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4일이면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1주기다. 이를 앞두고 아리셀중대재해참사대책위원회는 아리셀 참사 투쟁의 현재와 재판 진행 과정, 재발방지책을 담은 7편의 연재기고를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더 많은 이가 함께 추모하고 사회적 의미를 남길 수 있는 1주기를 만들고, 참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진행 중인 재판이 진실을 왜곡하고 유가족에게 또 다른 아픔을 남기는 결말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편집자
아리셀의 경영책임자를 찾아서
'사장님'은 어떤 사람일까? 나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이 사장님일까? 나의 채용 여부를 결정해 주는 사람이 사장님일까? 형식적으로는 A 사장님이 월급과 채용 여부를 결정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결정하는 사람이 B 사장님이라면, 나의 사장님은 A일까, B일까? 그리고 B 사장님은 C 사장님으로부터 매달 몇억 원씩 운영비를 빌리고, 중요한 계약도 모두 C가 진행하며 단지 이름만 B 사장님의 것을 빌렸다면, 진짜 사장님은 누구일까?
아리셀 참사에서 사망한 많은 노동자는 형식적으로는 한신다이아와 메이셀에서 고용되었고, 이들 회사는 '도급'의 형식으로 아리셀에 근로자를 파견하였다. 이는 현행 파견법상 금지된 '제조업의 직접 생산공정 업무'에 대한 불법 파견에 해당하며, 명백한 위법이다. 실제로 아리셀의 파견법 위반은 형사재판에서 아무도 다투지 않을 만큼 분명하다. 그러나 정작 '아리셀 참사의 실질적인 책임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형사재판에서조차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피상적으로 보자면 '아리셀'이 불법 파견을 통해 노동자들을 고용했고, '아리셀'이 독립된 법인으로 이들의 사망에 책임 있는 주체처럼 보인다.
아리셀은 에스코넥의 '외피'에 불과하다
아리셀 참사의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리한 생산 강행'은 그중 하나의 핵심 요인이다. 국방기술품질원은 2024년 4월, 아리셀에 시정조치 요구를 내려 생산이 일시 중단되었다. 그러나 지체상금이 두려웠던 아리셀은 같은 해 5월 13일 임의로 생산을 재개했고, 6월 3일부터는 1일 생산 목표량을 기존의 2배로 늘렸다. 이 과정에서 미숙련 이주노동자의 수가 30명에서 60명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이 시정조치는 아리셀이 군납 전지에 대한 실험결과를 조작했기 때문에 내려진 것이었다. 그런데 실험결과 조작을 먼저 시도한 곳은 다름 아닌 아리셀의 모회사, 에스코넥이었다.
에스코넥은 원래 일차 전지사업을 직접 운영하다가 2020년 아리셀을 분사시켰다. 처음에는 외부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유치했으나, 아리셀이 지속적인 적자를 기록하자 투자자들은 모두 빠져나갔다. 이후 에스코넥은 매달 5~10억 원의 자금을 전환사채 형식으로 아리셀에 지원했고, 결국 아리셀의 지분 96%를 확보했다. 나머지 4%는 아리셀과 에스코넥 양쪽의 대표이사인 박순관이 보유하고 있다.

아리셀에는 독립된 회계담당자도 없었다. 형사재판에서 김앤장 측은 "아리셀이 위치한 곳이 시골이라 회계담당자를 구하기 어려웠다"며 에스코넥의 회계직원이 아리셀의 회계업무를 겸해온 사실을 해명했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한 2024년까지 4년 동안 회계담당자를 구하지 못했다는 설명은 정상적인 회사라면 이해하기 어렵다. 아리셀이 진정 독립적인 회사였다면 회계 인력의 처우를 개선하거나 자원을 확보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에스코넥의 회계 직원이 이를 대신한 것은 아리셀이 에스코넥에 종속되어 있었음을 방증한다.
아리셀의 이사진은 박순관, 박중언, 강 모 씨로 구성되어 있다. 박순관은 에스코넥과 아리셀의 대표이사이고, 박중언은 그의 아들이며 아리셀의 경영책임본부장이다. 강 씨는 에스코넥의 이사이다. 아리셀의 감사는 최 모 씨이며, 그는 에스코넥의 경영관리팀장이다. 이처럼 아리셀은 재무적, 인적 구성 모든 면에서 에스코넥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었다. 아리셀 참사는 아리셀에서 발생했지만, 그 책임이 아리셀만의 것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순관은 아리셀의 대표이사지만, 책임자는 아니다?
아리셀의 대표이사는 박순관, 경영책임본부장은 그의 아들 박중언이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대표이사가 모든 업무를 일일이 보고받거나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리셀의 경우 박순관은 생각보다 많은 세부 사항까지 직접 보고받고 있었다.
박중언은 매주 '주요 업무 보고'를 통해 인력 충원, 도급 계약, 조직 개편, 계약 현황 등 세세한 내용까지 박순관에게 보고했다. 박순관은 이러한 보고를 바탕으로 "품목별 세분화와 원가 절감 목표 설정", "인력 감축 후 비용 절감 효과 분석" 등을 지시했다. 2022년 2월 파견노동자의 손가락 절단 사고 당시에는 위자료 지급을 승인하는 등, 안전보건과 관련된 최종 결정까지 직접 수행했다.
그런데도 김앤장은 박순관이 단지 자금 조달을 위한 '형식적 대표이사'였고, 실질적 책임자는 박중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회사인 아리셀이 회계 담당자조차 구하지 못할 정도로 영세한 회사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개 본부장'이 대표이사이자 아버지인 박순관의 지시 없이 독자적으로 경영 결정을 내렸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김앤장의 논리는 아리셀이 때로는 대기업처럼, 때로는 영세 중소기업처럼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며 상황에 따라 책임을 회피하려는 전략처럼 보인다.
아리셀과 에스코넥에 대한 가압류와 민사소송
2024년 9월 23일, 유가족들은 아리셀과 박순관, 그리고 모회사 에스코넥의 부동산에 대해 가압류를 신청했다. 이는 민사소송의 결과가 나오기 전, 책임자들이 재산을 은닉해 배상을 회피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조치였다. 법원은 같은 해 11월 6일, 가압류를 인용했다.
그러자 에스코넥은 김앤장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12월 9일 가압류 해제를 위한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그 주장은 "에스코넥은 아리셀과 별개의 법인이며, 법적 책임이 없고, 아리셀과 박순관의 재산만으로도 충분히 배상할 수 있으므로 가압류는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법률지원단은 에스코넥이 아리셀을 실질적으로 지배해왔고, 아리셀과 박순관의 자산이 과대평가되어 있다는 점을 소명했으며, 법원은 결국 에스코넥에 대한 가압류를 유지하기로 했다.
앞으로도 계속될 싸움, 진짜 책임자는 누구인가
아리셀 참사는 단일 기업의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이주노동자에게 위험을 전가하고, 법인을 분리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구조, 그리고 대표이사에 책임이 미치지 않게 하려는 각종 논리가 결합한 '법적 책임의 외주화'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우리가 '진짜 사장', '진짜 책임자'를 끝까지 찾아야 하는 이유다. 형사재판 1심은 마무리되어 가지만, 정의로운 결론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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