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탈팡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 다른 한쪽에선 무의미한 불매운동이라 코웃음친다. 맞다. 단순한 불매운동이라면 우린 과거 수많은 실패 사례들을 열거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조선일보, 삼성 불매운동이다. 불매운동은 기업의 재화와 서비스 구매를 보이콧함으로써 그 기업에 항의하는 방식이다. 'NO재팬'은 기업을 상대로 한 게 아니라서 조금 성격이 다르다. 오히려 1998년 IMF 구제금융 사태의 금모으기처럼 애국심과 적대감이 적당히 버무려진 국채보상운동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탈팡의 경우는 의미를 좀 더 부여할 수 있을만하다. 구독경제와 알고리듬에 저항하는 불매운동은 여태껏 없었다.
최근, 특히 코로나를 거치며 급성장한 일부 빅테크 기업들은 흔히 혁신이라 불리긴 하지만 사실 별로 혁신적이지 않다. 특히 쿠팡이나 알리바바, 아마존 같은 기업들이 그렇다. 그나마 알리바바나 아마존은 물류와 유통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기술 혁신을 도모하고 있지만 쿠팡은 그런 것마저도 없다. 그냥 자본주의 그 자체를 축소해 가두리 양식장(Lock-In) 플랫폼에서 구현한 영악하고 노쇠한 왕국의 현현일 뿐이다.
쿠팡같은 빅테크(?) 기업의 특징은 시장 선점과 장악으로 덩치를 키웠다는 점이다. 그 재료는 첫째로 막대한 양의 개인 정보다. 둘째로는 AI 등 기술로 무장한 알고리듬이다. 이들은 실제 물리적 혁신(전통적 기술혁신)을 내놓아 세상을 바꾸고 있는 빅테크 기업들과는 다르다. 왜 쿠팡을 영악한 '왕국'이라 부르는지 쿠팡이 스스로 혁신이라 부르는 설명을 인용하며 설명해 보자.
쿠팡이 자랑하는 WMS(Warehouse Management System)는 말은 거창해 보이지만, 그 의미를 들어보면 의약품의 첨부문서나 가전 제품의 사용 설명서에 가깝다. 쿠팡 공식 뉴스룸에 따르면 "쿠팡의 인공지능 WMS 시스템은 물류센터 안에서 어떤 작업자(혹은 로봇)가 상품을 집어올 것인지, 여러 상품을 집어오기에 가장 짧고 빠른 이동경로는 무엇인지, 어떤 크기의 포장재에 담을 것인지 등 작업자가 알아야 할 세부사항을 실시간으로 안내해 준다." 이런 "인공지능과 자동화기술 덕분에 쿠팡은 수백만 건의 주문을 빠르게 처리하면서도 직원들이 편하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고 한다.
또 쿠팡의 '랜덤스토우(Random Stow)' 방식이란 건 다양한 상품을 "컴퓨터가 빅데이터를 분석해 각 상품의 판매량과 판매시기 등을 고려해서 작업자의 동선이 가장 짧아지도록 배치"하는 걸 말한다. "겉보기에는 '랜덤(무작위)'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계획적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이렇게 상품들을 랜덤스토우 방식으로 진열해놓은 후, 컴퓨터는 집품 효율을 최대화할 수 있도록 작업자의 동선을 안내" 해 준다.
또한 쿠팡은 일반적인 물류센터에서 하는 것처럼 "많은 주문을 한꺼번에 분류하고 순서에 맞춰 집품과 포장 등의 과정을 진행"하는 걸 거부한다. "하루 수백만 단위의 주문이 들어오는 곳이라면 주문이 쌓일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낭비"이기 때문이다. "고객의 결제가 완료됨과 동시에 각각의 주문이 WMS에 등록되며 배송 프로세스가 즉각적으로 시작"되고 "개별 주문마다 들어오는 즉시 집품, 포장, 출고과정을 거친다."
여기에서 인간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중세 왕의 머리(리바이어던)같은 거대한 '창고(Warehouse)의 뇌'가 존재하고, 그 창고 안에서 노동자는 뇌가 제거된 손발이 된다. 노동자에게 뇌는 필요없다. 아니 개별 노동자가 뇌를 쓰는 순간 이 알고리듬과 물류 시스템은 붕괴된다. 노동자가 알고리듬이 만든 동선을 벗어나면 경고음이 나온다. 관리자는 이 '뇌 없는 동선'을 관리하는 또 다른 부품이다. 알고리듬으로 노동 효율과 소비 패턴을 분석해 재화의 생산부터 판매, 전달(배달) 과정을 구성해 거기에 인간 노동을 부품처럼 배치하고 끼워 맞춤으로서 새벽배송 같은 '노동의 혁신'(?)을 달성한 것이다. 인간은 쿠팡의 창고에서 부품이 되어 주체성을 제거당하고, 소비자는 그런 '인간 부품'들이 주물한 무채색의 세계 속에서 AI혁신으로 포장된 새벽배송에 익숙해진다. 쿠팡의 창고에서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굴고 있는 건 AI이고, 기계처럼 돌아가는 건 사람이다. 기계와 사람이 전복되고, 기계와 사람의 경계가 붕괴된다.
지금 쿠팡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AI시대, 21세기 '인간 소외' 현상의 종합 버전이다. 노동자는 AI가 구현한 시스템의 부품처럼 일하다 과로로 죽어나가고, 소비자 스스로 갖다 바친 '개인정보'는 역으로 소비자들을 향한 무차별적 위험으로 변해버렸다. 쿠팡이 자랑하는 그 AI시스템이 만든 기계왕국의 실체이고 '진실의 사막'이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소외시킨다는 건 이솝우화만큼이나 익숙한 클리셰가 되면서 그 아우라를 상실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이야기다. 더욱이 AI시대와 초연결시대에 인간은 어느때보다 더 스스로의 노동이나, 소비에 있어서 '소외'에 노출돼 있다. 쿠팡 불매를 두고 무슨 거창한 철학적 얘기냐고 비웃을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쩌겠나.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스스로를 성찰하고 주변을 돌아보야 할 가장 중요한 시점이니.
또다른 예를 들어보자. 배달의 민족은 '앱'을 만들고 AI 알고리듬을 이용한 최신 기술로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과 자영업자들의 판매 패턴, 그리고 물리적 거리와 배달 노동자의 생체리듬을 축적한 후, 앱을 통해 그들의 다양한 '니즈'들을 중개하고 있다. 하지만 조리된 음식, 배달된 음식 모두 인간의 노동력으로 이뤄져 있다. 배민은 인간의 노동에 수수료 붙여 제3자가 떼가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소비자가 얻는 편의는 실제보다 더 과장돼 있었다. 생활 패턴의 변화가 '배달 서비스'를 이끈 것이지, 배달 앱이 '혁신'을 통해 소비자의 삶에 혁명을 가져다 준 게 아니다. 그들이 연구하고 있다는 AI라든가, 빅데이터 기술은 이윤을 위한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그 자체로 거대한 프로파간다다. 정보를 제한하고 왜곡하고 조작해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이 혁신임을 믿게 한다. 그 자체로 '통제'다. 그 시스템에 균열을 일으킨 사건이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 그리고 부품처럼 사용돼다 죽어간 노동자 사망 사건들이다. 쿠팡은 10만 명을 고용할 정도의 대기업이고, 추정에 따르면 생산자와 택배기사(특수고용) 등 40만 명의 '먹사니즘'에 직간접 영향을 미치는 유력한 플랫폼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그늘'까지 용인될 순 없다. 죽거나 다친 사람은 이 거대한 '소외 범죄' 현장의 증거들이다. 이걸 외면하면 우린 그저 알고리듬의 노예가 될 뿐이다.
최근 노동자 출신의 한 작가가 쿠팡의 일자리보다 더 못한 일자리들도 많다는 취지의 칼럼을 게재해 꽤 큰 논쟁으로 번진 적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쿠팡의 케이스보다 더 교묘한 노동 소외는 드물다는 점은 지적될만 하다. 물리적으로 쿠팡보다 더 힘들고 열악한 노동 현장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쿠팡과의 프로파간다 싸움이 폄훼당할 이유는 없다. 모두 인간 존재의 근원을 건드리는 것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쿠팡이라는 거대한 기술 프로파간다의 바다 속에서 헤매이며 노동자든 소비자든(노동자가 소비자다) 다양한 형태의 착취에 노출된 건 사실이다. 지금 쿠팡이 맞이하고 있는건 터져나오기 시작한 부품들의 비명 소리다. 소외된 인간들의 임계점 넘은 아우성이다. 그리고 그들이 고안한 AI가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대부분 자발적으로 헌납한) 개인정보의 포식에 따른 구토 현상이다. 우리들은 어느틈에 무한대로 돌아가는 알고리듬의 톱니바퀴에 몸을 던진 찰리 채플린이 되었다.
러다이트(기계파괴) 운동가들은 최근까지 '퇴영적이고 후진적인 사람들'이란 깊은 오해를 받았지만, 1800년대 산업 혁명 당시 영국에서 그것은 결코 무지에 의한 어리석은 행동이 아니었으며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한 상징적 투쟁이었다는 증거들이 후대의 학자들에 의해 많이 발굴되고 있다. '탈팡'은 그런 면에서 조금 더 고차원적인 의미로 규정돼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21세기 '인간 소외'에서 탈출하려는 노력으로, 알고리듬을 '탈은폐'하려는 시도로, 우리가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걸 증명하는 시도로, 좀 더 철학적인 저항으로 규정돼야 한다. 고로 묻고 싶다. "너희가 쿠팡을 믿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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