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차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조합원 섹 알 마문(50) 씨는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를 두고 "정말 고마운 사람"이라며 "작은 일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다"고 29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말했다. 이날 발표된 '이주민·이주인권활동가 120명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 지지 선언'에 이름을 올리면서다.
한국 법 제도가 이주노조를 합법으로 인정한 지는 10년밖에 되지 않았다. 이주노조가 2005년 고용노동부에 낸 노조 설립 신고는 즉각 취소됐고, 노조는 이에 노조 설립 신고 반려 취소 소송을 냈다. 2006년 1심에서 패소했고 2007년 2심에서 승소했다. 3심 대법원 결과는 8년이 지난 2015년에야 승소로 확정됐다.
10년의 싸움이었다. 그러는 사이 이주노조 간부들은 모두 정부 폭력 단속에 붙잡혀 구금되고 강제 추방돼왔다. 이 시기를 함께한 변호사가 권영국 후보다. 2002~2005년 민주노총 초대 법률원장을 맡았던 권 후보는 2005년 이주노조의 소송을 처음 맡아 3심까지 대리했다. 마문 씨가 "나는 권영국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할 거다"라고 말한 이유다.
마문 씨는 방글라데시 태생이나, 2009년에 귀화해 쭉 선거권을 행사해 왔다. 1998년 처음 입국한 그는 경기 마석 가구단지 등에서 미등록 이주민으로 일했다. 그러면서 2001년 이주노조 전신인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를 만나 조합원으로 활동했다. 그때부터 현재까지 이주노조의 역사를 모두 지켜본 '25년 차' 이주노조 조합원이다.

마문 씨는 "당시 정부의 야만적인 폭력 단속에 이주노조 위원장, 조합원들이 정말 많이 다치고, 구금되고, 추방됐다"며 "권 변호사는 그때마다 집행정지 신청, 강제출국처분취소소송을 대리해 줬고, 법무부를 찾아가 공무원에게 항의하며 같이 싸워줬다"고 말했다. 또 "그때 '노조를 끝까지 만들면 좋겠다'고 얘기해준 것도 기억난다"고 했다.
이어 "한 번은 노조에 전화해 '예전 회사 해고자 모임이 있는데 매달 후원금을 내고 싶다'며 몇 년간 수십만 원 정도의 후원금을 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1989년 풍산 안강공장의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투옥됐던 권 후보는 출소 후 2년 정도 전국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에서 일한 적이 있다.
마문 씨는 또 2023년 이주노조가 뜻깊게 준비했던 '이주노동자 명동성당 농성 20주년' 기념행사에 권 후보가 온 것을 기억했다. 명동성당은 1995년 네팔 이주민들이 "때리지 말고, 여권을 뺏지 말고, 임금을 달라"고 말하기 위해 온몸에 쇠사슬을 감고 농성했던 상징적인 곳이다. 그는 "그때 '요새 여력이 없어 (이주노조 문제를) 잘 챙기지 못해 미안하다'며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했다"며 "(소송) 해준 게 너무 큰데 뭐가 미안한가. 자기가 뭘 했다고 티 내는 사람이 많은데, 그러지 않은 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젠 내가 뭐라도 돕고 싶어서 많진 않지만, 후원금도 보냈다"며 "TV토론을 보니 전부 다 기업이 잘 살아야 나라가 잘 산다고 말할 때, 권 후보만 사람이 먼저 잘 돼야 나라가 잘된다 하더라. 그래서 더 지지한다"고 밝혔다.

권 후보 지지 선언에 이름을 올린 이주민 등 120명은 성명문을 내 "민주주의와 평등을 위한 투쟁을 함께 한 권영국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또 "국경과 인종을 넘어, 성별과 지역을 넘어, 우리가 요구하고 원하는 사회를 이야기하는 권영국 후보를 지지한다"며 "우리의 지지는 저들이 말하는 ‘대한민국’에 차별받지 말아야 할 인간으로서, 노동자로서,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이주민이 존재하고 있다는 존재 선언이다"라고 밝혔다.
이주민 인권 공약을 약속한 후보는 주요 4당 후보 가운데 권 후보 밖에 없다.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를 위한 노동기준법 제정,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이주배경시민청 설치, 이민사회기본법 제정, 노동비자 영주제도 도입, 이주민 인권을 강화하는 난민법 개정 등이다.
이들은 "거대 양당 후보는 이주민을 투명 인간 취급하듯 이주 인권과 관련해 명시적인 공약조차 없다"며 "우리의 지지는 이주민 이웃과 동료를 우리 사회 동등한 구성원으로 만들어 가기 위한 길에 하나의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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