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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한동훈의 '메시아 콤플렉스'가 국민의힘을 집어삼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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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윤석열·한동훈의 '메시아 콤플렉스'가 국민의힘을 집어삼키기 전에

[박세열 칼럼] 총선 대참패에도 대통령은 여전히 '내가 당을 구했다'고 생각하는가?

지금 국민의힘의 근본적인 문제는 '메시아 콤플렉스'다. 목적(정권교체) 위해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구하고자 하는 심리, 그리고 스스로 구원자로 임해 '사심 없는' 마음으로 타인을 구원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심리의 결합이다. 박근혜 탄핵 후 정권을 빼앗긴 보수 진영은 2022년 대선, 2024년 총선을 모두 서초동에 아웃소싱했다. '반문재인'과 '반이재명'을 내걸고 치른 선거에서 한 번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두 번째 선거의 실패로, 첫 번째 '성공'마저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 처했다.

2022년으로 돌아가보자. '극우 이념'과 '부정선거 음모론'에 휘둘리며 합리적 목소리를 억압해 온 당시 국민의힘은 '별의 순간'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대신 '별의 순간'을 잡은 인물을 재빠르게 자기 편으로 끌어오는 손쉬운 선택을 했다.

김종인이 윤석열 대통령을 언급하며 빗댄 '별의 순간(Sternstunde 슈테른슈툰데)'이란 수사는 본래 점성술에서 유래한 것으로, 운명론에 가까운 것이다. 독일에서 공부한 김종인은 독일어권에서 유래한 '별의 순간'을 긍정적 은유의 의미로 사용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입장에서 보면 정권교체를 위해 비과학적이고 불확실한 '운명론'에 당의 미래를 내맡긴 셈이다. 윤석열은 국민의힘을 이용해 '우회상장'에 성공하고, 구원자(메시아)로 등판해 정치입문 8개월만에 대한민국 권력의 최정점에 서게 된다. 한국의 보수정당에 '메시아론'은 이렇게 내려 앉았다. 윤 대통령은 여전히 '내가 이 당의 대선 주자가 되어 정권을 되찾게 해 줬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을 깔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난 2년간 온갖 당무 개입을 통해 당대표를 두 번이나 자신의 의지대로 갈아치운 것도 그런 점에서 설명이 된다.

유튜브 매체 <더탐사>가 공개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관계자의 전화 통화 내용은 충격적이다. "국힘이 아무리 미워도 국힘을 갖다가 플랫폼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을 하셔야 돼", "저는 대통령도... 저는 그런 자리 자체가 저한테는 귀찮습니다. 솔직한 얘기가... 그러나 어쨌든 이거는 엎어줘야 되고, 그리고 국힘에 이걸 할 놈이 없어." 녹취록 공개 후에도 윤 대통령은 이런 발언들을 부인한 적이 없다. 실제 윤 대통령은 "정권교체를 위해 부득이하게 국민의힘에 입당했다"(2021년 12월 23일, 광주 방문 자리에서)고 말한 적도 있다.

대통령은 당이 선출한 대표를 '내부 총질'한다고 내쫓고, '비윤' 당권 경쟁자들을 '초선 의원 연판장'을 동원해 주저 앉혔다. 당시 당권 주자 나경원 의원을 비토한 '연판장 초선'들이 윤석열 대통령과 무슨 정치적 동지 의식을 공유해 그런 행동에 나선 것이라고 보는 여의도 사람들은 없다. 대통령이 가진 '권력'을 보고 돌격한 자들이다. '메시아 콤플렉스'에 빠진 대통령은 이들을 마치 자신의 '정치 철학'을 공유하는 동지들인양 착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이라이트는 대통령이 '내가 이 당의 대선 주자가 되어 정권을 되찾게 해 줬다'는 인식의 연장선에서 본인과 판박이 이력을 가진 한동훈을 당의 새 '메시아'로 지상에 내려보낸 일이다. 결과는 참패였다. 이제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다.

'메시아 콤플렉스'는 다양한 형태로 발현되고 있다. 유례없는 비상 상황이라면서, 이미 사표를 낸 국무총리의 후임을 보름 넘도록 못 정하고 있다. '박영선 국무총리론', '양정철 비서실장론'이 여의도를 휩쓸고 간 마당에 '야당 협조'를 구하기 위해 늦어지는 것이라고 해석해주기에도 석연찮은 구석이 너무 많다. '박영선 총리, 양정철 비서실장'의 여론 떠보기 소동에서 '비선 논란'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당과 정부를 이끌 지도자로 유승민이나 이준석 같은, 같은 보수 진영 내부 인사들에 대한 언급 자체가 아예 없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윤석열 대통령(부부)에겐 유승민보다 문재인 정부의 장관 출신 인사가, 이준석보다 문재인의 '복심'이라 불린 인물이 먼저란 이야기다.

총선 패배 후 첫 인사가 '협치'와 '탕평'을 위한 것이라면 본인이 몸담은 정치 진영 내 인사들로도 충분할텐데, 끊임없이 '외부 인사'가 거론되는 이 상황은 무엇인가. 당을 '구제 불능'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윤석열식 성공 사례'는 보수 진영에 있어 해악과 같다. 스스로 당을 구원했다고 믿고 있는 대통령은 총선에서 심판을 받은 후에도 여전히 2년 전 자신의 '승리 방정식'을 놓지 않고 당에 이식하려 한다. 이렇게 설명하지 않으면 보수 정당의 주인인 유승민 같은 인사보다 '적진'의 책사와 '적진'의 장수 출신을 국정의 핵심부에 놓으려고 하는 이 기괴한 현상을 이해하기 어렵다.

한동훈은 그런 윤석열 대통령의 쌍생아에 다름 아니다. 한동훈은 자신이 '원톱'이 되고자 했고, 실제로 '원톱'이 돼 총선을 치렀다. 대참패 후 한동훈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도 '메시아 콤플렉스'는 감지된다. 그는 "저의 패배이지 여러분의 패배가 아니다"라고 했다. 정치에 뛰어든지 100일 남짓 된, 총선 선대위원장 직이 사실상 유일한 정치 이력인 인사가, 지난 2년간 '윤석열 정부' 국정 실패를 심판한 '역사적 참패'를 '저의 패배'로 축소시키고 있다.

한동훈은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배신이 아니라 용기다. 사심없고 신중하기만 하다면. 누가 저에 대해 그렇게 해 준다면 잠깐은 유쾌하지 않더라도 결국 고맙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고, "정교하고 박력있는 리더십이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만날 때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도 말했다. '사심 없음'의 순수한 정치 리더십이란 건 정치판에서 '유니콘'과 같은 것일 뿐이다. '정교하고 박력있는 리더십이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만날 때'란 말은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한동훈은 유세 과정에서 '내가 당을 구할 것이고, 범죄자로부터 선량한 시민을 보호할 수 있다'는 순수한 의무의 십자가를 진 것처럼 행동했다. 끝내 그는 '현실에 발 디딘' 유권자의 심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방향은 옳았지만 국민에게 닿지 못했다'는 대통령의 인식과도 다를 바가 없다. 결국 한동훈의 실패가 윤석열의 실패고, 윤석열의 실패가 한동훈의 실패다. 여권 내 '책임론 공방'을 보면서 떠오른 건 구분될 수 없는 둘을 구분하려 노력하는 하등 불필요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은 마치 군주정의 끝물에 서 있는 유럽 왕정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왕위의 유일한 정통성을 '혈통'으로 삼고, 정략 결혼과 세력 동맹을 위해 스페인, 스웨덴, 프랑스 여기저기서 왕과 여왕의 신붓감과 신랑감을 꿔 오며 군주제를 유지했던 시대. 민심과 상관 없는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독일에서 모셔온 영국의 왕은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고, 프로이센 왕국은 자국민과 전혀 상관없는 프랑스어를 왕실 언어로 썼다. 그 결말은 모두가 알 듯 왕정 붕괴로 이어진다. 영국 왕실 정도를 제외하면 '정치적 재생산'에 성공한 왕정 국가는 없다.

국민의힘도, 윤석열 대통령도 '메시아 컴플렉스'에서 깨어나야 한다. 지금 문제의 핵심은 대통령이 보수 정당에 동화돼 정치인으로, 정당인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 입문 8개월 만에 권력의 정점에 선 대통령은 아직도 현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은 모두 선거로 선출되지만 그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헌법상 권력을 갖게 되지만, 국회의원은 정당과 의석수가 뒷침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힘을 발휘하려면 총의를 모으고 야당을 설득해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대통령에겐 손쉽게 두를 수 있는 '권력'을 사용하는 게으른 습관에 푹 젖어 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이 너무 많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한다.

현실 정치엔 메시아도 없고 초인도 없다. 국민의힘은 보수 진영 내에서 키운 인물을 내세워 혁신하는 데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윤석열도, 한동훈도 이 판에서 한발 물러서야 한다. 물러서지 않는다면 국민의힘이 대통령을 물러서게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이 갖고 있는 '메시아 콤플렉스'를 깨부수는 일이 먼저다. 당 역시 '초인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환상에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범죄자 처단은 범죄자를 감옥에 넣는 것으로 끝낼 수 있다. 검찰식 정치가 그렇다. 마치 선거에 이기는 게 '유일한 목적'인 것처럼 굴어 왔다. 하지만 정치는 선거 한번 이겼다고 끝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의 '구원 신화'가 끝났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메시아 콤플렉스'를 부수지 않고서는 다음 대선에서 한국 보수 정당에 희망은 없다.

▲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21일 오후 대전 서구 오페라웨딩홀에서 열린 대전 선대위 필승결의대회에서 '청년들의 구원투수' 유니폼을 입고 시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2.1.21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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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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