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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빠삐용이 된 검사님들? 인생을 낭비한 죄도 '유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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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빠삐용이 된 검사님들? 인생을 낭비한 죄도 '유죄'다

[박세열 칼럼] 검찰청을 없앤 건 검사 본인들

곧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될 '검찰청'을 두고 검사들 사이에 말들이 많다. 허나 말은 있돼 울림은 없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정부조직 개편안이 공개되자 검사들이 내부망에 연이어 글을 올린다.

예를 들면 서울 북부지검 장진영 형사3부장은 "임은정 검사님이 가장 기뻐하실 듯해 앞으로 임 검사장님에 대해서는 '지공장님'이라고 불러 드리고자 한다"고 했다. 검찰청이 폐지되고 공소청이 신설되니, '서울 동부지방검찰청장'인 임은정 검사장은 '서울 동부지방공소청장'이 될 것이라며 '지공장'이라 조롱한 것이다. 장진영 부장은 "저의 검사직을 걸고 1대1 공개토론을 제안드린다"면서 "현재 진행중인 법안들이 사회적 약자의 권익 보호에 더 부합하는지"를 문제삼았다. 검찰청 폐지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장진영 부장검사는 윤석열의 내란 사태 이후인 지난 2월 14일 검찰 내부망에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부정선거 의혹에 공감하는 국민이 40%이상"이라면서 선거관리위원회를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장진영 부장검사 말대로라면 '검찰청 폐지'에 찬성하고 공감하는 국민이 55.9%니까, 검찰청을 폐지하는 게 맞는 것이다. (리얼미터가 지난 6월 17~18일 실시한 여론조사) 장진영 부장검사는 "부정선거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검증 대상"이라고 말했는데, 마찬가지로 본인이 몸담고 있는 '검찰청' 역시 믿음의 대상은 아니다. 개혁 대상이다.

차호동 대전지검 서산지청 형사부장은 수사권과 공소권 분리를 두고 "정치권 말대로 '영혼 없는 공무원'이 뭐하러 나서서 제 책임이 아닌 일을 책임지겠다고 하느냐"며 "저는 책임이 아닌 수사에 대해 유죄를 확신하고 공소 유지를 할 자신이 없다. 당연히 국가의 범죄대응 능력은 떨어지겠지만 그렇게 문제 있다고 말을 해도 법으로 만드신다는 데 뭘 어떻게 하느냐"라고 주장했다.

차호동 부장검사 말대로라면 지금까지 자신이 기소할 수도 없는 수사를 해 왔던 경찰은 영혼 없이 무책임하게 수사해왔고, 기소된 사건을 판결하는 판사들은 자기들이 기소하지도 않은 사건의 유무죄를 '영혼 없이' 판단해왔다는 말인가? 궤변에는 궤변으로 답해야 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수사하지 않은 사건에 대한 공소를 유지해 온 검사들은 무엇인가. 독재 정권 시절에 시국 조작 사건을 검사 갈아치워가며 기소했던 잘난 '검사동일체' 원칙은 어디에 내다 버렸나?

민주적 통제의 핵심은 '권한 분산'이다. 하지만 지금 검사들이 '검찰청 폐지'에 반발하는 논리는 '수사권+기소권 패키지'를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기는 것 같다.

물론 이런 검사들의 주장이 모두 다 틀린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이들의 최대 실수는, 검찰권 남용의 악습을 '교정'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의 명품 가방 수수 장면을 전국민이 봤는데, '법의 불비'를 이유로 무혐의 처리하고,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결론이 특검 수사 몇달만에 '무혐의'에서 '기소'로 180도 뒤집혔을 때, 그 정의로운 검사들은 어느 게시판에 무슨 글을 쓴 적이 있었던가?

내란 현행범 윤석열이 국회와 선관위에 총든 군인을 보내 민간인들과 대처하는 끔찍한 상황에 대해서, 그 내란 수괴 윤석열 구속 일수 산정을 '날'이 아닌 '시간'으로 산정한 법원의 석방 결정에 항고를 포기한 상황에 대해서, 정의로운 검사들의 입과 손가락은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가? 현직 검사라는 자가 '부정선거 여론이 40%니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수준의 유튜버와 비슷한 인식을 갖고 있는데, 그런 검사를 시민들이 믿고 검찰권을 맡겨야 할 이유가 과연 있는가? 윤석열 정부에서 검사 출신들이 1억 짜리 그림과, 장인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로 '매관매직' 의혹에 연루됐다. '검찰 정권'이 들어서니 천지가 개벽했다 생각했는지, 일말의 수치심마저 내팽개고 권력을 찾아 내달린 꼴이다. 영화에서 빠삐용은 "나는 살인하지 않았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판사는 말한다. "당신을 기소한다. 인생을 낭비한 죄로." 빠삐용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난 유죄요." 그 빠삐용은 지금 검사들의 모습이다.

'정치 수사'가 검찰청 폐지의 원인이 됐다며 억울해하는데, 별로 동의하지 못한다. 검찰청 폐지의 결정적 장면은 '노무현 수사'도 아니고 '이재명 수사'도 아닌 '김학의 사건'이라고 본다. 김학의 사건에서 검찰은 교정할 기회를 걷어차고, 모순과 치부를 스스로 누설하며, 적반하장으로 정의를 헝클어 놓았다.

첫번째 장면은 경찰이 2013년 7월 18일 언론에 공개된 "동영상 속 인물은 김학의"라고 발표하고 특수강간죄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하자, 검찰은 2013년 11월 그에게 무혐의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후에 재수사에서 밝혀졌듯, 이 사건은 단순 성범죄 사건이 아니었다. 여성을 물건처럼 '제공'한 인물(윤중천)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사건에 연루된 고위 공무원의 경우 성접대는 곧바로 뇌물 혐의로 이어진다. 하지만 검찰은 김학의에 대한 압수수색도 계좌추적도 하지 않았다. 두번째, 2014년 "동영상 속 인물이 나"라는 여성이 나타나 김학의를 준강간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지만, 검찰은 2015년에 또 무혐의 처리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2018년 4월 대검 진상조사위가 꾸려지면서, 김학의를 재수사하지만 김학의는 인천 공항을 통해 출국을 시도하다 붙잡힌다. 세번째 결정적 장면은 여기에서 정점을 찍었다. 김학의를 출국금지한 검찰과 법무부 간부를 되레 검찰이 기소한 것이다. 이들은 최근에야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그 어수선한 틈을 타 김학의의 공소시효는 대부분 지나가버렸고, 구치소에서 걸어나온 그는 멀쩡하게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검찰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이성윤)"이라 불릴만 하다.

해병대 채상병 사건 수사 무마 의혹은 김학의 사건의 확장판이다. 윤석열이 만약 채상병 사건 수사 결과를 뒤집으려고만 했다면 일이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윤석열은 적반하장으로 마음에 들지 않은 수사를 한 박정훈 수사단장에게 '항명 수괴죄'를 뒤집어 씌우려 했다. 검사 출신 윤석열의 목적은 '진상 규명'이 아니었다. 검사직을 평생 수행해 온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 자에 대한 응징을 시도한 거였다. 그에겐 '공적 마인드'가 아니라 '특권 마인드'가 우선했기 때문이다.

지금 검사들의 태도가 그렇다. 행정 체계 개편이라는 공적 개혁에 반발하면서, '나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자기고백은, 그들에게 '공적 마인드'라는 게 있었는지, 그것이 그간 어떤 형태로 존재했었는지, 근본적인 의심을 하게 만든다.

검사들은 지금 형사 사법 체계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한다고 믿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순수한' 주장은 왜 시민들에게 '특권에 찌든 검사들'의 항명으로 받아들여지는지, 그들의 주장이 왜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휘발되고 마는 것인지, 왜 시민들이 검사들의 '아우성'에 철저히 냉담한지, 그 이유를 그들은 여전히 모르는 것 같다. 78년만에 사라질 검찰청, 마지막 챕터는 김학의 사건이 될 것이고, 그 마지막 페이지에는 김건희 이름과 윤석열 이름이 올라갈 것이다.

지금 검사님들은, 변호사가 되시면 된다. 개혁은 더딘 법인지라, 공소청은 향후 10년 안에 안착될 것이다. 그 사이에 정의로운 법조인은 계속 양성되고 있을 것이다. 검사님들의 그 자리는, 당신이 있어도 되는 자리지만, 반드시 당신이 있어야만 할 필요는 없는 자리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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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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