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아시아문화학부의 K교수는 지난 10여 년간 최소 4명 이상의 학생(주로 대학원생)들을 성추행해왔다. 현재 K교수는 중앙대 인권센터로부터 파면 권고를 받았다. 하지만 파면 권고가 실제 파면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넘어야할 '산'이 너무 많다는 사실 때문에 이글을 쓰게 됐다. 해당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의 증언을 토대로 사건의 진행과정과 문제점들에 이야기 하고자 한다.
피해자 B에게 K교수는 정말 훌륭한 학자처럼 보였다. K는 1년에 6,7편의 논문을 내는 'S급 교수'였고, 이제 막 대학원 생활을 시작한 B에게는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비록 직속 지도 제자는 아니었지만, 그는 K교수의 수업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수업을 들으면 스트레스까지 풀린다고 할 정도였다. K교수 역시 B를 많이 아끼는 것으로 보였고, 이에 보답하고자 무리하게 불러내는 술자리에도 모두 참석했다.
그날도 그랬다. 언제나처럼 연구실 사람들과의 술자리가 열렸다. 연구실 내 칸막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공간에서 K가 B의 손을 쓰다듬을 때, 좀 꺼림칙하긴 했지만, 그냥 교수님이 술을 많이 취하셨겠거니 생각했다. 설마 이 분이 그러실까, 아닐 거다 아닐 거라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주입했다. 그러나 K교수는 술자리가 파하자 억지로 B를 역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하며 차에 태웠고, 차 안에서 B를 강제 추행했다.
B는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가졌던 모든 존경심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몰려왔다. 내가 더 확실히 거절했어야 했는데, 똑 부러지게 대했어야 했는데, 애매하게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 아닌가. 혼란스럽고 두려웠다.
연락 가능한 선배나 지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들의 조언에 따라 떠올리기도 힘든 일이지만 어렵사리 사과를 요구하는 메일을 K교수에게 보냈다. 이윽고 전화가 왔다. B는 K의 목소리조차 듣기 두려웠다. 그러나 K교수는 끈질기게 메일이 아닌 전화를 통해 연락해왔다. 겨우 전화를 받았다. K교수는 전화통화를 통해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며 사과했다. 그러면서 B에게 기록이 남는다며 왜 메일을 보냈느냐고 짜증을 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다. 기억도 흐릿해져갈 그 무렵, 2018년 대한민국에 미투의 바람이 불던 어느 날이었다. 페이스북의 '중앙대 대나무숲'에 한 익명의 제보가 올라왔다. 중앙대학교 아시아문화학부의 K교수가 수업이나 쉬는 시간에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는 것이었다. B는 그 날들이 다시 떠올랐다.
K는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그때 전화로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절망했고, 화가 났다. B는 이번에 정말 큰 용기를 냈다. 처음엔 그저 익명으로 제보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일을 위해 과거의 대학원 사람들을 연락하던 중에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B는 그날 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어쩌다 한 번 일어난 우발적 사건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K는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지속적이고 상습적으로 대학원 여학생을 불러내어 술을 먹이고 성폭력을 저질러왔다. 그러고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웃으면서 'S급 교수'로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이를 그대로 둘 순 없었다. 더 이상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B는 학교 인권센터에 정식으로 신고를 했다. 초반에는 혼자라는 생각에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피해자들과 뜻을 같이하는 대학원 선후배들이 모여 힘을 합치기 시작했다. 필자도 당시 연락을 받았던 피해자의 대학원 선배다. 페이스북에 페이지를 만들고 하나씩 자료를 모으고 알리기 시작했다. 언론에도 알리기 시작했고, 5월 24일 중앙대 인권센터에서 K 교수에게 파면 권고를 내릴 때쯤엔 상당히 공론화가 되었다. 연서명에 함께하며 응원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다들 K 교수가 파면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K교수가 인권센터의 권고 만으로 파면되는 게 아니다. 넘어야할 '산'이 많다. 그 중 하나가 사립학교법이다. 사립학교법 제66조의 4 제1항에 따르면 성폭력으로 처벌되는 조건이 5년 이내에 일어난 사건이어야 한다. 2018년 4월 17일에 법이 개정되어 조건이 10년으로 들어나긴 했지만, 이번에 정식으로 신고된 4건의 사건들은 모두 5년이 지난 일이라 소급적용은 불가능했다. B는 5년이 지났음에도 신고하기가 정말 힘들었다고 한다. 이걸 다시 떠올리기조차 싫은데, 오직 새로운 피해자를 더 만들지 않겠다는 일념 하에 신고를 한 것이다. 아니, 5년이나 지났으니까 이제 겨우 용기를 냈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이 사건들은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권력형 성폭력이다. 권력형 성폭력은 근본적으로 갑과 을의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대학원생에게 교수는 미래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 존재이다. 따라서 이러한 부당한 갑질과 성폭력을 당했을 때 저항하기란 쉽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실명으로 신고를 하는 건 앞으로 겪을 수 있는 모든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5년 이내의 피해자 더 있음을 알게 되었지만, 실명으로 신고를 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관련 기사 : 음주 후 제자 상습 성추행한 교수, 그의 징계 가로막는 사립학교법)
현행 대한민국 법령 하에선 성폭력 피해자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 혹시 잘못되어서 가해자가 다시 복귀한다면 그 뒤에 따를 수 있는 보복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파면이 된다 하더라도, 어떠한 경로로든 자신이 신고자임이 발각되어 다른 이들에게 손가락질당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피해자 중에는 가족에게 이런 사건이 알려지기를 꺼리는 자도 있을 것이다. 학교에 신고하는 것까지는 온전히 비밀이 지켜지다 해도 후일 교수가 피해자를 명예훼손 등으로 역고소한다면 또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결국 가해자는 학교에 남고, 피해자는 학교를 떠나야 하는 최악의 사태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B는 혹시나 있을 사태에 대비하여 해당 교수를 고소하는 것에 대해 문의해 본 적도 있다. 어디까지나 상담이었지만 지금까지의 사례와 증거자료도 첨부했다. 피해자 B가 보냈던 메일과 당시 선배들과 나눴던 카톡 기록 등도 포함했다. 그런데도 증거가 더 필요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피해자가 24시간 녹음기를 켜놓고, 모든 전화통화를 기록하지 않는 이상 선명한 외상이 남지 않은 성폭력 사건에서 더 이상의 증거를 대체 어떻게 마련해야 한다는 걸까.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가 얼마나 불리한 위치에 서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나마 이조차도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된 것이다. 피해자 B가 성폭행을 당했던 6년 전에는 학교 내 인권센터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권센터의 파면 권고도 어디까지나 권고이기 때문에 실제 징계위원회를 통해 징계가 내려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현재 K교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모든 수업과 행사에 참여 금지 처분을 받고 학교에도 나올 수 없는 상태이다. 몇몇 언론에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는다고 한다. (관련기사 : 제자 성추행 중앙대 교수 이번엔 연구비 횡령 의혹) 피해자들은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다. 이 짧은 자숙 시간이 끝나면 K가 이전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웃으며 강의하고 S급 교수 대접받으며 지내는 것 아닐까. 그리고 B가 보복행위를 하지는 않을까. 지금은 공론화가 되어 기자회견까지 열렸지만 긴 방학 동안 이 일이 잊히지 않을까 두렵다. 현재로선 피해자를 철저히 보호하고 조속히 사건이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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