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를 "맡고 있다"고 재차 발언하며 미국이 베네수엘라 통치에 나설 것인지에 대한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일부 국가들은 독재 청산을 명분으로 미국을 지지했지만 트럼프 정부는 즉각적 선거에 미온적 반응을 보이며 베네수엘라 민주주의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마두로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마두로 정권 부통령에게 권력을 남겨 두고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를 포함해 베네수엘라 야권과의 협력엔 거리를 두는 모순되는 태도를 취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이 국제법적 문제를 야기한 이번 군사 작전에서 최소한의 명분도 없이 석유 산업 등 경제적 이익과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패권만 강조하는 모습이 우려를 키운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이하 현지시간) 플로리다주에서 워싱턴DC로 돌아오는 전용기(에어포스원)에서 베네수엘라를 누가 맡고 있냐는 취재진 질문에 "우리가 맡고 있다(we're in charge)"고 답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생포 뒤 3일 기자회견에서 새 지도부로 정권 이양이 있을 때까지 "우리가 그 나라(베네수엘라)를 운영(run)할 것"이라고 발언한 데 이은 것이다. 4일 트럼프 대통령은 "제대로 처신하지 않으면 2차 공습을 가할 것"이라며 베네수엘라에 대한 위협을 이어가기도 했다.
다만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대통령 발언이 "정책 운영"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직접 통치 가능성에 선을 그으려 했다. 루비오 장관은 4일 미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현재 베네수엘라와 전쟁 중이냐는 질문을 받고 "전쟁은 없다. 우린 마약 밀매 조직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지 베네수엘라와 전쟁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루비오 장관은 베네수엘라를 누가 "운영(run)"하고 있냐는 질문을 받고 사람들이 그 단어에 "집착"하고 있다고 불평하며 "(국가) 통치(running)가 아니라 정책을 운영(running policy)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린 베네수엘라가 특정 방향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그것이 베네수엘라 국민에 좋을 뿐 아니라 우리 국가 이익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루비오 장관은 이날 미 CBS 방송에서도 베네수엘라 '운영'에 대한 질문을 받고 미국이 베네수엘라 연안에서 제재 대상 유조선을 봉쇄하고 있는 것을 언급하며 "대통령이 봉쇄를 계속하겠다고 말할 때 가리키는 통제 방식"이라고 말을 돌리기도 했다.
루비오 장관은 그러나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점령할 계획이 전혀 없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대통령은 모든 사안에 대해 항상 선택권을 갖고 있다"고 답해 이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마두로 생포 관련 국제사회의 폭넓은 비판에도 프랑스, 우크라이나 등 일부 국가들은 독재 축출을 명분으로 미국을 지지했지만 정작 미국은 석유 산업과 서반구 패권에 대해서만 언급할 뿐 베네수엘라 민주주의 확립에 대해선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우선 이번 축출은 현재까진 마두로 '정권'이 아닌 '개인'에 국한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부정선거 의혹을 들며 마두로 정권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아 왔지만, 마두로 생포 뒤 현 정부 부통령인 델시 로드리게스를 협력 상대로 지목했다.
마두로를 지지하고 미국을 규탄했던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권한대행은 4일 입장을 바꿔 미국과의 협력 의사를 밝혔다. 그는 이날 소셜미디어(SNS)에서 "세계, 그리고 미국을 향한" 성명을 발표하며 "우린 국제법 틀 안에서 공동 발전을 향한 협력 의제에 미국을 초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우리 국민, 그리고 우리 지역은 전쟁이 아닌 평화와 대화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전용기에서 취재진에 로드리게스 권한대행이 미국에 협력하지 않을 경우 "마두로보다 더 나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기술관료 성향의 로드리게스가 베네수엘라의 석유 산업을 잘 관리해 트럼프 당국자들에 깊은 인상을 남기며 이미 몇 주 전 마두로를 대체할 인물로 낙점됐다고 전했다. 미 고위 당국자는 "로드리게스가 이 나라(베네수엘라) 문제의 영구적 해결책이라고 보는 건 아니지만, 그(마두로)보다 훨씬 더 전문적 수준에서 협력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신문에 설명했다.
트럼프 정부는 반면 베네수엘라 야권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야권은 지난 2024년 대선을 부정선거로 보고 승리를 주장했고 미국도 이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마두로 정권의 정통성을 부인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3일 기자회견에서 야권 지도자 마차도가 베네수엘라 국민의 "지지와 존경"을 받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며 마차도가 지도자가 되긴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대선의 야권 후보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스페인으로 망명한 곤잘레스는 4일 소셜미디어에서 영상성명을 통해 자신이 베네수엘라 대통령이라고 밝힌 상황이다.
루비오 장관도 4일 NBC에서 마차도와 협력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고 "우린 즉각적 현실을 다루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현재 베네수엘라엔 거대 다수 야당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즉각적 선거에 대해서도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 전용기에서 베네수엘라에 이른 시일 내 선거를 치를 것을 요구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글쎄, 상황에 달렸다"며 "우선 문제를 해결하고 준비되도록 해야 할 것 같다. 나라가 엉망이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석유 회사들이 베네수엘라에 들어가 "기반시설을 재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루비오 장관도 같은 날 CBS에 즉각적 선거 요구가 "터무니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민주주의 전환에 대한 합의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며 "니콜라스 마두로가 체포된 뒤 24시간 밖에 안 됐는데 모두가 왜 내일 선거가 예정돼 있지 않냐고 묻고 있다. 터무니없다. 이런 일은 시간이 걸린다. 절차가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는 마두로 축출 관련 민주주의보다는 베네수엘라의 석유 산업에 치중해 설명 중이다. 4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지은 석유 산업 시설을 "그들(베네수엘라)이 가져갔다"고 강조하며 대형 석유사 진출 및 효율적 석유 생산 필요성을 주장했다. 베네수엘라는 우고 차베스 정권 시절 석유 산업을 국유화하고 미국 기업 자산을 몰수했다.
루비오 장관은 CBS에 미국의 베네수엘라 유조선 봉쇄 관련 "석유에서 나오는 돈이 국민들에 돌아가지 않고 꼭대기에 앉은 사람들에게 강탈되고 있다"며 나포를 정당화하기도 했다.
미국은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 장악을 통한 중국 견제 및 서반구 패권 확립 목표를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루비오 장관은 4일 NBC에 "미국엔 석유가 충분하다"며 "우리가 용납할 수 없는 건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이 미국의 적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왜 중국이, 러시아가, 이란이 그들(베네수엘라)의 석유를 필요로 하나? 그 나라들은 이 대륙에 있지도 않다"며 "여긴 서반구다. 우리가 사는 곳이고 우린 서반구가 미국의 적과 경쟁자들의 작전 기지가 되는 걸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루비오 장관은 다만 CBS의 석유 산업 장악이 이번 사태의 배경이냐는 질문에 대해선 "아니다. 우린 마약 밀매범을 체포했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를 보면 브라질 대통령 외교정책 수석 고문 셀소 아모림은 이번 사태에 대해 "가장 심각한 건 이러한 개입주의로의 회귀가 위장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들어갔다'는 식의 변명조차 없다. 명백한 경제적 목적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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