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날을 앞두고 지난 4월 직장갑질119와 온라인노조 한국어교원지부가 '교단 너머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제2회 한국어교원 수기 공모전을 열었다. 수기에는 외국인이 한국에 와 처음 만나는 선생님이자 초단기 계약과 공짜 노동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인 한국어교원들이 겪는 고충과 애환이 담겼다. 다섯 편의 수상작을 최우수상 한 편과 우수상 두 편, 가작 두 편 순으로 싣는다. 편집자
학과 폐과 공지가 올라온 날은, 이상할 만큼 날씨가 맑았다. 남방 특유의 짙은 초록이 창밖에서 번들거리고 있었고, 교정에는 점심시간을 맞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웃고 있었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음료를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평소와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지만, 그 한가운데에서 나는 컴퓨터 화면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국어학과 2026학년도부터 신입생 모집 중단 및 단계적 폐과'
문장은 짧았고, 건조했다. 이유는 길지 않았다. '학교의 구조조정 방침에 따라'라는 문장이 전부였다. 그 몇 줄의 공지가 한 학과의 시간을 정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 문장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모집 중단'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계적 폐과'가 얼마나 빠르게 현실이 되는지,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몸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날 오후, 나는 평소와 다르지 않게 강의실에 들어갔다. 출석을 부르고, 교재를 펼치고, 칠판에 문장을 썼다. 학생들은 평소처럼 "네" 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미 몇몇은 그 공지를 본 상태였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 한 학생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선생님, 우리 학과… 없어지는 거 맞아요?"
그 질문은 크지 않았지만, 교실의 공기를 순식간에 바꾸기에는 충분했다. 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재학생들은 계속 수업을 들을 수 있어요. 졸업까지는 문제없을 거예요."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충분한 대답은 아니었다. 학생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은 전혀 안심한 얼굴이 아니었다. 잠시 망설이던 학생은 결국 다시 물었다.
"그럼… 저희 졸업하면, 취업은 괜찮을까요?"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교실의 분위기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틀린 문장 하나에도 웃음이 터졌고, 발표를 시키면 서로 먼저 하겠다고 손을 들던 학생들이, 이제는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질문을 던지면 대답이 늦어졌고, 쉬는 시간의 대화도 점점 줄어들었다. 수업은 여전히 문법을 따라가고 있었다. '–(으)니까', '–아/어도 되다' 같은 표현을 설명하고, 예문을 만들고, 반복해서 읽었다. 하지만 그 문장들 사이에는 말로 꺼내지 못한 불안이 고여 있었다.
어느 날, 작문 과제로 '나의 미래'를 쓰게 했을 때였다. 한 학생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저는 원래 한국 회사에 취직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학과가 없어지면, 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장은 단순했지만 그 글을 읽는 동안 나는 한 줄도 쉽게 넘길 수 없었다.
그 학생은 수업 시간에 늘 밝게 웃던 학생이었다. 발음이 틀려도 끝까지 말하려고 했고, 틀리면 스스로 웃으면서 다시 시도하던 학생. 그 학생이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쓴 순간, 나는 이 수업이 더 이상 단순한 언어 교육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느꼈다.
이 상황은 우리 학과만의 일이 아니었다. 중국 전역에서 한국어학과를 비롯한 외국어 계열 학과들이 하나둘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는 지난 몇 년 사이 더 자주 들려왔다. 얼마 전 산둥성의 약 서른 곳의 대학들 가운데 단 한 곳을 제외하고 모든 대학의 한국어학과가 폐지 통지를 내렸다고 한다. 이 도시는 한중 수교가 이뤄진 이후 줄곧 중국 내에서 한국어 학과가 가장 많이 운영되었던 대표적인 지역이었다. 하지만, 학생 모집이 어렵고, 취업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단 1년 사이에 거의 모든 대학에서 한국어 학과 폐과라는 선택을 내렸다.
하지만 그 '이유'는 생각보다 더 넓은 곳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요즘 대학에서 자주 들리는 말이 있다.
"실용성이 없다."
"취업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그 말은 주로 인문학과와 외국어 학과를 향해 있었다.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이해하고, 타인의 세계를 상상하는 일은 점점 '지금 당장 쓸모없는 것'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대신 눈에 보이는 성과와 빠른 취업으로 이어지는 전공들이 우선순위가 되었다. 학교는 살아남기 위해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의 과정에서, 한국어학과 같은 전공은 비교적 쉽게 '정리 가능한 영역'이 된다. 나는 이 현상에 대해 몇 년 전부터 감지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이렇게 갑작스럽고, 이렇게 조용하게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공지 하나로 학과의 미래가 결정되고,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은 설명 없이 뒤로 밀려난다. 학생들은 자신이 선택한 전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처럼 느끼게 되고, 교원들은 자신이 해온 일이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것처럼 취급된다.
그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 우리가 서 있던 자리가, 생각보다 훨씬 쉽게 지워질 수 있는 자리였다는 것을.
사실 불안한 것은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나는 외국인 교원으로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계약서와 초청장, 그리고 취업비자. 그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이곳에 머물며 수업을 할 수 있다.
학과가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수업이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었다. 어느 날, 동료 교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음 학기 계약 얘기 들으셨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아무 얘기도 없어요."
그 말은 곧,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이곳에서의 삶은 늘 계약 단위로 이어져 왔지만, 이번에는 그 단위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학과가 없어지면, 우리는 어디에 속하게 되는 걸까. 다른 학과로 이동하게 될까, 아니면 조용히 계약이 종료될까. 그리고 더 현실적인 문제는 비자였다. 비자는 '소속'이 있어야 유지된다. 학과가 사라지면, 그 소속은 어떻게 되는가.
나는 어느 날 밤, 아무 생각 없이 항공권 가격을 검색하다가 문득 손을 멈췄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는데, 이미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 순간, 분명하게 깨달았다. 나는 교사이면서 동시에, 언제든 이곳을 떠나야 할 수도 있는 노동자라는 사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교실에 들어간다. 수업은 계속되어야 하고, 학생들은 여전히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난 뒤 한 학생이 남았다. 평소 말수가 적던 학생이었다.
"선생님, 저… 한국어 계속 공부해도 될까요?"
그 질문은 단순해 보였지만, 그 안에는 너무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이 공부가 의미가 있는지, 시간을 계속 써도 되는지, 그 모든 고민이 그 한 문장 안에 들어 있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네, 계속해요."
그리고 조금 천천히 덧붙였다.
"언어는 없어지지 않아요. 그리고 지금까지 공부한 것도 사라지지 않고요."
그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 나는 그 학생의 불안을 외면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요즘 나는 자주 생각한다.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무엇일까. 단어와 문법을 전달하는 일일까, 아니면 그 언어를 통해 어떤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일까. 그리고 그 가능성이 흔들릴 때 교사는 어디에 서 있어야 할까.
우리는 학생들에게 미래를 이야기해왔지만, 정작 그 미래가 불투명해진 순간에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한국어교원은 종종 '좋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 말은 때때로, 우리의 노동을 너무 쉽게 지워버린다. 우리는 계약이라는 아찔한 '선' 하나에 간신히 기대어 일하고, 제도 바깥에서 흔들리며,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다. 특히 해외에서 일하는 한국어교원은, 교육자이면서 동시에 체류 자격에 의존하는 불안정 노동자이기도 하다. 학과 하나가 사라지는 순간, 학생과 교원 모두가 동시에 방향을 잃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우리는, 그 불안을 함께 감당하면서도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일도 교실에 설 것이다. 아마도 평소와 다르지 않게 칠판에 문장을 쓰고, 학생들의 발음을 고쳐주고, 틀린 문장을 함께 다시 만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교실이 단순한 수업 공간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것들 한가운데에서 서로를 붙잡고 있는 자리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학생들의 문장을 끝까지 듣는다. 조금 느리고 서툴러도, 그 문장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생각하면서. 그리고 마음속으로 되뇐다. 우리가 하는 일은 분명 노동이며, 그 노동은 누군가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고. 사라지는 학과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람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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