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할리우드는 우주(인)를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소비해왔다. 지구를 위협에 빠트릴지도 모르는 미지의 시공간으로서의 우주, 개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게 펼쳐진 개척지로서의 우주. 전자가 우주를 낯선 타자로 상상하며 대상화했다면 후자는 자본의 시선으로 대상화한다. 때로 우주를 지구 문명의 기원으로 바라보기도, 또는 친근한 이웃으로 상상하기도 하지만 인류의 소수자성을 대표하거나 신적 초월성을 지닌 대상으로, 또는 자아의 내면을 이해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드니 빌뇌브가 <컨택트>(2017)를 통해서 던진 질문, '과연 타자는 이해 가능한 존재인가?'는 할리우드가 우주와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시도한 첫 번째 영화였는지도 모른다. 루이스(에이미 아담스)가 낯선 존재인 헵타포드와 대화하기 위해 언어 구조를 파악할 때 그녀는 미래를 기억하며 새로운 인식 구조를 얻었다. 타자를 이해하는 것은 주체의 변화를 필연적으로 요구한다는 것을 증명한 순간이다. 타자를 이해하려는 행위가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던 스필버그의 태도(<미지와의 조우>(1977))와 정반대되는 관점이다. 역사를 통해서 하나의 문명이 또 하나의 문명을 어떤 방식으로 멸살해왔는지 습득해온 인류의 입장에서 낯선 존재들은 그 자체로 위협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타인을 소멸시켜야 내가 생존할 수 있다는 감각이야 말로 인류가 비극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원인일지 모른다.
<컨택트>가 낯선 존재들을 이해의 대상으로 사유했다면 <프로젝트 헤일메리>(2026)는 한걸음 더 나아가 생존을 위한 협력의 대상으로 제시한다. <컨택트>는 3000년 뒤에 인류에게 도움을 주게 될 존재가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 상대의 언어를 파악하는 과정에 집중한다. 반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아스트로파지에 의해 태양의 복사 에너지가 감소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지금 당장 필요한 협력의 과정에 관심을 둔다. 태양의 온도가 내려가며 지구의 기온도 내려가는 파국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전우주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관점이다. <컨택트>와 마찬가지로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인간은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우주적 존재들과의 관계 안에서 깨닫고 변화하고 수용하는 수많은 행위자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레이스(라이언 고슬링)라는 인간, 로키라는 이름으로 의인화된 외계인, 익숙한 방식으로 인격화된 두 존재가 서사의 중심이긴 하지만, 태양 에너지를 감소시키는 아스트로파지와 이를 분해할 수 있는 타우메바 또한 살아 역동하는 생명체로서 각자의 캐릭터성을 지니고 사건을 이끈다. 인간뿐 아니라 미생물과 별까지 모두 사건의 행위자로 작동한다. 인간이 광활한 우주에 흩어진 여러 생명체 중 하나란 사실은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더 이상 특별한 진실이 아니다.
이를 의도하기 위함일까?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장면 안에는 유독 수없이 많은 빛나는 별들이 배경을 가득 채운다. 인류의 시간성 안에서 행성과 행성 사이의 거리는 초월적이다. 하지만 우주를 채우고 있는 미생물들의 관점에서 인류의 시간성은 무의미하다. 존재한다는 사실, 각자의 욕망으로 운동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그들의 존재를 감각하게 한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이 사실을 '외로움'의 정서로 읽어낸다. 아스트로파지를 소멸시키고 지구의 온도를 다시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맡아야 하는 임무의 핵심은 '복귀 불가능'이다. 편도행 연료만 실을 수 있는 우주선을 타고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스스로의 목숨을 희생해야 하는 것은 수없이 반복해온 '영웅서사'일 뿐이고 <프로젝트 헤일메리> 또한 이 서사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대신 돌아올 수 없는 미션을 맡아야 하는 인물의 내면에 심겨진 외로움만큼은 외면하지 않는다.
그레이스는 기성 물리학자들을 비판했단 이유로 학계에서 추방당했고 누구도 풀지 못한 아스트로파지 복재 방법을 발견했지만 끝내 지구로부터도 추방당한다. 임무를 맡지 않겠다고 발버둥 치는 그레이스에게 인류는 당신을 영웅으로 받아들일거라는 총 책임자 에바(산드라 휠러)의 말은 우리가 얼마나 손쉽게 영웅서사를 소비해왔는지 깨닫게 한다. 우리는 영웅의 죽음을 숭고하게 기념하면서도, 그가 감내해야 했던 고독에는 무심하다. 영웅은 구원을 위해 호출되지만, 그 과정에서 한 존재로서의 삶은 지워진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다"라는 햄릿의 질문 역시 존재론적 사유로만 소비되었을 뿐, 고통 속에서 내뱉어진 절박한 외침으로 이해되지는 못했다. (이를 정확히 인식시킨 작품이 바로 <햄넷>(2026)이다) 어쩌면 영웅이란 가장 찬양받으면서도 가장 철저히 대상화된 존재인지도 모른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이 사실을 첫 장면에서부터 인식시킨다. 우주선에 탑승할 때부터 강제로 수면상태였던 그가 불현듯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 그 어떤 기억들로부터도 차단된다. 평행하게 진행되는 지구 서사와 우주 서사가 교차하기 전까지 관객들은 그와 똑같은 감각으로 그는 누구인지, 그곳은 어디인지 감각해야 한다. 그레이스가 처음으로 해치를 열고 우주 밖으로 나가려 할 때 그는 머뭇거리며 뒤돌아 들어왔다. 그의 공포심은 눈 앞에 펼쳐진 별들과 록키의 우주선이 아니라 그 사이를 채우고 있는 깊은 심연 때문에 발생했다. 비록 영화는 그 순간을 희극적 방식으로 풀어내지만 여기서의 희극은 그의 공포를 비극으로 소비하지 않으려는, 혹은 관객을 그에게 더 깊게 동화시키려는 전략이다. 그 효과는 록키가 그레이스를 위해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연료를 빌려주는 순간 발생한다. 록키의 제안에 눈물을 보이던 그레이스는 그제서야 처음으로 영웅으로서의 속내를 드러내보인다. 타인에 의해 강제된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어쩌면 영웅도 불가능한 일이란 사실, 영웅에게 강제된 행동 강령 속에서 지독한 고독을 감내해야 했던 그의 속내가 드러날 때에야 비로소 관객은 그레이스를 한 존재로서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영웅의 죽음과 희생보다 그의 삶과 생명을 더욱 찬양한다는 사실은 록키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24명의 대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록키는 그레이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마다 극도로 흥분한다. 그의 신체 반응은 오랜 시간을 우주에서 홀로 지낸 감각으로부터 비롯한다. 과학자도 아니고 엔지니어로서 자신의 별을 살리기 위해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은 록키에게 곧 죽음이자 소멸을 의미했을 것이다. 록키의 수다스러움은 오랜 시간을 죽음과 같은 침묵 속에서 지내야 했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며 그레이스 곁을 떠나지 않으려는 그의 집착은 또 다시 홀로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부터 출발한 감각이다. 록키의 영웅적 행동은 이러한 감각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레이스의 영웅적 면모 뒤에 극심한 고독이 숨겨져 있다면 록키에겐 죽음에 대한 공포가 숨겨져 있다. 서사는 그들을 충분히 영웅화하고 있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영화적 태도는 그들 또한 우주의 한 피조물로서 역동하는 에너지를 품고 있는 행위자들로 받아들인다.
<컨택트>에서 루이스는 미래의 딸이 던진 질문으로부터 현재의 해답을 찾아낸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논제로섬 게임'이다. 경쟁 속에서도 양쪽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 반드시 한쪽의 패배를 전제로 하는 인간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공존의 가능성을 사유하게 만드는 개념이다. 그러나 이 개념은 <컨택트>에서 하나의 가능성으로 제시될 뿐, 온전히 실현되지는 않는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이르러서야 이 논리는 비로소 구체적인 관계로 구현된다. 그레이스와 록키의 협력은 단순히 과학적 문제 해결을 위한 연대가 아니다. 고독과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서로 다른 정동이 맞닿을 때, 그들은 비로소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된다. 협력은 이성의 선택이 아니라, 감정이 만들어낸 필연에 가깝다.
마지막 순간, 록키를 구하기 위해 지구로의 복귀를 포기하는 그레이스를 위해서 영화는 비틀즈의 'Two of Us'를 들려준다. 'We're on our way home'이라는 가사 속 '우리'에는 지구가 포함되지 않기에 ‘집’ 또한 지구가 아니다. 그레이스가 돌아갈 곳은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함께 존재할 수 있는 관계 그 자체다. 그렇다면 질문은 다시 지구로 돌아온다. 왜 그에게 지구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장소가 되었을까. 타자를 이해하려 했던 인간은 끝내 공존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그 결과 지구는 수많은 관계들이 단절된 공간으로 남겨졌기 때문은 아닐까?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그려내는 우주적 협력은, 어쩌면 이미 너무 늦어버린 지구를 우회하여 비로소 가능해진 하나의 비극적 상상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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