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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방송 BJ'에서 '탈출 지원 활동가'로…'너의 연애' 리원이 낙인 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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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방송 BJ'에서 '탈출 지원 활동가'로…'너의 연애' 리원이 낙인 넘는 방식

[성인방송이라는 성착취] 上 성인방송 탈출 상담·여성단체 연계 나선 리원 씨 인터뷰

국내 최초 레즈비언 연애 프로그램 <너의 연애>는 지난 4월 첫 방송 공개 직후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다. 방영 플랫폼인 웨이브의 신규유료가입 견인 1위를 기록함은 물론 X(옛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 1위,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인기 게시글에 올랐다.

대중의 관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출연자 '리원(35, 본명 김리원)'을 향한 비난으로 뒤집혔다. 리원이 과거 인터넷 성인방송 BJ로 활동한 경력이 있어 대중이 보는 방송에 나오는 것이 부적절하며, 남성과 연애를 한 적도 있어 성적 지향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리원은 곧바로 사과문을 올렸다. 그는 성인방송 경력을 인정했으며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이지만 스스로를 부정하고 싶어 남성과 교제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음지에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양지로 올라오려 하나", "레즈비언 망신 다 시킨다" 등의 비난이 쏟아졌고 확인되지 않은 의혹들이 연달아 불거졌다. 결국 <너의 연애> 제작진은 리원이 출연하는 장면을 영상에서 대부분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공격을 받았지만, 리원은 무너지지 않고 자신을 둘러싼 낙인을 넘어서기로 했다. 그는 지난 7월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성인방송 플랫폼에서 탈출하고 싶은 여성들을 상담하는 활동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나아가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의 삶을 바꿀 수 있도록 다양한 일들을 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리원이 시작한 여성 지원 활동은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다. 그는 성인방송 BJ 활동을 중단하고 싶다며 도움을 청한 여성 2명과 상담한 끝에 엔터테인먼트 계약을 해지시켰다. 자신을 응원하는 시민들과 함께 플리마켓을 열어 얻은 수익 278만 원을 여성단체 세 곳에 기부하기도 했다.

4일 서울 소재 자택에서 <프레시안>과 만난 리원은 성인방송 탈출 상담 등 여성 지원 활동을 시작한 배경으로 "(과거의) 나 같은 사람을 더이상 만들고 싶지 았았다"고 말했다. 학비가 필요해서, 가족이 아파서, 생활비가 없어서, 계약 사기를 당해서 등 각자 다른 사정을 가지고 성인방송을 시작하지만 그게 어떤 이유라도 자신이 원할 때 그만둘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사람을 사는 행위, 사람에게 강제로 이익을 취하는 행위는 있어서는 안 된다"며 성인방송과 성매매 등은 궁극적으로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리원과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4일 서울 소재 자택에서 만난 리원(35, 본명 김리원)ⓒ프레시안(박상혁)

프레시안 : <너의 연애> 출연 직후 과거 성인방송 BJ로 활동했단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 성인방송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리원 : 약 10년 전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에서 "월 300~500만 원 보장, BJ 되고 싶으신 분 환영"이라는 공고를 봤다. 당시 내 등록금이 440만 원이었는데 그만큼의 수익을 보장하고 필요하면 숙식도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아프리카(인터넷 방송 플랫폼, 현 SOOP)'가 한창 뜨던 때였고 친구들에게 "입담이 좋아 BJ 해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공고를 올린 A 업체에 찾아갔다.

계약 당시 업체는 "일반적인 방송이다. 신생 플랫폼이지만 너처럼 처음 시작하는 BJ들에게는 오히려 좋은 기회"라며 마스크 쓰고 방송하기만 해도 성공할 거라고 했다. 그래서 처음 방송할 때에는 별다른 노출을 하지 않았고 실제로도 많은 수익을 얻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수익이 줄자 업체는 "다른 언니들 봐라. 얼굴 보여주면서 조금 벗으니까 (수익이) 괜찮지 않느냐. 너도 조금씩만 보여주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라며 내게 노출을 요구했다. 이에 조금씩 노출을 시작하면서 1년가량 성인방송을 이어갔다.

프레시안 : 처음 업체의 설명과 다른 방송을 하게 된 건데, 계약을 해지하고 방송을 그만둘 수는 없었나.

리원 : 업체에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니 "계약 기간이 3년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여기서 말하는 3년은 방송 일수를 말하고 방송하지 않은 날은 계약을 일시 정지한 것으로 여긴다. 매일 방송하지 않는 한 실제 계약 기간은 3년보다 훨씬 길다는 뜻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업체가 해당 내용이 적힌 계약서를 내게 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점이다. 계약서를 달라고 하니 "수많은 BJ 계약서 중 네 것을 어떻게 찾느냐"며 거절했다. 이게 A 업체가 BJ들을 옭아매는 수법이다.

방송을 그만두기 어려웠던 또 다른 이유는 '부모님께 내가 성인방송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질까봐'다. 경제적으로 잘 살다 망한 우리 부모님은 나를 충분히 지원하지 못했다며 평생 부채감을 갖고 사셨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아르바이트를 수없이 많이 했고 그 돈으로 대학을 다니며 부모님께 용돈까지 드렸다. BJ 계약 당시에도 생활고를 겪고 있었는데, 이때 A 업체가 200만 원을 빌려주는 대신 "아직 신뢰가 없다"며 내 부모님 연락처를 가져갔다. 그래서 계약 기간을 남기고 그만뒀다가 부모님께 내 방송 내역이 알려져 엄청난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까 걱정이 컸다.

프레시안 : 억지로 방송을 이어가면서 겪은 어려움은 없었나.

리원 : 성인방송을 시작하면서 생애 처음 자해를 하게 됐다. 방송하면서 시청자와 소통하는 건 좋았지만 어쩔 수 없이 노출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건 너무 싫었다. 아무리 카메라 앞에서만 해도 된다고 해도, 남자가 직접 내 몸을 만지는 게 아니라고 해도 몸을 보여주고 있는 내 모습이 화면에 보이는 게 싫어 자해를 시작했다. 업체에 사정해 방송을 잠시 중단하고 원래 꿈이었던 포토그래퍼 일을 했던 기간이 있는데 이땐 정말 행복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계약을 지키라는 연락이 반복되면서 성인방송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면서 처음 정신과를 가기 시작했다.

신상이 유포되고 지인들이 공격받는 일도 있었다. 성인방송을 하는 동안에는 창피해서 SNS를 하지 않고 주위에도 방송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한 플랫폼 고위관계자가 내 신상을 SNS에 퍼뜨렸고 그로 인해 지인들이 "술집 여자", "스폰녀", "그런 애랑 어울리는 걸 보니 너도 성인방송 하는구나" 등 허위 사실로 인한 공격을 받았다. 아끼는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치는 줄 알았다. 결국 방송을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고 생각해 업체에 위약금 7000여만 원을 내고 완전히 은퇴했다.

▲<너의 연애> 포스터ⓒ웨이브

프레시안 : 과거 남성과 연애한 경험이 있어 "인기를 얻으려고 레즈비언이 아닌데도 거짓말로 방송에 출연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본인의 성 정체성과 레즈비언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한 계기를 정리해 말해줄 수 있나.

리원 : 중학생 시절 한 여자아이에게 '친구로서 좋아하는 게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처음 성 지향성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때는 여자·남자 아이돌 모두 좋아했고, 대학교에 들어와서 했던 첫 연애 대상도 남성이었다. 그런데 남자친구와 연애하는 동안 계속 '여자와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한데 나 여자를 만나고 싶어" 남자친구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헤어진 뒤 처음으로 여성과 연애하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20대 때는 '디나이얼'(스스로의 성 정체성을 무시하거나 모르는 척 부정하는 것) 시기를 겪는 일이 많아 남성과 연애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다 30대 초반 여자친구를 사귀며 내가 범성애자가 아니라 동성애자임을 확실하게 느꼈다. 여자친구를 너무 사랑해서 양녀로 입양하려고까지 했다. 여자친구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내가 보호자가 될 수 없다는 게 너무 서러웠고, 내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으면 사망보험금이 다 애인에게 가길 원했기 때문이다.

평생 같이 살고 싶었던 여자친구였지만 결국 개인 사정으로 지난해 헤어졌다. 그동안에는 내 정체성을 모르는 부모님이 결혼하라고 압박해도 거절하고 여자를 만나 왔는데, 마지막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사람과 이별하니 모든 것이 덧없게 느껴졌다. 도피성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내가 좋다는 남자에게 과거를 터놓고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은 건강하지 않았다. 감금과 폭행이 있었고 내 부모님께 성 정체성과 성인방송 내역을 모두 알리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너의 연애>에 출연한 이유는 이런 인생을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명해지거나 돈을 벌고 싶었으면 이성애자 연애 프로그램을 나갔을 거고, 실제로 여러 차례 출연 제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나답게 살고 싶다는 마음에 모두 거절하고 <너의 연애> 출연을 신청했다. 제작진을 만나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그러나 차마 성인방송을 했었던 일은 말하지 못했다. 이 점은 분명한 내 잘못이고 죄송하게 생각한다.

▲논란의 여파로 리원이 복용하고 있는 정신과 약물. 그는 지난달 폐쇄병동에 입원한 바 있다.ⓒ프레시안(박상혁)

프레시안 : 논란이 커지면서 온라인 괴롭힘이 쏟아졌고 <너의 연애> 출연 분량 대부분도 삭제됐다. 당시 심정은 어땠나.

리원 : 처음 사과문을 올렸을 땐 잠시 동정 여론이 생겼는데, 허위 의혹이 커지면서 "역시 성인방송을 했던 여자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너는 평생 밑바닥 인생으로 살아야 한다" 등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공격이 쏟아졌다. 논란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도 '성인방송 BJ가 다니는 회사'라며 공격을 받았다. 회사가 무슨 잘못이 있나. 합의 끝에 그만 뒀다. 이후 지금까지 실직 상태고 월세를 낼 수익도 벌지 못하는 상황이다.

평소 멘탈이 강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답답하고 억울해 이틀에 한 번꼴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자해하기도 했고 한번은 한강에 뛰어들려고 한 적도 있다.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병원에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해 폐쇄병동에 잠시 입원했다. 폐쇄병동에 가지 않고 버티기만 했으면 정말 죽었을 지도 모른다. 지금은 우울증 약과 신경안정제 등을 복용하면서 안정을 찾았고,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메시지를 보며 힘을 얻고 있다.

프레시안 : 성인방송 플랫폼 탈출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힌 이유는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본인의 활동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리원 : (과거의) 나 같은 사람들, 성인방송을 시작했다가 그만두지 못하는 사람들을 더이상 만들고 싶지 않아서다. 사람들은 학비가 필요해서, 가족이 아파서, 생활비가 없어서, 계약 사기를 당해서 등 각자 다른 사정을 가지고 성인방송을 시작한다. 어떤 이유든 자신이 원할 때 그만둘 수 있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성인방송과 성매매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을 사는 행위, 사람에게 강제로 이익을 취하는 행위는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성인방송을 그만두고 싶은 여성들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놓고 상담을 통해 조언을 주거나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성단체에 연계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연락을 준 한 피해자는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과 연계해 지난달 성인방송 계약 해지를 마칠 수 있었다. 지금도 성인방송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오고 있어 연락을 주고받는 중이다.

"이미 피해자를 지원하는 여성단체들이 있는데 아무 자격도 없는 네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느냐"며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지만, 반대로 여성단체들은 내 활동과 나와의 협력을 좋아했다. 성매매, 가정폭력 등 다른 분야와 달리 성인방송은 여성단체도 잘 알지 못하는 분야고 피해자들도 자신이 구제받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라 연락을 잘 안 한다고 한다. 반면 나는 성인방송 업계에 오래 있었던 만큼 플랫폼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그들이 법의 경계를 어떻게 넘고 어떤 문제를 지적했을 때 가장 싫어하는지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성인방송 탈출을 위해 필요한 정보들을 제공할 수 있으며 내가 이 분야의 '스피커'가 되면 구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날 거라고 환영했다.

프레시안 : 성인방송 탈출 지원을 비롯해 향후 활동가로서의 계획이 있다면.

리원 : 성인방송 탈출을 비롯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여성들이 관련 여성단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여성 SOS 매뉴얼'을 만들고 싶다. 지금은 인터넷에 여성단체를 검색해도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운데, 각 여성단체들의 지원 분야와 활동 인원, 운영 시간 등을 보기 쉽게 정리한 조직도를 만들면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매뉴얼은 올해 안에 전단지와 포스터 형태로 제작을 완료해 SNS에 배포하는 것이 목표다.

크게는 10년 안에 쉼터를 만들어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게 목표다. 내가 아직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나를 응원해주신 분들 덕이다. 그런 만큼 앞으로 최대한 많은 여성들을 도와주면서 살아가고 싶다.

▲리원이 자신의 메일함에 들어온 성인방송 탈출 지원 상담 요청을 확인하고 있다.ⓒ프레시안(박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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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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