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 회원 등 500여 명(경찰 추산)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단식투쟁에 '대항'한다며 광화문에서 피자파티를 열었다. 밤이 되자 이들은 극우단체와 합세하면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음원을 틀고 떼창을 해 세월호 유가족 지지 측과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기는커녕 유희거리로 삼은 이들의 모습은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난달 15일, 추석 연휴에 텔레그램 성착취방 '곳간'에 모인 4000명은 성인 남성에게 성착취 피해를 입어 사망한 '우울증갤러리' 피해자의 사진을 올리고 조롱했다. "쟤가 라이브 켜고 뛰어내린 X이냐", "그래도 XX는 보여주고 갔네", "X은 좋네" 등 망자를 두 번 죽이는 행위는 이들에게 성적 유희에 불과했다. (☞관련기사 : [단독]추석에 '텔방' 모인 4000명, 사망한 '우울증갤' 피해자까지 조롱했다)
딥페이크 성착취 범죄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된 지난 8월부터 두 달간 곳간을 비롯한 텔레그램 성착취방들을 추적한 결과 가해자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성착취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롱하는 동시에 노 전 대통령의 사진과 육성 등을 합성물로 소비하고 문장의 말미를 '노'로 끝내는 '일베 문화'를 향유하는 방식으로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일베 문화는 "지능(지인 능욕) 기사를 낸 기자도 능욕하라"며 기자 합성방을 만들고 여성 기자들을 대상으로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찡구의 지능방'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채팅방 운영자 '찡구'는 딥페이크 성착취물 수십 개에 노 전 대통령을 합성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성착취물의 제작자가 자신임을 드러냈다. 가담자들은 이를 '노터마크(노무현+워터마크)'라고 부르며 더 많은 성착취물 제작을 요청할 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대중의 지탄을 받고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일베 문화가 수많은 텔레그램 성착취방들에서 버젓이 재현되고 있는 모습에 취재 내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회 윤리를 위반할수록 영웅으로 취급하고 갖은 방식으로 고인을 모독하는 합성물을 제작해 온 일베는 당시 사회현상으로 취급될 정도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후 일베문화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넓게 자리 잡으면서 지금은 대표적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언급되지 않을 정도로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이 급감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일베는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용자 수가 많은 커뮤니티로 손꼽히고 있다. 미국의 정보분석업체 셈러쉬(Semrush)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한 달간 한국에서 누적 접속 수가 가장 많은 웹사이트 9위는 1억9400만회를 넘긴 일베가 차지했다. 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카카오(1억8900만), X(1억5200만), 인스타그램(1억2300만)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한창 논란이 됐던 일베의 행적을 다시금 돌이켜보면, 지금의 딥페이크 성착취범들이 일베문화를 향유하는 모습은 어색할 것도 없다. 합성물을 제작해 타인을 모독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집단문화, 추석 등 명절만 되면 미성년 여성 사촌들을 불법촬영한 사진들을 공유하며 집단적으로 모욕을 가하는 성착취 문화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집단은 텔레그램 성착취방 이전에 일베가 있었다.
지난 10년간 남성 사회에서 일베문화를 박멸하지 못한 결과, 타인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공동체 의식을 느끼며 피해자가 받는 고통에서 희열을 느끼는 '일베의 후예들'이 탄생했다. 이들은 여성들을 지역·학교별로 나누어 신상정보를 공유하고 집안에서는 엄마·누나·여동생·사촌까지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다. "엄마 사진 공유하고 나니까 뭔가 영웅이 된 느낌인데 ㅋㅋ 뿌듯하다"는 가해자의 감상은 이들 사회에서 성착취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관련 기사☞: "엄마 영상 공유하니 영웅 된 느낌ㅋㅋ"…딥페이크, 친족까지 확대됐다)
노 전 대통령이 사망한 뒤에 태어난 아이들마저 성착취 과정에서 고인 모독에 동참하고 있는 현 상황은 남성사회가 일베의 후예들을 양산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경찰은 올해 1월부터 9월25일까지 딥페이크 성범죄로 검거된 피의자 387명 중 10대 청소년들이 324명으로 83.7%를 차지했다고 밝혔으며, 가해자 중 66명은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이었다.
처벌을 강화하는 방식만으로는 일베로 대표되는 착취문화의 계승을 막을 수 없다.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시청만 해도 최대 징역 3년을 선고할 수 있는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개정안이 지난달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열흘이 지났지만, 여전히 텔레그램에서는 2400여명의 가해자들이 '지인상납'이란 이름 아래 여성들을 지역별로 나누어 착취하고 있다. 그들은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딥페이크 성범죄를 주목하는 '이 시국'이 어서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고지식한 방법일지언정, 남성 사회에서 일베문화를 뿌리 뽑으려면 청소년들에게 타인을 존중하는 시민성을 길러내는 수밖에 없다. "딥페이크 성범죄 근본 원인은 여성을 동료 시민으로 여기지 않는 남성문화"라는 여성계의 지적처럼, 타인을 동료 시민으로 여기고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시민의식이 지금의 남성 사회에 자리잡혀야만 폭력을 배척하는 자정작용이 생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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