드와 자극적인 유행에는 동물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그 이면을 분석하고 미래를 설계할 깊이 있는 '지식'과 '학문'에는 냉소적이다.

대학원에 진학해 학문을 깊게 탐구하는 행위는 '가성비 없는 선택' 혹은 '취업 유예' 정도로 치부되기 일쑤다. 석·박사 학위를 취득해도 사회적 대우나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으니, 청년들에게 학문과 탐구는 사치가 되었다.

그 결과 대한민국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 아닌, 오직 1등부터 순서대로 줄을 세워 기득권 진입 티켓을 나눠주는 '간판 공장'으로 전락했다. 겉으로는 고학력 사회처럼 보이지만, 내실을 들여다보면 실질적 지식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지식 공동화(空洞化)' 상태에 빠진 것이다.

최근 정치권과 교육계 일각에서는 지자체와 대학을 연계하거나 지역 대학을 육성하겠다는 거창한 담론을 쏟아낸다. 그러나 핵심을 비껴갔다. 지식과 교육이 사회적 자산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오직 '서연고 서성한…'으로 이어지는 간판의 서열만 공고한 사회에서는 백약이 무효하다. 이 구조를 깨지 않는다면 서울대를 10개로 늘리든, 100개로 복제하든 아무런 소용이 없다. 간판의 가치만 희석될 뿐, 지식을 경시하는 사회의 본질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예산 9조 원의 칭화대가 무서운 이유는 그 돈의 액수가 아니라, 그 대학을 졸업한 석·박사들이 국가의 브레인으로 확실하게 우대받으며 미래 산업을 이끌어간다는 시스템에 있다. 지식과 교육이 스스로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고, 오직 입시 점수의 전리품으로만 존재하는 사회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대학의 외형적 개혁을 넘어, '지식의 가치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간판의 유효기간은 끝났다. 진짜 지식이 대접받는 사회적 유인 구조를 만들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성장 엔진은 이대로 멈춰 서고 말 것이다.

ⓒ서울대 홈페이지

원동욱

원동욱은 동아시아 국제정치와 중국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학자이자 공공 지식인으로, 현재 사단법인 외교광장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2010년부터 동아대학교 국제대학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교육과 연구를 병행해왔다. 한국교통연구원 책임연구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제23대 한국현대중국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중국 정치와 외교, 미중 전략경쟁, 동아시아 질서를 연구하며, 주요 매체 기고와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활동을 통해 공공 지식인으로서 사회참여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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