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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에게서 배워야 할 것

[기고] 기술보다 태도, 성과보다 질서

중국의 기업 리더십을 다루는 강의에서 나는 오랫동안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를 ‘늑대형 리더십’의 전형으로 설명해왔다. 군 장교 출신의 강한 통제, 성과 중심의 조직 운영, 그리고 국가 주도 산업 전략의 수혜자라는 도식이었다. 화웨이의 성공 역시 중국식 발전 모델의 산물로 단순화해 이해해왔다.

그러나 최근 국제 프로그래밍 대회(ICPC) 수상자들과 나눈 런정페이의 장시간 발언을 읽으며, 이 해석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워졌다. A4 10여 장 분량으로 회자된 그의 발언에는 구호도, 국가주의적 선동도 없었다. 대신 오늘날 기술·교육·산업 담론이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를 정확히 짚어내는, 드물게 절제된 진단이 담겨 있다.

그가 던진 문장은 짧았다.

“교육은 교육이고, 상업은 상업이다.”

이 말은 기술 시대의 거의 모든 혼란이 시작되는 지점을 정확히 겨냥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인식이 런정페이가 반복해 말해온 ‘늑대 정신’과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 늑대 정신을 공격성과 속도의 은유로 지나치게 단순화해 이해해왔다는 데 있다. 런정페이가 말하는 늑대는 포식의 상징이 아니라, 질서·균형·시간 감각 위에서 작동하는 생존 방식에 가깝다.

산양에서 늑대로: 생존 전략에서 질서의 철학으로

1998년, 런정페이는 <화웨이의 붉은 깃발은 언제까지 펄럭일 것인가>라는 글에서 화웨이의 초기 전략을 '산양'에 비유했다. 산양은 살아남기 위해 더 빨리, 더 높이 달린다. 글로벌 통신 장비 기업들과의 경쟁 속에서 창업 초기 화웨이의 처지는 그와 같았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선을 긋는다. 산양의 전략은 생존에는 유효했지만, 성숙한 조직의 철학이 될 수는 없다고. 그래서 그는 말한다. 이제 화웨이는 산양이 아니라 늑대가 되어야 한다고.

여기서 늑대는 약육강식의 은유가 아니다. 런정페이는 '낭패(狼狈)'라는 고사를 통해 이를 설명한다. 앞다리가 긴 '낭'과 뒷다리가 긴 '패'가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곧바로 균형을 잃고 넘어진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공격성과 확장성만으로는 지속될 수 없으며, 이를 지탱하는 제도·플랫폼·관리 체계가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이때 늑대 정신은 세 가지로 수렴된다. 민감한 후각, 불굴의 진취성, 그리고 팀플레이. 이는 단기 성과주의나 개인 영웅주의와는 정반대의 윤리다. 늑대는 혼자 사냥하지 않으며, 무리를 소모시키면서까지 앞서 나가지 않는다. 런정페이 리더십의 핵심은 속도보다 질서, 돌파보다 지속에 있다.

교육과 산업: 경계를 지킬 줄 아는 사회만이 오래 간다

이 늑대 정신은 교육과 산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학교는 0에서 1을 연구하고, 기업은 이를 산업 현실로 바꾼다."

이 말은 단순한 역할 분담이 아니다. 각자의 논리가 침범해서는 안 될 선이 어디인지를 분명히 인식하라는 요구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산학협력’이라는 이름 아래 이 경계를 너무 쉽게 허물어왔다. 대학은 즉시 활용 가능한 인력을 양산하는 훈련소가 되었고, 기업은 대학을 값싼 연구 외주 기지처럼 소비한다.

그 결과는 분명하다. 기초 연구는 단기 성과 압박 속에서 위축되고, 산업 응용은 깊이를 잃는다. 0에서 1로 가는 사유는 빈약해지고, 1에서 N으로 확장되는 산업화 역시 공허해진다.

런정페이의 경고는 단순하지만 무겁다. 교육은 실패해도 되는 영역이어야 하고, 기업은 실패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계산적이어야 한다. 이 질서가 무너질 때 교육은 천박해지고, 산업은 단기 이익에 중독된다. 늑대 정신이란 무작정 달리는 능력이 아니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아는 절제의 감각이다.

AI를 대하는 태도: 유행이 아니라 산업의 뿌리를 보라

모두가 AI를 외칠 때, 런정페이는 의도적으로 속도를 낮춘다. 그가 경계하는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둘러싼 흥분과 과잉된 서사다. 범용 인공지능이나 초인공지능에 대한 철학적 논쟁보다, 그는 먼저 묻는다. 그것이 산업 현장에서 어떤 시간표를 갖는지, 그리고 그 시간을 누가 감당해야 하는지를.

그래서 그의 시선은 늘 아래로 향한다. 석탄 세척 효율 0.1%, 고로의 열효율 1%. 발표장에서는 박수를 받기 어려운 수치지만, 그는 여기에 국가 단위의 물량과 에너지 소비, 장기 운영 비용을 곱한다. 그 순간 AI는 미래의 신화가 아니라 오늘의 계산서가 된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네트워크 없는 연산력은 정보의 고립 섬이다.”

AI 경쟁을 파라미터와 연산량의 과시로 이해하는 관점에 대한 정면 비판이다. 기술 경쟁은 단일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전쟁이며, 공장·농지·병원으로 연결되지 않는 연산력은 실체 없는 숫자에 불과하다. 늑대는 허공을 향해 포효하지 않는다. 냄새가 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사냥이 가능한 지형과 계절을 계산한다. 런정페이가 말하는 혁신은 선언이 아니라 계산이며, 담론이 아니라 축적이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성공 공식이 아니라 질문할 권리

런정페이의 발언 중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성공을 강요하지 않는 태도다. 그는 청년들에게 “반드시 성공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공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실패 속에서 시험한 가설 하나하나가 다음 선택의 좌표가 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는 낭만적인 위로가 아니다.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조직과 사회가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조기에 소각하는지를 그는 정확히 알고 있다. 너무 이른 성과 압박은 개인의 시간을 단축시키고, 조직의 학습 능력을 마비시킨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청년에게 요구되는 것은 능력이라기보다 속도다. 얼마나 빨리 정답을 찾았는가, 얼마나 빨리 증명했는가. 그 과정에서 질문하는 능력과 의심하는 태도, 돌아가는 용기는 점점 비용이 높은 선택이 된다. 실패할 자유를 잃은 사회에서 도전은 모험이 아니라 도박이 된다.

런정페이가 신뢰하는 인재는 순응형 인재가 아니다. 그는 규칙을 질문하고, 관행을 의심하며, 실패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중요한 것은 말을 잘 듣는가가 아니라, 왜 이 길을 가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가다. 이는 개인의 자질을 넘어 조직 윤리에 대한 요구다.

맺으며: 우리는 어떤 시간 위에 서 있는가?

이제 80세의 노인이 되어버린 런정페이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화웨이의 기술력이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을 대하는 태도, 질서를 구분하는 감각, 그리고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다.

한국 사회는 지금 기술에는 지나치게 빠르고, 교육에는 지나치게 조급하며, 청년에게는 지나치게 잔인하다. 대학에는 산업의 시계를 들이밀고, 기업에는 연구의 시간을 요구하지 않으며, 청년에게는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다. 각 영역이 감당해야 할 시간의 리듬이 복잡히 뒤섞인 사회다.

그 결과 우리는 성과는 넘치지만 성장은 부족한 상태에 이르렀다. 교육은 실험을 멈추고, 산업은 축적을 잃으며, 청년은 질문을 포기한다.

런정페이의 질문은 단순하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알고 있는가. 기다려야 할 시간을 존중하는가. 그리고 공동체를 소모하지 않는 성장을 아직 믿고 있는가?

지금 우리가 달리고 있는 이 속도는, 과연 누구의 시간이며, 누구의 미래를 소진하고 있는가. 그의 질문은 결국 우리 자신을 향해 있다.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주석.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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