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상공에 뜬 미군 F-16보다 더 거슬린 건, 그 뒤에 나온 한 문장이었다. 주한미군은 '국방부 장관과의 통화'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통해 "우리는 대비태세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다"고 반박 의사를 밝혔다. 사과했느냐 아니냐의 공방을 넘어 말의 방향이 분명했다. 누가 이 사안을 정의하고, 누가 끝내는지에 대한 권한을 둘러싼 신호처럼 들렸다.
통보가 있었는지, 보고가 늦었는지로만 이 사건을 정리하면 핵심을 놓친다. 설령 '통보'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사전협의·위험평가·통제의 빈자리를 메우진 못한다. 서해는 북한만 읽는 공간이 아니다. 중국도 읽고, 국내 여론도 읽는 곳이다. 그런 공간에서 "사과하지 않는다"는 태도가 가능했다면, 문제는 감정이 아니라 규칙과 절차의 구멍일 수 있다.
<조선일보>는 기사를 통해 "건건이 부딪치는 한미동맹"이라 부른다. 그런데 동맹의 임무가 넓어지고 위험의 성격이 바뀌는 국면에서 마찰이 늘어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상한 건 위험은 커지는데 "조용히 넘어가자"는 주문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동맹은 구호가 아니라 제도다. 제도가 따라오지 못하면, 바뀌는 건 위험이고 사라지는 건 국익이다.
'동맹 균열'이 아니라 '임무 확장'이 만든 새로운 마찰
요즘 한미 사이의 마찰을 '한국의 정치 상황' 탓으로만 돌리는 건 손쉬운 해석이다. 하지만 본질은 더 구조적이다. 주한미군의 기본 임무가 겉으론 한반도 억제·방어라는 점이 유지된다지만 사실 임무가 인도-태평양 전략의 전구 논리와 더 촘촘히 맞물리면서, 훈련·정찰·기동의 바깥쪽이 넓어지고 있다. 범위가 넓어지면, 한국이 떠안는 위험도 북한 변수만이 아니라 중국 변수까지 함께 커지는 것이 상식이다.
이 변화에 대한 대응은 '친미냐 반미냐'의 문제가 아니다. 위험의 구조가 바뀌면 동맹의 운영 규칙도 바뀌어야 한다는 문제다. 서해에서의 활동은 단지 군사훈련이 아니라 외교적 신호이며, 경제적 파장을 동반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런데 그 신호가 어떤 절차로 검토되고, 어떤 위험평가를 거쳐 조정되며, 누가 최종적으로 책임을 지는지 불명확하다면, 그건 동맹이 튼튼해서가 아니라 동맹이 건강하지 않아서 생기는 위험이다.
"건건이 부딪친다"는 말이 불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임무가 넓어지고 위험이 커지면 따질 게 늘어나는 게 정상이다. 따지지 않는 게 비정상이다. 문제는 마찰이 아니라 마찰을 '동맹 흔들기'로 낙인찍어 논쟁 자체를 봉쇄하는 태도다.
비대칭 동맹에서 '규칙'은 통제가 아니라 '비용의 정치'여야 한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를 피하지 말아야 한다. 비대칭 동맹에서 '규칙'은 종종 통제장치가 아니라 관리장치다. 패권국이 사활적 이익을 걸었다고 판단하면 문서의 조항은 예외를 만나기 쉽다. 사전협의와 SOP(Standard Operating Procedure, 표준 운영 절차)를 내세우는 접근이 자칫 제도주의적 낙관으로 보일 수 있는 이유다. 더구나 우리가 '공동 위험평가'와 '책임배분'을 요구하는 순간, 미국은 그에 상응하는 역내 기여를 청구할 가능성이 크다. 미군의 자율성을 억제하려다 한국군이 대만해협·남중국해의 전구 논리에 자동 연동되는 '연루의 내면화'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규칙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어야 한다. 한국이 원하는 것은 '거부권'이 아니라 '비용의 공유'다. 절차는 미국을 묶어두는 족쇄가 아니라, 일방 행동의 비용을 올리고 사후 정산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여야 한다. 그리고 그 장치가 작동하려면 종이 위 규칙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지 제공, 훈련 편의, 군수·인프라 지원, 방위비 분담 같은 협상 레버리지, 즉 '가격표'가 함께 있어야 한다. 동맹을 관리하는 것은 선의가 아니라 힘의 교환이고, 국익의 대차대조표다.
이 점에서 <조선일보>의 프레임은 한 번 더 위험하다. '부딪힘'을 동맹의 위기로만 묘사하면, 한국이 가져야 할 협상 레버리지 자체를 '불경'으로 만들어버린다. 동맹을 숭배하는 순간, 우리는 협상을 포기하게 된다.
연루를 막는 '위기관리 규칙'과 거래 가능한 레버리지
우리가 요구해야 할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연루를 막는 위기관리 규칙이다. 다른 하나는 그 규칙을 현실에서 작동시키는 거래 가능한 레버리지다. 이 둘이 결합되지 않으면, 규칙은 공허해지고 거래는 일회성으로 흩어진다.
첫째, 고위험 활동에 대한 '사전협의'를 단순히 거부권이 아니라 위험조정 절차로 설계해야 한다. 서해·동중국해 연동 훈련, 민감지역 근접 비행, 전략자산 전개처럼 역내 분쟁을 자극할 수 있는 활동은 최소한 사전 위험평가-협의-조정의 표준 절차로 묶여야 한다. 핵심은 "하지 마라"가 아니라 "그 활동이 한국의 위험을 키운다면, 조정과 비용분담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다"는 원칙이다.
둘째, '전략적 유연성'의 안전장치는 선언이 아니라 실행규정이어야 한다. "한국민의 의지에 반해 역내 분쟁에 연루되지 않는다"는 말이 살아 있으려면, 어느 수준의 작전이 연루로 간주되는지, 어떤 경우에 한국 정부의 동의가 필요한지, 위반 시 어떤 조치가 가능한지까지 운영지침과 SOP로 구체화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맹은 '연동의 관성'에 끌려간다.
셋째, '공동 위험평가'는 공동계획이 아니라 연루 차단 장치로 못 박아야 한다. 공동이라는 말이 자동연동의 통로가 되지 않도록, 범위를 명확히 제한해야 한다. 목표는 전구 기여가 아니라 한반도 방어 임무 훼손 방지, 우발확전 방지, 한국 영토·영해·영공의 위험 최소화여야 한다. 정보 공유와 위기관리 협력은 하되, 역외 분쟁에 대한 군사 개입은 별도의 정치결정이라는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넷째, 가장 현실적인 질문은 "규칙을 어기면 무엇을 잃는가"에 답할 레버리지를 준비해야 한다. 한국이 가진 카드는 생각보다 많다. 기지 접근과 사용 조건, 훈련 편의 제공, 군수·정비·인프라 지원, 방위비 분담 협상, 국내 정치적 정당성은 모두 협상력이다. 일방적 행동이 반복될수록 이 카드들의 '가격'이 올라간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다시 말해, 통제는 선언이 아니라 정산 가능한 거래로 만들어야 한다.
9·19와 연합훈련: '강경/유약'이 아니라 '억제+위기관리'의 조합
<조선일보>는 9·19 군사합의 복원 논의를 대비태세 제약으로 단정하고, 연합훈련 조정 문제를 동맹 균열의 징후로 해석한다. 그러나 9·19는 작전상 제약이 있는 동시에 접경에서 우발충돌을 줄이고 확전 위험을 관리하는 위기관리 장치이기도 하다. 억제만으로 우발 충돌이 사라지지 않고, 위기관리만으로 도발이 억제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둘의 균형이다.
연합훈련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의 문제다. 작전효과, 안전, 접경관리, 외교적 파장, 지역사회 부담을 함께 계산해야 한다. 훈련을 축소하자는 주장도, 확대하자는 주장도 결국은 국익의 비용-편익표 위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동맹이니까 무조건"이라는 말이 가장 위험한 이유는, 그 말이 계산을 멈추게 만들기 때문이다.
서해 전투기 논란은 사과의 문제가 아니다. 동맹을 둘러싼 권력관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한국이 그 관계를 어떤 규칙과 어떤 레버리지로 관리할 것인지의 문제다. "사과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문제라기보다, 그 문장이 가능하게 만든 구조가 문제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동맹이 흔들리는가"가 아니라, "동맹이 바뀌는데 우리는 무엇으로 관리할 것인가"다. 규칙만으로는 부족하고, 거래만으로도 지속되지 않는다. 연루를 막는 위기관리 규칙과 비용을 공유하게 만드는 레버리지가 함께 갈 때, 동맹은 비로소 한국의 안전을 위해 작동한다.
갈등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침묵이다. 바뀌는 임무와 커지는 위험 앞에서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 그 침묵이야말로 우리의 국익과 한반도의 평화를 갉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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