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고아권익연대에 찾아와 유기피해인(고아)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했어요. 하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분이 고아들의 권리를 찾아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았어요. 우리들의 삶을 전혀 공감할 수 없을 만큼 삶이 다른 거예요. 사무실을 떠난 뒤 대통령은 고아 보호 정책에 대해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고 있어요."
"보호출산제를 대표 발의한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께 고아와 부모 간 인적사항을 비밀에 부치고서라도 서로 대화 한 번이라도 할 수 있도록 발의안을 개정해달라고 부탁드렸어요. 의원님은 조금도 대화할 생각을 안 하시고 '다른 의원을 찾아가보시라'고 하시더라고요. 단호히 거절하시는 모습에 국민의힘 '약자와의동행위원회'를 박차고 나오게 됐어요."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위기 임산부가 가명으로 출산할 수 있도록 하는 '보호출산제'가 오는 19일부터 시행되는 가운데, 아이가 부모와 연결될 권리를 침해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또 아이를 부모와 단절시킨 채 보육원 등 시설로 인계하는 방식은 합법적 유기 창구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15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보호출산제'가 통과된 배경에 대해 "대통령의 무지와 여당의 무시가 있었다"고 했다. 고아의 권리를 보호해달라는 의견을 직접적으로 전달했음에도 아무런 대안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 대표는 고아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이 축적된 결과가 보호출산제 도입이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위원장을 맡고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부위원장을 맡았던 '약자와의동행위원회(현 약자동행특별위원회)'에 수년간 참여하기도 했던 그는 보호출산제와 관련해 정부·여당에 분노를 토해냈다.
"보호출산제로 이득 보는 단위는 입양시설 뿐"
보호출산제는 의료기관이 아동의 출생을 지방자치단체에 의무적으로 통보하는 '출생통보제' 시행에 따라 자신의 신원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 위기임산부가 병원 밖에서 출산해 생모와 아이 모두 위험에 빠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위기임산부는 지역 상담기관을 통해 의료·상담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며, 이 제도로 출생한 아동은 보육원·입양 등 제도권 안에서 보호를 받는다.
당장 19일부터 보호출산제가 시행되면, 이때부터 시설로 인계된 아동은 부모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다. 훗날 출생증서를 청구하더라도 부모가 거부하면 부모의 인적사항을 제외한 내용만 공개된다. 이를 두고 보호출산제가 아동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이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는 아동이 부모를 알고 부모에게 양육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는데, 보호출산제는 이를 정확히 위배하는 셈이다.
조 대표는 보호출산제가 아이들에게 '생존할 권리'와 '부모를 알 권리',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악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익명출산으로 죽지 않고 태어날 수 있겠지만, 그 대가로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고아로 살아가야 한다면 이를 감사하게 생각할 아이들은 없다."라며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부모와 자녀를 분리하는 게 아니라 위기임산부가 무사히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보호출산제로 이득을 보는 단위는 합법적으로 더 많은 아이들을 받게 된 입양시설 뿐"이라고도 주장했다. 입양이 필요한 아동이 늘어날수록 수익을 보는 입양시설 특성상, 보호출산제가 시행 후에는 합법적으로 부모와 분리된 아동이 늘어나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조 대표는 보호출산제가 이같은 문제에 대해 정부·여당이 외면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조 대표는 2021년 국민의힘 약자와의동행위원회에서의 활동을 시작한 뒤로 정부·여당에 수차례 고아들의 현실을 전했지만, 그들에게서 소외된 아이들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윤석열, 보호아동 현실 공감 못하는 모습에 답답했다"
조 대표가 지금의 정부·여당에 처음 위화감을 느낀 것은 2021년 연말, 당시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맞춰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고아권익연대를 찾아 봉사활동과 간담회 등을 열었을 때다. 그는 시설 퇴소 학생들에게 나눠줄 음식을 만들고자 앞치마를 입고 직접 전을 부치고 도시락을 포장하기도 했다.
조 대표는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러 온 데 대해 고마움을 느꼈다. 그는 윤 후보의 곁에서 고아와 시설 퇴소 아동, 한부모 등이 겪는 열악한 처우를 설명하며 '대통령이 되면 이들을 지원하는 제도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윤 후보는 "(검사시절) 여러 지역에 근무하면서 고아원에도 많이 방문하고 또 그곳의 원아들하고 편지도 주고받고 명절 때 찾아가고 했다"고 말하며 "돌봄 위기와 고립이 아동과 청소년의 인생길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화답했다.
답변과 달리 조 대표는 소통이 되지 않는 그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꼈다. "윤 후보가 일부러 소통을 거부하는 모습은 아니었다"면서도 "이 영역을 전혀 공감할 수 없을 만큼 다른 삶을 살아 아이들의 서러움, 외로움을 모르더라. 실제로 방문 이후에 아이들을 지원하는 정책이 나오지 않았다"는 게 조 대표의 설명이다.
"김미애, 아이들 권리 보호해달라는 요청 단호히 거부했다"
윤석열 후보가 당선된 뒤에는 김미애 의원이 약자와의동행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조 대표는 보호출산제를 대표 발의한 김 의원에게 해당 법안을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번번이 묵살당했다고 한다.
고아권익연대가 내부 논의 끝에 김 의원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보호출산제 수정안을 보면, 단체는 △보호아동의 생명권과 알권리 모두 보장, △보호아동에게 최소 1회 이상의 면접교섭권 보장, △보호출산 결정 절차 보완, △보호아동이 가정에서 생활할 권리 보장 등을 보완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중 단체가 가장 중요시 여긴 요구안이 '보호아동의 면접교섭권 보장'이다. 부모가 피치 못할 상황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더라도 부모와 아이에게 서로 소통할 기회는 주어야 하며, 지역 상담기관 등 공공기관의 중재로 서로의 인적사항을 비밀에 부치는 장치 등을 적용하면 보호출산제의 취지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게 단체의 주장이다.
수정안을 수용할 거라는 단체의 기대와 달리, 김 의원은 "다른 의원을 찾아가 보시라"며 거절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조 대표는 "김 의원에게 대화의 의사가 있었다면 함께 법안을 조율하고 싶었으나, 단번에 거절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위원회를 나왔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고아 양산 아닌 고아 권리 지키는 제도 만들어야"
조 대표는 이후 더 이상 정부와 여당과의 소통으로는 고아들의 권익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하고 서울 영등포 국회의사당 앞에서 무기한 트럭 농성을 시작했다.
그는 여러 맹점을 가진 보호출산제를 폐지하는 동시에 고아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유기피해인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하는 유기피해인 특별법은 △보호아동 실태조사, △보호아동학대자 처벌, △유기 부모 추적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조 대표는 "보호출산제가 시행되면 국가가 고아를 양산하는 최대 생산법인이 되는 꼴"이라며 "고아 양산이 아닌 고아의 권익을 지키고 고립된 아동의 수를 줄이는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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