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장관이 북한 구성시에 핵시설이 있다고 발언하고, 미국이 한국에 대북 정보 공유를 제한했다는 문제에 대해 국민의힘이 기회를 만났다는 듯 공세를 쏟아붓고 있다. 헛 일이다.
북한에 영변 외 핵 시설이 여러 곳 있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니다. 정 장관이 언급했다는 '구성시' 역시 이미 수차례 공개된 사실상의 '오피셜' 정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9년 김정은과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나 "(김정은은 핵시설) 1∼2곳을 없애길 원했다. 그렇지만 그는 5곳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김정은은 미국의 정보력에 놀랐다고 한다. 아마 지금 북한의 핵 관련 시설은 5곳을 넘을 것이다.
미국 외교안보 전문 매체 <더 디플로맷>이 최근 이 논쟁을 다뤘다. 한반도 담당 수석 특파원인 미치 신 기자는 "결국 '구성 사건'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이 사건이 제기하는 더 중요한 질문은 워싱턴도 서울의 보수 진영도 직접적으로 답하기를 꺼리는 질문이다. 과연 북한의 비핵화는 실현 가능한가? 답은 분명히 '아니오'다"라고 말한다. 그는 '구성 논란'을 두고 "마치 로마가 불타는 동안 바이올린을 켜는 격"이라고 냉소했다.
미치 신은 결국 북한의 핵무력 보유를 인정할지 말지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핵무력은 이미 '거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핵시설이 구성에 있는지, 영변에 있는지는 군사 전술에선 의미가 있지만, 국가 전략에서는 아무런 의미값을 갖지 못한다. 정동영 장관이 북한에 존재하는 핵 관련 시설 위치를 특정했든 안했든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다. 미국이 (한국의 외교적 노력을 쏟는 것과 별개로) 대북 정보 공유를 제한했든 하지 않았든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 문제를 다루는 미국, 정확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북 강경파로 잘 알려진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트럼프 행정부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서는 전혀 얘기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미국 대통령이 담당 데스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관계는 오로지 그들의 것이다. 트럼프가 직접 북한을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입장은 무엇인가. 지난해 경주에서 열리는 APEC에 참석하기 앞서 그는 북한을 "일종의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 핵무력 세력)로 규정했다. 그는 "그들(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한다면(질문한다면), 그들은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하겠다"고 했다. 핵 보유국이라고 규정하는 건 유보하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뉴클리어 파워'라는 다소 모호한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건 트럼프는 북한이 핵무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북한은 핵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핵무력'은 진화하고 있다. 마크 버커위츠 미국 국방부 우주정책 담당 차관보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국가정보국(DNI)은 올해 보고서 "북한이 미국 전역에 도달할 수 있는 ICBM 시험에 성공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베네수엘라나, 이란과 북한은 완전히 다른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트럼프가 일으킨 이란과의 전쟁은 트럼프가 북한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역설적으로 예측할 수 있게 해 준다. 트럼프는 '아직 핵 무력을 갖지 못한' 이란의 핵 시설을 타겟으로 삼지만, '이미 핵 무력을 보유한' 북한은 이 교훈을 사무치게 새기고 있을 것이다. 이번 전쟁을 보고 있는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트럼프는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장관은 이란이 북한처럼 되는 걸 막기 위해 이란을 공격했다고 말했다. 반대로 말하면 북한 수준의 핵무장 단계가 되면 미국이 공격할 수 없다는 말로 들린다. 달갑지는 않지만 북한은 '협상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침 미국 내에서도 비핵화 회의론이 퍼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지난 2024년 정강정책에서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언급을 삭제했다. 지난 2020년 대선 공약에서 민주당은 북한 비핵화를, 공화당은 CVID(불가역적 핵 폐기)를 제안했던 것에 비춰보면 미국 정가 내에서도 '북한 비핵화'를 현실적 목표로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회의론'을 상징한다.
대북 강경파라는 빅터 차 석좌조차 북한과 북핵을 협상의 중심에 두되 군축 합의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빅터 차 석좌가 제시한 것은 '비핵화' 정책의 실패 인정, 북한과 새로운 '차가운 평화' 체제 구축이다. 북한을 '핵무력 세력'으로 관리하면서 위기 안정, 군비 통제, 그리고 직접적인 소통 채널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를 읽는 게 중요하다. 정동영 장관의 발언을 꼬투리 잡아 '한미 동맹이 무너지고 있다'고 떼를 쓰는 국민의힘은,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를 접어두고 북한의 핵 무력을 인정하며 김정은과 협상에 나설 때 뭐라고 할 것인가. 국민의힘은 과연 변화하느 세계에 대한 준비는 되어 있는가? 대안이 없다면 야당은 살아 있으되 살아있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독일 통일을 이끈 중부 유럽의 소국 '프로이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현실 정치"라는 개념을 발명했다. 이념과 전통에 매여 있던 당시 유럽의 외교가에서 비스마르크는 오로지 '프로이센의 국익'을 기준으로 약소국의 현실을 인정하고 혁명과 반동을 모두 거부하며 '있는 그대로의 유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독일 통일은 의회(국내 정치)가 아니라 외교와 현장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의 숙적 프랑스의 독재자 나폴레옹 3세와도 전략적 친분을 유지했고, 동맹인 오스트리아와도 전략적 거리감을 유지했다. 결국 그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를 물리치고 독일 통일의 역사적 과업을 이뤄낸다.
결국 '실용'의 문제다. 정세 변화를 읽는 눈과 냉정한 판단, 그리고 실행력이 중요하다. 있는 그대로의 북한과 변화하고 있는 미국을 캐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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