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가 대통령선거를 닷새 앞두고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인하했다.
금통위는 29일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2.75%에서 연 2.50%로 낮췄다. 작년 10월 이후 7개월 사이 네 번째 인하다.
민간 소비·건설투자 등 내수 부진으로 이미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 분기보다 뒷걸음쳤고, 미국발 관세전쟁 등의 영향으로 수출까지 불안한 상황에서 금리라도 낮춰 소비·투자를 살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금통위도 이날 통화정책방향 회의 의결문에서 "성장률이 크게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해 경기 하방 압력을 완화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인하 배경으로 경기·성장 부진을 명시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추가경정예산(추경) 등 충분한 재정정책이 동반되지 않는 가운데 금리만 계속 내릴 경우, 경기 부양 효과는 미미하고 부동산으로 돈이 몰려 결국 집값과 가계부채만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2.00%p까지 벌어진 미국(4.25∼4.50%)과의 금리 격차도 환율 상승과 외국인 자금 유출 측면에서 걱정거리다.
금통위는 앞서 작년 10월 기준금리를 0.25%p 낮추면서 통화정책의 키를 완화 쪽으로 틀었고, 11월에도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연속 인하를 단행했다.
이후 올해 1월 쉬었다가 2월 다시 0.25%p 인하로 통화 완화를 재개했지만, 지난달 다시 동결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0.1%에 그친 작년 4분기 성장률과 미국 관세정책 위험을 근거로 시장에서는 인하 기대가 컸으나 1,500원을 넘보는 원/달러 환율 불안이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이제 1분기 -0.2%의 충격적 역성장까지 현실로 확인된 만큼, 더는 인하를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앞서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생각보다 더 좋지 않은 경기 상황이 지표로 속속 확인되면서 여러 기관이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계속 낮추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한은도 금리를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이달 들어서만 현대경제연구원이 올해 전망치를 1.7%에서 0.7%로 무려 1.0%p나 한꺼번에 깎았고,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상 성장률마저 1.6%에서 0.8%로 반토막이 났다. 8개 해외 주요 투자은행(IB)이 제시한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 평균도 4월 말 기준 0.8%에 불과하다.
한은 역시 이날 공개한 수정 경제 전망에서 올해 성장률 추정치를 기존 1.5%에서 0.8%로 낮췄다. 석달 만에 0.7%p나 떨어졌다.
금통위는 특히 국내 경제 상황과 관련해 "소비, 건설투자 등 내수 회복 지연과 수출 둔화로 1분기 역성장에 이어 4월에도 부진한 흐름을 지속했다"며 "앞으로 내수 부진은 점차 완화되겠지만 그 속도는 더딜 것으로 보이고, 수출의 경우 미국 관세 부과 영향 등으로 둔화 폭이 확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에서 다소 안정되면서 금리 인하의 큰 걸림돌도 사라졌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9일 미국 상호관세 발효와 함께 주간(낮) 거래에서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1,487.6원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이후 미국 관세정책 불확실성과 재정 적자 확대 우려 등으로 달러 가치가 급격히 약세를 보이면서 지난 26일엔 장중 7개월만에 최저 수준인 1,360.4원까지 떨어졌다.
다만 지속적 금리 인하가 집값, 가계대출을 부추기고 환율을 다시 올릴 가능성도 있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등으로 들썩인 부동산 가격이나 가계부채가 하반기 다소 안정될 것"이라면서도 "낮아진 금리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부동산이 급등할 것이라는 기대까지 겹쳐 부동산·가계부채가 다시 불안해질 가능성도 남아 있다"고 경고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22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46조4천917억원으로, 4월 말(743조848억원)보다 3조4천69억원 늘었다. 지난달(+4조5천337억원)과 비교해 증가 속도가 빠르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한은 금리 인하로 미국과 차이가 벌어진 것도 부담"이라고 덧붙였다. 원론적으로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기준금리가 미국을 크게 밑돌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떨어질 위험이 커진다.
금통위 역시 의결문에서 "금융안정 측면에서 금융완화 기조 지속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세 확대 가능성과 외환시장의 큰 변동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금리 인하 등 통화정책만으로는 경기 부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조 연구위원은 "금리 인하 효과가 없진 않겠지만 제약적일 것으로 본다"며 "여전히 금융기관의 대출 태도나 여건이 완화적이지 않기 때문에 금리가 좀 낮아진다고 가계나 기업이 돈을 많이 빌릴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미 올해 들어 경기 부진 대응의 무게 중심이 통화정책에서 추경 등 재정정책으로 넘어갔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전문가들과 시장은 이런 위험 부담과 한계에도 한은이 0%대 저성장 기조 탈출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해 하반기 한 두차례 기준금리를 더 내릴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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