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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문화혁명'과 그의 '홍위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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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윤석열의 '문화혁명'과 그의 '홍위병'들

[박세열 칼럼] 윤석열식 '중국몽'?

보수 정당이든 리버럴 정당이든 '극단적 대결 정치'가 문제며 양 측의 극렬 지지층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만들고 있다는 '양비론'은 언뜻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양비론'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 체제의 최소한의 룰(선거)은 지킨다는 합의 위에 서 있는 한, 양당의 대결 정치는 위태로워 보일지언정 선을 넘지는 않았다. 윤석열은 그 선을 넘어버렸다.

윤석열이란 개인 캐릭터의 심각한 '권력 중독'과 '망상'의 문제도 중요하겠지만, 우린 본질적으로 왜 보수 정당이 윤석열에 장악됐고 윤석열의 '부정선거론'과 같은 음모론에 휘둘리는지 고민해야만 한다. 왜 정당 울타리 밖의 '전광훈류' 극우 세력이 울타리를 범람해 들어와 정당을 흔들어대고 있는지, 왜 보수 정당은 그런 '외부 세력'에 의해 힘없이 흔들리고 있는지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

국제정치학에서 쓰이는 말 중 심리학에서 차용한 '거울 이미지'(mirror image)라는 게 있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대립을 설명할 때 주로 사용된 개념인데, 상대가 나를 보는 것과 같은 시선으로 나 역시 상대를 바라보는 상황에서 거의 동시에 적대적 행위가 진행돼 상황이 더욱 악화하는 현상을 설명할 때 사용한다. 흔히 적대 관계라면 서로 완전히 다른 가치관이 맞붙는 관계라 생각되지만만, 한걸음 떨어져 보면 서로 유사한 인식 틀에서 상대방을 바라보고 대응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적대적 공생관계' 같은 것이다.

이를테면 미국은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보고 그들이 하는 모든 조치가 '세계 정복'을 위한 군사적 행위라고 간주했다. 미국의 그런 대응에 소련은 오히려 미국이 자신들을 말살하려 한다고 생각하며 더 강한 군사 조치로 응대한다. 둘다 일종의 '상상된 적'을 상대로 갈등을 증폭시키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져드는 것이다. 거울에 비친 상대가 왼손 주먹(실제로는 오른손)을 쥐면 거의 동시에 나도 왼손 주먹을 쥐는 꼴이다.

한국의 양극단 정치는 거울 이미지 속 상대(그 이미지는 허상이다.)를 향해 주먹을 날려왔다. 그런 상태라면 둘 모두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누군가 거울을 깨버리기로 결심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보수 정당의 문제'를 특별하게 취급해야 하는 이유는 누구도 상상 못한 '12.3 비상 계엄'을 통한 내란의 죄를 저지른 윤석열의 존재를 가능케 했던 토양이었기 때문이다. 법원이 폭도에 의해 공격당하고, 정치 지도자와 법관을 사살코자 하는 망상이 현현하는 2025년 지금의 상황에서 양비론은 아주 게으른 선택이다.

윤석열식 정치, 윤석열을 탄생시킨 보수정당의 정치는 자신들의 비전보다는 '반문재인', '반이재명'이란 안티테제만을 집요하게 추구해 왔다. 그것이 12.3 비상계엄이라는 극단적 형태로 분출됐다. 사실이든 아니든, 윤석열 스스로 계엄의 이유를 '야당 독재'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지난 2022년 대선을 생각해보면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의 모든 것에 반대하면서 자신의 철학 아닌 철학, 비전 아닌 비전을 내세웠다. 그래서 정당 밖 울타리에 있던 극우 집단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정권을 잡는 데 성공했다.

극우 세력은 거울 이미지에 갇혀 있다. 이 사회의 보이지 않는 세력이 나의 일자리를 빼앗고, 나를 멸시하며, 나를 억압한다고 상상하며 공격성을 드러낸다. 자신이 겪는 고통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 그 대상이 실제 존재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거울에 비친 허상이 자신에게 주먹질을 한다고 믿는다. 실제로 주먹질을 하고 있는 건 자신인데.

극우 세력은 기존의 정당 시스템으로는 상상된 적을 처단할 수 없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귀찮은 것이 되고 정당은 거추장스러운 조직이 된다. 전광훈류의 극우 집단은 그렇게 정당 밖에서 실력 행사를 하며 정치인들을 훈계하고 협박하고 굴복시킨다. 그 과정에서 끔찍한 폭력 사태를 일으키기도 한다.

가장 나쁜 형태의 정치는 이런 폭력성에 정당성과 용기를 부여해주는 것이다. 지금 윤석열은 문화대혁명 시기 마오쩌둥의 위치에서 전광훈류의 '홍위병'들을 자극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하고 있다. 중국인이 대한민국을 전복하려 한다면서 중국 독재자의 흉내를 내고 있는 상황이 아이러니할 뿐이다. 그는 스스로 창조해낸 희한한 '중국몽'에 빠져 있는가?

우리는 지금 스스로 불러온 총선 참패의 결과조차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회 불만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윤석열의 만행을 목도하고 있다. 정당은 이런 목소리들을 걸러내고 제어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여당은 오히려 극단적 목소리에 올라타서 제도권 정당으로서 믿어지지 않는 주장들을 받아 읊으며 내란을 정당화하고 폭력을 두둔하고 있다.

집권 여당인 보수 정당이 보여주고 있는 지금의 정치는 한국 민주주의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21세기 하고도 25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냉전 시대의 이념과 언어가 그대로 광장에서 반복돼 사용된다. 국회의원들이 참여하는 집회에서 공산당, 좌파, 빨갱이라는 말이 난무한다. 인공지능과 우주개발, BTS와 블랙핑크, 봉준호와 오징어게임에 대해 말하는 시대에 60년 전 냉전의 '거울 이미지'를 두고 싸우는 정치와 사회 제도는 그대로다. 그것을 운영하는 방식과 그것을 운영하는 이들도 달라진 게 전혀 없다.

유럽의 민주주의 선진국들은 제도권 보수정당의 힘이 약해지고 있을지언정, 극우 세력에 휘둘리지는 않는다. 뿌리가 다른 자생적 극우정당들이 제도권을 넘보고 있을 뿐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독특한 양당제 때문에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가 될 수 있었지만, 1기 트럼프 정부에서 트럼프의 비상식적, 비합리적 결정들을 막아낸 관료들과 군인들이 있었다. 미국의 선거제도와 민주주의 시스템의 역사는, 미치광이도 대통령이 될 수 있게 만들긴 했어도 실제 미친 짓을 할 수 없도록 견제 장치를 마련해 온 역사다.

정당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대표를 선출하기 어렵다. 좋은 정부를 만들기도 어렵다. 12.3계엄같은 위헌적 통치 행위에 대해 제대로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게 하려면 정당 체질이 강해져야 한다. 지금처럼 제도권 밖의 폭력적 세력에 휘둘리는 보수 정당이라면, 이들이 권력을 다시 잡게된다고 해도 의회주의가 더욱 망가질 건 불 보듯 뻔하다.

다가올 대선에서 보수 정당의 재구성을 기대해 본다. 비록 야당이 될지라도 유승민, 한동훈, 김상욱, 천하람 등을 포함해 2024년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에 찬성표(208표)를 던진 보수 정당 내 16명의 국회의원들이 보수 정당의 주류가 될 토양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차기 대선은 '정치 개혁'이 화두가 될 것이다. 정당 정치 불신이 선거를 '인기 투표'로 만든다. 상대를 꺾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라도 마구잡이로 영입하도록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정당은 대통령을 선출하고 국회의원 후보를 추천하는 기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조직으로 단순화됐다. 정당 내부 민주주의와 다원성은 위축되고 수직적 위계관계가 당연시되고 있다. 토론이 실종되고 이견이 천대받는 정당 문화를 고칠 수 있는 제도적 방법들은 많다. 교섭단체 요건은 물론 선거제도 손을 봐 다양한 목소리가 정당 정치 틀 안에서 형체를 갖게 만들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민주당에도 정확히 해당되는 말이다.

헌법을 고쳐 계엄 요건을 어렵게 만드는 기술적 문제도 중요하지만, 극단적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의정활동을 할 수 있는 정당 시스템을 확고하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 결국 정당을 개혁할 수 있는 건 유권자다.

▲전광훈 목사와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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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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