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카페의 분위기는 참 묘했다.
실내로 들어설 때부터 느껴지는 위화감. 대개의 카페들은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기 마련이지만, 그곳은 음악 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다.
들리는 소리라곤 뭔가 분주히 오고가는 '업무' 이야기뿐. 40~60대로 보이는 사람 네댓 명이 노트북으로 일을 하거나 바쁘게 전화를 하거나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카페 직원과도 가까운 사이인지 웃고 반말을 했다. 아무리 봐도 손님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누굴까?
다른 손님들은 없었다. 그들은 손님처럼 조용히 방문한 기자를 눈에 띄게 경계했다. 한명은 창밖에 서서 취재진을 지켜보기도 했다. 그들은 취재진이 카페를 나와 길을 건넌 뒤까지도 계속해서 취재진 쪽으로 고개를 향하고 있었다.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 있는 카페 '하타○○'. 미스터리한 그곳의 정체는 바로 '사채왕'의 아지트다. 지난여름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사건이 바로 여기서 벌어졌다.
2023년 8월 22일 오후, 카페 하타○○. 야외 테라스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요란했다. '똘마니'의 배신이 뼈아픈지 사채왕 김상욱(1972년생) 회장은 눈을 찡그렸다. 당시 그는 아마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1500억 원 불법대출 정황이 담긴 음성파일 900개가 통째로 유출됐다니. 강남 일식당에서 만난 신○○ 전 지검장, 정치인 돈세탁 이야기까지 모조리 흘러 나갔다는 뜻 아닌가.'
파일을 넘겨받은 건설시행사 대표 최태진(가명) 씨는 쉽게 고개 숙일 기세가 아니었다. 쏟아지는 폭우는 더위를 식혔지만, 사채왕의 분노까지는 누르지 못했다. 김 회장은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내가 잡으러 갈까, 니가 여기로 올래? 니 지금 당장 이리 와."
김 회장의 목포 사투리가 도드라졌다. 김 회장의 전화를 받은 사람은 (주)무궁화신탁 김재민 대리. 김 회장의 지시를 받아 불법대출을 일으킨 공범이었다. 곧이어 김 회장은 조직의 '넘버2'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구 하나 오늘 죽여야겠어. 거기 애들 좀 준비해놔. 재민이가 좀 맞아야 되겠어. 재민이가 나를 중심에 두고 완전히 소설을 써부렀네. 작업 한번 쳐야 되겠어, 오늘."
전화를 끊은 김 회장은 맞은편의 최 대표를 가만히 바라봤다. 심장 뛰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요란했지만 최 대표는 티를 내지 않았다. 그 시각 서울 모처에서는 김 회장이 부른 '애들' 8명을 태운 검은색 스타렉스가 시동을 걸고 있었다.
최 대표는 "모든 자료는 나한테 있으니, 더는 김재민을 괴롭히지 말라"는 취지로 말했지만 김 회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불법대출을 했다고 재민이가 그래? 난 그런 적이 없는데. 걔가 왜 그런 거짓말을 할까. 난 거짓말이 제일 싫어."
김 회장은 태연했다. 무서울 게 없는 태도였다. 원래 대담한 성격인지, 음성 파일에 등장하는 검사와 정치인 등 '뒷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최 대표는 경기 하남시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저녁이 다 돼갈 때쯤, 김재민 대리가 김 회장에게 잡혀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최 대표는 다시 서울 신설동 카페로 달려갔다. 김재민이 '사채왕 김상욱 파일'을 넘기며 부탁한 말이 떠올랐다.
"최 대표님, 저 이제 불법대출 가담 그만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김 회장님과 한 전화통화 녹취 등 자료를 확보해놨습니다. 다 드릴 테니, 저 좀 도와주십시오."
카페에 도착했을 때, 김재민은 김 회장 앞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김재민이 쓴 '자술서'가 놓여 있었다. 일종의 반성문이었다.
카페 앞에 검은색 스타렉스가 도착했다. 건장한 청년 8명이 우르르 내려 카페로 들어와 김상욱 회장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반소매에 반바지를 입은 청년들의 드러난 팔다리에는, 화려한 문신들이 선명했다. 청년들이 최 대표와 김재민을 에워쌌다. 최 대표가 말했다.
"회장님, 저한테 지금 겁 주시는 겁니까?"
"겁은 무슨 겁…. 내 아들들이야."
김 회장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재민이는 오늘 죽을 거 같은데, 우짜지…. 재민아, 니 이 자술서 들고 검찰청 가서 자수할래, 아니면 부산 내려가서 바지선 타고 수장당할래? 말해봐."
최태진 대표가 말했다.
"회장님, 말씀대로 회장님은 정말 아무 잘못이 없으면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 노력해도 목소리가 저절로 떨렸다. 최 대표는 김재민 대리를 데리고 일어섰다. 카페 입구 쪽 테이블에는 '아들'들이 들고 온 망치와 노끈이 놓여 있었다.
사채왕 김상욱. 사람들은 그를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그는 본인이 식구처럼 여겼던 김재민 대리에게는 본인을 '작은아버지'라 부르는 것도 허락했다. 김 회장은 스스로를 "목포 오거리파" 소속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사채업자"이며 "우리나라 경제를 흔드는 사람"이라 소개하는 사람이다.
그의 말은 완전히 허풍은 아니었다. 지난해 한국 경제의 빅이슈였던 '새마을금고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 그 중심에는 청구동새마을금고의 1500억 원대 대출사기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이 바로 사채왕 김상욱의 '작품'이었다.
김상욱 일당은 우선 대출 명의자를 모집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 뒤 감정평가액을 최대로 부풀려 실거래가 이상의 부동산 담보 대출을 받았다. 대출금은 김상욱 일당의 손으로 흘러들어갔다. 명의자들에게는 수억 원의 빚만 남았다.
김상욱을 중심으로 무궁화신탁 김재민 대리와 청구동새마을금고 전종남 상무가 삼각편대를 이뤘다. 그리고 지역별 모집책-감정평가사-법무사사무소 사무장 등이 한 몸처럼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어느 한 곳에서라도 삐끗했다면 '작업'은 성공할 수 없었다.
그들이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대출한 돈만 약 1500억 원으로 알려져 있다. 경남 창원의 중고차 매매단지인 KC월드카프라자 건물 하나를 가지고도 약 800억 원의 대출사기에 성공했다. 결국 '깡통'이 된 청구동새마을금고는 문을 닫고 이웃 금고로 합병됐다.
"내가 (금융기관 직원한테) 쇼핑백으로 돈 3000만 원을 담아서 줬어." -김상욱 녹음파일 중
김상욱은 공범들을 매수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했다. 현금은 물론 최고급 해외여행을 보내주거나, 대출금을 대신 갚아주겠다고도 했다. 자신이 영향력을 발휘해 승진을 시켜주겠다, 애인을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꽂아'주겠다 장담하기도 했다.
김상욱 일당의 감언이설에 속아 명의를 빌려준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수억 원의 빚더미 위에 올라앉았다. 이미 신용불량자가 되고 부동산이 압류되거나, 일부는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자기 돈으로 연 11%나 되는 이자를 갚고 있었다.
다시 지난여름의 카페 하타○○. 최태준 대표의 긴 하루는 겨우 끝났지만,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다음날 자정께 김재민 대리가 최 대표에게 전화를 했다.
"미행 붙은 거 같습니다. 여차하면 대표님 자택이나 사무실로 밀고 들어가 제가 드린 자료를 빼앗아갈 거 같은데요."
최 대표는 이튿날 오전 김재민을 만나 함께 피신하기로 했다. 김재민은 무궁화신탁 팀장을 불러 상황을 설명하고 휴가를 요청했다. 팀장은 대신 휴가신청서를 써줬다.
최 대표는 2023년 8월 24일부터 김재민과 함께 모텔을 전전하며 '사채왕 김상욱 파일'을 분석했다.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1500억 원을 빼낸 정황, 신○○ 전 지검장과의 식사, 정치인 관리와 돈세탁 등 별별 이야기가 다 튀어나왔다. 잘하면 김 회장이 쓰는 소설의 방향을 바꿀 수 있을 듯했다. 착각이었다.
8월 30일 새벽, 김재민이 사라졌다. 신발도 신지 않고 감쪽같이 사라졌다. 9월 6일 김재민은 하남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김재민은 김상욱 회장에게 다시 포섭된 걸까.
"최태진 대표가 저를 감금 폭행해 녹음파일을 빼앗아 갔습니다."
최 대표는 9월 22일 긴급 체포됐다. 금방 풀려날 거라 생각했다. 역시 착각이었다. 김재민의 허위진술 외에 아무런 증거도 없는 상황. 그럼에도 최태진 대표는 구속됐다. 감옥에 갇히고서야 최 대표는 김상욱 회장의 말을 새삼 떠올렸다.
"경찰, 검찰 다 내 손아귀에 있어. 너 하나 눌러버리는 건 나한테 일도 아니야!"
검찰은 최 대표에게 공동감금, 특수강도 혐의로 징역 7년을 구형했다.
그가 그대로 감옥에서 7년을 '썩게' 됐다면 이 기사는 쓸 수 없었을 거다.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강동원)는 지난 2월 1일 최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최 대표는 4개월 만에 세상에 나왔다. 여기저기 흩어놓은 '사채왕 김상욱 파일'은 무사했다.
지난 2월 말 최 대표가 <진실탐사그룹 셜록>을 찾아왔다. 그는 "잘못이 있다면 나도 처벌을 받겠다, 조직적인 불법대출 문제를 뿌리 뽑아달라"며 모든 자료를 제공했다.
셜록은 그동안 김상욱-김재민 전화통화 포함 녹음파일만 약 2000개를 확인했다. 범죄에 이용된 문제 부동산 현장을 방문하고, 약 200건의 신탁등기 서류 등을 통해 '팩트'를 확인했다. 명의도용 등 사기 피해를 입은 피해자도 만났다.
청구동새마을금고 폐쇄로 이어진 1500억 원 불법대출은 김상욱 혼자만의 범죄가 아니다. 지역 모집책부터 금융기관 직원까지 여러 일당이 가담한 조직범죄다. 무궁화신탁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행정안전부와 금융감독원의 관리 부실 문제도 있다.
무궁화신탁 김재민 대리는 횡령과 사문서 위조 등의 이유로 직권면직 당한 상태다. 청구동새마을금고 전종남 상무는 대출금 편취 및 브로커 부당지급 등의 이유로 징계면직 처분됐다.
무엇보다 이상한 점은 '여전히 무사한' 김상욱 회장이다. 그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자신의 아지트를 오가며 평소처럼 살고 있다. 명의도용으로 신용불량자가 된 여러 피해자가 김 회장을 고소했지만, 경기북부경찰청은 약 1년째 수사만 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김상욱 일당이 저지른 대출사기 사건을 파헤쳐보는 게 순서다. 건물 하나로 약 800억 원의 대출사기에 성공한 곳. 다음 이야기는 경남 창원에서 이어진다.
※해당 기사는 <프레시안>과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제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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